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45. 나그네 세상(2)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관심사는 사자 옆에 있는 도끼로 옮겨졌다. 어차피 사자는 혼자서 잘 자고 있다. 먼지가 쌓여 봤자 털이 하얘서 티도 안 난다고.
“으음…….”
오늘은 내 말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도끼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려 내 손에 있는 묵주를 노려보았다.
“네?”
“아, 아뇨…….”
오늘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배배 꼬며 말했다.
“……그, 하, 하나, 먼, 저, 생각해, 두, 어야… 할, 게, 있… 는, 데요…….”
“어떤 거요?”
“악, 마…… 만나면, 어, 어떻게, 할, 건지….”
너무나도 원론적인 질문에 도리어 대꾸할 말이 없어졌다.
“잡아야, 하겠죠?”
“그, 그렇, 겠, 죠?”
오늘은 어색하게 웃었다.
청룡은 내가 악마를 쫓아갈 거라 확신에 차서 말했다. 너무 확신에 찬 나머지 얼결에 그래야 할 것 같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거기에 불만 자체는 없다. 악마가 이 세계의 행방에 무언가 대단한 일을 저질렀던 것 같으니.
하지만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자, 잡으면, 어떻, 게… 할, 새, 생각, 인가요?”
반쯤 강제로 잡으라고 내쫓은 건 청룡 아닌가. 그럼 청룡이 알아서 다 해 주지 않을까.
“청룡님께 제물로 바칠까요?”
답답한 마음에 반쯤 농담 삼아 얘기하자 의외로 오늘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 타이밍에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 무서워지니까.
오늘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였다.
“괘, 괜찮을, 지도?”
“……청룡님은 그런 살벌한 것도 받습니까?”
“그으, 제사, 라, 도… 올리면…….”
진짜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이 알아서 다 해 주겠지.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저, 그……. 아, 악마에, 대, 대해서, 하랑 씨, 에게… 무, 물어, 봤, 거든요…….”
외국 혼혈로 보이는 주하랑은 글로벌 시대에 맞추어 이산래가 직접 스카우트해 온 인재다. 어디 대학가에서 타로집을 하고 있었다던가. 그래도 공무원인데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자세히 알고 싶진 않아서 말았다. 오늘이 설명하길, 특수고문 비슷한 걸로 데려왔다고 하긴 했었다.
어쨌든 주하랑은 특수과 내부에서 서양 요괴에 가장 정통한 이였다. 일주일 동안 광화문 광장에 지박령처럼 매여 있었어도 오늘은 할 일은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부디 광화문 광장의 주술도 완벽하게 걸려 있기를.
“악, 마를, 와, 완벽하게, 보, 봉인… 하는, 법은, 없, 다고…….”
물론 나도 일주일 동안 손 놓고 있진 않았다. 휴대폰 하나면 어디서나 쉽게 전 세계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넘쳐나서 힘들 정도였다.
악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했다. 악마와 계약하는 것은 시대, 국경, 민족을 막론하고 중형에 처해지는 금기였다. 악마는 인간의 두려움이었고, 경외였고, 욕망이었다.
악마를 잠깐 무력화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나 영구적인 봉인 자체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악마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청룡 때문이 아니어도, ‘정해준’은 악마와 계약을 한 이니까. ‘정해준’의 혼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이 세계가 돌아온 적 없는 세계라면, 그 자식의 혼은 악마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박서원과 쌍둥이가 악마와 계약하는 순간을 보았다고 했으니까….
완벽한 봉인은 필요 없다. 나는 악마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한 게 있습니다.”
“새, 생각한, 거, 요?”
오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소 희생은 따르겠지만 돌아갈 길을 단번에 가로지르게 해 줄 마법의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탐탁지 않게 여기긴 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대 생각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애초에 최소 한 번은 더 부딪쳐야 하는 놈이다. 이 기회에 단번에 해치우자.
“그건 그렇고, 저걸로 어떻게 위치를 알아냅니까?”
나는 무리하게 말을 돌렸다. 오늘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뭐라 하는 일 없이 그대로 넘어가 주었다.
“음, 그, 그렇게…… 어려, 운, 건, 아니… 라서.”
오늘은 바닥에 손가락으로 쓱쓱 무늬를 그렸다.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오늘의 눈에는 다르겠지. 한참 무언가를 써 내린 오늘은 그 위에 묵주를 놓았다. 그러고도 다시 이리저리 손가락을 놀렸다.
저쪽 방면으로 문외한인 나는 그저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오늘이 손을 멈추었다. 바닥에 놓인 묵주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지, 지도…….”
“네?”
“지도… 없, 죠?”
“네…….”
오늘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내 휴대폰을 가리켰다.
“지도, 켜, 주세요…….”
종이 지도나 지구본이 정확하지만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지도 어플을 킨 휴대폰을 오늘에게 내밀었다. 오늘은 비율을 줄여 전 세계가 다 나오게 화면을 조절하고 목주를 들어 그 위에 가져다 댔다. 목주는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아래를 가리켰다.
“……응?”
오늘은 묵주를 마구 흔들었다. 묵주는 미동이 없었다.
“으응?”
저런 반응이 나오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오늘은 다시 묵주를 흔들었다. 움직임이 없다. 죽은 모양이다.
“…….”
오늘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늘이 지도를 이리저리 만졌다. 좀 더 확대해서 그 위에 묵주를 가져다 댔다.
반응이 없으면 지도를 옮겼다. 처음에는 유럽이었고, 그다음은 미국. 큼직한 땅덩이를 가진 나라 위를 한 번씩 다 돌아다니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으으…….”
그리고 처음으로 묵주가 움직였다.
조금 지루하게 지켜보다가 깜짝 놀라 지도를 보았다.
“……한국이네요?”
“…….”
오늘은 뭔가 진 얼굴로 말했다.
“서, 서울, 이요…….”
생각해 보니 난쟁이도 명함을 파서 영업 다니고 있었지. 동양의 코딱지만 한 나라에 와서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다만…….
흠. 뭐, 가까운 건 나쁘지 않은데 이건 가까워도 너무 가깝잖아. 마음의 준비를 좀 하게 해 달라고.
“하, 하긴……. 그, 괴, 괴물이… 금방, 나, 타났으니까…… 가, 가, 가까이에, 있, 었, 다고… 하면…….”
오늘은 한숨과 함께 단단한 의지가 깃든 눈으로 선언했다.
“저, 전, 모르는, 일, 인, 거… 예요…….”
그런 눈으로 하기에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추가, 근, 무는……. 아, 안 할,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사람에게 해가 가는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니면 무리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
* * *
부엌에 난 창으로 이웃 건물의 옥상이 보였다. 평상 위의 작은 돌탑은 오늘도 평화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은 묵주가 맹렬하게 반응한 서울의 지도를 띄우고 있었고, 창가에는 새끼 사자가 인간들의 심란한 마음도 모른 채 쿨쿨 자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악마가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 바람에 오늘과 생각해 두었던 계획이 틀어졌다. 난 ‘정해준’과 달리 초능력자이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절차가 까다로운데 차라리 잘 되었다. 국내, 그것도 서울이라면 박서원에게 내 행적을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구민석이 따로 알아본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그놈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 정도로만 해도 만족한다.
대신, 악마의 위치를 알고 어떻게 갈 건지 의논하려고 했던 오늘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그래도 우리에겐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오늘 씨는 청룡님이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생각을 오늘에게 미루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니만큼 나보다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사실 저는 이곳이 반복된 세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방금 말한 그 기억 때문도 있고.”
주먹을 쥐었다.
“만약 그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여의주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 그렇죠…….”
“하지만 이곳이 돌아온 세계가 아니라면, 평행 세계,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오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이나 미래 같은 건 아닐까 했는데, 그럼 제가 본 정해준의 기억이 설명이 안 되더라고요.”
“…….”
오늘은 말이 없었다.
내가 오늘에게 잔인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돌아온 시간이든, 돌아오지 않은 세계든 오늘은 이곳의 끝을 알고 있다. 내게 들었으니까. 빌어먹을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도 오늘은 날 도와주는 거다.
그러니 난 오늘을 위해서라도 이 세계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오늘 씨.”
그렇지만 역시 못 해 먹을 짓이다. 굳이 이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어떻게 나 혼자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여태 잘… 해 온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은 한 것 같다고.
악마의 위치도 알아냈으니, 이 뒤는 역시 혼자서 하자.
“오늘 씨.”
“저, 해준 씨….”
오늘이 고개를 들었다. 침울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주친 눈은 또렷하게 빛났다.
“어, 어쩌면, 이, 세상은…….”
나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얼굴이다.
“계속, 지, 진행, 중, 인, 걸지도, 모, 몰라요….”
“아, 네. 돌아온 적 없다고 했으니까요.”
오늘은 고개를 저었다.
“여, 영물의, 말, 은……. 그, 그대, 로, 믿… 으면, 안, 돼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라는 말이 왜 생겨났겠느냐.
오늘이 덧붙였다.
……내가 아는 속담은 말 잘하라는 뜻이었는데 여기서는 영물의 위험성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몇, 번이고…… 새, 생각을, 해, 야, 해요…….”
“그럼 오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오늘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저…….”
몇 번이고 입술을 열었다가 다물었다가, 망설였지만 끈질기게 기다렸다.
오늘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내게 물었다.
“해, 해준 씨가, 이곳에, 온, 게… 어, 언제, 였어요?”
나는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2018년 12월 22일이요.”
잊을 수 없었다. 눈을 뜨니 청룡이 잠실 타워를 감고 있는 세상이 펼쳐졌다.
“그럼……. 해, 해준, 씨, 가… 이곳에, 오, 오기 전의, 세계는……. 나, 날짜, 기, 억, 해요…?”
당연히.
“2019년 12월 22일이요.”
오늘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기껏 사 온 음료수는 제대로 마시지도 않은 채였다. 나는 오늘의 생각이 끝나길 얌전히 기다렸다.
“그.”
“네?”
“…….”
오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오늘 씨?”
“아, 아직, 확실, 한, 게… 아니니까.”
오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 좀 더, 확실해, 지, 면…… 말, 해드릴, 게요…….”
“음.”
이 대사를 안다.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특히 장르가 추리물이라면 십중팔구다.
“그런 대사 하면 꼭 말을 못 전하게 되던데.”
“……네?!”
“영화 보면 다들 그렇더라고요.”
“아, 그, 그으으…….”
“꼭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 되더라고요.”
“그으…….”
오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모르는 척했다.
“그러니까 그냥 말해 주세요, 오늘 씨. 오늘 씨가 여기까지는 사실 꿈이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라고 말해도 군소리 않고 받아들일 테니까요.”
오늘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그건, 해준 씨, 한테는, 조, 좋은, 일, 이잖아요……!”
“그런 말은 아니잖아요?”
“그, 말, 해 줄 수, 있, 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도, 아, 안 돼요…….”
“진짜 말 안 해 주실 겁니까?”
“하, 하나만, 확인하고, 마, 말해 드릴, 게요.”
오늘은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말했다. 나는 되물었다.
“어떤 거요? 복잡한 겁니까?”
오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럼?”
“자, 잠실, 타워…….”
잠실 타워? 청룡이 있는 거기?
“거기, 오, 올라가서……. 보고, 말, 해 드릴, 게요.”
가서 뭘 본다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진지한 얼굴이라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내 얼굴을 보더니 평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런데…… 해준, 씨.”
“네?”
“따, 따지, 고, 보면… 해준, 씨, 과… 거로, 오, 온 거, 잖아요…? 세, 세상이, 완… 전히, 달라져서, 크, 게, 와닿, 진, 않, 아도…….”
“그렇… 죠?”
“이… 상하다고, 새, 생각한, 적, 한, 번도, 없… 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