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45. 나그네 세상(3)
우리는 그대로 집을 나와 잠실 타워로 향했다.
한강을 지나는 중에 잠실 타워가 언뜻 보였다. 금방 빌딩 사이로 사라졌지만 모습을 보는 건 문제 없었다. 청룡은 없었다.
청룡이 잠실 타워에 매달리는 요일이 언제더라? 잠실 타워를 감고 있지 않더라도 대부분 잠실에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 애초에 청룡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
오늘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본래 오늘은 악마의 위치를 상정하고, 어떻게 할지 상의하려고 했다. 더불어 새끼 사자도 오늘이 데려가고.
그러나 지금, 새끼 사자는 내버려 두고 잠실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택시 안에서 오늘이 한 말을 내내 곱씹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으세요?’
이상하게 여긴 적 없냐고?
애초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늦은 말이긴 하지만, 그 개 같은 통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선량한 피해자로 남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든 게 이상했었는데 거기서 유독 이상한 점을 꼽으라고? 우열을 가릴 수 있을 리가. 죄다 미쳐 돌아갔지 않은가.
오늘은 내 말에 무언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지만 나로서는 짐작 가는 게 딱히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그다지 되새기고 싶은 종류가 아니었던 탓도 조금은 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오늘에게 잠실 타워로 가자고 했었다. 말 나온 김에 확인하러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터질 줄 알고.
‘그럼 말 나온 김에 잠실 타워에 가 보죠.’
‘지, 지금요?’
‘이런 건 생각났을 때 바로 해야 해요.’
‘팀, 팀장님, 은, 요?!’
‘자고 있는데 어디 가겠어요. 갔다 와서 데려가요. 생각해 보니 케이지도 필요할 것 같은데. 나간 김에 그것도 사 오고요.’
어쨌든 택시는 손님의 요청에 따라 잠실 타워로 거침없이 향했다. 그 꼭대기에서 오늘이 뭘 보게 될지는,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겠지.
“오, 올라가요.”
처음에 당황하던 오늘도 막상 도착하니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볼 수 있는 건 오늘이다. 나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잠실 타워 전망대는 가 본 적이 없다. 저쪽에서도 그랬고 이쪽에서도 그랬다.
잠실 타워를 기준으로 청룡은 요일마다 위치를 바꾼다. 아들한테 잠실 주민의 일조권으로 한 소리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은 어딜 둘러봐도 청룡의 비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간혹 청룡이 잠실을 비우는 날도 있기 때문에 다행히 나라가 망할 징조라며 놀라는 사람은 없다.
오늘과 함께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전망대를 올라가는 동안 벽에 붙어진 안내판에 청룡의 요일별 위치가 적혀 있었다. 날씨와 함께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표시되어 있는 칸에 당당하게 청룡도 있었다.
이러니 내가 이상한 세계라고 하는 거다.
오늘 청룡 칸에는 ‘X’라고 되어 있다. 확실히 잠실에 없긴 한가 보다.
“뭐가 보여요?”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망대는, 뭐. 그래. 보기에는 좋았다. 이래 뵈어도 서울에서 가장 높은 탑 아닌가.
“음…….”
오늘이 유심히 밖을 보고 있는 동안 나도 오늘이 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서울 풍경이다.
……이산래가 일조권 때문에 싸웠다는 거, 사실 전망대 조망권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기에 청룡이 감고 있었다면 청룡 몸에 가려 안 보였을 것 같긴 하다. 꼭대기 층이니 청룡과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심장이라도 멎을지도 모른다.
뭐? 여기서는 청룡이 그런 흉조가 아니라고?
알 게 뭐냐. 길조와 흉조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린 거다. 내가 불길하다고 생각하면 불길한 거고, 길하다고 생각하면 길한 거다. 그러니 청룡은 불길한 징조가 맞다.
오늘의 시선은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고 있다. 나도 하늘을 보지만 어제 온 비가 거짓말인 것처럼 새파란 하늘만 있었다. 구름도 있고.
조용한 하늘과 서울 경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과 관광객 소리가 들린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간이다.
뭐가 보이는진 모르겠지만 방해가 안 되게 기다렸다. 그러던 중 손목이 간질거려서 벌레라도 있나 싶었는데, 묵주가 달그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씨?”
“…….”
오늘은 하늘을 노려보느라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묵주를 보았다. 다행히 묵주는 금방 얌전해진 채로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악마,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는 거 아니냐.
“음.”
오늘이 몸을 홱 돌렸다. 경직된 얼굴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본 게 틀림없다.
“오늘 씨?”
오늘은 내 부름이 들리지 않는지 뚜벅뚜벅 걸어서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았다. 시선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오늘의 뒤를 따라 걸었다.
테라스에도 한번 나가 보고, 망원경을 통해 서울을 훑어보기도 했다. 하나같이 아래가 아닌 위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하늘에 무엇이 있어서?
“……이, 있잖아요, 해준, 씨.”
“네?”
오늘은 커피를 손에 꼭 쥔 채 겨우 입을 열었다.
“저한테, 아, 안, 한, 이야기… 있죠……?”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그게.”
변명을 하자면,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아니,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은 이야기긴 했다. 이미 이곳이 내게 ‘드라마’였음을 말하며 ‘악당’이 박서원과 그 친구들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서원이 죽음을 각오하고 복수를 이루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궤가 다르지 않은가.
적어도 오늘에게만큼은, 박서원은 상냥한 친구 오빠였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라도, 오늘이 박서원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새끼를 어떻게 해서 이 세계의 끝을 막기 위해서는 오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좀 그렇잖은가. 이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다 얘기하려고 했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뭐, 뭐든, 이, 야기…… 해, 해주세요….”
……아, 뭐. 그래. 지하국 얘기도 아직 하지 않긴 했었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봐라. 상당수의 요괴들이 지하국에서 기어 올라온다. 지하국의 입구를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인간은 계속해서 요괴들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인간의 영웅조차 여우 영물의 손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도망간 구두 장군이 오지 못하도록 광화문에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도 새끼 사자고.
……인간은 과연 영물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니다. 나는 영물 없이 살던 인간들의 세계에서 오지 않았던가. 흔들리지 말자.
“해준, 씨.”
“……알겠습니다.”
정신 차리자.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로 답답하지만, 인간은 이렇다. 이런 존재다. 감정에 휘둘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넋을 놓는다. 빠른 길을 놔두고 둘러 둘러 걸어가는 존재.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로 다짐했으니까.
“그.”
“저, 전부, 다, 요.”
오늘은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오늘의 각오가 내게 전해진다.
“저는, 가, 각오가, 되어, 있… 어요.”
새파란 하늘처럼 한 점 흔들림 없는 눈이었다.
* * *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오늘은 저번처럼 내게 시야를 빌려주었다.
“자, 잘, 보세, 요…….”
햇빛 때문에 잘 안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의 손이 내 눈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구름 몇 점이 둥둥 떠다니는 여름 하늘이다. 내 눈으로 봤을 때와 별 차이가 없어서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오늘이 괜히 이러겠는가 싶어서 집중했다.
반짝.
“……어.”
하늘이 반짝거렸다.
“보, 보여요?”
“지금, 하늘이…….”
착각이 아니다. 반짝거리고 있다.
반짝이는 것들이 간간이 아래로 떨어졌다. 누군가 위에서 보석가루를 뿌리는 것 같기도 했고, 깨진 유리가 부스스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부서지는…….”
난쟁이와 얘기했을 때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오늘이 손을 내렸다.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짝이는 것 따윈 없고, 하늘은 여전히 새파랗기만 하다.
“가, 가설을… 몇, 개, 세웠… 는데…….”
오늘은 드디어 커피를 마셨다. 녹은 얼음이 시끄럽게 유리잔에 부딪혔다.
“시간과…… 세, 세계를, 별개, 의… 거라고, 새, 생각, 해, 보세요.”
“……시간과 세계가 별개라고요?”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오늘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세, 계는, 진행, 중이죠. 하, 하지만, 시간, 은, 돌, 아, 왔을… 지도, 몰라요.”
시간과 세계가 별개라는 말은 그렇다 쳐도, 그게 가능한 건가? 세계와 시간이 따로 논다고?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반짝이는 가루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연관 관계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볼 수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이런 건가?
생각해 보면 대화가 통했던 영물들은 다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다. 그나마 인간인 오늘은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 주려고 노력하니 다행이다.
오늘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도, 도돌이표, 아, 알아요?”
“도돌이표? 그, 악보에 나오는 그거요?”
“네에.”
도돌이표면 그거 아닌가. 악보에서 일정 구간을 한 번 반복시키는 그거.
“도, 도돌이표… 가, 있으면, 고, 곡은, 끝, 나지, 않, 아요.”
“그렇죠.”
“하지, 만, 똑, 같은… 구간이, 바, 반복, 되죠.”
“……그렇죠.”
입 안이 바싹 마른다.
“예언, 이나… 그, 그런, 종류가, 아니라면…….”
최소한 용들은 이 세계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 동해용왕을 비롯한 용들이 자신들을 희생해서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기둥이 된 건 서해용왕인 청룡. 기둥이 마모되면 세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오늘은 조금 우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세계는, 계, 계속, 진행… 중, 이지만, 그, 그, 안에서, 시, 간이… 되풀이, 되었, 을, 거예요…….”
자, 생각해라.
청룡이 의미심장하게 ‘돌아온 적 없는 세계’라고 말한 이유를.
“좋아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시간만 돌아갔다고 해 봅시다.”
솔직히 그게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 평행 세계인 쪽이 좀 더 알기 쉬운데.
“시간이 돌아왔든, 아니든, 용들이 세계를 보호…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네.”
“그럼 왜 그랬을까요.”
손가락을 세워 테이블을 툭툭 쳤다. 답은 알고 있다. 모든 소설, 영화 따위에서 시간이 돌아가거나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시간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겠죠. 그렇다고 합시다.”
정해영은 드라마 작가가 미쳐서 서울을 날려 버렸다고 욕했었다.
정해영같이 정신 나간 애가 욕할 정도라면 서울이 날아간 방법도 평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날려 버렸을까.
“예를 들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죽었다거나…… 하는.”
그 드라마의 15화.
정해영이 오지게 욕했던 그 화.
그 얘기를 하는 게 맞다.
“아니, 잠깐…….”
나 뭔가 깨달은 것 같다.
정해영이 쳐봤던 그 드라마 말이다.
15화에서 등장인물이 죄다 죽고, 16화에서 용들이 세계… 아니, 시간을 돌리는 내용은 아니었을까?
만약 용들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업을 쌓은 괴물이 나타났다면? 그 괴물이 서울을 쓸어버리고도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면?
박서원은 여기서 산함박을 잡고 과거로 가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사달이 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을 바꿔 보자.
산함박이 박서원과 그 친구들을 잡아먹어서……. 더한 괴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콰르릉!
“으악!”
“뭐, 뭐야?!”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타이밍 좋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니. 무언가 계시라도 받은 기분이다.
“해준, 씨.”
오늘이 입술을 꾹 깨문 채 내 이름을 불렀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깨달은 건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