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화] 신(新) 여우 사냥 (1)
<윤상원 부장실>.
나는 윤 부장에 관한 모든 자료를 취합했다. 결국, 그의 폐부를 찌를 자료를 확보했고 그와의 빅 딜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나는 오늘 윤 부장과 결론을 지어야 했다.
“김 검, 어서 와. 할 얘기가 있다고? 앉지.”
윤 부장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네.”
“차 한잔하겠나?”
그가 차가 담겨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닙니다.”
“그래? 그럼, 무슨 얘긴가?”
윤 부장이 눈을 깜빡거리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이번 여우 사냥 프로젝트 재고해 주십시오.”
전후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뭐?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미, 구체적인 안이 나와 있는 상태라고!”
윤 부장이 버럭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길상파는 기존의 한가람 로펌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국내 2위의 로펌인 대서양 로펌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이길상은 자신들의 조직과 기업의 법정 분쟁을 담당할 이윤수 자문 변호사를 내쳤고 새로운 변호사를 영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윤 부장은 이윤수 변호사를 대신할 변호사로 세간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정훈을 잠입시킬 계획이었다. 대서양에 이미 손을 써둔 상황이었다.
“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이 프로젝트는 불가합니다. 부장님!”
나는 눈을 부릅뜨며 윤 부장을 노려봤다.
“헐, 김 검, 요즘 매스컴에 이름 좀 올리더니 아주 안하무인(眼下無人)이구먼. 뭐? 프로젝트가 불가해? 좋아. 그럼 자넨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흠, 흠, 흠, 윤 부장이 헛기침하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아뇨. 제가 빠지는 게 아니라, 부장님이 빠지셔야 합니다.”
“뭐… 뭐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건방지게…….”
윤 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님이 제 말을 무시하시고 만약에 그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신다면 감찰부에 고발하겠습니다. 부장님은 길상파의 내부 정부를 파악하기 위해 불법 도, 감청하셨고 정훈이를 변호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최근 대서양이 맡은 사건의 수사 관련 자료를 거래를 목적으로 유출하셨습니다. 이는 명백히 위법이며 감찰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까요? 개인 정보 유출에 관한 법률…….”
“됐어! 뭐…… 뭔 소리야?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협박이야?”
윤 부장이 말허리를 잘랐다. 당황한 그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아닌가요? 아니라면 감찰부 조사에서 밝히시면 되겠군요. 전,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나는 냉정히 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이놈이 내 뒤를 캤던 거야?
윤 부장이 분에 못 이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잠깐만 김 검!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가?”
윤 부장이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목소리에 노기가 빠져있었다.
“부장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부장님의 계획은 양두구육(羊頭狗肉) 아닐까요?”
“뭐라고? 양두구육? 지금 내 계획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거야?”
“아닌가요? 지금 부장님은 양 머리를 올려놓고 개고기를 팔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훈이를 방패 삼아서요!”
나는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자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건가?”
윤 부장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좋습니다. 하나만 묻죠? 정훈이가 만약 잘못될 경우를 대비한 방안이 있습니까? 있다면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재고해 보겠습니다.”
“그…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안 되게 해야지.”
대책이 있을 리가 없지! 당신의 머릿속엔 정훈이의 안전 따위는 없을 테니까…….
“부장님! 그냥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장님이 이 프로젝트에 집착하시는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이 계획에서 손 떼시고 길상파를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이길상 모가지 따오겠습니다.”
“그…… 게 뭔 소리야? 집착이라니? 나는 정의를….”
“그만하십시오! 정의란 단어는 부장님이 입에 올리실 만큼 하찮은 단어가 아닙니다. 제… 가, 제가 부장님, 서울로 올려 보내드리죠. 어차피 부장님도 눈에 보이는 성과만 만들어 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진행하시려는 거 아닌가요? 이길상은 내가 잡을 테니까 그 공은 부장님이 가져가시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저는 그따위 공적 따위는 관심도 없으니….”
쾅, 나는 세차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이봐, 김 검! 김 검!”
윤 부장이 문밖에까지 따라 나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탐욕스러운 혓바닥에 내 이름 석 자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윤상원 부장님!
* * *
<장영은 검사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장 검을 찾았다.
“장 검사, 좀 들어가도 될까?”
“어? 선배님! 그럼요. 들어오세요.”
장 검사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여전히 싱그러운 그녀의 보조개와 함께…….
“무슨 일이세요?”
“음…… 내가 장 검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시간 괜찮아?”
“그래요? 당연히 괜찮긴 한데, 선배님이 이렇게 나오니까 괜히 긴장되는데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장 검이 큰 눈을 깜빡거리며 관심을 표시했다. 그녀가 내게로 바짝 다가왔다.
결국, 나는 장 검에게 윤 부장에 관한 모든 진실, 정훈이와 관련된 것들, 그리고 김달호의 비밀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기에…….
“…….”
내가 얘기하는 동안, 장 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다만, 심각한 표정으로 천정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에게도 윤 부장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후, 그녀가 도리 짓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침통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할 뿐, 한 마디도 되묻지 않았다.
“장 검, 괜찮아?”
“네에…… 괘, 괜찮아요.”
괜찮지가 않았다. 그녀가 핏기가 걷힌 얼굴을 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믿기 힘들지? 처음엔 나도 충격적이었어.”
“아뇨! 전혀요. 전 선배님을 믿어요.”
“정말?”
“솔직히, 선배님이 말씀하신 얘기는 도저히 못 믿겠지만 전 선배님을 믿어요! 지난번 망치 사건 때 총에 맞으시는 순간, 마음을 먹었어요. 그냥 앞으로 쭉 선배님을 믿기로요. 그러니까 지금 하신 말씀도 믿을게요.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니까…….”
장 검이 귀밑머리를 넘기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 정말?”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 듯이 나대기 시작했다.
“네. 믿어요. 흠…… 그래서요? 이렇게 된 이상, 길상파는 잡아야겠고 윤 부장도 한발 물러선다면 우리가 나서야 하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장 검이 셔츠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며 말했다. 역시, 열혈 검사, 장영은다웠다.
“근데, 장 검! 위험한데 괜찮겠어?”
“뭘요?”
“아니, 이번 작전은 여타 사건과는 차원이 달라.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어. 미안해 내가 괜히 장 검을 끌어들이는 거 아닌가 몰라?”
“하나도 안 위험한데요? 구해주실 거잖아요. 내가 위험에 빠지면 선배님이 구해주실 거잖아요. 아닌가요?”
장 검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여자의 눈빛이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무… 물론이지.”
“거봐요. 그런데 뭔 걱정? 전 선배님을 믿어요.”
“그…… 래. 믿어줘서 고마워.”
“그나저나 정훈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훈이 아니 한 검은 일단 이번 작전에선 제외될 거야. 내가 알아듣게 설명했어.”
“그냥, 순순히 선배님 말에 따르겠대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장 검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코끝을 매만졌다.
“음…… 그냥 그런 일이 있어!”
대충 얼버무렸다.
“정말요? 어쩐지 정훈 선배가 이상해졌어요. 하루가 멀다고 선배 흉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통 그런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장 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달곰한 체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으악! 심장아 진짜 나대지 마라!
내 심장이 고장 난 시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장 검과 상의한 나는 새롭게 기획된 여우 사냥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단계였다.
“공 수사관님, 김달호 신문할 겁니다. 지청 조사실로 소환 좀 해주세요.”
“네. 그나저나, 검사님! 다른 건 그렇게 신속하게 처리하시면서 김달호 건은 너무 신중하신 것 아닙니까?”
공 수사관이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사할 게 좀 많아서요.”
“경찰서에서 불만이 많아요. 이것 해와라. 저것 해와라. 부실하다. 다시 해와라. 입이 대발 나왔습니다.”
그가 손짓과 발짓을 하며 투덜거렸다.
“수사관님! 수사관님은 저랑 일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경찰이랑 일하시는 겁니까?”
탁, 나는 수사자료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네? …… 아… 그야. 검사님과 일하는 거죠. 암요!”
“그러면,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부탁합니다.”
“아…… 네. 그래야죠. 암요. 그래야죠.”
“김달호 건은 당분간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공 수사관님은 이거나 잘 마무리해주세요.”
나는 최근에 여수를 중심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던 한 노인에 관한 사건 자료를 그에게 전달했다.
“와…… 진짜 대단하네. 70살 먹은 노인네가 머리가 아주… 와….”
공 수사관이 서류를 넘겨보며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았다.
<김정환 검사실>.
나는 본격적인 반간계 작전을 수립하기 위해 장 검을 내방으로 불렀다.
“그러면 김달호는 선배님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죠?”
장 검이 입술을 일자로 만들었다. 앙다문 입술이 다부져 보였다.
“당연하지. 아마도 자기가 나를 완벽히 속였다고 생각할 거야.”
“그걸 역 이용하자는 게 선배님의 계획이고요?”
“그렇지. 반간계를 쓰자는 거지! 우선 내가 확실히 속아 넘어갔다는 믿음을 주고 그가 방심할 때 그자를 통해서 이도식이란 자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그자가 지금 길상파에선 대세야 최근 급부상한 인물이거든. 근데 워낙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 나와 있는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선배님, 조금 이상한 게 김달호가 선배님을 통해 우리 쪽 정보를 얻는다 치더라도 수감되어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정보를 외부로 빼낼 수 있을까요? 정보가 밖으로 나가야, 그래야 의미가 있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러게…… 그가 있는 곳은 경찰서고 그와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
“경찰!”
잠시 침묵이 흘렀고 우리 둘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단어는 경찰이었다.
김달호를 돕고 있는 조력자가 경찰 내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확실해. 경찰 내부에 김달호를 돕는 조력자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일단 그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야.”
“선배님, 분명 김달호의 타겟은 선배님일 거예요. 지난번, 망치 사건 일로 선배님은 공공연히 그들의 적이니까요.”
장 검의 추론은 일리가 있었다. 김달호는 나를 노리고 잠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맞아. 그럴 거야. 그들로선 내가 눈엣가시일 테니까.”
“분명, 김달호가 먼저 움직일 거예요.”
“어떻게?”
“흠, 그거야 저도 알 수 없죠. 하지만, 분명히 뭔 카드를 들고나올 확률이 높아요.”
장 검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다음은?”
“미끼를 던져 봐야죠. 뭐가 걸려 올라올진 모르겠지만…….”
“미끼?”
“네. 미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