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158화 (158/202)

# 158

44. 꿈꾸는 사자(1)

산예(狻猊)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왜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작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사랑스러운 소예(小猊). 소예가 조금 더 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랍니다.’

‘저는 정말 엄마를 많이 닮았나요?’

‘그럼요. 꼭 닮았지요.’

어머니는 산예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산예는 높게 웃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에게 두 팔을 벌렸다. 그럼 어머니는 마주 웃어 주며 어리광쟁이 막내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산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터전이 되는 바다와 땅이 달랐다. 양쪽 모두의 기운을 가진 산예는 아기 때부터 양쪽을 오가며 자랐다. 형들도 어릴 땐 그랬다고 했다. 나이가 차 독립한 지 오래인 형들은 늦둥이 동생을 보기 위해 자주 찾아왔었고, 가끔 형들의 손을 잡고 형들이 자리를 잡은 터전을 구경하기도 했다.

다만 한반도 동쪽을 방문한 뒤로 나들이 수도 줄었다. 한반도 동쪽 바다의 아버지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인간 어부의 그물에 걸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소예를 보는 데 한눈을 팔아요?!’

‘벌써 그리 빠르게 달리는 나이가 된 줄은 몰랐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잔뜩 혼이 났고, 형들은 풀 죽어 있는 동생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놀려 댔다. 결국 산예가 울음을 터뜨린 후에야 형들은 놀리는 걸 멈추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머니가 형들을 혼냈다.

형들이 놀려 댄 건 싫었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건 좋았다. 그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산예를 꼭 껴안고 말랑말랑한 볼에 입을 맞추었다.

‘우리 소예, 이렇게 엄마를 좋아해서 크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럼 산예는 어머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엄마랑 계속 있으면 안 돼요?’

어머니는 이마를 맞대며 작게 속삭였다.

‘소예는 인간을 굽어보는 용이랍니다. 언제까지고 어미의 품에만 있으면 안 되지요.’

그때만 해도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었다.

어머니의 남쪽 바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아버지를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아버지는 자주 산예를 보러 남쪽 바다를 찾아왔고, 산예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서쪽 바다를 자주 찾아갔다.

십 년에 일 년 정도는 한반도에서 다 같이 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인간들의 도시가 발전하는 걸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언젠가 저들에게 우리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란다. 그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구나.’

‘그럼 용들은 뭘 하고 지내야 하나요?’

아버지는 커다란 손으로 산예의 머리를 흩뜨리며 말했다.

‘글쎄. 인간들에게 날씨나 알려 주며 지내 볼까?’

아버지는 산예를 품에 안아 올리며 속삭였다.

‘산예야. 그 날이 오거든 너는 무얼 하고 싶으냐.’

그 말에 산예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따뜻한 곳에 앉아 있고 싶어요.’

‘따뜻한 곳? 그래, 그것도 좋지. 봄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인간 대신 꽃과 나무를 돌보며 사는 것도 멋지겠구나.’

결과적으로 그 날은 오지 않았다. 이 대화를 할 시점에는 그 어느 용도 짐작하지 못했다. 전지전능한 용이라도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산예의 세상은 평화로웠다. 인간 세상의 복잡함도 어린 용에게는 닿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형들의 보살핌 속에서 산예는 평온하게 자랐다.

어머니는 산예에게 용으로서의 삶을 가르쳤다면, 아버지는 인간을 가르쳤다.

‘요즈음 인간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한단다. 옛날에는 느렸지만 이젠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어.’

용은 인간을 굽어보는 존재였기에.

‘인간 세상이 변한 만큼 우리도 변하였지. 옛날처럼 인간은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지 않는단다. 대가를 원하기도 하고,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기도 하지.’

아버지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땅에서 천 년도 넘게 살아온 아버지는 수많은 인간의 죽음과 멸망, 탄생과 부흥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주 반짝이는 존재란다. 우린 그들을 기억해야 한단다.’

‘그저 바라만 보는 건가요?’

‘원한다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겠지.’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정해진 운명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업을 쌓는 것과 같은 것이란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어떻게 될진 우리도 모르는 것이니.’

‘그럼 바꾸면 안 되는 것인가요?’

‘네가 네 힘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알게 될 것이란다.’

산예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네가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거란다. 초조해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바람에 흩날리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따스한 손길에 산예는 어려운 이야기를 홀라당 잊어버리고 활짝 웃었다.

다시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된다.

산예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어머니는 산예를 데리고 오랜 친우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어머나, 얘가 막내야?’

‘소예야, 인사해야지요.’

버드나무가 가득한 우물가에서 강물에 몸을 담근 용을 만났다.

‘경아, 너를 꼭 닮았구나.’

버드나무 용의 말에 어머니는 기쁜 듯 웃었다.

‘그렇지?’

‘큰 아이들처럼 뺀질거리지도 않고. 순하고 어여쁜 아이구나. 소예야, 이모에게 와 보련?’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숨어 있자 버드나무 용은 숨이 넘어가랴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리 귀여울까.’

그래도 부드럽게 손짓하는 버드나무 용이 싫진 않았다. 버드나무 용은 진달래꽃 화전을 내밀며 산예를 불렀다.

‘소예야, 이모한테 오면 이거 줄게. 아주 맛있단다.’

맛있는 냄새에 코를 찡긋거리다가 손을 내밀면 어머니와 이모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달래꽃 화전을 잔뜩 먹은 산예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 어머니와 버드나무 용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아이는 아직 보지 못하지?’

‘아직 어리니까.’

‘저 성정으로는 봤을 때도 걱정이구나.’

버드나무 용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았다. 세상 걱정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맑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버드나무 용에게 물었다.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이니?’

‘이곳이 바스러져 없어질 때까지 있을 생각이야.’

‘점점 좁아진다고 하지 않았니? 괜찮은 거야?’

‘까막나라가 멸망한 지도 이백 년이나 지났잖니. 안정기에 들어설 때도 되었지.’

버드나무 용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구두 장군이 헛바람이 든 것 같아 조금 걱정될 뿐이란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어머니가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버들잎 소리가 예뻤다.

버드나무 용은 산예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너는 지금 시대에 태어나기에는 너무 여린 것 같구나. 부디 휩쓸리지 마렴.’

어린 용은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본래 자신을 향한 말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를 탓할 건 아니다.

어린 용이 버드나무 용의 말을 떠올리는 건 한참 뒤일 테니까.

용과 용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성장이 느리다. 산예 또한 형들처럼 천천히 자랐다. 여전히 어머니와 아버지를 오가며, 형들과 뛰어놀며.

십 년 만에 밟은 한반도는 어마어마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 인간의 도시는 늘 이렇게 빨리 바뀌는 건가요?’

‘그래, 그런 편이지.’

아버지는 동해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게 있다며 산예를 함께 온 큰형에게 맡긴 후 훌쩍 떠나 버렸다. 산예의 첫째 형, 금환(金丸)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에 자리를 잡은 용이었다. 금환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인간들은 이 강 아래에 용이 있는 줄도 모를 거다.’

형이 웃는 모습에 산예도 함께 웃었다.

강바닥에 있는 형의 세계에서 놀기를 며칠, 금환은 어머니를 마중 나가겠다며 바다로 향했다. 산예는 금환이 두고 간 종이인형들과 공을 주고받다가 불쑥 강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셔. 달콤한 사탕도 좋아하시지.

이제 인간사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산예는 자신감이 생겼다. 인간사회에서 물건을 살 때 쓰는 화폐를 챙겨다가 뭍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린 인간들이 많이 입고 있는 옷으로 의복을 바꾸는 치밀함도 보였다.

어머니를 꽃을 보면 기뻐하실 거야. 그래, 사탕! 사탕도 좋아.

인간들의 가게에서 혼자서 물건을 사 본 적은 없지만 형이 들르는 걸 본 적은 있다. 산예는 침을 꼴깍 삼키고 근처에 보이는 인간의 가게로 향했다. 아마 편의점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산예는 발을 멈췄다. 발밑으로 기분 나쁜 것이 스멀스멀 기어간다.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했던 하늘이 기묘하게 그림자가 져 있다. 멀쩡하던 건물에도 검은 녹이 슬어 있다.

‘어…….’

‘꺄아아아악!!!’

높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산예는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머니께 배운 건 많지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바닥을 긁으며 뻗어 온 그림자가 인간들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바로 옆에서 끌려가는 인간이 버둥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사,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조용했던 거리가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산예는 손을 뻗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인간을 살피라고. 어머니도 말했다. 인간을 돌보라고.

손끝이 스친다.

인간은 허무하게 끌려갔다.

거리의 끝이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산예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딜 둘러보아도 까만 녹이 슬었다. 녹으로 가득 찬 건물 하나가 무너지고, 비명이 울렸다.

아, 인간. 인간을 도와야 해.

어린 용은 그렇게 배웠다.

그렇지만 어떻게 도와야 해?

보이는 건 새까만 색뿐이다. 손을 대면 색이 묻어나올 것 같은 새까만 색.

그러나 산예는 금방 깨달았다. 손을 댈 필요도 없다. 이미 자신의 몸도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호오, 어린 용이구나…….’

새까만 그림자에서 그림자만큼이나 새까만 목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불꽃을 일으켜 보지만 그림자에 금방 묻히고 말았다.

‘너를 먹으면 어떨까. 너무 작고 어려서 간에 기별이 갈지 모르겠구나…….’

눈을 꾹 감았다. 벗어날 수 없다. 끌려간다. 다리를 붙잡혔다.

‘얘야!’

바로 그때였다.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꾹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림자가 걷히고, 인간 남자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반투명한 막이 주위를 모두 감싸고 있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인간 남자는 산예에게 다가왔다. 넘어져 있는 몸을 일으키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얘야, 달릴 수 있어?’

‘네…….’

‘저기, 저쪽으로 가면 어른들이 있을 거란다. 어른들이 널 도와줄 거야.’

남자는 다정하게 말했다.

‘저기로 뛰어가렴. 뒤는 돌아보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비명 소리는 계속 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짜증을 내며 하얀 막을 쾅, 쾅 두드렸다.

‘절대 주위를 보면 안 돼. 앞만 보고 뛰는 거야.’

건물이 무너진다. 도로가 무너진다. 비명 소리와 끌려가는 인간들. 죽은 인간들.

그 속에서 남자는 어린 용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지켜 줄 테니까, 알았지?’

이 순간, 어린 용은 인간의 운명을 보는 눈을 개안(開眼)했다. 이무기에서 용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눈앞의 인간은 아름답게 반짝였다. 별처럼, 달처럼, 해처럼. 어두운 그림자 따위는 모두 물리칠 빛이다.

‘셋 세면 달리는 거야. 아저씨가 뭐라고 했지?’

‘앞만, 보고…… 달, 린다…….’

‘그래. 저기까지 쭉 달리는 거야.’

남자는 어린 용이 안심하도록 활짝 웃었다. 붙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는 데도.

인간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웃었다.

‘하나, 둘, 셋, 달려!’

반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산예는 남자의 말에 반사적으로 발을 움직였다. 새까만 그림자가 어린 용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남자가 막아섰다.

보지 않아도 ‘눈’을 뜬 어린 용은 볼 수 있었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인간을. 반짝이다 스러질 인간의 운명을.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모든 것을 보았다.

‘소예! 소예야!’

어머니와 형이 달려왔다. 두 사람은 막내의 몸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기운에 기겁했다.

풍경이 휙 바뀌었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금색으로 익은 곡식들이 있는 평원이다. 어머니의 세계.

‘몸은, 괜찮아? 붙잡혔어? 다친 데는?!’

익숙한 품을 느끼고 나서야 산예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예, 내 아이. 다친 곳은 없나요?’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솟아나는 눈물 사이로 보이는 눈이 햇빛과 달빛을 머금고 있다.

산예의 어미, 오경은 탄식했다. 하필 이때에 눈을 떠 버렸구나. 이 아이라면 분명 인간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저 빛에 마음을 주고 말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며 인간을 살펴보는 용으로서는 절대 가지지 말아야 할 마음이다. 인간이 아닌, ‘인간’에게 마음을 주는 것. 인간 하나하나에게 마음을 쓰고, 사랑에 빠지는 것.

과연, 아들은 타들어 가는 어미의 속을 알지 못하고 야속하게 말했다.

‘어머니, 저, 인간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건 이 아이를 죽이는 길이다. 스스로를 죽이는 길을 걸어가려는 아들을 보며 오경은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아이는 펑펑 울며, 어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제 막 눈을 떠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는 햇무리와 달무리의 눈을 한 채 아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인간을 도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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