# 36
[36화] 强 對 强, 길상파와의 전면전 (1)
<윤상원 부장실>.
이상준 차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윤 부장이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김 검사, 앉지.”
“네.”
“이번 일은 어떻게 잘 처리된 듯한데 너무 자만하진 말게나. 실제 길상파는 김달호나 천기수 급이 아냐. 그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걸 잊지 마. 아무튼, 수고했네.”
윤 부장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충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나저나 특별 수사본부가 꾸려지면 어쩔 수 없이 자네와 내가 자주 부딪히게 될 텐데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하자고. 어찌 됐건 내가 수사본부장이니 말일세.”
윤 부장이 맨 담배를 입에 물려 말했다.
“부장님, 피우셔도 됩니다.”
“아냐 아냐, 이번 참에 담배 끊으려고 노력 중이야.”
윤 부장이 손사래를 쳤다.
“…….”
“나도 자네같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들 때가 있었어. 그때는 그게 정의라고 생각했지. 아니, 그게 내 신념이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군. 하지만, 명심해! 김 검, 세상은 자네 같은 사람들에게 손뼉 쳐 줄지언정 기억해주지는 않아. 대중은 언제나 자신들의 영웅을 간절히 바라지만 그 영웅이 나설만한 극한 상황이 오는 것을 바라지는 않거든.”
윤 부장이 테이블 위에 양손을 내려놓고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런가요? 부장님. 하지만, 전 영웅도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검사로서 법을 어기는 자들은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단죄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나는 절대 당신처럼 변절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윤 부장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런가? 언제까지나 그 맘 변치 않길 바라 내. 아무튼, 앞으로 잘해보자고…….”
윤 부장이 기분 나쁘게 웃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얼마 후, 이상준 차장의 말대로 우리는 지청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길상파 해체를 위한 특별 수사본부를 발족할 수 있었다. 특별 수사본부는 순천 시내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있는 건물, 지하에 마련되었고 윤 부장이 수사본부장, 나는 수사팀장으로 임시 발령되었다. 지청뿐만 아니라, 서울 쪽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두는 프로젝트였다. 투입된 검사는 나와 장영은 검사 그리고 정훈이 아니 한정훈 검사였고 공 수사관을 비롯해 오 형사를 중심으로 5명의 베테랑 형사가 차출되었다. 또한, 서울에서 차출된 컴퓨터 전문가, 국과수 요원, 과거 길상파와 연결고리가 있었다가 전향한 특수요원 등 그 규모가 30여 명에 달했다. 지방 지청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치고는 매머드급 규모였다.
우리는 길상파와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배님! 진짜,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맨날, 교통사고건만 만지작거리다 보니 내가 검산가 보험회사 직원인가 헷갈렸거든요?”
장 검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제 좀, 제대로 된 검사가 된 것 같아 뿌듯해?”
나는 장 검을 향해 밝게 웃어주었다.
“네. 선배님! 진짜 가슴 설레네요. 영화에서나 보는 상황이 우리한테 펼쳐지다뇨?”
2층으로 구성된 수사본부 내부를 둘러보더니 정훈이 끼어들었다.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 톤이었다.
“그래. 한 검사! 우리 잘해보자고.”
나는 정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훈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정훈 선배! 뭐야? 예전하곤 분위기가 영 다른데? 팀장님한테 왜 이렇게 다정하지?”
장 검이 정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영은…… 아니, 장 선배, 나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어. 최근에 김 검사님의 활약을 보고도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역시, 대단하십니다. 김 검사님!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정훈이 나를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후후후,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넉살 하나는 죽이는구나. 역시, 상황 판단력 하나는 최고야.
“그래. 한 검사, 진짜 우리 잘해보자.”
“이제야, 선배가 김 검사님의 진가를 아나 보군. 앞으로 잘해보자고요. 신입!”
툭툭, 장 검이 정훈의 등을 두드리며 장난을 쳤다.
“넵. 장영은 검사님!”
정훈이 장 검을 향해 거수경례하며 느물거렸다.
하하하!
좋아! 이제 본격적으로 한번 붙어봅시다. 이길상 씨!
<길상파, 대책 회의>.
한편 나에게 일격을 맞은 길상파, 이길상 회장은 수뇌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 및 조직 간부들이 총출동한 모양새였다.
회의에 참석한 조직 수뇌부들의 표정은 침통했고 특히, 향후 조직을 이끌어갈 후계자, 이도식 상무의 표정은 더욱더 심각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일단, 천기수가 구속이 된 상황이고 우리 쪽 자료가 상당 부분 검찰로 넘어가 타격이 큽니다.”
먼저 이도식이 말문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계열사, 길상 건설을 맡은 박지철 대표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합니까? 김정환 이 새끼 잡아 족쳐야죠!”
이도식 밑에 있는 행동대장 김선출이 발끈하며 나섰다.
“김선출, 입 닥쳐! 경거망동하지 마라. 김정환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게다가, 지금 지역신문은 물론 공중파에서도 김정환을 띄우고 있는 마당에 그를 치겠다는 거야? 그건 자살행위라는 걸 몰라?”
“네에… 형님!”
이도식이 김선출을 날카롭게 째려보자 그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더니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봐. 이상무! 김정환이도 한상길 부장과 함께 예전에 우리 쪽과 연결돼 있었던 거 아냐? 그걸 이용해서 김정환하고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 어때?”
이길상이 이도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저도 그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김정환은 지금까지 쭉 망치 형님이 마킹을 했었는데 형님 그렇게 가고 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김정환과 관련된 자료가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습니다.”
이도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인상을 썼다.
“…….”
흠흠흠, 이길상 회장이 심기가 불편한 듯 연신 헛기침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약은 김정환이 철저하게 근거자료를 남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망치 형님도 너무 안일하게 대처를 했고요.”
“망치 그놈 그렇게 서두르더니… 아무튼, 무슨 수를 쓰든 천기수, 장 형사 입 단속시키고 특히, 쥐새끼 같은 장 형사 입에서 우리 쪽 정보가 새나가선 안 돼. 이상무, 알겠나?”
“네. 회장님.”
“그리고 최대한 빨리 대책 마련해 가지고 와. 이건 우리 조직에 사활이 걸린 일이야. 저쪽에서도 우리 쪽을 타깃으로 특별 수사본부를 꾸린 모양이야. 이번엔 만만치가 않을 것 같아.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
“네. 회장님.”
“아무래도 저쪽에서 천기수한테 입수한 자료를 이용해 우리를 압박할 것 같으니까 김 변호사는 그에 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거야.”
이길상이 새로 영입한 고문 변호사 김진호에게 신신당부했다.
“그 점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기수가 다이어리 형식으로 만든 개인적 자료에 불과해 법적 효력은 미미합니다. 천기수가 우리 쪽에 협박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자료로 대응하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합니다. 반박 자료는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럼, 다들 정신 바짝들 차려!”
“네. 회장님!”
어쩌다가 우리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누?
이길상이 수행비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임원들이 전원 기립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길상파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나는 장 검 그리고 정훈과 함께 근처 선술집을 찾았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도 있었고 새로운 수사본부도 발족했기에 단합 차원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나저나 선배님 지난번에 저에게 하셨던 말이요.”
정훈이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어? 무슨 말?”
“그거 있잖아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정훈이 삼겹살을 뒤집으며 말했다.
“아… 그거? 뭐, 그냥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아닌가? 영화 제목이 뭐더라?”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근데 정확한 표현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죠. 그런데 그건 왜요?”
장 검이 궁금한 듯 정훈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그게 며칠 전에 선배님이 나한테 하셨던 말인데 그게 사실, 예전에 내가 힘들 때마다 내 친구가 날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거든.”
정훈이 아련한 눈으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아! 맞다. 정훈 선배 친구가 박상우 선배 아니에요? 우리 과 수석 했던? 아니 전체 수석이었던가? 아무튼, 나도 본 적이 없어서 얼굴은 모르지만,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이름은 들어서 알아요. 키도 크고 잘생겼다던데…….”
장 검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아는 척을 했다.
“맞아, 상우! 잘생겼지. 키도 크고. 정말 아까운 인재였는데,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어.”
정훈이 눈을 꾹꾹 누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구나. 지난번 회식 때 선배가 말한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박상우 선배였구나. 정말 안됐네.”
장 검이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음… 자자, 분위기 너무 죽는데? 오늘 우리 으쌰으쌰 하려고 모인 자리 아냐? 자, 다들 한잔하자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정훈아, 내가 상우야!
“자, 그런 우울한 소리는 그만하고 자… 특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건배!”
나는 술잔에 술을 꽉꽉 채워 높이 들어 올렸다.
“넵. 건배!”
<김정환의 아파트>.
툭, 나는 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침대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정훈이 녀석, 그래도 이 녀석이 나를 기억해주는구나.
[킹 메이킹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합니다.]
막 취기가 올라 잠이 들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업그레이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반사적으로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합니다. 지금부터는 미션을 부여하고 그 미션을 완수하면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포인트? 그건 뭐지?
[한 개의 미션 완료 시, 10포인트가 지급되며 누적된 포인트는 필요 시 편리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그럼, 내가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할 수도 있는 건가?”
[YES, 호출은 물론 누적된 포인트로 카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포인트는 사용한 카드 개수만큼 차감됩니다. 지금, 디폴트 포인트로 10포인트를 제공합니다. 우측 상단을 확인하십시오.]
킹 메이킹 시스템이 차분하게 포인트에 관한 설명을 마치자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띠리링!
말 그대로 홀로그램 상태창 우측 상단에 [누적 포인트 : 10]이란 수치가 나타났다.
놀랍군. 시스템도 점점 진화하는구나!
그날 밤, 나는 시스템과 내가 한 몸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특별 수사본부>.
나는 수사본부로 출근했고 우리 수사팀은 본격 수사 첫날부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검사님! 크…… 큰일 났습니다.”
공 수사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수사관님, 무슨 일입니까?”
“식전 댓바람부터 이상한 놈들이 떼로 몰려와 지금 아수라장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상한 애들이라뇨? 어디로 누가 몰려왔다는 거예요?”
“경찰서로 수상한 놈들, 수십 명이 잡혀 와 지금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여긴 완전 아수라장이에요.”
“뭐… 뭐요? 수십 명? 조사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