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7화] 진실 혹은 거짓 (6)
7개의 거짓말이라….
첫 번째 거짓말은 이연수의 자필 메모일 것이다. 두 번째 거짓말은 그녀의 직접적 사인일 테고…… 세 번째는 김진웅을 봤다는 목격자들의 진술, 네 번째는 담당 형사의 거짓말이었겠지. 그럼 이제 남은 건 세 개뿐인데…….
“교도관님, 김진웅 씨 수갑 좀 풀어주시죠.”
나는 나머지 거짓말을 풀기 위해 김진웅의 악력을 확인해야 했다.
“네. 검사님!”
교도관이 그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김진웅 씨 실례지만 제가 손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선배님, 뭘 하시려고요?"
장 검이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손을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네에….”
부드럽다!
김진웅의 손은 남자 손 치곤 유난히 작았고 매우 부드러웠다.
이런 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김진웅 씨, 죄송하지만 제 손을 한번 세게 쥐어보실래요?”
“네?”
김진웅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 손을 꽉 쥐어보세요.”
“네에…….”
“김진웅 씨, 힘을 좀 줘보세요.”
“이게, 세게 쥔 건데요?”
전혀 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힘을 주신 거라고요?"
“네. 사실, 전 오른손에 힘이 거의 없어요. 재작년에 교통사고로 오른손 신경을 심하게 다쳐서 신경 접합 수술을 했거든요. 그 이후로는 오른손을 거의 사용을 못 해요. 그래서 원래는 오른손잡이였는데 지금은 왼손을 주로 씁니다.”
김진웅이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주물렀다.
이연수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다!
그런데, 김진웅의 오른손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그렇다면 만취한 상태에서 한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게다가 비록 여자지만 술도 먹지 않은 맨정신의 사람을? 그게 가능할 수 있는가?
“후,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쉽지 않은 얘긴데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야 했다.
“저… 검사님……… 전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의 목소리 떨림의 강도가 조금 더 세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그럼 이연수가 사망한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정한수라는 말이 되는데 그 이후에 정한수와….”
‘장 검, 오늘은 그냥 가자.’
나는 장 검의 말을 가로막았다. 김진웅에게 심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게….”
“아, 네. 김진웅 씨,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 검이 내 눈치를 보더니 말꼬리를 돌렸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거… 검사님!”
“네?”
김진웅이 돌아가려던 장 검과 나를 불러 세웠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깨어났을 때 칼이 오른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네?”
“그럼, 혹시 정한수가 진웅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을 잘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 순간, 심장이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모를 거예요. 제가 철저하게 숨겼으니까요. 죽어도 그것만큼은 숨기고 싶었습니다.”
김진웅의 최후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럼. 건강 유의하시고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장 검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실>.
장 검과 나는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지청으로 돌아왔다.
“선배님, 제 감으로도 김진웅이 범인이 아닌 것 같네요.”
“아직 그런 속단은 일러. 사실, 현재까진 심정뿐이야. 아직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어.”
“선배님, 이연수가 질식사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죠? 아까 보니 김진웅이 오른손을 거의 쓰지 못하던 거 같던데요? 한 손으로 그것도 술 취한 상태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연수는 멀쩡한 상태였는데요.”
장 검이 코끝을 찡그렸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맞아요. 정한수가 이연수를 목 졸라 살해하고 김진웅한테 덮어씌운 거예요. 김진웅이 오른손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모른 정한수가 자고 있던 그의 오른손에 칼을 쥐어준 거구요.”
“아마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에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패닉 상태에서 자신이 오른손잡이니 무의식적으로 김진웅의 오른손에 칼을 쥐여 줬겠지.”
“그렇다면?”
“그래. 장 검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을 거야. 김진웅이 잠이 든 시간은 대강 18시 반 전후, 정황상 그가 깨어난 시간이 22시 전후인 것으로 볼 때 그 사이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간이 몇 시지?”
“음, 정확하진 않지만, 국과수 보고서엔 19시 전후로 되어 있어요.”
“김진웅의 진술이 맞는다고 가정하면 술에 취해 쓰러지고 난 후 바로 깨어나 이연수를 죽였단 소린데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
“음…… 정한수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시는군요.”
장 검이 생각에 잠기며 입술을 오므렸다.
“현재까진 정황상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높아. 장 검! 그 김진웅이 이연수를 살해했던 칼에서 지문이 채취됐다고 했지?”
“네. 국과수 의뢰 결과상에는 분명 김진웅의 지문이 틀림없었어요. 근데 좀 이상한 게 일반적으로 칼과 같은 흉기를 사용할 경우 한 손으론 칼을 잡고 한 손으론 찌를 대상의 신체 일부를 잡기 마련인데, 그래서 지문이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손의 지문만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근데 이건 특이하게 양손 지문이 모두 채취됐어요.”
아마도 그랬을 거야! 술에서 깬 김진웅의 오른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다고 했어. 자신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란 김진웅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왼손으로 칼을 집어 들었겠지. 그러니 양손의 지문이 검출되었을 거야.
이것이 다섯 번째 거짓말이다!
“장 검, 부탁 하나 할게.”
“네. 뭐든 말씀하세요.”
“국과수에 의뢰해서 피해자 시체에서 발견된 흉터가 왼손에 칼을 쥐고 찌른 건지 아니면 오른손으로 찌른 건지 확인 좀 부탁해. 분명 흉터의 깊이나 각도 등을 확인해보면 답이 나올 거야. 내가 육안으로 봐서는 이연수 오른쪽 복부 및 흉부에 집중적으로 칼자국이 있는 것으로 볼 땐 분명 가해자는 오른손으로 칼을 쥐었을 가능성이 커.”
“맞아요. 선배님 추론이 맞는다면 김진웅이 칼을 찌른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선배님 말대로 이연수의 직접적 사망 원인이 질식사라면…… 김진웅이 잠들어 있던 사이에 정한수가 이연수를 목 졸라 살해하고 그걸 술에 취해 잠든 김진웅에게 덮어씌웠다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이게 맞나요?”
“아마도……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근데 이상한 게 정한수는 왜 이연수를 죽였을까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무슨 이유요?”
“몸종을 건드린 조선 시대 양반 도련님이라면 답이 될까?”
“네…… 네?”
“이연수가 임신한 아이가 정한수의 아이라는 증거만 있으면 마지막 퍼즐은 맞춰지지 않을까?”
“아! 맞다. 맞아요. 정한수는 애초에 가난한 이연수와 계속 사귈 맘도 없었고 그냥 엔조이 파트너였을 텐데, 그녀가 임신했다면? 그로서는 정말 난감했겠군요. 아! 맞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이연수가 그날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군요. 임신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녀는 정한수의 아이를 낳고 싶었던 거예요!”
“맞아. 현재로선 그 그림이 가장 가능성이 큰 거라고 봐야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였을 테니….”
“네. 선배님! 만약에 선배님 추론이 맞는다면 그것만 밝혀져도 이 사건 해볼 만한 거 아니에요? 상황 정리해서 정한수 구속영장 발부할까요?”
장 검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좀 더 신중해야 해. 이미 두 번이나 재판이 진행된 케이스야. 이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판사님 설득하기 어려울 거야. 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해!”
이젠 놀랍지도 않군! 이 사람 진짜 변한 게 확실해! 심장아 나대지 말자! 이 사람은 그냥 선배야 선배!
장 검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장 검, 그럼 국과수 의뢰 좀 부탁해. 난 김진웅 부모를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아!”
“네에… 다녀오세요.”
<김진웅의 본가>.
나는 김진웅의 본가를 찾았다. 김진웅의 부친과 정한수 부친과의 관계를 확실히 확인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검사님!”
“흠흠흠.”
반갑게 맞아주는 김진웅의 모친과 달리 그의 부친은 나의 등장이 탐탁지 않은 모습이었다.
“흠흠. 변호사도 아니고 검사님이 우리 집에 왜 오셨습니까? 왜요? 그놈의 새끼 아예 감옥에서 문드러져 죽게 하시려고요?”
그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독설을 내뱉었다.
늘어진 귀, 굳게 다문 입술,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셔츠 단추를 모두 채워 입은 옷차림이 고지식해 보였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변호사 선임을 안 하셨더라고요. 중죄이긴 하나 자수를 해서 변호사를 선임했으면 형을 최대한…….”
“검사 양반, 쓸데없는 소리 하시려거든 돌아가세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지. 그놈은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놈입니다. 뭔 얼어 죽을 변호사 흠흠흠…….”
그가 헛기침하며 돌아앉았다. 냉기가 감돌았다.
“아이고, 진웅 아버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우리 진웅이가 그런 몹쓸 짓을 할 아이가….”
“시끄러! 여편네가 어디 남편이 말을 하는 데 끼어들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나가서 검사님 배웅이나 해! 손님 가신다.”
휙,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르신! 잠시만요. 하나만, 하나만 여쭙고 가겠습니다. 정한물산 정 회장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뭐? 뭐요? 당신이 뭔데 어르신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립니까? 그분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이슈?”
그가 발끈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분 아들 정한수와 아드님이 어릴 때부터 친구라고 알고 있는데요.”
“도련님은 또 왜요? 한수 도련님은 이 일과 아무 상관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쇼. 진웅이 놈이 어떻게 되든지 우린 아무 상관 없소이다. 이미 호적에서 파 버렸어요. 그런 놈은 제 자식도 아니오.”
도련님? 21세기에 도련님이라……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걸!
“여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우리 진웅이가….”
김진웅 모친이 울먹거렸다.
“시끄러. 무슨 초상났어? 울긴 왜 울어. 살펴 가십시오. 멀리 안 나갑니다.”
쾅, 그가 세차게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딴 일로 올 거면 다시 오지 마슈.”
험험, 그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삐거덕, 대문을 열고 문밖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저…… 검사님?”
김진웅의 어머니가 주변을 살피며 나를 불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