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39. 쟁탈전(3)
술이 달린 열 자루의 검들은 마치 미리 역할이라도 나눈 것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날개를 잘라 냈다.
“아아아악! 미련한 것들이, 감히!”
날개를 잃은 괴물은 자연히 바닥으로 떨어졌고,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울부짖은 놈을 향해 활을 쏘았다.
“끄아아악!!!!!”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새까만 피가 흘렀다.
교위는 바쁘게 피리를 번갈아 불었다.
삑!
“멧돼지도 잡아야지! 땡중만 잡지 말고!”
“네!”
바쁘다, 바빠. 저 교위에게 확성기라도 하나 쥐여 주고 싶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병사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보든 근사한 청년들이다. 키도 나와 엇비슷하다. 입고 있는 갑옷도 그에 맞추어 커지고 장식이 늘었다. 교위의 경우에는 전립에 꿩 깃털 장식이 생겼다. 그래도 아직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다.
교위는 성인 남성의 모습에 걸맞은 굵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삑!
“멧돼지!”
“네!”
삐익!
“땡중!”
“네!”
창과 화살이 모두 떨어졌는지 이제 칼을 뽑아 들었다. 교위의 명령이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그러나 병사들이 멧돼지와 중 모습을 한 괴물에게 달려들 시간은 없었다. 불개 대여섯 마리가 멧돼지의 목을 완전히 끊어 놓았고, 하얀 술의 단검이 땡중의 목을 관통했다.
두 놈 다 시커먼 피를 뿌리다가 쓰러졌다.
“호오.”
교위는 다시 쑥쑥 줄어들었다. 중학생 정도의 얼굴이 된 교위는 칼끝으로 괴물을 쿡쿡 찔렀다.
“장군님이 안 계셔서 날개 달린 놈은 상대하기가 힘든데 덕분에 살았어.”
교위는 눈을 반짝였다. 조금 전 나이를 먹었다가 다시 줄어든 모습을 봐서 마음의 거리가 아까보다 멀어진 상태였다. 아까도 그리 가까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싶다…….
어쨌든 이 병사들의 무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불개들이 먼저 달려갔기는 했지만 이어진 전투 상황을 보면 불개가 없었어도 멧돼지는 병사들에게 도달하기 전 죽었을 것이다. 불개들을 피해서만 창을 던지는 솜씨를 봐라.
또 본인들은 날개 달린 놈에겐 약하다고 했고, 실제로도 당황한 소리를 내긴 했다. 그렇지만 활을 겨눈 채 눈을 번뜩이면서 입으로만 지껄였던 소리다. 말과 행동이 정도껏 달라야 아, 힘들구나! 하고 이해해 주지.
삑!
“저놈들을 태워라!”
기름을 붓지 않았는데도 괴물은 아주 잘 탔다. 저 시꺼먼 피가 사실은 진짜 타르일지도 모른다.
교위는 다시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거, 너희는 어느 뱀한테 볼 일이 있다고?”
“검은 강철이를 찾고 있습니다.”
박서원과 백주연이 칼을 거둬들이고 있는 게 보였다. 빨간색. 하얀색. 술이 흔들렸다.
내 말을 들었는지 박서원이 나를 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알아듣기 싫었는데 알아들었다.
‘허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싫었는데. 나의 영민한 머리는 이해하지 못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강철이 허물을 먹고 있다는 뱀을 가만히 놔둘 순 없죠.”
“허, 역시 그럴 줄 알았지!”
교위는 무릎을 탁 쳤다.
“보기보다 괜찮은 인간들이었군. 물론 우리 장군님에게는 한참 부족하지만.”
교위는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고놈을 잡으러 갈 생각이니 함께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바라는 말이 교위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교위는 기분 좋게 웃다가 아차 하였는지 급하게 덧붙였다.
“혹시 꽝철이 허물을 가지려는 건 아니겠지?”
가늘게 뜬 눈이 날카롭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애려는 겁니다.”
날카롭던 눈이 그대로 호물선을 그렸다. 교위는 히죽 웃었다.
“그럼 됐네!”
물론 안 됐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이 병사들의 정체. 알아 봤자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렇지만 등 뒤에 있는 놈이 살인마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저 병사들이 살인마라는 뜻은 아니고.
“그런데 교위님.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응?”
“교위님네 장군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구두(九頭) 장군은 아닐 거 아냐.
“어이쿠, 말 안 했었나?”
“네.”
“유명하시니까 다들 들어 본 적 있을 건데!”
들어 본 적 없을 거라 확신한다.
교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투리 장군님이시네!”
제길. 들어 본 적이 있잖아.
그것도 중학교 교과서에서.
* * *
우투리에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아기장수.
날개가 달린 아기가 어릴 때부터 비범함을 보이다가 불안함을 느낀 당시의 왕이 아기를 죽인다는 이야기다. 이 아기는 부모에게 콩과 팥을 달라고 한 뒤 겨우 몸을 숨긴다.
그러나 왕이 부모를 윽박지르자 결국 부모는 아기가 달아난 곳을 말하고 마는데, 왕이 그곳으로 가 보자 콩과 팥이 병사가 되어 훈련을 하고 있더라는 거다.
그러나 결국 아기는 왕에게 죽고 날개 달린 용마가 나타나 울부짖었다…… 가 내가 아는 아기장수 우투리 전설이다.
태클 걸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애초에 날개 달린 아기라며? 그런데 날개 달린 말이 왜 필요해? 누구 하나가 지치면 번갈아 가면서 나려고?
콩과 팥…… 병사는 그렇다 치자. 그렇다 칠 수 없지만 이 이야기에서 차라리 가장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 휴대폰이 안 돼서 검색해 볼 수는 없지만 우투리 전설은 우투리가 죽는 걸로 끝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병사들이 장군님을 기다리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우투리는 이미 죽었을 텐데.
아니면 이 설화만 아직 ‘진행 중’인 건가?
아냐, 그것도 웃기는 얘기다.
여태껏 나왔던 동화나 설화는 이미 ‘끝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 나왔던 당사자가 있어도 적어도 이야기 자체는 이미 과거에 일어났었던 일이다.
아니지. 그냥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세계에서야 아기장수가 불쌍하게도 반란에 실패하고 죽고 말았어요, 하고 끝나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다른 설정이 더 붙어 있을 수도 있지. 놀랄 거 없다. 백조 저주만 봐도 몇백 년 동안 걸리는 사람이 없어 반쯤 사라진 저주였는데 저 멍청이들이 버젓이 걸려 왔지 않은가.
“우리 욕하냐?”
“네.”
“최소한 표정은 좀 관리하지 그러냐.”
“제가 왜요?”
“왜요오?”
“선배들이 제 상사거나 대학 교수님이었으면 당연히 숨기죠. 그런데 선배들인데 제가 그런 수고까지 해야 돼요?”
불필요한 수고다. 그런 일에 기운을 뺄 순 없지.
반면 쌍둥이는 내 말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들은 기운도 좋다. 매번 반응이 격하다.
“저기, 우리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백주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전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
백주연은 안색이 돌변해서는 혀를 찼다.
“쳇. 안 넘어오네…….”
기가 막힌다, 아주.
“오히려 그런 말 하는 선배가 의심스러운데요. 저한테 못 할 짓 했어요? 돈 떼먹었어요?”
“의심이 왜 그쪽으로 튀냐?”
“옥장판이라도 사게 했어요?”
“그러니까 왜 그쪽으로 가냐고.”
백주연은 말을 말자는 듯 손을 저었다. 꼭 저럴 거면서 괜히 시비지.
백주연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괴물 시체를 모두 태우고 수수밭으로 돌아오자 저녁이 되었다. 해님이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뱀을 찾으러 가기로 교위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에게 작은 별채 하나를 내주었다.
“이러다 지하국에 있는 건물에서는 한 번씩 다 자 볼 것 같은데.”
“남은 건 구두 장군네 집인데 그건 무리지.”
“그 기와집?”
작매는 병사들이 준 수수부꾸미를 큼직하게 베어 먹으며 말했다.
“아서라, 구두 장군과는 안 마주치는 게 상책이야.”
“왜?”
“머리가 아홉 개라서?”
쌍둥이는 뭐가 재밌는지 둘이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작매는 수수부꾸미를 조금씩 떼어 욱리에게 먹였다. 이제 새끼 까치도 슬슬 인간으로 둔갑할 때가 되었지 않나.
“뭐가 그렇게 웃겨? 구두 장군은 음험하고 흉폭하고, 여하튼 아주 위험한 장군이란 말이야.”
“아니, 그렇지만 작매님, 생각해 봐. 머리가 아홉 개면 어떻게 달려 있겠어? 보통 사람들 머리 크기로 생각하면 아홉 개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고.”
“아홉 개씩 달리려면 머리가 아주 작아야 하지 않겠냐고.”
쌍둥이는 또 뭐가 그리 웃긴지 한참을 낄낄거렸다. 작매는 쌍둥이를 상대하는 걸 포기했는지 부지런히 수수부꾸미를 먹었다.
그러나 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며 수수부꾸미를 먹던 박서원은 쌍둥이가 즐거워하는 걸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박서원은 쌍둥이에게 잔혹한 현실을 가르쳐 주었다.
“아니면 몸이 아주 클 수도 있지.”
“…….”
“…….”
“멍청이들.”
쌍둥이는 얌전해졌다.
낮에도 괴물이 나오는 곳은 밤에도 괴물이 나왔다. 멀리서 들리는 괴물 소리에 진저리쳤다.
“으, 조용한 적이 없어.”
“저놈들도 언젠가 지상으로 올라오겠지?”
요즘 요괴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늘었다는 임상규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도 지금 지하국의 상황과 관련 있었을까? 관련이 있겠지. 결과가 있으면 원인도 있는 법.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사건도 마찬가지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오늘을 떠올린 것처럼.
“올라갈 때요.”
“응?”
오늘이 그 말을 박서원에게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 출입구를 막을 순 없을까요?”
“……저 괴물들이 지상으로 못 올라가게?”
백주하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네.”
“글쎄. 가능하면 좋긴 하겠는데.”
그러나 작매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말을 했다.
“막을 수는 있는데, 막더라도 장군이 새로운 문을 만들 거예요.”
“구두 장군?”
“입구를 또 만들 수 있어?”
작매는 수수부꾸미를 반으로 갈라 한쪽을 욱리에게 주고, 한쪽을 크게 베어 물었다.
“구두 장군은 원래 까막나라 장군이었는데, 까막나라가 멸망한 이후로 돌산 부근을 자기 영토라고 선언했거든. 원래 돌산에는 요괴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걔네랑 땅따먹기 하느라 지금은 지상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래.”
“돌산이라……. 싸움 좋아하는 놈이라면 안 마주치는 게 좋은데.”
“근데 그런 놈이 지 영토에 들어온 산함박을 가만히 놔둬?”
“쨉도 안 되니까 놔뒀을지도?”
수수부꾸미 하나를 훌떡 먹은 작매는 마지막 남은 수수부꾸미로 슬금슬금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괜히 입구를 막겠다고 시끄럽게 굴면 구두 장군이나 다른 돌산 괴물들의 시선이 거기로 쏠릴 수도 있대.”
백주연이 작매가 잡은 수수부꾸미를 노렸지만 내가 손등을 쳤다. 어디 감히 어린애 먹는 걸 노려.
“그러니까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다는데?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청룡님께 부탁했을 때 그렇게 답하셨다 하더라고. 그 뒤로는 우리도 지하국 입구는 안 건드리기로 했어.”
그 말에 나는 청룡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사이엔 쌓인 게 좀 많다. 아마 이산래도 많을 것이다.
“청룡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 않아요? 그거 믿을 만해요?”
“으악, 해준 씨! 그런 말 하는 거 아녜요!”
“푸하하하, 아니지, 작매님. 이건 말 잘한 거지. 그치, 용이라고 별거 있나. 옛날에는 잘 나갔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냥 공기청정기 정도잖아.”
공기청정기는 한평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문무왕님 정도면 다르겠지만.”
쌍둥이가 낄낄 웃었다. 작매가 허둥거리는 게 우스웠는지 한 마디씩 던지는 것도 있지 않았다. 이러다 천벌받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흠. 명색이 청룡인데 그렇게 속이 좁진 않겠지. 용이라며? 아들한테 미움받기 싫으면 인간한테 잘해야지.
쾅!!!!!
시발, 천벌인가?
쾅!
바깥에서 벼락이 친 것 같은 소리가 난 직후, 문이 벌컥 열리며 교위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산으로 올라가자!”
“무슨 일이십니까?”
“몇몇 괴물들이 일 친 것 같다! 해님이 나오길 기다리다가는 우리 다 망하게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