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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22화 (22/170)

# 22

[22화] 드러난 진실 그리고 법정 공방 (4)

“재판장님! 서면으로 제출한 증인에 관한 신문을 요청합니다.”

심장이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사 측에서 요청한 증인을 채택합니다.”

유일하게 피고 측에서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아킬레스건이었다. 증인은 사건 현장과 그리 멀지 않은 순천 시내 외곽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장성식이었다.

“나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장성식이 증인 선서문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무관심했던 정한수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이빨로 입술을 잘근거리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정한수가 병원에서 손바닥 봉합수술을 받은 날짜는 사건 발생 후, 24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렇다면 이것 가지고는 그의 사건일 알리바이를 깰 수가 없었다.

분명, 손바닥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응급조치를 해야 할 텐데? 피 흘린 자신의 모습을 김진웅한테 보일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맞다! 약국!

그는 반드시 약국에 들렀을 것이다.

나는 사건 현장을 기준으로 반경 1km 이내에 있는 모든 약국을 쥐 잡듯이 탐문했고 가까스로 지금 증인석에 앉아있는 장성식이 운영하는 소망 약국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증인 피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정한수의 얼굴을 가리키자 정한수가 슬그머니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피고! 고개를 숙이지 마시고 드세요.”

재판장이 정한수에게 주의 줬다.

“네.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을 지을 수가 있죠?”

“왜냐하면, 그날 저녁이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어서 일찍 약국 문을 닫고 있는데 저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어요. 그래서 기억합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김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각합니다. 검사, 계속하세요.”

재판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때 피고는 약국에서 무엇을 구입했나요?”

“붕대와 소독약을 샀어요. 워낙 다짜고짜 내놓으라고 무례하게 굴어서 기분이 무척이나 나빴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죠.”

“그렇군요. 그럼 그때 시간이 몇 시였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정확히 8시였습니다.”

증인의 말에 방청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방청석에 앉아있는 정 회장의 얼굴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확신하죠?”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시계를 떨어뜨렸어요. 제가 주워서 주려고 하니까 뭐가 급한지 뛰어나가더라고요. 아무리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어요. 무엇에 쫓기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시계를 유심히 봤거든요. 워낙 고급시계라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라고요. 그때 시각이 분명 밤 8시였습니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 순간, 김 변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핏기가 걷혔다. 당황했는지 그가 이쪽저쪽을 곁눈질하며 연신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실제로 증인이 운영하는 약국과 피고 정한수의 집까지 거리는 차로 이동하면 20여 분, 걸어서는 1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가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이런 괴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정한수의 시계를 증거품으로 제출합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저 시계가 피고의 시계라는 근거가 없습니다.”

김 변호사가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피고 측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검사!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죠!”

나는 스크린에 이연수와 정한수가 같이 찍은 사진과 그녀의 다이어리를 촬영한 화면을 띄웠다.

“제가 그녀의 다이어리 내용 일부를 읽어드리죠. ‘한수 오빠의 생일에 시곗줄을 선물했다. 한 달간 아르바이트비가 거의 다 들어갔지만, 오빠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는 이연수가 쓴 일기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한 글자, 한 글자, 글자 수가 늘어감에 따라 정한수 이마의 주름 깊이도 같이 깊어졌다. 그가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자, 보십시오. 사진 속 피고가 차고 있는 시곗줄과 증거로 제출한 시곗줄이 동일한 제품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요?”

나는 방청석에서 볼 수 있도록 시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이상! 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러면 다 끝난 거 아냐?’

방청석 곳곳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대부분, 정한수와 관계가 있는 방청객들로 구성되어 있던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한 분위에 휩싸였다.

“음…… 피고 반대 신문하겠습니까?”

“재… 판장님 30분간 휴정을 요청합니다.”

김 변호사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목덜미까지 홍조가 올라온 그가 휴정을 요청했다.

“정한수 씨. 왜 저걸 말하지 않았어요?”

김 변호사가 목이 타는지 연신 물을 들이켰다.

“시X, 모…… 몰랐다니까요? 난 그냥 길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다고요!”

쾅!

그 순간, 요란한 문소리와 함께 두어 명의 비서들과 한 남자가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는 정한수의 아버지 정 회장이었다.

더 이상의 법정 공방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30분간의 휴정 후에 재판은 속개됐고 피고 측에서 신청한 몇몇 증인신문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쟁점 없이 1차 공판이 마무리되었다.

“그럼. 1차 공판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피고 측은 오늘 답변하지 못한 사항은 서면으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네에.”

김 변호사의 표정이 침통해 보였다.

“그럼 2차 공판은 3주 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공판 서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김정환 검사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자 장 검이 헐레벌떡 내 방을 찾았다.

“선배님! 오늘 제대로 한 건 하셨다면서요?”

“와, 대박! 장 검사님이 공판을 보셨어야 했는데, 진짜 대박이었어요. 검사님이 상대 변호사를 막다른 구석에다 몰아넣고 쨉! 쨉! 그리고 회심의 어퍼컷 한 방! 캬. 진짜 속 시원했다니깐요? 음…… 과연 이게 우연이었을까요? 캬…… 진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니깐요. 진짜 최고였어요. 최고!”

공 수사관이 섀도복싱 자세를 취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수사관님 됐어요. 그만 하세요.”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럼, 이젠 우리가 승기를 잡은 건가요?”

“당연하죠. 이번 케이스는 이제 게임 셋이니 다름없어요.”

공 수사관이 가슴을 쭉 내밀었다.

“아닙니다. 아직, 절대 안심할 수 없습니다. 수사관님! 절대 방심하지 마세요. 상대는 박엔정이에요. 절대 이대로 물러설 사람들이 아닙니다. 긴장의 끈을 놔서는 안 돼요.”

“그야…… 뭐. 그렇긴 하지만…….”

흠, 흠, 흠, 공 수사관이 연신 헛기침을 했다.

“선배님, 앞으로 계획은요?”

장 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2차 공판을 철저히 준비해야지.”

“선배님! 그렇긴 하지만, 공판기일도 아직 좀 남았고 오늘의 성공적 재판을 자축하는 의미해서 오늘 우리 한번 뭉치는 건 어떨까요? 제가 기꺼이 쏘겠습니다.”

장 검이 잔을 들이켜는 시늉을 했다.

“캬, 좋쵸! 제가 돼지 껍데기 죽이는 데로 모시겠습니다.”

공 수사관이 귀에 입이 걸린 체,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미안한데, 오늘은 갈 데가 있어요. 우리 다음에 합시다.”

“네? 어딜 가시게요?”

급 실망스러운 표정의 공 수사관이었다.

“광주에 가봐야 해요.”

“광주요? 거긴 왜요?”

장 검이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러!”

“네?”

“네?”

장 검과 공 수사관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 * *

<정 회장의 자택>.

한편, 정한수 쪽 변호인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보세요. 황 변호사님. 이…… 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정 회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 게, 사실 한수 군이 모든 사실을 오픈해줘야 저희가 대응을 할 수 있는데,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여보세요. 황 변호사님! 지금 그 말은 우리 아들이 정말 무슨 몹쓸 죄라도 지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정 회장이 황 변호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변호사님 정신 줄 똑바로 잡으세요. 우리 애는 죄가 없어요. 없어! 변호사님이 뭘 잘 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이런 결과를 받아오라고 그 돈을 써가며 당신들을 쓴 거로 생각하세요?”

정 회장이 이를 드러내며 매우 화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최선! 난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디까? 저기 길거리에서 빌어먹는 비렁뱅이들도 다 최선을 다해서 구걸해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세요? 결과, 결과를 내세요. 법조계 베테랑이란 분이 그깟 애송이 검사 하나 맘대로 못 다루십니까?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까 돈으로 매수를 하세요. 세상에 돈 싫다는 인간이 있답니까?”

“그게,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황 변호사가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돈으로 안 돼요? 그럼, 어디 깡패 새끼들이라도 수배해 올까요? 묻어버리면 될 거 아냐?”

정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씩씩거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 변호사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또 최선, 최선! 당장 그 김 변호산가 뭔가 잘라 버리고 황 변호사 당신이 직접 변호를 맡아주세요. 얼마를 쳐 먹였는데 이게 뭐야?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 회장이 짙은 눈썹을 치켜뜨며 버럭거렸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아직, 첫 공판이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우리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딱하십니다. 아까, 법정에서 돌아가는 꼴을 직접 보고도 지금 이런 말이 나오세요? 황 변호사님, 지금 이게 애들 장난입니까? 어디, 제가 왕회장한테 전화 넣을까요?”

정 회장이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며 황 변호사에게 압박을 가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겠습니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 아들, 무죄로 만드세요. 한수 그놈이 우리 정 씨 집안 4대 독잡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 가만 안 있어요. 돈이든 권력이든 하다못해 깡패가 필요하다면 말씀하세요. 다 대줄 테니까, 명심하세요. 황 변호사님!”

“네에… 알겠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황 변호사의 턱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 * *

<광주 XX 카센터>.

나는 이 차장검사가 알려준 조달식이란 사람이 운영하는 카센터를 찾아왔다.

“계십니까?”

아무도 없나?

문이 잠겨 있었다. 나는 손을 이마에 올려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누구슈?”

툭툭, 한 남자가 내 등을 두드렸다.

“아… 네. 조달식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흠… 이거, 오랜만에 맞아보는 익숙한 냄새, 느낌이 아주 안 좋아.”

남자가 내 몸에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렸다.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였지만 눈썰미가 대단해 보였다.

저 사람이 조달식인가?

“혹시, 조달식 씨 안 계시나요?”

“이봐. 냄새가 난다고 했잖아. 어디서 나왔슈? 경찰? 검찰?”

남자가 천천히 자물쇠를 열었다.

"뭐 하세요? 안 들어올 거유? 내가 조달식이요.”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네.”

“작가를 찾는다고요?"

작가는 그들 사이에서 위조범을 일컫는 은어였다.

“네?”

“꼰대, 이 차장이 보낸 거 아니세요?"

이미 이 차장에게 연락을 받은 듯 보였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작가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하여간, 그 인간 더럽게 우려먹는구먼. 아주, 내 모가지에 빨대를 꽂아라, 꽂아. 우린 그렇게 불러요. 솔직히, 우리 일이 예술이라면 예술이지 암, 아무나 못 하는 거지!”

남자가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아… 네.”

“검사님이슈?”

“네.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입니다.”

“어쩐지, 냄새가 진동하더니만. 암튼, 맘잡고 손 씻은 사람 무지하게 귀찮게 하는구먼.”

조달식이 삐져나온 코털을 뽑아내며 불퉁거렸다.

“이미 알고 계신 듯하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것 좀 봐주세요. 필체가 같은지 확인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이연수가 남긴 메모가 적힌 영수증과 그녀의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어디 보자. 얼마나 잘 그렸나?”

조달식이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어… 잠깐만, 이거……?”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선반에서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 들어 메모를 살피며 긴장한 듯 미간을 좁혔다.

“왜, 그러시죠?”

“와. 이 정도면 거의 타짜 급 실력인데, 글의 뻗침, 펜을 쥐는 방향, 각도, 힘 조절까지 거의 예술가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데?”

와, 대박이네!

조달식이 황당한 표정으로 쪽지를 눈 쪽으로 바짝 가져다 댔다.

“위조가 확실합니까?”

“100% 위조가 맞는데, 이 정도 질이면 나 정도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거든. 이 정도면 국과수 감식에도 안 걸려요. 그런데, 이걸 위조했다는 것을 검사 양반, 당신이 알아차렸다는 거죠?”

“…….”

“헐, 말 못 하는 거 보니까, 진짠가 보네. 이젠 이 짓도 못 해 먹겠구먼…, 은퇴하길 잘했네. 잘했어.”

조달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이걸 누가 위조를 했을까요?”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음…… 이 정도 질로 위조할 수 있는 타짜는 대한민국에 나 말고 딱 한 사람이 더 있죠.”

“그… 게 누굽니까?”

나는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심장 박동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있습니다. 박 선생이라고….”

조달식이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네? 박 선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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