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38. 물속의 뱀 꼬리(2)
“와, 신기해.”
공주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쪽을 구경하느라 앞에 놓인 버드나무 잎들은 아까와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되었든 최소한 한 명은 즐거워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웃으면 수명이라도 늘겠지.
반면 버들은 일관적으로 차분하다. 버들은 익숙하게 버드나무 가지를 손질하여 버들잎을 소쿠리에 담았다.
“재밌는 능력이네요.”
누굴 향한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옛날에는 인간들의 능력도 단순하게 힘이 장사가 되었다, 하늘을 난다…… 이런 것밖에 없었는데.”
버들은 그리운 얼굴로 말했다.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나 봐. 철없고 혈기만 넘치던 때라 잊어버리고만 싶었는데.”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도 지우고 싶은 어린 날의 흑역사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의 지나간 사춘기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는 내게 당면한 문제를 보았다. 강은 얄미울 정도로 맑았다. 해 대신 수정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평화롭게 흐르는 강 위에 백주연이 있다. 하얀빛을 띠고 있는 투명한 보호막 안에 서 있는 백주연은 햄스터 볼 안에 들어가 있는 햄스터처럼 보였다. 물론 햄스터처럼 작고 귀엽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것들을 막았다. 불과 물, 요괴의 공격 같은 것. 혹은 가둔 적도 있었다.
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꽤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백주연처럼 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거나. 물살이 흐를 때마다 백주연은 보호막 안에서 흔들거렸다. 물을 막는다는 것이 물 위에 뜰 수 있다는 말이란 걸 처음 알았다. 도대체 그게 무슨 원리로 그렇게 되는 건데?
……어차피 초능력이란 건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그래. 백주하도 그랬지. 마음으로 이해하자.
“악, 시발!”
욕설과 함께 백주연이 물에 풍덩 빠졌다.
백주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 팔을 놓았다. 다리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박서원은 손만 들어서 휙 움직였다. 강가의 버드나무에 묶여 있는 밧줄이 그에 맞추어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밧줄의 반대쪽은 백주연의 허리에 연결되어 있다.
“아오, 난 왜 자꾸 실패하는 거야!”
뭍으로 기어 나온 백주연은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짜증을 냈다. 백주하는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네가 생각이 없다는 증거지.”
“뭐라고?”
“자꾸 의심하잖아. 와,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하면서. 네가 보호막을 신기해하는 순간 물을 못 막게 되는 거라고.”
“……그건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실속 없는 생각뿐이잖아. 아, 그래. 내가 잘못 말했어. 이건 그거지. 학습능력이 없다.”
백주하의 말에 백주연은 욕을 읊조렸다.
“씨이발…….”
백주연은 물이 뚝뚝 흐르는 몰골로 다리 위로 올라왔다. 박서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백주연에게서 멀어졌다. 언뜻 보이는 휴대폰 화면은 게임이다.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깔린 종류의…… 카드 게임.
11등급에 근접한 초능력자는 준비성이 좋아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보조 배터리까지 알뜰하게 챙겨 왔다. 시간 보내기에는 좋지. 나는 박서원에게서 관심을 껐다.
“그냥 보호막은 너랑 정해준이 치면 되잖아! 난 못하겠다는데 왜 자꾸 해야 해?”
“너도 쟤 능력 쓸 때가 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연습하고 가면 좋잖아.”
“그럼 너네도 연습하던지!”
백주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난 할 수 있는데?”
“씨발! 그럼 정해준은?!”
“쟨 지 능력인데 못 쓰면 어떡해. 바로 성공했잖아.”
“더 연습하라고 해!”
백주연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고. 쟨 우리보다 경험도 훨씬 많다고.”
“그래 봤자 반년이라고!”
왜 가만히 있는 날 걸고넘어지는 거야. 멍청한 대화에 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당하고 있을 순 없다.
“반년이랑 보름은 경험치가 다르죠.”
“씨이발…….”
백주연은 다리 위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덕분에 능력의 사용방법은 착실하게 익히는 중이다. 박서원이 노리던 게 이건가 싶었다. 내가 내 능력에 대해 탐구하고, 쌍둥이들이 내 능력에 익숙해지는 것.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보호막이 물 위에 뜰 수 있다는 걸 알기 힘들었을 거다. 강원도에서 들었던 말이 맞았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정해준’은 이 능력을 손에 넣었던 걸까? 뭔가 목적이 있긴 했겠지.
“나도 어디 가서 구박 안 받는 10등급인데!!”
백주연이 버둥거렸다. 특수 능력은 등급 측정 자체가 어려워서 좀 특이하다 싶으면 등급이 높다. 나도 그렇고, 쌍둥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선배는 둘이서 등급 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누기 2 해야죠. 5등급.”
“와, 진짜 너무하네! 야, 박서원! 쟤가 나 괴롭혀!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박서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백주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쟤 게임 한다고 안 들어.”
“아, 윈도우 기본 게임이 뭐가 재밌다고 저렇게 빠져 있어?! 초딩이야?”
“요즘 초딩은 저런 게임 안 해요.”
딱. 딱. 딱.
돌멩이 하나가 쌍둥이와 내 머리를 한 대씩 치고 떨어졌다.
“깔깔깔!”
공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공주가 웃자 함께 산책 나온 불개들이 신나서 왈왈 짖어 댔다.
안정적으로 개판이군.
나는 머리를 매만졌다. 손톱만 한 돌멩이가 은근 맵다.
“잡담할 시간 있으면 연습이나 더 해. 뭘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데, 준비는 똑바로 해 가야 할 거 아냐.”
“아오, 진짜 더러워서 한다, 더러워서!”
박서원의 말에 백주연이 욕을 하며 강물로 뛰어들었다. 장렬한 기합 소리가 들렸지만.
“저 멍청한 놈이…….”
백주하는 혀를 찼다. 백주하의 두 손은 팔짱을 끼고 있다. 날 잡지 않았다는 말이다.
“으악!”
“…….”
박서원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백주연을 물속에서 꺼냈다.
* * *
백주연이 스무 번째로 건져 올려진 다음 버드나무 아래에 드러누워서 쉬고 있자, 백주하는 슬그머니 박서원 곁으로 다가갔다.
“야.”
나는 백주연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는 공주를 보며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놈이 지금 여기 있을 것 같냐?”
박서원은 카드 게임을 계속하며 대답했다.
“너 또 날 점쟁이로 쓰려고?”
“아, 이런 거에 점쟁이고 뭐고 그게 어디 있냐. 대비할 수 있으면 대비하는 게 좋지.”
백주하는 박서원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너 지금 정신 빠져서 게임만 하잖아.”
공주는 백주연의 홀딱 젖은 얼굴 위로 버들잎을 부으며 깔깔 웃었다. 버들잎이 입 안에 들어갔는지 백주연이 팔딱거리며 입술을 털었다.
“할 일도 없는데, 뭐.”
“그거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너 평소에는 일할 때 폰에 손도 안 대면서.”
“이건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박서원은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백주하는 그런 박서원에게 은근히 물었다.
“그놈 여기에 없을 것 같지?”
오늘이 박서원의 직감에 대해서 뭐라고 했더라. 영감은 없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신기에 가까운 재주라고 했다. 그 재주는 이런 부분까지 통하는 건가.
초능력도 있는 세상인데 안 될 것도 없지.
“요즘엔 잘 안 맞는다니까.”
“그래도 이런 큰 건에서는 아직 틀린 적 없잖아.”
“…….”
박서원은 말을 삼켰다. 그러나 백주하가 재촉하자 결국 입을 열었다.
“아마 없을 거야.”
“그런가.”
“하지만…….”
박서원은 꺼림칙한 얼굴을 했다. 저런 걸 알 수 있는 정도면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축소된 설명이지 않나? 백주하의 말대로 점이나 다름없다. 틀린 적이 없다면 이세빈의 능력 같은 미래 예지거나.
박서원은 나를 한 번 보았다가, 백주연을 보았다.
“필요할 거야.”
“……느낌이 안 좋아?”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일어나긴 하겠지.”
“역시 넌 500년쯤 일찍 태어나야 했어. 그러면 점쟁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텐데.”
“욕하냐?”
쌍둥이가 끼는 대화는 항상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튄다.
“어쨌든 그놈과는 상관없이 와야 했다는 거지?”
“점치지 말라니까.”
“복권 당첨 번호 알려 주는 거 아니면 점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쌍둥이가 끼는 대화는 늘 결론이 이상하다.
뭐, 초능력자가 된 이상 불로소득, 한방의 꿈을 노릴 수밖에 없다. 가끔 비상근무를 마치고 초능력자들이 모여서 복권을 사러 갔던 걸 생각하면…….
이게 아니지.
“어쨌든 이제 백주연도 보호 능력 쓰는 것도 익숙해졌으니 꺼내 볼까.”
박서원은 불개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백주연을 불렀다.
“야, 올라와.”
“어? 합격점이야?”
백주연이 벌떡 일어났다.
“땅 위에서는 잘만 하더니 왜 물만 그 난리야? 눈 뜨고 못 봐 주겠네.”
박서원은 평가했다.
“물에 들어가는 일이 평생 없길 빌어라.”
“응?”
박서원은 고개를 까딱였다. 백주연은 뭔가 찝찝한 얼굴을 한 채 다리 위로 올라왔다.
그런 백주연에게 박서원은 아까 버들에게서 얻은 나뭇가지를 백주연에게 던졌다.
“이건 왜?”
“아까 위치 확인했어.”
백주연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언제?”
“네가 차라리 다이버가 되겠다며 난리 칠 때. 야,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와서 이리 오라니까.”
박서원은 백주하에게 팔을 내밀었다. 백주하가 팔을 잡자 박서원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강물을 향해 던졌다. 당연히 새까만 쪽의 강이다.
나뭇가지는 둥실 떠올랐다. 백주연도 나뭇가지를 허공으로 올렸다.
“잘 따라와.”
“라져.”
박서원이 손을 움직였다. 백주연도 박서원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분명 박서원을 따라 움직이는 것일 텐데 손이 움직이는 건 거의 동시였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나뭇가지가 새까만 강물 아래로 풍덩 잠겼다.
“선배.”
그걸 가만히 보다가, 박서원의 팔을 붙잡고 있는 백주하에게 물었다.
“어?”
“그 꼬리가 강바닥 어디에 있는지 나뭇가지로 알 수 있으면 그냥 능력으로 끌어 올리면 되지 않아요?”
“음.”
“굳이 아래로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백주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백주연, 어딜 봐.”
“아니, 야, 잠깐만, 잠깐, 그러고 보니까……?”
“똑바로 하라니까?”
“야, 그게 아니라, 지금, 야, 너, 설마!”
백주연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물속에 들어갔던 나뭇가지가 다시 위로 튀어 올랐다. 백주연의 손이 떨리는 만큼이나 나뭇가지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마구 움직였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너랑 나랑 둘이서 들어 올리면 되는 문제잖아?!”
백주하는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걸 그렇게 말해 버리면 어떡하냐.”
“백주하! 알고 있었으면 말하라고!”
백주하는 박서원을 잡은 반대쪽 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말하고 자시고, 보통 생각하면 알 수 있잖아?”
“백주하!!”
“얘야 쟤 능력을 잘 모르니까 알아차리는 게 늦을 수도 있지만, 네가 그럼 안 되지 않냐?”
백주연은 말을 잃었다.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백주연은 죽어 가는 소리를 냈다.
“끄으, 윽……. 그, 그럼, 내가 왜 계속 물에 빠져야 했던 건데?!”
백주연의 고함에 따라 나뭇가지가 휙 움직였다. 박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도 말했잖아. 보호 능력에 익숙해지라고.”
“……진짜 그거 때문이야?”
“그럼?”
박서원은 짜증을 냈다.
“너 물에 빠지는 거 구경하려고 그랬겠냐?”
백주연은 확신이 없이 말했다.
“……아냐?”
“아주 아닌 건 아니지만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지.”
“허? 그러니까 그냥 내가 빠지는 거 보고 싶다는 거였지?”
“그것도 열다섯 번쯤 되니까 재미없더라.”
백주하가 사족을 덧붙였다.
박서원은 백주연의 정강이를 툭툭 쳤다.
“능력 연습하고 좋잖아. 어쨌든 빨리하자고. 곧 저녁이 될 것 같으니까.”
박서원의 말에 하늘, 아니 천장을 보았다. 수정은 아직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체감상 꽤 오랫동안 낮이었으니 해님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도 이상하진 않다.
이것도 직감의 종류인가? 사라진 기억이 돌아오면서 나를 수상하게 여겼다지만, 오늘이 감탄할 정도의 감이라면 본능적으로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
역시 계속 기억상실 컨셉을 유지하자.
“아씨, 너, 진짜, 아, 진짜 그렇게 살지 마라…….”
백주연은 이를 악물었다. 박서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백주연의 나뭇가지도 다시 얌전해졌다.
“결과가 좋으면 됐잖아?”
“도대체 이게 무슨 결과냐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폭이 넓어지면 좋지.”
백주연은 실이 뚝 끊긴 인형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웃기 시작했다.
“씨발, 박서원 넌 진짜 개새끼야!!!”
나뭇가지는 자신이 날카로운 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은 물속으로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