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21화 (21/170)

# 21

[21화] 드러난 진실 그리고 법정 공방 (3)

[육참 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라!

중국의 병법 36계 중 11계에 해당하는 이대도강(李代桃僵)과 같은 의미로 적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었다.

[메일을 확인하시오.]

메일?

나는 컴퓨터를 켜고 황급히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헐? 이건?

메일함을 열어보니 알 수 없는 주소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음성 파일이 첨부된 메일이었다.

“지검장님, 이번 상진 화학 건, 잘 부탁합니다. 저희는 지검장님만 믿습니다.”

“허허허, 이제 곧 같은 식구가 될 텐데 서로 도와야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 변호사!”

“그럼요. 이번 건만 잘 해결되면 지검장님 앞길은 탄탄대로 십니다. 아! 그리고 회장님께서 특별히 안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회장님은 강령하시죠?”

“그럼요. 회장님도 지검장을 향한 기대가 크십니다.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자녀분들 책이나 사주십시오.”

“허허허, 뭘 이런 걸…… 이렇게나 많은 책을 샀다가는 서점을 차리겠습니다, 그려.”

“하하하, 그런가요?”

몇 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상 진화학 노조위원장 김상훈 사망 사건에 관해 박엔정이 당시 광주 지검장이던 황 변호사에게 청탁 로비를 하는 녹음파일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

나는 속을 메스꺼울 정도로 구역질이 났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 치명적인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조커 카드 한 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순천지청>.

“선배님 오늘 정한수 1차 공판이죠?”

“어.”

“많이 긴장돼 보이시는데요? 오늘 유난히 더 긴장해 보이시는데…….”

장 검이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좀 긴장되긴 하는데?”

나는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

“지금까지 잘해오셨으니까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전, 선배님을 믿습니다. 파이팅!”

장 검이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나 꽃처럼 피어나는 보조개가 싱그러웠다.

“고마워.”

“참! 선배님 이거 받으세요.”

장 검이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야?”

“지난번 망치 사건 때 선배님 팔을 스쳤던 총알로 만든 목걸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총알이 행운의 부적인 것 같아요. 총알도 피해 가는 정의로운 검사, 김정환!”

정의로운 검사, 김정환? 그렇지. 난 박상우가 아니라 김정환이지. 제길!

“왜요? 마… 음에 안 드세요?”

장 검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냐. 와, 이거 진짜 멋진데? 고마워. 장 검!”

나는 냉큼 목걸이를 받아들었다.

“검사님, 법원 가실 시간 다 되어요. 출발하셔야죠!”

공 수사관이 시계를 가리키며 재촉했다.

“알았어요. 갑니다.”

* * *

<광주지방법원>.

공판 1시간 전,

주심인 이종호 판사가 나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김 검사,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네가 신청한 증인이 이 사람 하나뿐이야?”

이종호 판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네. 그분뿐입니다.”

“괜찮겠어?”

“네. 오늘은 그분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그에게 자신감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좋아. 아무튼, 상대가 박엔정이야.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06호 법정>.

내 생애 첫 공판!

비록 내 몸이 아닌 남의 몸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천천히 법정에 들어섰다.

역시, 아무도 오지 않았어!

방청석을 둘러봤지만, 이연수와 김진웅 두 사람과 연관된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들까지도….

“검사, 출석하셨습니까?”

“네.”

“피고 측 변호인, 출석하셨습니까?”

“네.”

이종호 주심 판사가 검사 측과 피고 측의 출석 여부 질문을 시작으로 1차 공판이 시작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2017 고합 **** 이연수 살인사건에 관한 1차 공판을 시작합니다.”

이 판사가 좌우 배석 판사들과 눈을 맞춘 후, 공판 시작을 알렸다.

그 순간, 피고석의 앉아있는 정한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폼이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피고, 자세를 바르게 해주세요.”

“네에.”

삐딱하게 앉아있던 정한수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피고인의 이름은 정한수가 맞습니까?”

“네.”

건조한 목소리와 의자 밑에서 방정맞게 떨고 있는 다리, 반성의 기미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럼, 검사, 모두 진술하십시오.”

이종호 판사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 고지 및 일련의 인정신문을 마치며 나에게 모두 진술을 지시했다.

“본 피고는 2007년 1월 18일, 고등학교 후배 이연수를 목 졸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해 같이 있던 친구, 김진웅에게 죄를 덮어씌워 사건으로 본 검사는 형법 250조에 의거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합니다. 이상입니다.”

“피고 측, 모든 진술하세요.”

“네. 피고 정한수는 검사 측의 기소 사실 전부를 부인합니다. 피고인 정한수는 이연수를 목 졸라 살해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시체 훼손도 없었고 살인을 조작해 김진웅에게 죄를 덮어씌우지 않았기에 원고의 기소 사실을 전면 부인합니다.”

예상대로 피고측 변호인, 김성철은 기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정한수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그가 비웃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이 재판에 자신이 있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정한수, 맘껏 비웃어라! 그 웃음이 네 인생의 마지막 미소일 테니…….

“그럼 검사, 피고인 신문하세요.”

“피고 정한수 씨! 사건일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천천히 정한수가 앉아있는 중앙 쪽으로 걸어 나왔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김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택합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한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포인터를 눌렀고 스크린이 내려오자 눈을 가늘게 뜨며 김 변호사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순간, 법정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 보시죠. 이 사진은 목격자들이 김진웅을 목격했다는 장소에 가서 낮에 찍은 사진입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낮에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혹시, 피고는 시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양쪽 다 1.5입니다.”

“그렇군요. 시력이 좋으시네요. 혹시, 저기 사진 속에 서 있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구분하시겠습니까? 뭘 입고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흠… 연두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군요.”

정한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죠.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연두색 점퍼와 청바지입니다. 역시 눈이 좋으시군요.”

나는 방청객들과 눈을 맞추며 사실관계를 각인시켰다.

“그럼, 이 사진은 어떨까요?”

다음 화면은 사건일의 날씨를 반영한 사진이었다. 밤이었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던 날씨였기에 가로등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벤치 근처에 있는 희미한 형체가 보이십니까?”

그저 윤곽만 구분할 수 있을 뿐,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한수가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다시 한번 봐주시죠.”

“잘 모르겠다고요!”

정한수가 짜증 섞인 말로 언성을 높였다.

“안 보이시나요? 그렇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가시거리가 3m도 되지 않는 날씨에 저 정도 거리면 실제로 15m 전방이라 볼 수 있는데 보일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 형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음 화면에 나타난 물체는 사람이 아닌 쓰레기통이었다.

“재판장님, 양쪽 시력이 1.5로 건강한 남자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물과 사람도 구별하기 힘들 만큼 가시거리가 짧은 상황에 김정자, 황일순 할머니 두 분은 본 현장에서 정확히 김진웅을 보았다고 진술하셨습니다. 이는 객관적인 정황상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바, 이에 그들의 진술은 명백한 위증으로 본 검사는 김정자, 황일순 두 분을 형법 152,154조에 의거 위증죄로 고발합니다.”

“채택합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신문하세요.”

“네. 물론, 김진웅을 목격했다는 그들의 진술은 명백히 거짓이지만 정황상 움직임이 사람이었다는 것은 상당 부분 신뢰할 수 있고 사건 현장엔 김진웅과 함께 피고가 있었다고 추정되는바, 피고 정한수가 당시 같은 시각에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연수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 중에 하나로 간주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둡니다.”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단순한 추측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타당한 추론입니다. 검사, 계속하십시오.”

김 변호사가 당황했는지 양 볼을 부풀렸다.

“네. 재판장님!”

“피고! 당시 18시부터 22시까지 4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별장에서 진웅이랑 연수와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급히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의 정한수였다.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네… 맞는다고요. 뭘 증명해요? 집에 있었다니까!”

정한수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피고. 법정에서 예의를 갖추세요!”

재판장이 정한수에게 주의를 시켰다.

“네에.”

“재판장님! 피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서면으로 제출한 증인에 대한 신문을 요청합니다.”

“채택합니다.”

김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증인 신문을 요청했다.

잠시 후, 재판장의 허락과 함께 두 명의 남자가 증인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은 피고와 어떤 관계입니까?”

피고 측 변호인이 증인 신문을 시작했다.

“저희는 한수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정한수가 남자들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친구?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렇군요. 그럼 김진웅 씨도 잘 알고 있는 사이였겠네요?”

“네. 친구였습니다.”

“그럼 평소에 김진웅 씨가 피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진웅이는 항상 한수의 도움을…….”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피고 측은 지금 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생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는 신속히 판사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채택합니다. 피고 측 변호인! 사건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질문은 자제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증인은 사건일 20시경에 피고가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셨다고 했죠? 그렇다면 피고는 그전에는 집에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김 변호사가 사건 서류를 펼쳐들었다.

“네.”

뭐? 정한수가 집에 있었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 시간은 분명 정한수가 이연수 살해를 자행했을 시간이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맞지!”

“어. 확실해.”

두 남자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확신하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그날 제가 시내에서 미팅하기로 했거든요. 근데 제가 조금 늦어서 서둘렀어요. 주선자가 하도 안 온다고 닦달을 해서요. 때마침 제가 한 수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때 한수와 그의 아버지가 나왔어요. 약속 시각에 늦어 오래 얘기는 못 했지만 그 시간이 확실히 8시였어요. 제가 불안해서 시계를 계속 봤거든요.”

“맞습니다. 저도 그때 같이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김 변호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검사! 반대 신문하시겠습니까?”

“네. 증인! 만약에 위증하게 되면 법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잘 생각하시고 답하시길 바랍니다. 피고의 집 앞에서 정한수를 목격한 것이 사실입니까?”

제발 사실이라고 말해라!

그들을 향한 나의 시선에 주문을 걸었다.

“네. 맞습니다.”

“그 시각이 정확히 밤 8시라고 했죠?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분명 정확히 8시였습니다.”

‘검사님,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공 수사관이 황급히 검사석으로 달려와 귓속말을 전했다.

좋았어! 걸려들었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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