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화] 진실 혹은 거짓 (7)
<김진웅의 자택 근처 공터>.
“검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만 저쪽으로 가시죠.”
김진웅 모친이 내 팔을 잡아끌며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다.
“어머님, 무슨 말씀이신지.”
“검사님, 우리 진웅이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내 배 아파 난 자식이에요. 애미가 잘 압니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흑흑흑,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네. 어머님. 그래서 제가 김진웅 씨를 도우려고 이렇게 어머님을 찾아온 겁니다.”
“검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건 절대 진웅이 아버지한테는 비밀입니다. 제가 검사님께 말한 사실을 알면 저 그 양반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비밀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진웅이가 경찰서에 자수하고 얼마 안 있어 정 회장이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김진웅 모친의 회상>.
“이봐. 준석이! 아들 일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큰가? 자식 키우는 처지에서 나도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야. 그럴 녀석이 아닌데…….”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회장님. 못난 자식을 둬서 회장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김준석이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냐, 아냐. 이 사람아.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린가. 심려라니. 진웅이와 우리 한수는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인데 한수나 마찬가지로 진웅이는 내 아들이나 진배없어. 내가 어떻게 모른 척을 하겠나.”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도 알다시피 한수 놈이 진웅이를 끔찍하게 생각하잖나. 그놈이 하도 자네 집안일을 걱정하길래. 가만있을 수 없어서 내가 이렇게 직접 왔네.”
“한수 도련님이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를 좀 도와주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진웅이는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자수도 했고 내가 검찰에 손을 좀 써뒀으니까 정상참작이 될 거야.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 줄걸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유능한 변호사는커녕, 국선 변호사가 지금까지 김진웅의 변호를 맡아왔다.
“아이고, 회장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준석은 방바닥에 코가 닿을 만큼 허리를 더욱더 숙였다.
“그리고 말야. 내가 알기로는 요즘 자네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린다던데 맞나?”
정 회장이 날카롭게 정식의 표정을 살폈다.
“아닙니다. 회장님! 회장님 덕분에…….”
“에이, 사람도! 사람이 이렇게 유해서 어떻게 사업을 하나. 내가 다 알아봤어. 자네. 고리 사채까지 얻어 썼다면서?”
“면목이 없습니다. 회장님!”
“흠흠. 이거 받게. 약소하지만 도움이 될 거야.”
정 회장이 주변을 살피더니 돈 가방을 슬그머니 준석에게 건넸다.
“이…… 게 뭡니까?”
“이 정도면 대충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언감생심 회장님한테 신세를 집니까? 지금처럼 밥숟갈 놓지 않는 것도 회장님 은혜인데요.”
김준석이 완강히 받기를 거부했다.
“어허! 이 사람! 자꾸 이러면 내 손이 부끄럽지 않나? 그냥, 그간의 내 정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두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진웅이 한수도 그렇고 자네나 나나 한 형제나 다름없지 않은가!”
허허허, 정 회장이 너털거리며 웃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정 회장이란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애 아빠가 세차하다가 실수로 자기 차를 파손했는데 30년을 일한 애 아빠 퇴직금에서 수리비용을 빼고 준 사람이에요. 진웅 아버지 회사 차렸을 때도 코빼기도 안 비쳤던 사람이 이렇게 큰돈을 가지고 찾아오다뇨! 말도 안 되는 일이입니다. 검사님!”
그녀가 한이 맺힌 듯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어머님. 그럼 혹시 정 회장이 다른 말은 없었나요?”
“네. 있었어요. 그 점이 저도 너무 꺼림칙해서 검사님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정 회장이 애 아빠한테 검찰에서 부르거든 진웅이와 한수의 관계에 관해서는 입 밖으로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요. 게다가, 오늘 자신이 찾아온 것도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했고요. 진웅이 아버지야 정 회장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양반이라 그대로 따랐고요.”
당연히 그랬겠지! 그래야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테니까… 최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돈도 현금으로 가져왔으니…….
“또, 다른 말은요? 다른 특별한 건 없나요?”
“제가 아는 것은 이게 다예요. 검사님! 우리 진웅이는 법 없어도 살 착한 아이예요.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아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연수 그 아이도 진웅이랑 사이가 좋았어요.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왔고요. 흑흑, 제발, 제발 우리 진웅이를 도와주세요.”
그녀가 내 팔을 잡고 오열했다.
“네…… 어머님 진정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아드님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이렇게 되면 6번째 거짓말도 해결이 된 건가?
* * *
<이연수의 자택>.
나는 마지막 거짓말을 확인해야 했다. 이연수는 홀아버지 이상필과 단둘이 살았다. 나는 약도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여보세요? 안 계십니까?”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삐그덕, 대문이 열려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널브러진 가재도구, 퀴퀴한 곰팡내가 진동했다.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집안은 폐가와 같았다. 집안에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군!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누구슈?”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아 네. 순천지청에서 나온 김정환 검사입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명함을 건넸다.
“워메? 검사 선상이 워쩐 일로 시방 개망나니 집구석을 와 부렀소?”
그녀가 명함을 눈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개망나니요?”
“야. 참말로 개망나니지라. 허구헌날 술 쳐묵고 다 때려뿌셔싸고 돈만 생기믄 허천나게 노름방서 돈 날려 쳐묵는 망나니제, 개망나니.”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둘렀다.
“이상필 씨 직업이 없는 거로 아는데 어디서 그런 돈이 생겼을까요?”
“그라제. 그거시 쪼까 껄쩍지근허요. 그 집 딸래미가 그렇게 숭하게 갔는디 이 느자구 없는 인간이 어짜그서 돈이 생겼는지 허구헌 날 저라고 술만 처묵고 댕긴다요. 땡 전 한 푼 없어가꼬 빌빌거리던 거렁뱅이가 사방팔방 돈을 뿌려싸코 다녔지라. 시상에, 지 새끼가 비명에 갔는디 저거시 사람이여? 개만도 못한 짐승이제!”
아주머니가 흥분했는지 몸을 벌벌 떨었다.
“아주머니, 평소에도 이상필 씨가 술을 자주 마셨습니까?”
“암만! 술만 처묵으면 집안 살림 다 때려뿌셔사코 불쌍한 연수 갸도 거시기 매질에 워메 모지락시러웠지라. 연수 갸도 지옥이었을 거여. 원래는 이씨가 순했는디 마누라 보낸 담시 저라고 망나니가 됬지라.”
“평소에 이상필 씨는 좀 어땠나요?”
“음…… 글씨. 아! 이씨가 술만 처묵으면 미친개마냥 그라고 지랄 앰병을 떨어도 평소에는 멀쩡했지라. 그라고 연수 갸 사진을 놓고 펑펑 울었다 안 허요. 딸년 목심값으로 호의호식한다고! 참말로 귀신 곡할 노릇이제. 그 망나니가…….”
그렇군! 이연수에게 정한수는 지옥에서 벗어날 동아줄이었겠어. 분명, 정한수 쪽에서 손을 쓴 것이 틀림없다. 그 대가로 이상필은 서둘러 이연수를 화장했겠지!
음…… 이렇게 되면 7번째 거짓말도 해결이 된 건가?
며칠 후.
<김정환 검사실>.
장 검이 서류철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선배님!”
“어. 장 검 왔어? 무슨 일인데 그렇게 얼굴이 벌게? 뛰어왔어?”
“선배님. 서울 국과수 증거물 정밀 감식 결과가 나왔어요. 여기 있습니다.”
헉헉, 장 검이 허리를 숙여 숨을 고른 후, 감식 결과지를 내밀었다.
[장간막 동맥 파열에 의한 쇼크사. 살인 도구는 증거물대로 길이 25cm가량의 칼로 확인됨. 17cm 깊이, 각도 29.5의 흉터를 토대로 볼 때, 위에서 아래로 칼을 휘둘러 찌른 것으로 추정됨.]
일단 여기까지는 기존 보고서와 일치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것이 없네.”
“선배님, 아직 그렇게 단정 짓긴 어렵죠. 좀 더 보셔야 할 듯합니다.”
“…….”
나는 좀 더 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특이사항]
1. 눈 밑의 울혈 : 일반적으로 목이 졸려 질식사한 시체에서 발견되는 특징. 다만, 질식사와 쇼크사의 전후 관계는 파악할 수 없지만, 통상적으로 질식사가 먼저 발생할 확률이 높음.
2. 흉터의 위치 및 각도 : 왼쪽 하복부의 집중적인 흉터 및 칼의 각도로 볼 때 사건 당시 가해자는 오른손에 칼을 쥔 것으로 추정.
3. 방향성 없이 여러 곳에 생긴 흉터의 위치로 볼 때, 범인은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함. 칼 사용이 서툰 범인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추정.
4. 칼끝이 부러진 것과 흉터의 깊이 등을 고려할 때, 칼 사용이 서툰 범인은 칼을 쥔 손바닥에 자상을 입었을 확률이 높음.
“어때요? 선배님! 이 정도면 괜찮은 결과 아닌가요?”
“그러게 이쯤 되면 3시간의 비밀이 어느 정도 풀어질 것 같은데?”
“맞아요. 사건을 정리해 보죠. 김진웅, 정한수, 그리고 이연수는 정한수의 별장에서 술을 마셨고, 술이 약한 김진웅은 폭탄주 몇 잔에 곯아떨어졌던 거죠.”
장 검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추정했다.
“맞아. 그 사이에 사건이 터진 거지. 정한수는 이연수를 목 졸라 살해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빙고. 정한수가 이연수를 죽인 이유는 역시, 그녀의 임신이겠죠?”
장 검의 눈이 반짝거렸다.
“맞아. 그냥 데리고 놀려던 여자가 갑자기 임신했다고 하니 당황했을 거야. 처음에야 설득했겠지만, 이연수가 완고하게 저항했겠지.”
“맞아요. 이연수는 그 아일 낳으려고 했던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데도 한 방울도 안 마셨겠죠. 당황한 정한수의 우발적 살인! 그리고 그걸 김진웅에게 뒤집어씌운 거죠.”
확신에 찬 장 검의 눈빛이었다.
“맞아! 그리고 그 뒤처리는 정 회장이 알아서 시나리오를 썼겠지.”
[킹 메이킹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귓속을 때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7개의 거짓말을 밝혀낸 보상을 제공하겠습니다. 카드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허공에 펼쳐진 수많은 카드 중 하나를 터치했다.
“고마워.”
“네? 고맙다뇨?”
장 검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에게 한 말인지 알았나 보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장소 힌트권]
장소 힌트권?
[장소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YES.”
나는 망설임 없이 YES 버튼을 터치했다.
“선배님 지금 허공에 대고 뭐 하세요?”
“아…… 아냐. 아무것도 피곤해서 그런가, 눈앞에 뿌옇게 뭐가 낀 것 같아서….”
나는 대충 둘러댔다.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세요.”
“그런가? 그러게 좀 일찍 들어가야겠네.”
나는 눈을 비비며 연기했다.
[김성훈 정형외과]
상태창에 나타난 글자였다.
김성훈 정형외과?
수술? 손! 상처?
맞아! 만약에 칼을 다루는데 미숙한 정한수가 이연수를 찌를 때, 손바닥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꿰매야 했겠지! 바로 이거야!
“선배님 자꾸,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내가 중얼거리자 장 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 검!”
“네.”
“범인 잡으러 가자!”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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