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화] 김금자 보험 사기 살인사건 (6)
“후딱, 타셔요.”
망치의 부하들이 마치 포위하듯 나를 사이에 두고 각각 양옆에 앉았다.
“아야, 가자.”
한 30분쯤 지났을까?
도심을 벗어나 우리는 한적한 곳에 다다랐다. 안개가 자욱했고 어렴풋이 통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 나타나더니 이내 또렷해졌다.
이곳이었군! 여기가 초록 산장인가?
얼마 전, 허공 속 화면에 등장한 곳과 같은 것이었다. 입구에 초록 산장이란 푯말이 박혀있었다.
“시방 뭐시어. 느자구 없는 자슥들아. 언능 안 인나야! 성님 나오셔야 하는디!”
“야, 알겠어라.”
탁, 망치가 먼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성님, 싸게싸게 내리쇼. 나가 겁나게 보여 주고 잡은 아가 한 개 있응께. 뻐큐 니세이, 아 가라 깁미 깁미 세이~.”
망치가 콧노래를 부르며 우악스럽게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야, 저것 좀 저 짝으로 치워 불어라.”
거실에 있는 책장을 한쪽으로 치우니 지하와 연결된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성님, 이 짝으로 오쇼. 허벌라게 어둔께 계단 조심허고.”
후유, 장난이 아니군.
긴장됐는지 어느새 손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역시나, 망치가 앞장을 섰고 두 명의 비곗덩어리들이 내 뒤를 따랐다.
아악, 허억, 으으악!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어디선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 퍼져 나왔다.
“아야, 문 열어라.”
“네, 성님!”
문 앞에도 두 명의 망치 부하가 지키고 있었다.
덜컹.
“오셨어라. 성님!”
천천히 문이 열리자 신음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 몇 놈의 부하들이 더 있었다.
한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은 두려움이 가득했고 얼굴은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다. 청테이프에 둘둘 말려진 입에선 분간할 수 없는 신음이 배어 나왔고 말라붙은 피딱지가 셔츠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극도의 공포감에 질려 배설물을 지렸는지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왼손 엄지가 잘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박상철!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쾅!
망치의 부하들이 거칠게 나를 안으로 밀어 넣고는 철문을 닫아버렸다.
심상치 않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짜스까, 이거시 뭔 일이당가? 아그 마냥 똥을 지려버렸어야. 웨메, 냄시 구린거.”
망치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았다.
“으으, 으으윽.”
박상철이 몸을 흔들며 몸부림쳤다.
“아야, 살살 좀 허지, 시방 낯바닥이 이거 뭐여? 빨래판이여? 어찌코롬 이라고 디지게 패부냐?”
망치가 쭈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박상철의 얼굴을 살폈다.
“아따, 불쌍헌 거. 이만치 해 불면 인자는 편안허니 보내줘야 쓰겄어요. 안 그요? 성님?”
망치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몸을 훑어 내렸다.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구지?”
일단 모른 척했다.
“워메, 또 기억이 안 나부요? 야가 그, 유명한 박상철이 아니오. 박상철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박상철은 자살했잖아.”
“어짜쓰가, 참말로 가방끈 허벌나게 긴 검사 성님보다 대갈빡은 내가 난 갑소. 야가 박상철이고 뒈진 놈 야 쌍둥이 성인 박상준이당께.”
하하하, 망치가 의기양양하게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럼, 저 사람이 진짜 박상철이라는 거야? 박상철이 쌍둥이 형이 있었다고?”
“암만, 그라불제. 참말로 몰랐어라? 긍께, 이짝으로 뽀짝 와보쇼잉.”
망치가 가까이 오라는 듯 나를 향해 손짓했다.
“야가 낯바닥허고 몸땡이는 참말로 거시기 혀서 구분이 안 돼. 구신 같이 똑같지라. 근디, 박상준이는 오른손잡이고 야는 짝배기여. 어쪄요? 이만 하믄, 내 대그빡도 쓸만 허요?”
망치가 박상철의 턱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더니, 뒤쪽에 결박된 왼손을 억지로 비틀어 보여줬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 그래서, 이 사람을 어쩌려고?”
“글씨, 그거시 쪼까 애매해분디, 나가 그것을 성님한테 맞겨 불라고. 우리는 한배를 탄 형젠게. 안 그요. 성님?”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당혹스러웠다.
“아까막시 말했자네. 나가 형님과 나으 우정을 이참에 거시기 해분다고.”
“아야, 그거! 이리 갖고 온나.”
“네. 성님!”
옆에 있던 비곗덩어리 하나가 주사기 하나를 들고 와 망치에게 전달했다.
“성님, 이거 받으쇼.”
테트로도톡신!
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게 뭐야?”
“웨메, 이라고 잘난 검사님이 이것도 모른다요? 주사기 아뇨, 주사기!”
“그러니까 이걸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뭐시기냐, 이것이 테트…… 뭐시긴디, 하여간 외았는디 영어는 당췌 모르겄어, 긍게, 이거슨 독이요. 2mg만 쑤셔 불면 뒈져 부는 겁나게 쎈 맹독이제.”
망치가 손으로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썼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걸 주는 거야?”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웨메, 징한 거. 그라고 말귀 몰라 묵으면 어쩐다요. 나가 우리의 우정을 거시기 하겄다고. 혔어요, 안 혔어요. 그랑께, 간단혀요. 쟈 허벅지에 푹 찔러 불면 끝나 불제. 워쩌? 간폿하지라? 성님이 이걸 한 방 푹 찔러뻔지면 나가 평생 형님을 모실라요. 죽을 때까정…….”
“꼭, 이렇게 해야 해?”
쓸데없는 소리였다.
“객쩍없이 먼 야그다요. 그거시. 워메, 이라면 나가 쪼까 껄쩌지근 해불제.”
망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다.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도대체, 장 검은 어떻게 된 걸까? 일이 틀어진 건가?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좋아. 줘봐.”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브라보! 영락없이 우리 성님이여. 시원시원 하당께. 쟈도 보기 짠 헌게 후딱 목심줄 끊어주는 게 사람이 도리제. 싸게 싸게 끝내 불고 술이나 찌끄리러 가장게요. 오래 걸리도 안혀. 심쓸 것도 없어라.”
망치가 테트로도톡신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손바닥이 올려 진 주사기를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꿀꺽,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장 검, 제발…….
나는 한 손에 주사기를 들고 천천히 박상철에게 다가갔다. 속이 울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조차 힘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힘겹게 발길을 옮겼다.
으으으, 박상철이 고개를 흔들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덜컹!
“망치 성님!”
그 순간, 문밖을 지키고 있는 망치의 부하가 황급히 들어와 무언가 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머… 머시여? 그거시, 참말이여?”
“네. 형님!”
“이런 잡것들이 썩을!”
목에 굵은 힘줄이 불거지더니 망치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금세라도 사달을 낼 분위기였다.
“창사구를 꺼내가꼬 젓갈을 담가 먹어도 쉬언찮을 잡것!”
획, 망치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려 흰자위를 들어내며 노려봤다.
“야! 저 시벌 박쥐 같은 새끼, 끌어다가 차에다 실어 부라라. 시방, 짭새들이 떴는갑다. 서둘러야 쓰겄다.”
망치가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들며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치 멧돼지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 같았다.
제발, 서둘러 장 검! 제발! 제발!
그때였다.
우당탕탕.
퍽!
으악!
쾅!
“뭐시여?”
망치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모두,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손들어!”
장 검이었다. 장 검이 가까스로 경찰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이봐. 망치! 형법 제 31조 1항, 살인교사 그리고 공갈, 납치 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아무튼, 널 체포한다.”
장 검사가 체포영장을 펼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경찰 대원들이 사방을 포위한 체, 망치를 향해 총을 겨뒀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장 검!”
후유, 나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꽉 막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씨X, 나가 대갈빡에 먹물 배긴 인간을 믿는 거시 아니었는디.”
망치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향해 총을 겨냥했다.
“망치! 총 내려놔. 이미 다 끝났어.”
장 검이 손을 내밀며 자세를 낮췄다.
“머시어? 이런 씨X년이 어서 주댕이를 나불거려. 다 비켜, 안 비켜?”
망치가 권총을 들어 장 검과 나를 번갈아 겨냥하자 경찰들이 소총을 몸쪽으로 더욱더 끌어당겨 방아쇠에 얹어놓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붉은색 레이저가 망치의 이마와 심장을 정 조준했다.
장 검, 나, 그리고 망치. 장 검을 정점으로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로 서 있었다.
장 검과 망치의 거리는 4m, 나와 망치의 거리는 대략 2.5m, 한발 늦는다. 위험하다!
스르륵,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대각선으로 비틀어 총에 맞을 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워워, 망치, 괜한 짓 하지 마. 이러면 형량만 늘어날 뿐이야. 너 이러다간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어. 시골에 계신 홀어머니랑 여동생 생각도 해야 할 것 아냐?”
장 검이 경찰대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멈춰 세운 후, 침착하게 망치를 회유했다.
“야이 시X년아! 입 안 다물어? 주댕이를 찢어 불랑께. 나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븐 망치여. 나가 여까정 올라 올라고 얼메네 쎄가 빠진지 니덜이 알어? 몬혀, 절대 여서 포기 몬 혀! 아니 안 혀!”
망치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목에 핏대를 세웠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하지 마. 망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한 걸음만 움직여도 발포한다. 다시 경고한다. 그 총 내려놔.”
장 검도 긴장했는지 자세를 더욱 낮췄다. 방아쇠를 잡은 경찰대원들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씨X, 짭새들아. 드루와라. 드루와잉. 나가 망치여, 길상파 넘버 2 망치라고!”
망치의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팔뚝의 용 문신이 꿈틀거렸다.
“망치! 다시 경고한다. 총 내려놓고 자수해!”
장 검이 침착하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으악! 다 죽여버릴 거시여!”
기어이 망치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탕탕탕!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이어진 수십 발의 총성이 고막을 마구 흔들었다. 놀란 주변의 사람들이 머리에 바닥에 바짝 엎드려 머리에 손을 얹었다.
“허억, 허억, 시벌, 난 암시랑 안 혀.”
푸슉!
몸에서 시뻘건 선혈이 울컥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망치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필사적으로 권총을 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탕!
확인사살을 위한 한 발의 총성이었다.
“이런 X벌!”
쿵, 망치가 몇 번 비틀거리더니 고목 넘어가듯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그의 최후였다.
“선배님!”
그 순간, 장 검이 득달같이 쓰러진 내게 달려왔다.
“서… 선배님? 괜찮으세요?”
“으윽, 아아. 난, 괜찮아. 그냥 좀 스친 것 같아.”
“진짜 괜찮으신 거예요?”
장 검이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몸을 살폈다.
“어, 괜찮아. 자, 이거.”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한 손을 총에 맞은 팔뚝을 움켜쥐며 장 검에게 주사기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빼박 증거지.”
피식, 나는 장 검을 향해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해요.”
“와줘서 고마워. 장 검.”
“저보고 오라고 이걸 보내신 것 아니에요?”
장 검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초록 산장이 위치한 곳의 약도였다.
“내가?”
“그럼 아니에요?”
“그랬던가?”
“아님 말고요.”
장 검이 조심스럽게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 * *
“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올라타!”
경찰들이 체포한 망치의 부하들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줄줄이 버스에 태웠다.
그 사이, 나는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저는 거제 경찰서로 갈 거니까 선배님은 빨리 병원으로 가세요.”
“알았어. 그나저나 장 검, 아까는 진짜 멋지던데?”
나는 장 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됐고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치료나 잘 받으세요. 이따가 병원에 들를게요.”
장 검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살짝 팬 보조개가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