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화] 진실 혹은 거짓 (5)
<장영은 검사실.>
“수사관님, 확실합니까?”
“네. 장 검사님! 확실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좀 해주실래요?”
장 검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김 검사님 그거 좀…….”
공 수사관이 내가 들고 있던 마커를 가리켰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두 분 다 놀라지 마십시오.”
“네에.”
꿀꺽, 장 검이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공 수사관이 셔츠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고는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는 이연수를 꼭짓점으로 김진웅과 정한수의 이름을 삼각형 형태로 그려 넣었다.
“한 마디로 삼각관계죠. 하지만, 근데 한쪽으로 급격히 기운 비정상 삼각형!”
슥 슥 슥, 그는 이연수와 정한수는 가깝게 김진웅은 먼 형태의 비대칭 삼각형으로 고쳐 그렸다.
“그러니까, 김진웅은 이연수를 이연수는 정한수를 짝사랑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김진웅과 정한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는데, 아니 사실 친구라고 하긴 뭐하고 뭐랄까? 그게 조선 시대로 따진다면 양반과 머슴의 관계? 그게 더 정확할 것 같은데요? 겉으로 보기에만 친구였고 아무튼 정한수가 김진웅을 자기 종 부리듯 그랬다더군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정한수는 학교 때문에 서울로 올라갔고 두 사람은 순천에 남아있었죠. 정한수가 자주 순천에 내려와 두 사람을 만났던 것 같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정한수와 이연수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면서 김진웅과 이연수는 더욱더 멀어지게 됐죠.”
공 수사관이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그런데, 정한수가 김진웅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이유가 있나요?”
“충분히 있을 수 있죠! 장 검사님!”
공 수사관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가요?”
드르륵, 장 검이 화이트보드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겼다.
“정한물산!”
쓱쓱쓱, 그가 화이트보드에 정한 물산이란 글자를 적어 넣고 글자에 별 모양을 그려 넣었다.
“정한물산?”
“정한물산?”
장 검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겹쳤다.
“정한물산 정회장이 정한수의 부친이고 김진웅의 아버지가 정한에 부품을 대는 하청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는군요. 근데 그게 정한이 하청 업체들에 워낙 악랄하기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갑 오브 갑인 거죠. 하지만 이 불경기에 그만한 납품처도 없는 처지에 하청 업자들은 한 마디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납품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김진웅 부친은 정 회장을 30년간 모시던 운전기사였는데 정년퇴임 후에 퇴직금으로 부품 회사를 차렸고 정한에 지금까지 하청 일을 했나 봅니다. 김진웅의 부친은 정회장을 마치 주인처럼 모셨다는군요. 전형적인 현대판 양반과 노비 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
장 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있지! 김진웅 부친이 경영하던 회사가 최근 엄청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거든. 김진웅 부친, 김준석 씨는 고리 사채까지 끌어다 임시방편으로 부채를 메꿨지만,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회사는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어!”
“맞습니다. 근데, 공교롭게도 이연수가 죽고 난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회사가 기사회생했죠. 그 많은 부채를 다 갚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 이후 김준석 씨가 경영하던 신한상사는 정한물산의 제1 협력업체가 되었다는 건 진정 우연일까요?”
공 수사관이 내 말을 받아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제1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는 무슨 차이가 있죠?”
장 검이 코끝을 매만졌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죠. 현금 결제를 받느냐 100일짜리 어음을 받느냐니까요. 가끔 150일짜리 어음도 준답디다. 당장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하는 마당에 100일짜리 어음 받으면 경영자로선 속이 다 뒤집히죠. 결국, 사채시장에서 어음 깡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요즘은 여의치 않았나 봅니다. 그러니 그렇게 제1 협력업체가 되려고 그 더러운 꼴을 다 보면서도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을의 입장에선…….”
공 수사관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니까, 결국 이 사건의 키포인트는 숨겨졌던 정한수군요? 선배님 그럼 혹시…… 이연수가 임신했다는 아이 아빠가 정한수일까요?”
장 검이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그쪽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지!”
“김 검사님, 임신이오? 누가요? 이연수가요?”
“네. 수사관님.”
“헐, 대박!”
“선배님 슬슬 시나리오 밑그림이 그려지는데요?”
장 검이 반복해서 다리를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일단, 우선은 김진웅을 만나봐야겠어.”
“수사관님, 순천교도소에 김진웅 면회 신청 좀 하시고요. 이연수 아버지 좀 면밀하게 조사해 주세요. 특히, 금전 관계를 중점적으로요.”
“네. 검사님!”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그나저나 검사님, 저 죄송하지만, 검사님 얼굴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공 수사관이 턱을 문지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제 얼굴은 왜…… 왜요?”
“맞아요, 선배님. 저도 진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그거 혹시 가면 같은 거 아니죠? 이리 와 봐요. 한번 벗겨보게.”
장 검과 공 수사관이 천천히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왜… 왜들 이래?”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장 검사님. 저분이 진짜 김정환 검사님이 맞나요?”
“글쎄요. 저도 잘…….”
의심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순천 교도소.>
장 검과 나는 수차례 면회를 거절한 김진웅을 간신히 설득해 만날 수 있었다.
“김진웅 씨, 이 분은 이번에 저와 함께 사건을 맡은 김정환 검사입니다.”
장 검이 김진웅에게 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김정환입니다.”
“…….”
김진웅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다소 왜소한 몸매에 남자치곤 하얀 피부, 밑으로 처진 눈매가 선해 보였다.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다!
잠시였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한없이 맑은 사람이었다.
“김진웅 씨, 우리는 당신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혹시, 숨기고 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장 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저 같은 살인자를 도와준다는 거죠?”
김진웅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 귀에는 제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김진웅 씨, 거짓말이란 날개는 어디든 당신이 숨고 싶은 곳은 어디든 데려다줄 거예요. 하지만, 그 날개를 다는 순간 다시 돌아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저는 당신이 이연수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 눈을 보면 알아요. 김진웅 씨!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진실을 말해주세요.”
“…….”
김진웅이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깨가 흐느끼는 듯 보였다.
저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낸 거야? 정말 이 인간, 자꾸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치지? 정말 김정환 맞아?
“김진웅 씨, 저희를 믿으세요. 힘드시겠지만 지난번 저에게 말씀하셨던 사건 일에 일어났던 일을 다시 한번 해주실 수 있겠어요?”
장 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흐음, 그날 밤, 한수에게 전화가 왔어요…….”
수차례 설득 끝에 우리는 간신히 그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었다.
<김진웅의 회상.>
“야, 진웅아. 나 오늘 순천 내려왔다. 이따가 우리 별장에 바로 튀 와라.”
“어, 한수야. 나 오늘은 약속이 있는데….”
“약속? 미친 거 아냐? 야…… 나라고 한수! 네 절친 한수라고….”
“어? 그…… 그래. 갈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수의 별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전 원래 그렇게 살아왔어요.
“어… 내 친구 김진웅, 어서 와라.”
“어…… 그래.”
별장엔 한수와 연수가 같이 있었어요. 벌써 거실 바닥엔 양주와 맥주병이 널브러져 있었고 한수는 이미 많이 취한 듯 보였어요. 연수는 한수에게 술을 따라 주고 있었죠. 한수는 그녀를 마치 술집 접대부 다루듯이 했어요.
“진웅 오빠 왔어!”
“어… 연수도 왔구나.”
연수의 표정이 조금 슬퍼 보였어요. 하지만, 좀 이상한 게 연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듯했어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수가 짜증을 부렸죠. 원래 술을 마다하는 아이가 아닌데 그날따라 좀 이상했습니다.
“진웅아! 일단 폭탄주 하나 말아 먹자.”
휘리릭, 한수가 폭탄주를 만들어 내밀었어요.
“어…… 그래.”
저는 마지못해 마실 수밖에 없었어요. 전 한수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원래 체질적으로 남들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훨씬 떨어져 술을 못 마셔요. 한수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자꾸 권했죠. 제가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게다가 빈속이어서 술이 들어가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죠.
“진웅아. 한잔 더해.”
한수가 한잔 더 권했죠. 그러면서 연수의 몸을 거칠게 더듬었어요. 그는 내가 연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았죠. 지금도 조롱하듯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후. 한수야. 나 조금 어지러운데, 좀 쉬었다 먹으면 안 될까?”
“그래. 한수 오빠. 진웅 오빠 원래 술 잘 못 하잖아.”
“어라. 이것들 봐라. 지금 둘이 뭐 하는 거냐? 오호, 이연수 꼴에 너, 진웅이가 쫓아다녔다고 편드는 거냐? 왜? 지금 보니까 막 가슴이 저미고 애절하고 막 아리고 그래?”
한수가 과한 동작을 하며 느물거렸다.
“아니.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오는데?”
연수가 발끈하며 얼굴을 붉혔어요.
“야. 김진웅! 네가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냐?”
한수가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며 눈을 희번덕거렸어요.
“그… 래. 알았어. 마실게.”
그게 끝이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어요. 거의 기절한 거나 다름없었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 * *
“셋이 같이 술을 마셨다고요? 저한테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게다가 정한수 별장?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장 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게.”
분명, 뭔가 있다!
“아…… 알겠어요. 계속 말씀하세요.”
김진웅이 당황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나는 장 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연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제…… 손엔 칼이 들려져 있었고요.”
김진웅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감정이 격해진 듯 보였다.
“잠든 지 얼마 만에 깨어난 거죠?”
“잘 모르겠어요. 아마, 세 시간 정도 된 것 같았어요. 한수가 몸을 흔들어 깨웠을 때 10시쯤이었으니까 그 정도 된 거 같아요. 정확하지는 않아요.”
“기억을 잘 더듬어 봐요. 그것 외에는 다른 기억이 없습니까?”
“그… 게 구분이 잘 안 돼요. 그니까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무튼, 연수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던 거 같은데…… 그다음부터는 모르겠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김진웅이 괴로운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데, 진술서엔 왜 정한수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쓰지 않은 겁니까?”
장 검이 흥분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장 검! 진정해!’
나는 장 검의 팔을 잡아당겼다.
3시간! 그 세 시간에 이번 사건의 모든 진실이 담겨있다!
“네. 그랬군요.”
[킹 메이킹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허공에 홀로그램 상태창이 활성화되었다. 이젠 웬만큼 적응된 듯한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나의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7개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7개의 거짓말?
[7개의 거짓말을 밝혀내시오. 보상 : 카드 선택권 1회 제공.]
보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