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43. 16화로 가는 길(6)
정보화시대에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건 죄악에 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동 중에도 휴대폰으로 손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면.
이쪽과 저쪽은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세상이다. 같은 걸 검색해도 나오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저쪽에서는 평범하게 동화책만 검색되어도 이곳에서는 섬뜩한 과거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민간인에게는 정보가 제한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옛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도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씩 달라져 있다. 우투리가 대표적인 예시다.
덕분에 이곳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들으면 검색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꼭 한평원 네 집안과 김재현을 못 알아봐서 그랬던 건 아니고.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렸다. 기억에서 보았던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졌다.
돌이 된 이무기가 잠겨 있다는 늪이 이렇게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도시 한복판에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설을 듣고 늪을 뒤진 사람은 근대까지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뒤로는 허황된 이야기로만 여겨졌다고 했다.
‘정해준’은 어떻게 여기에 여의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여의주를 모아서 무얼 하려고 했던 것일까.
‘정해준’은 난쟁이, 악마와 거래를 했다. 도망쳤다는 박서원의 반응을 보건대, 처음 쌍둥이와 얘기했을 때처럼 기억을 지우는 종류의 소원을 빌었던 게 분명하다. ‘정해준’의 기억을 봤을 때 생각으론, 단순히 도망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내가 따로 확인할 수 없으니 불편하다.
어쨌든 지금은 할 일을 해야지.
‘정해준’이 섰던 곳에 똑같이 섰다. 기껏 해 봤자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난다. 풍경은 같았다.
보호막 크기를 작게 만들어 몇 번 확인해 본 후 마음을 먹었다. 정작 지하국에서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써 보네.
“어, 어어!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다만 ‘정해준’처럼 사람이 없는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는 없다. 곧바로 들어가려는 데, 지나가던 주민이 불렀다. …수상해 보이기는 하겠군.
그러나 나는 ‘정해준’과 다른 결정적인 점이 하나 있다.
“초능력자입니다. 업무차 나왔으니 괜찮습니다.”
주민의 눈동자가 초능력자 면허 위에 얽혔다. 공무원은 아니어도 충분한 효력을 발휘한다. 광화문 광장의 일 때문에 초능력자의 위상이 올라간 타이밍이다.
봐라.
“그, 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특수과 이름을 팔아먹을 생각이다.
다시 집중했다. 지나가던 주민이 나를 좀 더 지켜보는 게 느껴졌지만 지체하진 않았다.
만약 여기서 여의주가 나온다면…….
증거가 될 것이다.
* * *
광화문의 통제는 풀렸지만 광장 중앙은 아직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특별수사과 이형상수색팀의 팀장, 이산래는 땀에 젖은 이마를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어수선한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팀장님.”
주하랑은 광장 바닥에 그려진 그림에서 영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언제 적 주술이에요?”
특수과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인간들보다 조금 더 볼 수 있는 이들은 광화문 광장 바닥의 그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쉽게 간파했다.
애초에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그림이긴 했다.
이산래는 작게 웃었다.
“저도 모릅니다.”
“엑, 팀장님이 모른다고요? 팀장님이 술식 짜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 그 수호령이 가르쳐 준 거예요?”
수호령은 가끔 팀원들이 이런 주술은 어디서 배워 온 거냐고 물었을 때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이산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광장을 보았다.
종이인형들이 광장의 그림 위를 춤을 추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삐뚤빼뚤 그려지고, 엉성하게 채색된 종이인형이지만 하나하나 담긴 힘은 엉성하지 않았다. 네 명의 형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계를 절반씩 똑 떼어 준 것들이었으니까.
그들은 늦둥이 막냇동생을 걱정했다. 어머니도, 형들도 없이 자랄 동생이 걱정되어 종이인형을 넘겨주었다. 형들의 종이인형은 이산래의 세계에서 잡귀들을 쫓아내 주다가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밖으로 나와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다.
이산래는 그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그렸을 뿐이다.
“그 수호령 진짜 어마어마한가 봐요. 팀장님 조상님 중에 나라라도 구하신 분이라도 계세요?”
주하랑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산래는 형들에 대한 기억을 털어 버리고 웃으며 말했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팀장님이 매일 야근하시는 거구나…….”
“그렇게 말하면 제 인생이 뭐가 됩니까, 하랑 씨.”
주하랑이 죽은 눈으로 상큼하게 대답했다.
“오늘도 야근하잖아요.”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요.”
주하랑은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주하랑이 걸어가는 길목에 있던 종이인형들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하랑의 곁을 빙글빙글 돌았다. 주하랑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산래는 자신을 향해서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종이인형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둘째 형 월전(月顚)의 인형이다.
이산래를 달래려는 것처럼 우스운 춤을 추던 종이인형들이 갑자기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광장 위에서 춤추던 인형들도 한쪽을 노려보았다.
[그놈을 내놔라!]
어눌한 한국말이 들렸다.
‘지겹지도 않습니까, 서양의 요괴.’
[어린놈이 말이 많구나!]
‘그 어린놈한테 매번 쫓겨나시는 분이.’
[이이이익!]
새까만 말을 탄 금발의 사내는 성난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올 것처럼 굴었지만 종이인형들이 다가가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달려들었지만 종이인형들이 쫓아내서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주인의 감정이 전해졌는지 말도 콧김을 거칠게 뿜으며 발을 굴렀다.
‘무슨 원한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잘 정화시킬 때니 그만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죽인다!]
‘죽이는 게 머리를 잘게 쪼갠다는 의미라면……. 그 머리는 안 죽을 거라는 거 아시죠?’
[신경 꺼라!]
‘그러니까 제가 잘 없애겠다니까요……. 이곳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저도 당신을 무리해서 공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간 했던 건 그럼 뭐냐!]
‘신사적으로 쫓아내기만 했잖아요.’
결국 사내가 달려들었다. 이산래가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종이인형들이 나섰다.
[네노오오옴!!!!]
사내가 던져졌다. 저렇게 날려 가면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산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걸 주워서 괜한 고생을 한다. 그나마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괜찮지만, 저 사내는 서양에서는 저승사자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요괴이다. 인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았다.
“티, 팀장, 님?”
“괜찮아요, 오늘 씨.”
딱 한 사람, 이무기의 세계도 아닌 현실 세계에서 종이인형을 볼 수 있는 인간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그렇, 지, 만…….”
뛰어난 눈을 가진 만큼 오늘은 꾸준히 이산래를 찾아오는 사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이산래는 걱정 말라는 얼굴로 종이인형들을 가리켰다.
“이 아이들이 있는 이상 저를 해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그, 그래도, 조심, 하, 세요….”
이산래는 싱긋 웃었다.
그 단호한 눈빛에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오늘은 다른 말을 꺼냈다.
“아, 그 티, 팀장님…….”
“네?”
오늘은 방금 도착한 메시지를 이산래에게 전했다.
“해준, 씨, 가, 오, 오고, 있대요…….”
“……어딜요?”
“여, 여기로…….”
이산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여기요? 언제요?”
“그, 지금…….”
“지금요?”
“도착… 했, 다고.”
“저, 이 팀장님?”
타이밍 좋게 광장의 통제를 돕고 있는 경찰 하나가 다가왔다.
도끼를 휘두르는 사내를 쫓아낸 종이인형들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이산래를 보는 종이인형들은 표정이 어두웠고, 광장 한쪽을 바라보는 종이인형들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이 없었더라도 종이인형들의 얼굴로 이산래는 손님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산래는 대답을 알면서 경찰에게 물었다.
“손님이요?”
“네, 그, 이번 사태 때 참여하셨던 초능력자분이신데.”
경찰은 손님에 대해 설명했다.
“보호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팀장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셔서요.”
“네, 아는 분이십니다.”
이산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렇잖아도 점심시간이네요. 저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세요.”
“네.”
“오늘 씨는 어떻게 할래요?”
오늘은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 저도, 가도, 되… 나요?”
“해준 씨가 막지 않는다면요.”
오늘은 그 말에 조용히 이산래의 뒤를 따랐다. 이산래는 그런 오늘을 보며 조금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늘 해준 씨와 나눌 이야기는 오늘 씨에게는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요.”
“…….”
오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서린 굳건한 의지를 본 이산래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이산래는 쓰게 웃으며 천막 밖으로 나왔다.
저지선 바깥에 조금 우울한 인상의 남자가 이쪽을 보고 있다. 표정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을 향해서는 부드러운 눈빛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산래는 오늘이 고마웠다.
두 사람의 속사정은 각자 아는 바가 있었지만, 인연만큼은 두 사람의 것이었으니.
그 끝에 어떤 것이 있을진 이산래조차 짐작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건 이 세계도 마찬가지구나.’
이산래는 남자를 보는 순간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슬슬 만나야 한다고도 생각했고, 그가 찾아올 것이라고 짐작도 했지만, 이건 조금 놀랐다.
이산래는 남자에게 인사했다. 인간처럼 지내고 있는 지금, 평소 같으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을 텐데 지금은 무리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해준 씨?”
정해준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부 인사에 긍정한 건 아니었다.
“들어야 할 이야기가 좀 많습니다만.”
“네, 그렇겠죠. 식사는 하셨는지?”
“아뇨. 딱히 그럴 기분은 아닙니다.”
“그래도 식사는 하는 게 좋을 텐데요.”
이산래는 종이인형들을 자신의 세계로 불러들였다. 형들의 종이인형은 필요하면 언제든 자기들을 꺼내라며 이산래를 꼭 안아 준 다음 돌아갔다. 이제는 없는 형들의 온기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이산래는 정해준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여의주를 하나 더 얻었지 않습니까. 그럴수록 잘 먹고 힘내야지요.”
* * *
잠실 타워의 가장 높은 층.
그보다도 조금 더 높은, 하늘에 가까운 곳.
서해용왕 이목은 지상을 굽어보았다.
수많은 인간들이 저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 사이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영물들이 간간이 빛났다.
이목은 그 빛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자식을 보았다.
적안홍성제왕의 피를 이은 그의 아들은 온화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형제 중 유일하게 어미를 닮은 아이다. 색도 제 어미를 꼭 닮았다. 아직 한창 어미의 품에서 자랄 나이인데 인간들 속에 남기로 한 아이였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동해용왕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내게 이 과업을 맡긴 것이오.’
이목은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용의 기분을 느꼈는지 하늘이 울리기 시작했다. 새까만 구름이 몰려왔다.
‘이 땅의 호국용은 문무왕, 당신일진대. 나보다는 그대가 남는 편이…….’
땅으로 빗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빗방울은 곧 폭우가 되어 지상으로 쏟아졌다.
청룡은 그저 숨을 죽인 채 회색빛으로 변한 세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