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화] 진실 혹은 거짓 (3)
<이상준 차장 검사실.>
장 검과 나는 이상준 차장 검사의 급호출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냐?”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
장 검과 나는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희들 이거 나한테 엿 먹이는 거지? 장 검! 너, 나하고 원수졌냐? 이러는 의도가 뭐야?”
이상준이 관자놀이를 씰룩거리며 날카롭게 장 검을 노려봤다.
“차장님, 그게…….”
장 검이 말을 더듬었다.
“됐고, 야, 김정환! 너는 후배가 젊은 혈기에 저렇게 날뛰면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선배가 되어서 같이 부화뇌동(附和雷同)을 해? 지금 이게 애들 소꿉놀이야? 너희들 맘대로 엎어버리게?”
“장 검이 아니라 제가 재수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뭐? 뭐라고 그랬냐 지금?”
“아닙니다. 제가 결정한 일입니다.”
장 검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얼씨구? 너덜 원래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놈들 아니었냐? 약 먹었어? 왜들 그래?”
“…….”
“휴, 야! 장 검, 이 타이밍에 여기서 담배 하나 피워도 되냐?”
“네.”
“네.”
“그럼 핀다.”
치지직, 후우, 이상준 차장이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 넘겼다.
“후, 오늘 이종호 판사한테 얘기는 들었다. 니덜 눈빛이 하도 날생선처럼 펄떡거려서 차마 기각을 시키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나저나 진짜 자신 있냐?”
좀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화가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네.”
“네.”
장 검과 내가 동시에 대답했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발상인 거 알지? 만약에 김진웅이 무죄 못 밝혀내면 사방팔방에 검찰 개망신이야. 그리고 니덜도 징계를 피할 수가 없어. 나도 커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우리가 김진웅이 무죄라는 것을 밝혀내면 검찰에 대한 불신도 씻어내고 오히려 이미지는 더욱 재고가 될 겁니다.”
“선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실을 밝혀낸 검찰! 차장님!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데요?”
장 검이 과도한 액션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쇼를 해라, 쇼를…. 아무튼, 지청장님한테는 내가 어떡하든 설득을 해 볼 테니까 알아서들 잘해라! 검사 개망신시키지 말고… 이 판사가 니덜 한번 믿어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하는 거야. 에이!"
“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니덜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둘이 앙숙 아니었어?”
이 차장이 장 검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장 검? 우리가 그랬던가?”
“글쎄요. 언제 우리가 앙숙이었죠?”
“지랄들을 하네, 아주. 나가봐!”
“네.”
이렇게 해서 장 검과 나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장 검, 이번 사건 내가 맡고 싶은데 괜찮겠어?”
이상준 차장 방을 나오면서 내가 물었다.
“밥 사실래요? 한 달간, 술도….”
장 검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 어. 근데 장 검 술 못 마시잖아?”
“농담이에요. 농담. 뭘 그런 거 가지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래요? 모양 빠지게. 선배님이 좋을 대로 하세요. 어차피, 선배님이 시작한 거 선배님이 끝을 봐야죠.”
“정말 괜찮겠어?”
“물론이죠.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교통사고 건이 수백 건이에요.”
장 검이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띠었다. 살짝 패는 보조개는 여전히 예뻤다.
“고마워. 그럼 내일 보자고."
“넵.”
[킹 메이킹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시 온 건가?
[카드를 선택하십시오.]
촤르르, 눈앞에 수많은 카드가 펼쳐졌다.
[사물 힌트권.]
내가 고른 카드 뒷면에 써진 글자였다.
사물 힌트권?
지난번처럼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걸까?
* * *
<다음 날, 사무실.>
음… 아무래도 가장 약한 고리부터 잘라내야겠어!
나는 숲에서 김진웅을 최초로 목격한 두 명의 목격자를 먼저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공 수사관님! 김진웅 사건 최초 목격자를 만나야겠어요. 지청으로 소환을 좀 해주세요.”
“아…… 그 치정 사건? 근데, 그건 장 검사님 사건인데?”
“네. 제가 장 검이랑 같이 재수사하기로 했어요.”
“뭐 하시게요?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 피의자가 자수한 거로 아는데….”
“글쎄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서. 아무튼, 연락을 좀 취해주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무튼, 수상해! 저 이 인간이 왜 저러지? 나중에 무슨 뒤통수를 치려고 그러시나.
“네에. 알겠습니다.”
공 수사관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검찰 취조실.>
“수사관님, 그걸 입으세요.”
나는 공 수사관에게 피의자 김진웅이 사건 당시 입고 있었던 것과 유사한 옷과 신발을 구입해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뭡니까? 보시다시피 옷이잖아요.”
“그니까, 이걸 뭐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냐고요.”
이게, 뭐야?
공 수사관이 이마에 잔뜩 주름을 만들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릴 테니 일단, 그냥 입으세요.”
“에이, 검사님! 이런 걸 남사스럽게 어떻게 입어요? 전 못 입어요, 못 입어.”
그가 정색하며 연신 양손을 흔들었다.
“잠시면 됩니다. 전부 이번 수사와 연관된 거니까 일단 입으시고 안 보이는 곳에 계시다가 목격자들이 취조실에 들어가면 10분 후에 들어오세요.”
뭐야? 진짜…… 지가 검사면 다야? 별걸 다 시켜. 짜증 나게.
“에이. 그래도….”
“부탁합니다. 공 수사관님!”
나는 최대한 정중히 그에게 부탁했다.
“네에.”
잠시 후,
사건 현장에서 김진웅을 최초로 목격했다는 두 분의 할머니가 취조실로 들어왔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이쪽으로 가시죠.”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두 분을 취조실로 모셨다. 족히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셨다.
“아녀 아녀, 가차와서 그건 암시랑 안 헌디 먼 일이댜? 왜 자꾸 불러싸? 샥신이 쑤셔 죽겄는디.”
“죄송합니다.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요.”
“머슬?”
“지난 1월에 있었던 이연수 씨 살인 사건 기억하시죠? 숲에서 칼을 들고 뛰어 내려오는 피의자 김진웅을 목격하셨다고 경찰서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암만, 암만, 우리가 이 두 눈으로 똑바로 봤제. 안 그냐?”
“암만. 그라불제. 시뻘건 피를 묻힌 칼을 들고 거시기 저짝으로 가는디, 아이고 무셔라. 생각만 해도 가심이 씀벅씀벅 거린당께.”
“그러시군요. 그럼, 그 시간에 두 분은 그곳에 왜 가셨나요?”
“그거시 말이여. 야랑 나가 저자끄 아랫마을 마실가는 중이었제.”
“네에.”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공 수사관에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검사님? 어떻게 이것 좀 어울립니까?”
그가 찢어진 청바지에 형광색 점퍼를 입고 취조실 문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글쎄요. 아까는 괜찮았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별로네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할머니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르신! 아무래도 남자보단 여자 눈이 정확하니까 말씀 좀 해주실래요? 이번 주말에 우리 검찰서 야유회를 가는데 어디서 공 수사관이 저런 옷을 사 왔네요?”
‘뭐예요? 지금.’
공 수사관이 오만 인상을 구기며 입을 뻥긋거렸다.
‘조용히 해요.’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어디? 머시여? 잘 안 뵈! 이리 가차이 와봐!”
한 할머니가 손짓했다.
안 보인다?
“안 보이세요? 어르신 시력이 매우 나쁘신가요?”
“왐마, 검사 선상도 이 나이 되 보소. 어디 성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간디? 됏뵈기 안 쓰면 장님이여. 어여 이리 뽀짝 와보랑께?”
할머니가 눈을 일자로 가늘게 떴다.
저분들이 김진웅을 목격한 그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아무리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해도 그 시각에 보슬비가 내렸고 밤안개가 자욱했던 날씨였다. 가시거리가 3M가 채 안 되는 곳에서 약 15M 거리에서 황급히 뛰어 내려가던 김진웅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파악한 분들이 2M 앞에 있는 공수사관이 입은 옷을 구분 못 한다? 그와 똑같은 종류의 옷인데?
“수사관님! 이쪽으로 가까이 와보세요.”
공 수사관이 할머니들이 앉은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어르신! 어디 잘 어울리나요?”
나는 매의 눈으로 어르신들의 표정을 읽어 내려갔다.
“워메, 남사시러버라. 쓰봉이 저게 뭐대?”
할머니가 그의 찢어진 청바지를 가리켰다.
“니는 참말로 거시기 해분다. 낫살이나 처먹어가꼬 그라고잡냐?”
끌끌끌, 할머니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야 니 좀 근디, 시방 쪼까 껄쩍지근 헌디?”
“뭐슬? 왜 자꾸 찔러싸!”
‘봐야! 저그 쓰봉하고 잠바….’
할머니가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다른 할머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웨메…… 똑같아야. 이일을 우짜쓰까이!’
이제야 자신들이 목격했다고 진술한 김진웅의 인상착의와 같은 옷을 공수사관이 입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할머니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검사 양반, 우… 린 인자 가야하는 디? 안 그냐?”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메, 그라고 보니 밥 안쳐놓고 그냥 왔시야. 거시기 영감탱이 염병해불겄네.”
“어르신, 바쁘신가 보군요?”
“암만, 싸게싸게 인자 참말로 쓰것는디?”
할머니들의 목에 벌겋게 홍조가 올라왔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야야. 싸게 가불자.”
저분들은 분명 그날, 김진웅을 보지 못했다!
* * *
나는 김진웅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를 만나 몇 가지를 더 확인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공 수사관님! 공사가 다망하십니다!”
여수 경찰서, 정인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눈썹에 손을 가져다 대며 너스레를 떨었다.
쭉 찢어진 눈과 얄팍한 입술, 삐져나온 코털, 건들거리는 발걸음이 한눈에 봐도 약삭빠른 인간이었다. 검사인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공 수사관에게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정 형사.”
뭐 해? 검사님한테 인사해야지?
공 수사관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
그가 마지못해 고개만 까닥거렸다.
기분 나쁜 인간이군.
“앉으시죠. 정 형사님!”
“김진웅 사건을 재수사하신다고요?”
그가 앉자마자 김진웅 사건 얘기를 꺼냈다.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좀 더 보강 수사가 필요합니다.”
“에이, 이미 다 끝난 사건인데, 불쌍한 놈, 사형이라도 시키게요? 대충 하시죠?”
결심 공판이 연기된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다.
강간에 살인까지 저지른 인간에게 불쌍한 놈이라?
인간은 은연중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강간에 살인까지 저지른 자가 불쌍한가요?”
후후, 나는 그에게 차를 내어놓으며 말했다.
“험험. 그…… 게, 검사님이 뭘 잘 모르시나 본데. 글쎄, 그게, 여긴 서울이랑 달라서 한 집 걸러 서로 다 아는 사이죠. 서로 친척 지간이나 다름없어요. 평소에도 뭐 녀석이 워낙 착실했고 그래서… 어쩌다 그런 짓을 저지른 건지?”
정 형사가 당황했는지 횡설수설했다.
어쩌다 그런 짓? 그렇다면 아직 살해 동기도 파악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지,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아 그래요? 그 말은 김진웅이 평소의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네…… 네? 아아, 그건 아니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거죠. 그나저나 정황 증거 확실하고 자백까지 한 마당에 뭐 더 파볼 게 있겠어요? 게다가 병원 영수증 뒷면에 이연수 자필 필적까지 발견된 마당에 뭐 이건 보나 마나 뻔한 거 아닙니까?”
병원 영수증? 그게 병원 영수증이었던가?
분명, 글자가 뭉개지고 피가 묻어 있어 상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거 확실히 뭔가 냄새가 진동하는군.
“아… 그렇군요. 뭐 그렇긴 하지만 공범이 있을 수도 있으니 보강 차원에서 수사를 좀 더 진행할까 합니다.”
“공범이오? 에이 그런 거 없어요. 저희가 다 확인했는데 단독 범행이 틀림없어요.”
정 형사의 양쪽 뺨 위로 슬그머니 홍조가 올라왔다. 그가 정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요? 아무튼, 저희 쪽에서 좀 더 보강 수사를 할 테니까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네? 네에. 알겠수다.”
시큰둥한 그의 표정에서 불안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물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정 형사가 나가자마자 눈앞에 홀로그램 상태창이 나타났다.
[YES!]
나는 미련 없이 녹색 버튼을 터치했다.
녹색 버튼을 터치하자 화면에 휴대용 임신 테스트기가 나타났다. 선명한 두 줄을 보니 임신이 틀림없었다.
임신 테스트기? 게다가 임신……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