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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29화 (2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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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간계(間計) vs 반간계(反間計) (3)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음…… 첩보에 따르면 곧 있으면 지난번 망치 사건 이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길상파가 대대적인 물갈이를 한다는 정보야. 일단, 계열사 재무를 담당하던 넘버2, 하정준 전무가 숙청을 당했어. 아마, 그자도 이젠 파리 목숨일거야.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지. 그리고 기존에 자문 변호사를 맡은 이진수 변호사도 이번 개편 때 갈릴 것 같아! 그 점이 지금 내가 보는 포인트야.”

윤 부장이 녹차를 한 모금 삼키며 말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윤 부장의 분석력에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요.”

“그보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도식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지. 그자가 최근 다크호스로 등장했어.”

이도식?

‘아주, 나, 이도식을 호구로 본 모양인데. 너 사람 잘못 봤다. X새야!’

어젯밤, 동영상 속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김정환의 기억 데이터베이스 속에서도 등장하지 않을 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가 길상파 내에서 떠오르는 인물?

“이도식이오? 그가 누굽니까?”

“그동안, 망치에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인물인데 망치가 사망하고 급부상했어! 그 인간은 무대포 같은 망치와는 차원이 다른 영리한 족속이야. 훨씬 더 잔인하고 무서운 놈이지. 원래 조직의 생리상 후계자로 키울 놈의 손엔 피를 묻히지 않거든. 이길상의 머릿속에는 망치가 없었어. 이도식은 이길상이 철저하게 자기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아껴왔던 것 같아. 그래서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거겠지. 배일에 가려져 있던 놈이야. 사실, 자네와 장 검이 아니었어도 망치는 조직 내에서 제거됐을 거야. 너무 설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도식이 앞길을 막고 있었으니까…… 그가 가고, 드디어 수면 아래 잠겨있던 이도식이가 부상한 거라 볼 수 있지! 이런저런 변화로 길상파는 지금 대 혼란에 빠져있어! 지금이 그들을 와해시킬 수 있는 절호에 찬스라고 생각한다네.”

윤 부장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렸다.

“부장님! 길상파는 정면 대결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덤벼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혹시, 생각해 두신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래서 장 검을 내보낸 걸세. 자네. 혹시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아나?”

윤 부장이 뜬금없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음…… 글쎄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죠.”

“그렇지! 그 방법뿐이겠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은데?”

“…….”

“후후후, 무턱대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는 아마 뼈도 못 추릴 거야. 갈기갈기 찢게 죽을 확률이 커!”

“…….”

그 순간, 나도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무래도 몸에 검은 줄 몇 줄은 그어놓고 들어가도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윤 부장이 날카롭게 나를 응시했다.

간계!

지금 윤 부장은 길상파에 우리 쪽 사람을 심어놓으려고 한다. 길상파, 자문 변호사를 대신할 사람!

그렇다면? 그 영상은?

맞아! 정훈이가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어. 지금 윤 부장은 스파이로 정훈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다!

정훈이가 위험해!

“부장님 지금 그 말씀은 우리 쪽 사람을 길상파에 심자는 말씀입니까?”

내가 잘못 판단했길 바랐다.

“지금까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지금 상황에 그 전략보다 더 좋은 전략이 있을까? 사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선배들은 권총 차고 경찰들과 같이 수사를 했다지만 지금은 그럴 수는 없잖아? 일단, 아직 내 생각은 그렇긴 한데…… 위험한 일이라 아직 100% 결정한 건 아니야. 적당한 사람도 없고.”

윤 부장이 이미 식어버린 차로 입술을 적셨다.

만약에 킹 메이킹시스템이 보여준 동영상이 맞는다면 정훈이가 길상파에 잠입한다는 소린데…….

절대 안 돼! 정훈이 성격상 버티기 힘들 거야. 이것만큼은 막아야 해!

“부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반대합니다. 그 전략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잘못하면 우리 쪽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난 어떡하든 이 작전을 막아야 했다.

“허허, 사람 하곤. 뭘 그렇게 발끈해? 아직 구체적인 안이 나온 건 아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공사를 좀 쳐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네. 김 검사, 자네 말대로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역효과가 날 거야. 앞으로 찬찬히 얘기해 봄세. 다만, 어느 정도 내 의지는 표명했으니 그리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할 거야. 난 김 검사에게 이번 프로젝트 수행에 전권을 쥐여 줄 생각이네. 제대로 능력 발휘해봐. 다만 노파심에 하는 소린데 김 검사! 이 일은 절대 외부로 흘러나가서는 안 돼. 장 검에게도!”

“네에…….”

“그리고, 김 검 자네도 몸조심하고, 지난번 일로 길상파 놈들 독이 바짝 올라있을 거야. 자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테니 각별히 조심해!”

윤 부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이 비비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 정도만 해두고 다음에 좀 더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자세히 얘기 나누자고.”

“네.”

“아 참, 자네 이번 프로젝트 작전명이 뭔지 아나?”

윤 부장이 돌아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네?”

“여우 사냥, 이번 프로젝트 작전명은 여우 사냥이야. 기억해둬. 자네한테 거는 기대가 커.”

윤 부장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에…… 알겠습니다.”

뭔가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 * *

<지청 휴게실>.

여우 사냥이라, 여우 사냥…….

윤 부장 방을 나오면서부터 머릿속엔 온통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맴돌며 떠나질 않았다.

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커피가 당기는군.

나는 발걸음을 옮겨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장 검과 정훈이가 커피를 마시며 투덕거리고 있었다.

“야, 장영은! 진짜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이게 학교 졸업하고 몇 년 만이지? 이쯤 되면 우리 필연 아니냐? 내가 여기서 널 만나다니 진짜 꿈만 같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정훈의 입에 귀에 걸려있었다. 그가 능글거리며 장 검에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건넸다.

“정훈 선배, 내가 다시 말하겠는데, 여기선 내가 고참이야. 사람들 없는 데서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다른 검사님들 있을 때는 반드시 선배란 호칭을 빼놓지 말아 줘. 나, 선배가 내 이름 함부로 부르는 거 몹시 불쾌해!”

장 검이 커피를 받아들며 쌀쌀맞게 몰아붙였다.

“에이, 무섭게 왜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나저나 영은…… 아니 선배님! 이번 주말에 뭐 해?”

정훈이 좀 더 장 검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뭘 하긴요? 일이 산더민데, 일해야죠. 요즘, 김 검사님하고 같이 할 일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도 지검에 나와야 해요. 그리고, 선배! 아무리 시간이 넘쳐나도 선배랑 보낼 시간은 없어.”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장 검이 반말과 존대를 섞어 말했다.

“김 검사님? 아놔! 김정환 검사? 그나저나, 나 여기 부임하고 나서부터 무척 궁금했는데, 김 검사가 뭐가 대단하다고 다들 그 난리야? 여기 가도 김정환, 저기 가도 김정환! 왜들 그 난린데? 지방대 출신에 검사 9년에도 만년 평검사 가지고 왜들 그러는데? 여긴 그렇게 인재가 없나?”

정훈이 방정맞게 커피를 홀짝거리며 빈정거렸다.

“선배, 내가 이래서 선배를 싫어하는 거야. 우리 김 검사님은 선배랑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야. 여기 온 지 시간 좀 됐으면 그 정도는 파악해야 하는 거 아냐? 어디 넘볼 사람을 넘봐야지!”

“헐, 이…… 이 찝찝한 분위기는 뭐냐? 우리 김 검사? 너, 혹시 김 선배 좋아하냐?”

정훈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그…… 게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그래?”

흠, 흠, 흠, 화들짝 놀란 장 검이 헛기침하며 손사래를 쳤다.

“뭐지?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래? 야, 장영은! 너, 진짜야?”

정훈이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두 사람 여기 있었네?”

그 타이밍에 나는 모르는 척 끼어들었다.

“아…… 선배님! 오셨어요? 부장님하고 얘기는 잘하셨어요?”

장 검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왔다.

“그냥, 뭐. 그간 우리 지청 얘기랑 우리 팀에 관한 잡다한 얘기 뭐 그런 것들이었어.”

대충 둘러댔다.

“그나저나, 한 검사는 지청 분위기 적응은 잘 돼가?"

“네. 그럭저럭요.”

정훈이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모든 면에서 서울이랑은 좀 달라서 적응하기 쉽지 않을 텐데.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와도 좋아.”

“글쎄요. 손바닥만 한 동네라 뭐 힘들 것도 없고, 딱히, 도움을 받을 일도 없을 듯한데요.”

신출내기 검사치곤 도발적인 말투였다.

녀석, 여전하구나!

아무래도 나를 자신의 연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래. 그럼 두 사람, 수고들 하고 장 검이 한 검사, 잘 좀 도와줘. 두 사람 학교 선후배라면서.”

“네… 에….”

장 검이 마지못해 답했다.

* * *

한 달 후, 윤 부장과 내가 여우 사냥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안,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졌고 우리의 계획은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할 상황이었다. 윤 부장이 예상한 대로 숙청된 길상파, 넘버2 하정준 전무가 숲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용의자는 길상파, 행동대원 김달호!

그는 하정준을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유인해 사시미 칼로 난도질해 죽인 협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윤 부장은 본 사건을 내게 할당했다. 너무도 확실한 증거로 인해 수사는 급히 진전됐고 그의 자백만을 받아내면 수사는 종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사관님! 김달호 경찰 조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나는 수사 자료를 뒤적이며 물었다.

“검사님, 아무래도 쉽지가 않네요. 김달호가 도통 입을 열지 않아요.”

공 수사관이 볼을 손가락으로 긁적거렸다.

“음… 그래요? 어느 정도 수사가 진행된 것 같은데 경찰서에 연락해서 빨리 이쪽으로 수사 자료 넘기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틀 후,

띠리리링.

공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사님, 빨리 이쪽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공 수사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요? 지금 거기 어디세요?”

“사건 기록 좀 확인하러 순천 경찰서에 왔는데, 김달호가 난동을 부리고 난리가 아닙니다.”

“난동이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글쎄 그게…….”

공 수사관이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

“뭐예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그게, 참, 김달호가 검사님을 데리고 오라고 난동이라는 데요? 검사님 오시면 다 불겠다고 하나 봐요! 미친놈이 약을 처먹었나… 왜 저 지랄인지, 나 참!”

“뭐…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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