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42.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1)
“됐다!”
구민석은 주먹을 꽉 쥐고 환호를 내질렀다.
“아영아, 이제 전화 받아라. 걔들 격리 풀고.”
“나 참, 꼭 이렇게 번거롭게 해야 해요? 그러다 인간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래서 구두 장군 머리에서 지성을 빼 버렸잖냐. 게다가 해태와 호랑이가 있는데 인간들이 어떻게 죽어?”
구민석은 차가운 조카의 눈빛에 급하게 변명했다.
“정 위험해지면 나도 가려고 했지.”
구민석은 손가락을 세워 빙글빙글 돌렸다. 사람 머리만 한 구슬이 둥실둥실 떠다니며 영상을 비추었다. 광화문 광장이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구두 장군이 기어 올라와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내가 끌어 올렸을 텐데.”
“어휴, 그렇게 말하면 너무 악당 같잖아요, 삼촌.”
“나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면 뭘 해도 악당 같지 않니?”
“그건 그렇지만…….”
“아영아, 거기서 긍정하면 어떡하니.”
구민석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우투리도 각성했으니 한 건은 해결됐군.”
“여보세요? 네, 지금 출발했습니다.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제 우리 귀여운 장기짝들의 활약이나 감상해 볼까.”
성아영은 전화를 끊고 답했다.
“악당 취급받기 싫으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그만두세요, 삼촌.”
* * *
손요운의 날개가 움직였다. 구린 날씨 속에서도 화려한 날개는 선명했다. 동아시아는 물론,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깃털 색이다. 어디 열대우림에서나 볼 것처럼 다채롭지만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은 색. 은은하게 빛무리가 지는 게 실존하는 새의 날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가장 겉에 있는 깃털은 꿩의 것처럼 생겼고, 속에 있는 깃털은 공작새 깃털처럼 화려하고 길다. 현실의 새 깃털은 아니지만 조금 눈에 익은 무늬기는 하다. ……교위의 모자 장식이 저렇게 생겼었지.
“크아아아악!!”
구두 장군의 도가 손요운에게 그대로 내리꽂혔다. 날개도 있으니 그대로 날아올라도 충분하건만 손요운은 날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하긴 했다. 내가 예상한 사용법은 아니지만.
손요운의 능력은 신체강화. 메인과 서브 모두 강화 능력으로 측정된 특이사례다. 그렇기에 손요운은 보통 메인 능력의 보조로 각성하면 제법 괜찮은 능력 취급받는 신체강화 능력이 극에 달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었다.
“저건 도대체 무슨 능력인데?!”
손요운을 넋 나간 얼굴로 지켜보던 초능력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임상규를 닦달했다. 임상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술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저, 저 날개는…….”
“저 날개는 뭐예요?!”
이세빈마저 임상규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보, 봉황의 날개…….”
“봉황?”
“그딴 게 어딨어!”
청룡도 있는데 왜 봉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무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봉황은 옛날에 다 죽은 거 아니었어요?”
안타까운 사실이 전해졌다.
“지금 요운 오빠가 새라는 소리예요?!”
이세빈이 끝내 임상규의 멱살을 잡았다. 임상규는 이세빈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 그게 아니라요, 세빈 씨.”
손요운의 날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저거 저대로 둬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손요운은 몸을 틀어 구두 장군의 도를 피했다. 소방관들은 전부 저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거야? 군더더기 하나 없이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수십 년간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길들여진 내 눈에는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손요운은 구두 장군의 도 위로 올라탔다.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액션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이런 상황인데도 조금 두근거렸다. 이다혜도 신선비 때 뱀 등을 달렸지만 저런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요운 오빠!”
이세빈은 임상규의 멱살을 잡은 채 외쳤다. 정신을 조금 차린 임상규가 그제야 당황했지만 생각 외로 이세빈의 손아귀 힘이 강했다.
이세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손요운은 아무 문제 없이 도 위를 달렸다. 날개가 아래로 축 처져 마치 도를 붙잡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저래서야 아무리 봉황의 날개라고 해도 장식품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생각이 무색하게 날개는 화려하게 데뷔했다. 구두 장군이 손요운과 날개의 무게 때문에 도를 움직이지 못한 채로 굳어 있자, 손요운이 도의 중간까지 그대로 달린 다음 날아올랐다. 구두 장군이 기세에 눌려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손요운은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구두 장군의 가슴이 베였다.
그래. 손요운의 능력은 신체강화. 심플하고 강한 능력이지만 ‘이 세계’의 주축이 되는 ‘주인공’의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보통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능력에는 추가적인 각성이 더해지는 법이지. 바로 저렇게.
“저건 말이지.”
낮은 남자 목소리가 불쑥 말했다. 한진열은 엉망이 된 양복 재킷을 벗어 던졌다.
“인간의 영웅이야.”
“네?”
마침내 이세빈이 임상규의 멱살을 놓았다. 손요운은 해태와 합을 맞추어 구두 장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까 전처럼 보호막으로 구두 장군의 움직임을 방해할까 싶었지만 타이밍이 어그러져 괜히 방해만 될 것 같아 말았다.
“그, 사진이 있습니다.”
임상규는 주름진 옷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비에 젖어서 추레한 상태라 그걸로 단정해지진 않았다. 임상규도 금방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포기했다.
대신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19세기에 프랑스 선교사가 찍은 거지요. 동양의 상서로운 새의 날개를 지닌……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가진 선인이 조선에 있다고.”
여기서 내가 바로 그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불과 며칠 전에 그를 따르던 수많은 병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은 곡식 알갱이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싸움을 할 때마다 나이를 먹었다.
‘우리를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조선인은 그를 우투리라 부른다…….”
‘장군님이 우릴 부르지 않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요…….’
그 병사들이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길 빌었던 장군은 그 기도가 무색하게 혼자서 괴물과 싸우고 있다.
우투리 전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예로부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인간이 위험할 때, 날개를 달고 태어나 사람들을 구제한다고 알려졌었어.”
한진열은 말과는 달리 복잡한 얼굴로 손요운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전부 끝이 안 좋았어.”
“네?”
이세빈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내가 있던 세계에서 우투리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곳은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실재하는 곳. 실존 인물의 비극에 대해서는 쉽게 입에 담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도 시대가 어지러울 때마다 등장한다고 하는 반정(反正)의 영웅이라면.
“보통은 어릴 때 살해당하지. 나도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우리 인간 아버지는 본 적이 있댔지만…….”
한진열이 손요운을 보았다. 회색으로 가득 찬 빗속에서 장식도 없는 철검을 들고, 오색빛깔로 반짝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괴물을 향해 달려드는 손요운은 고전 명화에 나오는 영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함께 괴물을 공격하고 있는 푸른 털의 해태가 그 신화적인 풍경에 한몫 보태고 있었다.
“수십 명의 우투리가 살해당하면서 조금씩 변화했지. 진화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우투리도 인간이니까. 어머니의 뱃속에서 날개를 숨길 수 있게 되었어.”
우투리는 학습했다. 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본인의 힘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간과 다름이 없다. 주변의 상황에 따라 능력의 각성 유무가 달라질 뿐.
우투리는 어두운 시대를 밝힐 영웅이니까.
“그, 그건…….”
한진열의 말을 들은 이세빈은 울상을 지었다.
“요운 오빠가 우투리가 될 만큼 저 괴물이 위험하다는 거죠?!”
쿵!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구두 장군의 도가 빙글빙글 날아가서 세종대왕 동상 근처에 꽂혔다. 아슬아슬하게 동상을 빗겨 가긴 했지만 해태를 분노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구두 장군의 손목을 물었던 게 해태 본인이기는 했지만.
“그렇긴 한데…….”
한진열은 임상규가 조심스럽게 건네준 물병을 단숨에 비운 후 어깨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초능력자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퍼졌다.
“좀 이상하단 말야.”
“뭐가요?”
“저놈 말야. 뭔가 좀…… 로봇 강아지 보는 기분이거든?”
“……어디가요?”
“공격 패턴이 몇 가지 안 된다는 점에서?”
한진열은 말하면서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를 휘두르고, 발을 구르고, 욕하고. 딱 도가 닿는 범위에 있는 것들만 공격해. 지금도 봐라. 도가 날아갔는데 그걸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주먹만 휘두르잖아?”
“어…….”
“그치? 게임 보스와 싸우는 기분이라고.”
산골짜기에 살던 호랑이 입에서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단어가 나오니 그건 그것대로 놀라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농담 따 먹기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진열은 인간들에게 친절하게 조언을 해 주었다.
“가까이 다가갈 생각하지 말고 멀리서 공격해 봐.”
모인 초능력자 중 하나가 질문했다.
“그러다가 호랑이님이나 해태님, 손요운 씨가 맞으면요?”
“음. 중요한 문제네. 자신 없으면 그냥 하지 마. 알았지?”
호랑이는 단호했다.
“정해준이, 넌 아까처럼 보호막을 아래에 만들어서 비틀거리게 해 주고.”
“네.”
예상치 못하게 이름을 불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시 쓰던 놈 누구야?”
“네, 네?”
“너도 쟤 발바닥 공격해. 위로 튀어나오게 하지 말고.”
“네!”
“그리고 확성기.”
“네?”
“공격 방향 계속 부르고.”
김재현과 이세빈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외에는 알아서 잘하자.”
한진열은 둔갑을 풀고 진흙투성이의 호랑이가 되어서 구두 장군에게 달려갔다.
“크허엉!”
한진열의 지시대로 구두 장군이 발을 내딛는 타이밍에 맞추어 보호막으로 방해했다. 한진열의 말에 다른 초능력자들도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다들 다리만 죽어라 공격했다.
……확실히 구두 장군의 상태는 이상하다.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던 걸 한진열 덕분에 확신했다. 구두 장군을 만나 본 적 없는 한진열도 이상함을 느꼈는데, 나는 심지어 지하국에서 만나기까지 했었다.
비록 개도 안 믿을 논리를 펼쳐 대고, 버들에게 기가 눌려 주춤거리긴 했지만 구두 장군은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괴물이었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이지만, 본디 까막나라의 장군이였다는 과거답게 사찰의 사천왕처럼 신묘함과 경외감이 느껴지는 이였다는 거다. 내가 괴물이라 까 내리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지금은?
“크아아아악!!!”
괴성만 내지르는 덩치 큰 괴물이다.
도대체 저 괴물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지상으로 올라온 이유는? 지상으로 올라온 방법은? 버들은 저걸 가만히 놔뒀단 말인가?
그리고 ‘정해준’의 7월 22일은?
씨발, 생각할 게 너무 많다.
“와아아아!!”
그때, 저 멀리서 환호성이 들렸다. 저지선이 슬금슬금 물러나서 꽤 먼 곳에서 들렸지만, 무슨 소리일지는 분명했다. 짜증이 확 솟았다.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나타날 놈들이 누구인지는 뻔했으니까.
순찰용 모터사이클 두 대가 도로를 질주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백주하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박서원이 손을 움직였다.
“회장님 죽여 버릴 거야!!!”
순경 뒤에 앉아 알 수 없는 기합을 내뱉은 백주연도 손을 움직였다.
붉고, 하얀 술이 달린 검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