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23화] 드러난 진실 그리고 법정 공방 (5)
“박 선생이오?”
“네. 박 선생! 이 바닥에선 꽤 유명한 놈이죠. 이 정도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면 그 인간밖에는 없습니다.”
그가 까칠한 솟아난 턱수염을 문질렀다.
“그자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글쎄요… 아마도 저기 양동, 닭전머리를 가면 만날 수 있을 수도….”
“닭전머리요?”
“네. 닭전머리! 그런 데가 있습니다. 유명한 곳입죠.”
흐흐흐, 조달식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김정환 검사실>.
“공 수사관님, 혹시 닭전머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닭전머리요? 광주 양동에 있는 그 닭전머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요오오? 한번 가 보시게?”
공 수사관이 글자를 늘어뜨리며 느물거렸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왜…… 이러시죠?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요?”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흐흐흐, 거기가 광주서는 아주 유명한 곳이죠.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라뇨?”
‘거기가 광주에서도 유명한 유흥가예요.’
공 수사관이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네?”
* * *
“그러셨구나. 진작 말씀해 주시지. 오해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연수 필체를 위조한 위조범이 박 선생이란 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나는 공 수사관에게 박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 반드시 그자를 만나야 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흠, 글쎄요. 이거 금남로에서 김 씨 찾기도 아니고… 닭전머리, 닭전머리라…….”
공 수사관이 코끝을 찡그리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아! 맞다. 그 인간이면 어쩌면 알 수도 있겠네요.”
공 수사관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요?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일단 닭전머리로 갑시다. 저랑 같이 가 보시면 압니다.”
<닭전머리, XXX 살롱>.
공 수사관과 같이 온 곳은 광주의 유흥가였다. 공 수사관은 예전에 자신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한 유흥업소 사장, 김동팔이란 사람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어이, 김동팔이, 오래간만이야?”
공 수사관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필수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동안 통 연락도 안 하시고, 이게 얼마 만이에요.”
“한 3년 됐나? 그냥, 겸사겸사 오랜만에 자네 얼굴 좀 보러 왔지.”
“아하, 요즘 우리 가게 물 좋다는 소문이 순천에까지 났어요? 어떻게 오늘 붕가붕가 한번 하시려고? 쌔끈한 애들로 준비 좀 시킬깝쇼?”
동팔이란 남자가 손바닥을 겹쳐 비비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누… 구?”
그가 곁눈질하며 내 몸을 훑어 내렸다.
“아… 인사드려. 내가 모시고 있는 검사님이셔.”
공 수사관이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아…… 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던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후유, 어쩐지, 짭새 냄새가 진동한다 했더라. 역시나 검사 나리셨군요.”
“안녕하십니까?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김동팔이올시다.”
그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시X, 오늘 장사는 다 했네.
동팔이 손바닥으로 연신 바짓단을 문질러댔다.
“그나저나, 검사님까지 대동하고 무슨 일이슈? 나, 꼬박꼬박 나라에 세금 갖다 박고, 아가씨들 인간적으로 대해 줬고 술에 물 안 타고 양심적 장사하며 선량하게 사는 사람이올시다. 왜? 이젠, 이 짓도 못 하게 하려고요? 시X, 착하게 좀 살아보려고 졸라 노력하는데 갱생이 안 되는구먼, 갱생이…….”
좀 전과는 180도 바뀐 반응이었다.
카악, 퉤!
“오늘 재수 옴 붙었네.”
그거 걸쭉한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이 사람아. 이게 웬 오버야? 그런 게 아니고, 우리 검사님이 사람 하나를 수배하려고 하는데, 동팔이 자네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진짜요? 저…… 정말입니까? 무슨 냄새 맡고 트집 잡으러 오신 거 아니에요?”
동팔이 곁눈질을 하며 내 눈치를 봤다. 나에게 확답을 달라는 눈치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 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 그래요. 그러시구나. 아이고, 우리 검사님을 이렇게 밖에 세워두다니,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야 미쓰 김아, 사무실로 쌍화차 좀 내와라. 노른자 동동 띄워가꼬!”
동팔이 공 수사관과 내 손목을 잡아끌며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은 미로처럼 비좁았고 벽과 천정에는 온통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경계하는군!
“미리미리, 대비해 두지 않으면 이 장사도 해 먹기 힘듭니다. 솔직히, 관할 경찰 애들 허구한 날 세금 뜯으러 처 오질 않나, 소방 정비다, 위생 검사다 구청에서도 뻔질나게 다녀가고, 물장사한다고 하면 무슨 돈을 갈고리로 긁어 모으는줄 아는데 우리도 정말 힘듭니다. 검사님!”
내가 CCTV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자 동팔이 눈치 빠르게 카메라의 사용 용도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박 선생을 찾아오셨다 이거죠?”
동팔이 자리에 앉아 그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래. 이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형님, 뭐. 어려울 거 없어요. 아마 오늘 밤에 우리 가게로 올 거예요.”
툭, 동팔이 무심히 사진을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 그게 우리 가게에 미옥이라는 아가씨가 하나 있는데 그 인간이 그 아가씨 기둥서방이에요. 하루걸러 뻔질나게 들락거려요. 아마도 오늘이 오는 날일 겁니다.”
“그럼, 그 박 선생이라는 자가 거주하는 곳은 어딘지 아십니까?”
“대중없어요.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인간인데, 주로 이 건물 4층에서 지냅니다. 그곳이 박 선생 아지트거든요.”
“그래요? 그럼 4층도 여기처럼 이렇게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까?”
“당연하죠. 우리야 뭐. 하는 일이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합죠. 언제 짭새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깐….”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군.
“그럼. 혹시 1월에 찍힌 영상 파일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럼요. 우리는 항상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파일을 별도로 다운로드해 보관하고 있습죠. 그래야, 짭새들이 꼼짝을 못해요. 그 인간들 하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인간들이라….”
“잘됐네. 그럼 우리 검사님한테 그 파일 좀 보여드려!”
공 수사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네. 형님!”
나는 공 수사관과 함께 동팔이란 자가 건넨 파일을 샅샅이 뒤졌고 2시간여가 지난 시점에 드디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수사관님! 저기 검정 코트 입고 박 선생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 정 회장 수행비서, 김상현이 아니에요?”
“어디요? 아… 검사님! 맞네요. 김상현이가 틀림없어요. 얼마 전에 공판 때도 정 회장이랑 같이 왔었잖아요. 저기 저기, 박 선생도 보이네요.”
공 수사관이 숨은 그림을 찾은 듯 좋아했다.
“수사관님, 일단 이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이 파일을 가지고 지청으로 돌아가셔서 장 검에게 전달해주세요. 중요한 거니깐 단단히 주의하시고요.”
“네. 검사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이렇게 해서 나는 박 선생이란 자를 압박할 카드를 확보할 수 있었다.
* * *
나는 박 선생과 미옥이라는 여자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잠복하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미옥아, 오빠 왔….”
예상대로 박 선생이란 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 구야? 당신 뭐야?”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박 선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입니다.”
나는 그에게 검사증을 내밀었다.
“에이, 당신 뭐야? 여… 길 어떻게 알았어?”
박 선생이 뒤로 물러서더니 쟁반에 놓인 맥주병을 잡고 위협했다.
“워워… 그거 내려놓으시죠? 이러면 일이 커집니다. 저는 당신을 잡으러 온 게 아니에요. 난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일 어렵게 만들지 맙시다.”
나는 자세를 낮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내가 당신 말을 어… 떻게 믿어? 그럼 왜 여기에 온 건데?”
“이연수 아시죠? 지난 1월에 이 여자 필체를 위조했잖습니까?”
“모…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기억해?”
그가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분명 기억이 날 텐데요. 이걸 보시죠!”
나는 이연수가 남긴 메모를 찍은 사진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에게 밀어주었다.
“모… 몰라. 이거 내… 가 쓴 거 아냐.”
“아뇨. 이건 당신이 쓴 글씨가 맞아요. 우린 이미 당신과 정 회장의 비서 김상현이 만난 장면이 담긴 CCTV 화면도 확보했습니다. 박 선생! 잘 들으세요. 다시 말하지만 전 당신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당신은 죄가 없어요. 이 글을 써주고 돈을 받았을 뿐, 이것이 위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은 몰랐으니까요. 그렇죠?”
나는 흥분한 박 선생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그래. 맞아. 난 돈 몇 푼 받고 써달라는 대로 써줬을 뿐이라고,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생각보다 순진한 놈이었다.
“그래요. 맞아요.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이연수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전 그 사건의 담당 검사고요.”
“그… 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나를 찾아온 거야!”
“상관이 있죠. 이연수 필체 위조를 의뢰한 사람이 범인이니까, 하지만 당신 말대로 지금까지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만입니다. 그러나 난 당신을 반드시 법정 증인석에 세울 겁니다. 그런데, 증인석에 서서도 이렇게 발뺌을 하고 위증을 한다면 그때는 죄를 짓게 되는 거겠죠? 전, 당신이 정 회장 비서 김상현과 만났던 CCTV 영상 및 증인 등 당신이 이연수 필체를 모사했다는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뭘 뜻하는지 아십니까? 법정 증인석에 서서도 지금과 같이 변화가 없다면 난 당신을 위증죄로 고발할 겁니다. 맹세하죠! 100% 당신은 기소될 겁니다.”
흥분을 가라앉혔다면 위협을 가할 차례였다.
“저… 전, 진짜 몰랐다고요. 그냥, 돈을 준다길래. 써준 거예요. 그게 다라고요.”
감정의 동요가 생겼는지 말투도 존대로 바뀌었다. 박 선생이 맥주병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해합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죄가 없다고… 억울하게 한 여자가 죽었습니다. 게다가, 또 한 남자는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위기에 처해 있어요. 당신이 도와줘야 합니다. 박 선생!”
그다음 차례는 그의 동정심에 기댈 차례였다.
“어느 날, 김상현이라는 자가 저를 찾아왔어요….”
꾹 다물고 있던 박 선생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모든 상황은 끝이었다. 잠시 후, 박 선생에게서 이연수 필체를 모사한 모든 정황을 들을 수 있었고 이 모든 증언은 미리 챙겨온 녹음기에 전부 담길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이연수 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 * *
<장영은 검사실>.
모든 증거를 확보한 나는 다음 공판에 대비하기 위해 장 검과 공판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검사님!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공 수사관의 다급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 게 그게 말입니다.”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수사관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이거 좀 마시세요.”
장 검이 그에게 물 잔을 건넸다.
“후, 그게 우리 쪽에서 신청한 증인들이 죄다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습니다.”
벌컥벌컥, 공 수사관이 급하게 물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석한다고 했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에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이럴 수 있을까요?”
공 수사관이 벌게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말했다.
“불출석 사유는요? 왜 출석을 못 한다고 하나요?”
장 검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게 뭐, 건강이 안 좋다. 생업에 지장이 있어서 못 나온다. 뭐, 다 이런 식으로 형식적인 것들입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가 사전에 다 양해를 구해둔 건데?”
푸우, 장 검이 입김을 불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날렸다.
황 변호사다운 짓이야! 이번 공판을 개싸움으로 몰고 가시겠다 이건가?
후후후, 결국, 이렇게 양아치 짓을 하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이렇게 개싸움을 걸어온다면 나도 깡패, 양아치가 되는 수밖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선배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몰히 하세요?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이젠 어떡해야 하나요?”
장 검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뭘 어떡해? 그쪽에서 야구 방망이 들고 설치면 우린 사시미 칼을 들고 대응해야지!”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미친개한텐 몽둥이가 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