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화] 사생결단(死生決斷), 최후의 공방전 (1)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내 손에 쥐여 준 조커를 던질 타이밍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황 변호사의 아킬레스 건을 잘라내야 했다. 나는 그의 비위가 담긴 파일을 들고 사무실을 찾아갔다.
황 변호사는 그의 동료 변호사들과 공판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연락도 없이 이게 웬일이신가? 김 검사, 이렇게 재판 중에 검사가 변호사를 찾아와도 되나? 썩,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구먼.”
황 변호사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빈정거렸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좀 물려주시겠습니까?”
“음, 급한 일 아니면 좀 기다려주겠나? 아니면 나중에 오셔도 괜찮을 듯하이. 보시다시피 우리가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이라….”
‘뭐야? 건방지게 연락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고!’
같이 있던 변호사들이 나를 힐끗거리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 그렇게 할까요? 기다리는 건 뭐 어렵지 않지만 곧, 뼈저리게 후회하실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날카롭게 황 변호사를 노려보았다.
“뭐야? 지금, 뭐라고 지금 씨불여? 건방지게!”
옆에 있던 변호사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 신변 가만있으세요.”
황 변호사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흠, 좋습니다. 재판 중인 검사님이 직접 이곳에 찾아올 정도면 시답잖은 일을 가지고 온 건 아닐 테고 좋아요. 그러게 하지요. 다들 잠시 나가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잠시 후,
‘지검장님, 이번 상진 화학 건 잘 부탁합니다. 저희는 지검장님만 믿습니다…….’
나는 황 변호사에게 조커 카드를 빼내 들었다.
자신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거칠어진 숨소리, 툭 튀어나온 눈, 서류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마구 떨렸다.
“이… 게 도대체 뭔가?”
“제가 듣기에는 변호사님의 목소리가 틀림없습니다만.”
“그니까, 지금 이… 걸 어떻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변호사님! 그게 지금 그러게 중요한 겁니까? 지금 그런 말씀은 변호사님 답지 않군요. 그렇게 당황하실 것이 아니라 제가 이 녹음파일을 가지고 온 이유를 물어보셔야죠. 그리고 저에게 딜을 제안하는 것이 타당한 것 아닌가요? 그게 변호사님 다운 모습일텐데요.”
나는 그에게 차가운 미소를 던졌다.
“지…… 금, 이따위 조작한 파일로 나를 협박하는 건가? 이건 엄연한 불법이야.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불법이라… 개싸움에 무슨 규칙이 있었던가요? 먼저 규칙 따위는 내팽개치고 야구방망이 들고 설치신 분에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듯합니다만.”
“뭐야? 이놈이 어디서 막말을 입에 담아?”
“막말? 이놈? 이제 슬슬 본성을 드러내시는 겁니까? 딱 여기까지가 검찰 대선배로서의 예우입니다. 저도 더 이상은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같이 돈이면 뭐든지 짓밟고, 누르고, 협박하고, 공갈 치는 인간들! 정말 구역질이 나! 우리 측 증인들 당신들이 협박하고 회유한 거 아냐? 병원에 깡패 새끼들 끌고 찾아가 협박하고, 가게 찾아가 드러눕고! 돈 몇 푼으로 회유하는 게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야! 법이냐고? 그런 식으로 반칙하려면 좀 티 안 나게 잘 하던가. 온 동네방네 죄다 개새끼 오줌 흘리고 다니듯이 지천에 구린내 풍기면서 당신은 법조인으로서 자존심도 없습니까?”
“뭐… 뭐라고?”
할 말을 잃은 황 변호사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당신 같은 인간들은 법을 입에 담아선 안 돼! 그런 시궁창 같은 주둥이 속에서 법이 놀아날 만큼 법이란 그렇게 추한 것이 아니거든!”
나는 검지를 흔들며 그를 조롱했다.
“나… 나가. 이 개새끼야. 당… 장나가!”
“공판 전까지 원상복귀해 놓으십시오! 전 성질이 급해서 오래 기다리지 못합니다. 이틀 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옥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치졸한 짓 하지 말고 법리로 붙어보자고요.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
황 변호사는 몸을 덜덜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아, 야구방망이 들고 설치든 사시미 칼을 휘두르든 이기기 힘드실 텐데 이쯤 해서 수건 던지신다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황상만 씨!”
쾅!
나는 보란 듯이 더욱더 세차게 문을 박차고 나왔다.
와장창, 으악!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비명이 가관이었다.
* * *
<김정환 사무실>.
공 수사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검사님! 빅 뉴스입니다.”
“뭔데,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세요?”
“증인들이 전부 다시 출두하겠다고 하네요. 이게 무슨 일이죠?”
후후,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양이군.
“그래요? 다행이군요.”
“헐, 지금 이 분위기는 뭐지? 안 놀라세요?”
의외로 담담한 내 모습에 공 수사관이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후후, 정의의 신 포르세티가 우리를 도왔나 봅니다.”
“네. 네?”
* * *
<광주지방법원, 406호 법정>.
어느덧, 공판이 다가왔다. 나는 모든 자료를 정리해 법정에 들어섰다. 공판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방청석을 차지했다. 지난 공판 때보다 훨씬 늘어난 방청객 수였다.
저 사람들은 뭐지?
박엔정 소속의 변호사들이 시위하듯 맨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다. 게다가, 순천 및 여수 지역의 유지들까지도 전부 동원된 듯 보였다. 방청석이 만원이었다. 분명, 재판 초기부터 상대의 기를 죽이겠다는 황 변호사의 의도였다.
결국, 김진웅 부친은 오지 않았군!
반면 반대쪽 상황은 판이했다. 김진웅의 모친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킬 뿐, 방청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한편, 피고 정한수 옆자리에 앉은 황 변호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공판 자료를 살펴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이제야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나 보군.
정한수의 자세도 종전과는 사뭇 달랐다. 허리를 곧추세우며 바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꽤 진지해 보였다. 첫 공판 이후 변호인의 조언을 받은 듯했다.
기립!
주심 판사, 이종호의 모습이 드러나자 법정은 빡빡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출석과 인정신문 등 일련의 절차를 거친 후, 법정은 본격적인 증인 신문에 들어갔다.
피고 측에서 처음 내세운 증인은 광주 국과수 연구원, 정현석이었다.
“증인은 국과수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되셨죠?”
“올해로 8년 차입니다.”
“그러면, 본 케이스와 같은 사건을 자주 경험해 보셨겠군요.”
“네. 지금까지 적어도 100건 이상은 처리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대로 노련하군.
황 변호사의 신문은 노련했다. 증언의 신빙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였다.
“국과수 감식 결과, 직접적 사인에 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낮고 묵직한 황 변호사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장간막 대동맥 파열입니다. 음…… 범인은 아마도 칼을 다루는데 서투른 초보였을 겁니다. 증거로 확보된 범행 도구인 칼끝이 부러져 있었고 흉터의 방향이나 개수로 볼 때, 전문가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증인은 지금 ‘아마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신문을 유도해내는 방식이 베테랑다웠다.
“수치라…… 100%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 경험상 95% 이상은 초보자의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95%라는 수치는 객관적으로도 믿을 수 있는 수치로 볼 수 있군요. 그럼 혹시, 범행 도구에서 지문이 검출되었나요?”
“네. 선명한 지문이 검출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범인이 초보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지문은 혹시 피고의 지문입니까?”
황 변호사가 정한수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처음 기소된 김진웅의 지문만 검출되었습니다. 피고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상, 신문을 마치겠습니다.”
황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검사! 반대 신문하세요.”
“네.”
나는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
“증인은 법의학을 전공하셨죠?”
“네.”
“그러면, 의학지식도 상당히 갖추고 계시겠군요.”
“필요한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사람의 팔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신경이 존재하나요?”
“네. 물론입니다. Median Nerve와 Ulnar Nerve 두 가지 신경이 있죠.”
“그렇군요. 그러면 이 두 신경이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손상을 심하게 입으면 어떻게 됩니까?”
“Median Nerve 손상이면 아예 손을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고, Ulnar 손상이라면 넷째 와 새끼손가락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만약에 신경 손상을 입은 손으로 사람을 찔러서 죽게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정현석을 뚫어지도록 노려봤다.
“그게… 음…… 그게 말이죠.”
그가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말을 더듬었다.
“증인! 지금 여기는 법정입니다. 원고의 질문에 정확히 답변하세요. 만약에 허위진술을 하게 되면 위증죄로 고발당합니다.”
이종호 판사가 정현석에서 주의를 시켰다. 나는 질문하기 위해 조금 더 그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원고는 지금 증인을 심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노련한 황 변호사가 방어했다.
“기각합니다. 증인 답변하세요.”
이종호 판사가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게, 만… 약에 Median Nerve가 손상되면 물건을 거의 들지도 못할 정도로 힘을 줄 수 없으니 칼로 사… 람을 찌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Ulnar Nerve가 손상된 경우라면 칼의 형태가 엄… 지손가락을 끼울 수 있거나, 테이프로 둘둘 말면 가능할 수 있긴 해도, 힘을 제대로 줄 수가 없어서 그리도 사람을 죽이긴 힘… 듭니다.”
증인이 황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며 더듬거렸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묻겠습니다. 정현석 씨 소견상 범인은 오른손에 칼을 쥔 것이 틀림없습니까?”
“네에.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가요?”
“네.”
그가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며 힘겹게 증언을 마쳤고.
됐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이후, 양측은 두세 명의 증인을 더 신청했고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이 진행되었다. 내가 공격하면 황 변호사도 노련하게 방어했고 황 변호사의 공격엔 내가 반론을 들어 대응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판의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된다는 것을 감지한 황 변호사가 먼저 칼을 빼 들었다.
“김진웅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수세에 몰린 황 변호사가 단번에 만회하려는 듯 승부수를 띄웠다. 정면 대결을 해보겠다는 의지였다.
“채택합니다.”
김진웅이 천천히 증인석으로 이동하자 법정은 순식간에 긴장감에 휩싸였다. 가끔 마른침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을 뿐, 모든 사람의 이목은 그에게로 쏠렸다.
폭풍전야와도 같이 고요했다.
“피고 측, 신문하세요.”
재판장도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