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화] 김금자 보험 사기 살인사건 (2)
한상길의 호출을 받은 나는 급히 순천지청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금자 사건을 재수사하다뇨?”
“제길, 그게 말하자면 길어. 아무래도 장 검이 위쪽과 선이 닿아있는 것 같아.”
이게 어디서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거지?
한상길이 반찬을 집어 먹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중얼거렸다.
“윗선이오?”
“그래,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무튼, 지청장이 군소리 말고 재수사하라는 걸 보면 어설픈 라인은 아닌 듯싶어. 일단 이 사건은 자네가 사건을 맡아서 처리해. 절대 장 검이 끼어들어서는 안 돼.”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 회장이랑 입을 맞춰뒀으니까 넌 망치를 만나서 입단속 단단히 시켜. 까딱하다간 우리 둘 다 죽는 거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긴장되는지 한상길이 연신 입술에 침을 발랐다.
이길상 회장!
조폭 망치가 모시고 있는 길상파 보스다. 폭력조직은 물론, 건설, 금융, 유흥·유통업 등 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기업형 조폭이다. 지역 유지, 심지어는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연결돼있는 여수, 순천 최대의 조직이었다. 그는 서남지방에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이길상과 한상길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였다. 한상길은 그의 뒤를 봐주며 이익을 챙겨줬고 이길상은 한상길에게 뒷돈을 대주었다. 한상길은 이른바 스폰서 검사였다.
* * *
<망치가 사는 아파트.>
다음 날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망치의 아지트를 찾아갔다. 집안 곳곳에 바다낚시용 낚싯대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낚시를 좋아하나 보지? 뭔 낚싯대가 이렇게 많아?”
“아따 성님도, 참말로 대갈빡이 어찌 된갑네. 나가 낚시라면 겁나게 디져불제. 성님도 나랑 같이 갔다안 허요. 내가 괴기 잡아 회 떠준께 허천나게 먹어불드만.”
“아…… 맞아. 맞아. 그랬었지?”
나는 대충 아는 척을 했다.
“어메, 거시기한 거. 인자 기억이 좀 나요?”
“그건 그렇고, 소식은 들었지?”
“그랑께 시방, 그 검사 년이 다 된 밥에 초를 쳐부렀다 그거지라. 이런 씨X년이 가랭이를 주욱 찢어서 X창을 내버려야 나가 속이 시원허것는디.”
망치가 씩씩거리며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봐. 망치! 경거망동하지 마.”
“아따, 성님. 그깟 년 거시기해버리면 된단께요. 그년 낯바닥이 반반하든디, 사시미로 그서 불면 볼만할 거이다. 암만!”
망치가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광대를 씰룩거렸다.
“지금 검사를 건드리겠다는 거야?”
“긍께, 검사는 사람 아니간디? 무신 목심이 시 네 개는 된다요?”
망치가 눈을 내리깔며 기분 나쁘게 내 몸을 훑어 내렸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윗선까지 선이 닿아있는 사람이야.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우리 다 죽는 거야. 내 말 명심해.”
“이런 씨X, 창사구를 꺼내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모질랄!”
쾅, 망치가 억울했는지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그나저나, 뭐하나만 물어보자. 김금자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은근슬쩍 망치의 속내를 떠봤다.
“아따, 궁금허요? 우리 성님, 어짜쓰가이. 이라고 훅 들어오 불면 나가 쪼까 거시기 해불제.”
망치가 흰자위를 들어내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실수다! 내가 놈을 너무 쉽게 봤어.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아… 아 뭐 그냥, 일단 내가 수사해야 하니까 알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라요? 근디, 이건 우리 영업 비밀잉게 더 알라고 하지 마소.”
하하하 웃고 있지만, 확실히 경고였다.
“알았어. 아무튼, 장 검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한두 놈 엮을 놈 좀 작업해둬. 꼬리는 잘라내야 할 것 아냐.”
“시X, 알았어라.”
“그리고 이거 도로 가져가.”
지난번에 망치가 두고 간 사과 상자를 내밀었다.
“머시어. 성에 안 찬다요? 더 태아 주까요?”
“아냐. 그건 아니고 이렇게 된 마당에 이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하여간, 나는 이랑께 대갈빡에 먹물 박힌 인간들이 겁나게 시러. 새가심이여. 새가심!”
쯧쯧쯧, 망치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무튼, 나는 자연스럽게 독 사과를 처리할 수 있었다.
분명, 이 사건은 망치 쪽에서 설계하고 박상철이 연기한 것이 틀림없다. 그 뒤를 한상길이 봐준 거고 김정환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한 거야.
박상철의 알리바이부터 깨뜨려야 해. 그러면 일단 구속수사가 가능하다.
<순천지청 휴게실.>
“장 검, 사고 쳤다면서.”
“사고는요 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뿐인데요.”
장 검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제가 윗선에 줄을 댔다는 소문요?”
“어…… 그게 소문이 파다해. 그 윗선이 어디까지인 거야? 고검? 대검? 아니면 청와대?”
김정수 검사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런 거 없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나한테만 살짝 말해주면 안 돼?”
“그런 거 없다니까요.”
잔뜩 찌푸린 얼굴이 금세라도 독설을 퍼부을 듯한 인상이었다.
“아… 알았어. 무섭게 왜 그래. 그나저나 김 검 사건, 진짜 장 검이 맡을 작정이야?”
사실 이 바닥에서 동료 검사의 사건에 관여하는 건 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물며, 선배 검사의 사건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제대로 일을 처리 못 했으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죠.”
“에이, 그래도…….”
“두 분, 거기서 뭐 해요?”
나는 모르는 척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김 검 왔어? 몸은 괜찮은 거야? 서울 갔다 왔다면서.”
정수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어, 다행히도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네. 일시적인 현상이래.”
“다행이네. 커피 마시려고?”
“어.”
“그래, 그럼 마시고 와. 우린 먼저 올라갈게.”
‘장 검, 가자.’
정수가 장 검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래. 먼저 올라가.”
“김 검사님, 김금자 사건 제가 맡아도 될까요?”
그냥 넘어갈 그녀가 아니었다.
‘야… 장 검! 그냥 가자고….’
정수가 내 눈치를 보며 턱짓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분명히 내 의사를 떠보려는 의향이다.
괜히 발끈하면 의심만 살 뿐이야.
“네? 아…… 그 보험 사기 사건? 그래요. 장 검이 원하면 그렇게 해요.”
나는 태연하게 커피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며 말했다.
“흠…… 정말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조금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럼 부장님한테 결재받아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네…… 에. 그럼 그렇게 알고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마세요.”
장 검이 입을 부풀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전면에 나서서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나는 장 검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형사 3부 부장실.>
“너, 미쳤어? 장 검한테 이번 사건 이관하기로 했다면서?”
“네.”
“네? 지금 너, ‘네’라고 그랬냐? 지금 어쭙잖은 정의감에 미쳐 날뛰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던져주자고? 너 검사복 벗고 싶어서 환장했어?”
한상길이 혀를 옆으로 돌려 볼을 부풀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고집부리면 오히려 의심만 살 뿐입니다. 가뜩이나 저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장 검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테니까요. 그러면 더욱더 곤란해집니다.”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한상길이 한발 물러섰다.
“위험한 적일수록 가까이 두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 장 검과 제가 같이 맡겠습니다. 그래야 장 검의 속내도 파악할 수 있고 가지고 있는 자료 출처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미 지청 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렸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 우린 어떡하라고?"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살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일단, 장 검한테 저와 공동으로 사건을 처리하라고 말씀해 주세요. 장 검도 차마 그 제안까지 거부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 래. 알았어. 그나저나 정말? 잘 해낼 수 있겠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 씨, 이제 곧 있으면 이 생활도 끝인데, 말년에 이게 무슨 엿 같은 일이야.”
한상길이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혹시 제가 모르는 일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사과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미리 알고 있어야 제가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장 검이 먼저 알게 되면 그때는 제가 손쓸 겨를이 없습니다.”
“아…… 그게, 애들이 둘 다 미국에 나가 있잖아. 돈이 좀 많이 깨져야지.”
한상길이 말을 빙빙 돌렸다.
“그래서 얼마를 받으셨단 겁니까?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 게, 한 장 받았어.”
“한 장이라면 1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래, 그래. 자네한테는 미안하게 됐네. 너도 알다시피….”
햐, 이 바닥도 더럽네. 총대 멘 사람은 5천인데, 뒤에서 지시만 한 사람은 1억이군.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정환아. 아무튼,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하고 나는 너만 믿는다.”
한상길이 내 손을 움켜잡았다.
“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숨겨둔 초소형 녹음기를 만지작거렸다.
일단 박상철의 알리바이를 깨야 했다. 증거조작은 충분한 구속 사유가 됐고 그래야 그와 망치가 접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 * *
“공 수사관님, 제가 부탁드린 일은 확인하셨나요?”
“그… 게 말인데요.”
공 수사관이 괜히 뜸을 들였다.
“그렇게 뜸 들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그니까, 1월 5일, 그 시간엔 병원에 있었답니다. 그날 병원에서 술 처먹고 하도 난동을 부려서 다들 생생하게 기억하나 봐요. 목격자들 진술이 일치합니다. 확실해요.”
뭐라고? 박상철이 병원에 있었다고?
“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박상철이 그날 병원에서 깽판 치고 있었다고요. 제 마누라 살려내라고 아주 울고불고 생난리를 쳤다네요.”
공 수사관이 단어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말했다.
아주, 개지랄을 떨었네. 미친 새끼!
그가 서류를 넘겨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일단, 박상철이 지검에 소환해 주세요. 제가 알아볼 게 있습니다.”
“검사님. 아무래도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후유, 공수 사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뭐, 죽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헐, 그걸 어떻게 아셨지? 실은, 박상철이가 집에서 연탄불 피워놓고 자살했다는데요?”
공 수사관이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뭐요? 그걸 왜 이제 말씀하세요?”
등골이 오싹했다.
“지……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박상철이 죽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