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화] 신(新) 여우 사냥 (2)
만약에 경찰 내에 김달호를 돕는 조력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길상파와 어떤 관계일까? 사실, 경찰이 조폭의 뒤를 봐준다면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이해관계!
돈이든 출세욕이든 분명 그들과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다.
분명, 길상파와 연결고리가 있을 거야?
나는 길상파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관한 수사기록을 꼼꼼히 확인해봐야 했다.
수사기록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을 거야!
“공 수사관님, 최근에 발생한 길상파가 연루된 사건 파일 좀 전부 취합해 주세요.”
“네? 그건, 뭐 하시게요?”
“수사관님! 또, 또!”
“아…… 죄송합니다. 네네. 갖다 드릴게요.”
인상을 찌푸렸더니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다.
<김정환의 아파트>.
“김정환의 기억 데이터베이스를 열어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홀로그램 상태창에 김정환의 기억 파일들이 펼쳐졌다.
[나는 공 수사관이 가져온 길상파 관련 서류와 김정환의 기억 파일을 활용해 모든 서류를 철저히 검토했다. 최근 3년간 길상파와 연관된 사건의 수는 총 5건, 순천 XX 나이트클럽 폭행 사건, XX 룸살롱 미성년자 접대부 고용 사건, XX 건설부지 매입 로비 사건 등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중, 한 건만 기소 처리되어 법적인 처분을 받았고 2건은 불기소, 2건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건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좀 더 면밀하게 서류를 검토하며 미끼를 던질 대상자의 폭을 좁혀 확률을 높여야 했다.
길상파 관련 사건의 담당 형사는 총 3명, 그중 한 명은 이미 타 경찰서로 전근을 간 상태. 그는 일단 배제해야 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오상민 형사와 장진웅 형사 두 사람뿐인데…….
오 형사와 장 형사라….
특이한 점은 두 사람 중 장진웅 형사는 길상파와 연관된 모든 사건에 투입되어 있었다.
뭔가 좀, 냄새가 나는데? 하지만, 장 형사가?
하지만,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오 형사는 그렇다 쳐도 장진웅 형사는 경찰 내에서도 강직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사람이었고 최근 뛰어난 수사 실적으로 경찰청장 상까지 받은 모범 형사였다. 특히, 길상파 관련 사건엔 수사도 훨씬 적극적이었던 형사였다.
그것도 잠시, 곧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트릭이었어!
장진웅 형사가 수사한 길상이 관련 사건의 수사기록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였지만, 초동수사 단계에서 증거물 유실했다거나 수사 과정에서 증인들이 엇갈린 진술과 번복이 잦았다는 점, 그리고 급히 수사를 마무리한 흔적 등 이 곳곳에 묻어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였다. 하지만, 오 형사 역시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나는 길상파와 직접 연관성이 있을 만한 형사를 오 형사와 장 형사 두 사람으로 좁힐 수 있었다.
흠……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미끼를 던질 대상을 추린 셈인데…….
장 검의 말대로 이젠 그들이 덥석 물만 한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정환 검사실>.
뜻밖에도 실타래처럼 엉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숙제의 고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렸다.
“검사님, 김달호가 검사님을 급히 찾는데요?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나 봅니다.”
공 수사관이 급히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 검 말대로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공 수사관과 함께 급히 순천 경찰서로 이동했다.
<순천 경찰서 조사실>.
역시, 나는 종전과 같이 마이크를 끄고 경찰들을 모두 내보냈다.
“저기 창문에 블라인드 좀 내려 주시겠습니까?”
김달호가 작정한 듯이 조사실 창문까지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흠,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군.
“네. 그렇게 하죠.”
휘리릭, 나는 블라인드를 내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다.
“저 새끼 뭐야. 장 형사! 저거 무슨 개수작 부리려고 하는 거 아냐?”
오 형사가 장 형사를 바로 보며 인상을 구겼다.
“흠…… 자기도 뭔가 억울한 면이 있겠죠. 솔직히, 저도 김달호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장 형사가 턱을 매만졌다.
“장 형사, 그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정황증거가 이렇게 확실한데, 김 검사가 설치고 나선다고 자네도 그렇게 묻어가려면 안 되지! 이참에 우리도 힘을 한 번 보여줘야. 그래야 검찰 쪽에서 우리를 우습게 안 본다고. 우리가 지네 종이야 머슴이야? 이게 벌써 몇 번째 빠꾸야? 경찰을 무슨 싸구려 핫바지로 아나 본데. 이번엔 절대 그렇게 안 돼. 내가 저 새끼 꼭 처넣을 거야.”
오 형사가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글쎄요… 전 김 검사님이 잘하고 계신다고 보는데…….”
장 형사가 피식거리며 팔짱을 꼈다.
“진짜 미친 거야? 길상파 소리만 들어도 발작 증세를 보이더니 요새 왜 그래? 김 검한테 무슨 언질이라도 받은 거야? 장 형사 데려가겠대?”
오 형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형님!”
<조사실>.
“이제 됐습니까?”
“네.”
“그럼, 말씀해 보시죠. 급히 절 찾으셨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검사님, 이길상 잡고 싶으시죠?”
흐음, 김달호가 깊게 심호흡을 한 후, 똑바로 내 얼굴을 응시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당연하죠. 그건 우리 둘 다의 목적이 아니었던가요? 김달호 씨와 내가 여기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그… 렇죠. 검사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 저와 저희 가족을 지켜주시는 겁니까?”
김달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끝까지 연기하겠다는 건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김달호 씨가 범인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진정성 있게 수사에 협조한다면 저도 그에 대한 보답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성 있는 수사 협조! 확실히 거짓말은 아니지. 당신이 진정성이 없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말씀드리죠.”
후, 그가 다시 한번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내 모든 신경세포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심장을 자극했고 심장은 무한 펌프질을 시작했다.
“말씀해 보시죠.”
“길상파 내에 저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네? 그게 누굽니까?”
드르륵,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천기수라고 음… 일반 회사로 말하자면 입사 동기 같은 놈인데, 어릴 적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제 불알친구입니다. 그 녀석이 검사님께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먼저 내 등 뒤에 칼을 꽂으시겠다?
“그런가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도움을 준다는 거죠? 좀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녀석도 저와 마찬가지로 길상사에 목숨을 바쳐 충성했는데 지금은 그동안 힘겹게 만들어놓은 금쪽같은 수족들 다 잘리고 헌신짝처럼 버려질 위기에 처했죠. 하지만, 우리가 비록 병신처럼 위에서 하라는 데로 칼침 맞고 총알받이로 살아오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도 살길은 준비해 뒀었죠.”
“계속하시죠!”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수가 길상파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상 건설 강제 부지 매입 시, 관할 관청 고위직에 상납한 내역, 나이트클럽 세금 포탈 자료, 그리고 배신한 조직원들 제거할 당시 상황을 녹음한 녹음 파일까지 그가 가지고 있어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길상을 긴급 체포할 만큼 엄청난 폭탄이었다. 물론, 그가 그런 정보를 내게 넘길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아, 물론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저들한테 나는 제거 대상일 테니, 나를 죽인다면 이런 비밀이 새어 나갈 이유도 없겠지. 나를 속이기 위해 그럴싸한 떡밥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걸 저에게 넘기겠다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 자료면 저한테는 길상파를 단번에 무너뜨릴 기회가 될 테지만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신과 천기수 그 두 사람한테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데요.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김달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네. 검사님 말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이미 결심했습니다.
내가 먼저 치지 않으면 그자들이 나와 기수의 뒷덜미를 찌를 테니까요. 저로서는 검사님을 믿고 엄청난 도박을 하겠다는 겁니다. 지금!”
김달호가 허리를 꼿꼿이 펴 나를 응시했다.
정말 대단한 연기력이군!
“그렇군요. 일단 저를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김달호 씨를 돕겠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수는 저와는 다르게 매우 내성적이고 의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덤볐다가는 오히려 검사님이 낭패를 보실 수 있어요.”
슬슬 이를 드러내시겠다 이건가?
“계속하시죠.”
“제가 지금 말씀드린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약속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반드시, 모든 일은 검사님 혼자만 하셔야 합니다. 기수는 의심만 많을 뿐 아니라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 눈치도 동물적으로 빠른 놈이에요. 검사님이 저와의 약속을 어기시고 경찰을 대동하고 가신다면 그 자료는 영원히 검사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진짜, 약속 지켜주시겠습니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신 건가? 그런 식으로 나를 유인하겠다는 속셈이군.
“물론이죠. 제 검사직을 걸고 약속합니다.”
“정말입니까?”
그가 되물었다.
“네.”
“그럼 좋습니다. 거기 메모지하고 볼펜을 좀 주십시오. 제가 기수 연락처와 검사님이 저를 돕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실 수 있게 제 자필 메모를 남겨 드리겠습니다.”
김달호가 손짓으로 볼펜을 가리켰다.
“네. 여기 있습니다.”
[기수야. 나 달호다. 우리 이젠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나 고향에 내려가 살자. 김정환 검사님이 도와주실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 전부 검사님께 넘겨드려라.]
슥, 슥, 슥,
김달호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메모를 써서 내게 넘겼다.
“검사님! 저흰 검사님만 믿습니다.”
그가 메모를 밀어 던지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사전에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군.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된 거야. 이미 이쪽 조력자를 통해서 천기수에게 지금의 상황이 전달됐겠지.
“물론입니다. 저도 김달호 씨만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검사님!”
쾅, 나는 조사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장영은 검사실>.
나는 장 검을 찾아가 김달호가 제안한 내용을 모두 설명하였다.
“음…… 역시, 김달호가 먼저 칼을 들었군요. 선배님을 노리는 수작이에요.”
장 검이 양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를 그쪽으로 유인할 셈이야. 그러고 나서 나를 치겠지.”
“맞아요. 역시, 김달호는 이길상의 스파이였어요.”
“…….”
“혹시, 겁이 나세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장 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날 빼꼼히 쳐다봤다.
“내가? 혹시 죽을까 봐? 그러게, 나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지?”
후후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너털거렸다.
“선배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망치 총알도 피해 가신 분인데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전 선배님 믿어요. 그나저나, 김달호랑 내통하고 있는 경찰은 어떻게 좀 확인해 보셨어요?”
“음…… 일단 미끼를 물만 한 사람들 두어 명은 확인해 둔 상태야.”
“정말요?”
장 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젠 장 검 말대로 미끼를 한번 던져 볼까? 솔직히, 어떤 미끼를 던질까 밤새 고민했는데 고맙게도 오늘 김달호가 답을 줬어.”
“와. 역시 선배님은 대단합니다. 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미끼를 던져 보자고 한 건데…….”
장 검이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뭐야?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
헤헤헤, 장 검이 말없이 해맑게 웃었다.
“아무튼, 그럼 지금부터 고기를 걷어 올려 볼까? 무슨 고기가 걸려들진 모르겠지만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