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뒤바뀐 삶 (1)
“어짜쓰까, 나요, 망치!”
험상궂은 얼굴에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모습을 보니 조폭이 틀림없었다. 그가 황당한 표정으로 시커먼 얼굴을 내밀었다.
망치? 이 사람은 분명 조폭 같은데 나를 어떻게 아는 걸까?
“저를 아십니까?”
“오메 징헌 거. 그새 내 낯짝도 잊어 부렀소? 참말로 거시기 해불구만. 안 그냐 아그들아.”
“하하하!”
남자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저는 초면인데요. 도대체 저를 어떻게 아시는 거죠?”
당혹스러웠다.
“아…… 아아 그라제, 그라제. 보는 눈이 허벌나게 많다 이거요? 걱정마소. 긍께 나가 이 층을 통째로 사부렀다 안 허요?”
“…….”
아무래도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일단, 이 사람들부터 내보내고 상황부터 파악해야겠다.
“죄송한데 제가 좀 어지러워서 혼자 있고 싶습니다.”
“우짜쓰까 우짜쓰까. 우리 성님, 서울 말씨 징하게 좋아부러야.”
망치라는 남자가 몸을 배배 꼬았다.
“앗! 머리야.”
일단 어떡하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며 연기했다.
“워메, 아프다요? 으사 부를까?”
“아니 아니, 그냥 좀 쉬고 싶어서…… 혼자 있고 싶은데…….”
적당히 말끝을 흐렸다.
“그라요? 알았어라. 아그들아! 성님이 혼자 있고 잡단다. 싸게 인나라!”
“예, 성님!”
“옘병, 까마구 고기를 먹었나! 아야 거시기 그거 갖구 와야.”
망치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네, 성님!”
“받으소.”
망치라는 자가 부하에게서 건네받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금색 보자기에 싸인 과일 상자였다.
과일인가?
“이게 뭐예요?”
“싸게싸게 챙겨부쇼.”
“난 괜찮으니까 가져가… 요.”
“세탁기에 넣고 깨깥이 빨아가꼬 온 거니께 암시랑 안 허요.”
“가져가라니까!”
“아그들아, 인나라. 가자.”
“예. 형님.”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쾅! 남자가 내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으악!
경악스러웠다.
손으로 입을 막아 간신히 비명을 삼켜 넘겼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거울 속에 남자는 끔찍하게도 내가 아니었다. 키와 체구는 나와 비슷했지만, 외모는 30대 중반쯤 돼 보였고 턱선이 뾰족한 게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이… 게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어.
손이 바르르 떨렸다.
맙소사! 내가 거울 속의 남자와 똑같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드르륵, 황급히 서랍을 뒤졌고 그 속에서 거울 속 남자의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주민등록증!
수십 번도 넘게 거울에 비친 얼굴과 주민등록증 사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황당하게도 같은 얼굴이었다.
이… 게 어떻게 된 거야? 말도 안 돼! 모…… 몸이 바뀌었어!
게다가 불과 몇 시간 지난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실에 걸려있는 달력은 5개월이 지난 2007년 5월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름은 김정환, 나이는 1972년 12월, 35세….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남자의 주민등록증을 유심히 살폈다.
툭, 그 순간 지갑 속에서 뭔가 바닥에 떨어졌다. 검사증이었다.
순천지청? 그럼 이 사람 직업이 검사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거지?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러보고 수도 없이 세수도 해봤지만 변함이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내가 아니었다.
일단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야겠어!
어찌 됐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김정환이란 자의 신상을 파악해야 했다. 나는 인터넷을 이용해 그의 정보를 최대한 모았다.
외아들에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군. 아직 미혼이고 금융, 경제 범죄 전담 형사 3부 평검사, 사법연수원 29기로 주로 지방 한직을 떠돌아다녔고 이번이 세 번째 지청 생활, 아직 한 번도 중앙으로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볼 때 무능하거나 비리에 연루됐거나 둘 중 하나다.
제길, 하필 이런 사람의 몸에…….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후유. 아무튼, 이 상황에 적응해야 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 몸에 익숙해질 때까진 약간의 연기를 해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 기억이 부분적으로 끊깁니다.”
“아…… 네. 넘어질 때 충격으로 일시적 기억상실이 올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는 양호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면 좋아질 겁니다.”
“네.”
* * *
“어이, 김 검. 어디 몸은 어떠신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양쪽으로 찢어진 눈매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저 사람은 형사 3부 한상길 부장? 병문안을 왔나 보군.
“네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식사 중이었나 보군. 반찬 훌륭하네. 요즘 병원 밥도 먹을 만하겠는데?”
털썩, 한상길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신경 쓰지 말고 들어.”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그가 손을 까딱거렸다.
“네.”
“잠깐만? 자네 왼손잡이 아니었나?”
내가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국을 뜨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윽, 이 인간이 왼손잡이구나!
황급히, 숟가락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어? 뭐야. 되네? 생전 처음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았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 네. 양손을 다 씁니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랬던가? 아무튼, 의사 말이 부분적인 기억상실이 왔다면서?”
“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당분간 지청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자네 몸이나 신경 쓰게. 휴가라고 생각하고 푹 쉬어.”
“네.”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어. 오후에 의원님들과 라운딩이 있어서 말이야.”
휙, 한상길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검사가 의원들과 골프를 친다는 건가?
“네.”
“그럼, 나중에 지청서 봄세.”
“네.”
“아냐 아냐, 누워있어.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며칠 후.
“제가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퇴원하는 날, 공 수사관이란 남자가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찾아와 부산을 떨었다. 몸 주인, 김정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인 듯 보였다.
“아…… 아니에요. 저 혼자 가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설치는 것이 불편했다.
“에이, 검사님, 그래도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아뇨, 차 키나 주십시오.”
에이, 저래놓고 나중에 무슨 지랄을 떨려고…….
“네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이건 트렁크에 실을까요?”
공 수사관이 과일 상자를 가리켰다.
“네.”
으쌰, 무슨 사과가 이렇게 무거워? 금괴라도 들었나?
공수 사관이 상자를 트렁크에 실으며 구시렁거렸다.
“검사님, 기억도 온전치 않다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고 푹 쉬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어쩌지? 장롱 면헌데?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 지금부터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일단 김정환의 집으로 가보자. 나는 주민등록증에 써진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기어를 풀어 D에 놓고…… 그다음에….
어? 되잖아?
헐, 황당했다. 부드러운 출발, 덜컹거림도 전혀 없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어떻게 된 걸까? 어머니는? 제길, 이 몸으로 나타나 봐야 무슨 소용이야.
- 길 안내를 종료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여긴가?
동원아파트, 103동 204호.
띠띠띠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생일일까?
띠띠띠띠!
마찬가지였다. 역시, 잠금이 열리지 않았다.
띠띠띠띠!
실패!
온갖 머리를 굴려 여러 가지 숫자를 조합해 봤지만 허사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열쇠 수리공을 불렀다.
“검사님, 이거 설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교체하시려고요?”
얼마 안 됐다고?
“네.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군요.”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 그러면 굳이 교체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초기화해놓을 테니 다시 세팅하세요.”
“아뇨. 그냥 새것으로 갈아주세요.”
“네? 네… 에. 알겠습니다.”
뚝딱뚝딱, 수리공이 도어락 설치를 마쳤다.
“자… 이제 됐습니다. 비밀번호 세팅하는 방법은 아시죠?”
“네. 고맙습니다. 이거…….”
“아뇨, 괜찮습니다. 돈은 무슨, 넣어두세요. 그냥 제 성의입니다.”
수리공이 한사코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아주, 이 인간! 온 동네에 검사 티는 다 내고 돌아다녔나 보군.
“아닙니다. 그래도 받으십시오.”
나는 억지로 그의 손에 수리비를 쥐여 주었다.
“괜찮은데…… 아무튼, 또 무슨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검사님!”
“네. 수고하셨습니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숨기는 게 많은 인간이야.
현관문을 열자 조명이 켜졌고 현관은 이중삼중으로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 싱크대엔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에서 악취가 풍겼고 책상 위에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걸 밟은 모양이군.
화장실 바닥에 비누가 뭉개져 있었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정신이 몽롱했다.
일단 눈 좀 붙이자.
나는 침대에 몸을 내던졌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 * *
<순천지청.>
상황부터 파악해야겠어!
나는 일어나자마자 지청으로 향했다. 순천지청은 순천 조례 호수공원 맞은편에 있는 5층짜리 아담한 건물이다.
띡!
“어서 오십시오. 검사님!”
정문에 도착해 출입증을 감지기에 갖다 댔더니 감지기 봉이 내려왔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이, 김 검! 벌써 출근해? 몸은 괜찮은 거야? 덕분에 우린 일복이 터졌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아는 척했다. 나이는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똥배가 튀어나온 남자였다.
누구지? 동료인가? 선배인가?
“네… 어…….”
적당히 존댓말과 반말을 섞었다.
“3층이지?”
남자가 2층과 3층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어… 네….”
“그럼, 나중에 소주나 한잔하자고.”
남자가 2층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 래.”
나는 3층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떤 이는 눈인사하며 인사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손을 들어 올리며 아는 척했지만 모두 표정들은 시큰둥했다. 나 역시 어색하게 손을 들어 화답했지만,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다.
형사 제3 부장실, 여기가 한상길 부장 방이군.
318호… 315호… 302호 김정환!
푯말을 바라보며 걷다 드디어 김정환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방을 찾아냈다.
후유,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는지 심호흡했다.
덜컹,
“검사님, 무슨 일이세요?”
문을 열자마자 공수 사관이 득달같이 내게로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좀 답답하기도 하고 밀려놓은 일도 봐야 해서요.”
낯선 사람들, 낯선 장소,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지가 언제부터 열심이었다고…….
“그래도 좀 쉬시지. 이쪽으로 오시죠.”
공수 사관이 팔로 나의 몸을 감싸 안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김정환, 이 사람 확실히 구린 게 많은 사람이야.
서랍 칸칸이 잠금장치가 되어있었다.
“그나저나 잘 오셨습니다. 검사님, 이거….”
공수 사관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게 뭡니까?”
“에이, 그거요. 아시면서….”
“뭐가 그거예요?”
“엔젤 스타 콘서트 표요. 검사님 퇴원 기념으로 진짜 어렵게 구했습니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뭐? 엔젤 스타? 어이없군.
“아…… 아, 네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구하셨네요?”
일단, 아는 척을 해야 했다.
“제가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힘 좀 썼습니다.”
공 수사관의 어깨에 힘을 잔뜩 주었다.
“네에.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날이 리더 한수지 생일이라 반드시 구하셔야 한다 해서.”
공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인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인간일까?
어이가 없었다.
“저기, 검사님도 표시를 해두셨잖아요.”
그가 손가락으로 책상에 있는 달력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5월 10일에 하트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후유.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내뱉었다.
05월 10일? 설마?
띠리릭, 자물쇠 번호를 0510으로 맞춰 돌려보니 잠금장치들이 풀어졌다.
헐!
저절로 허탈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띠리리링.
“김 검사, 출근했다면서? 내 방으로 좀 와.”
그때 부장 검사 한상길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에이, 뭘요. 검사님이 기쁨은 곧 나의 행복입죠.”
헤헤, 공 수사관이 헤벌쭉거렸다.
<형사 제3 부장실.>
“어서 와. 김 검, 거기 앉아.”
“네.”
“좀 쉬라니까 뭐 하러 나와?”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지청에 나와야 기억도 되살아 날 듯해서요.”
“그래? 그렇지! 그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군. 그럼 너무 무리하진 말고 기억 찾을 때까지 살살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건은 김 검 정상 출근할 때까지 내가 홀딩 해 둘게.”
한상길이 서류뭉치를 가리켰다. 수사기록인 것 같았다.
홀딩? 무슨 사건을 맡았었나 보군.
“아… 네. 알겠습니다.”
“아 참! 김 검?”
“네?”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한상길이 불러 세웠다.
“어디, 사과는 맛이 괜찮더나?”
“네?”
“설마 그것도 잊어버린 건 아니지?”
사과?
- 세탁기에 넣고 깨같이 빨아갖고 온 거니께 암시랑 안 해요.
그 순간 망치라는 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
“아… 네. 잘 보관해 두었습니다.”
“정환아, 알아서 잘해라. 남들 눈에 띄는 순간 우리 둘 다 옷 벗는 거야.”
“네에.”
“그럼 가서 일 봐.”
한상길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는 톱밥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윗부분에 사과 몇 알이 있었지만 속을 뒤져보니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 독 사과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