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38. 물속의 뱀 꼬리(1)
“긴 아침이 올 때까지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이불을 하나하나 다 확인한 공주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긴 아침이요?”
“이쪽은 많이 불안정해서 시간이 멋대로 흐르거든.”
이미 충분히 멋대로 흐르고 있는데 여기서 더?
잠은 오지 않았지만 편안한 이부자리가 눈앞에 있으니 자연히 눕게 됐다. 인간은 서서 행동하라고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다. 자고로 인간은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
다들 누워서 눈만 끔뻑였다.
“수학여행 온 기분인데.”
백주연이 키득거렸다.
“이 멤버로는 수학여행보단 고아원 때지.”
“아, 그때는 하연이가 우리랑 같이 자겠다고 울고 그랬는데. 지금은 저리 꺼지라고 욕할 만큼 커 버렸어…….”
잘 컸네.
쌍둥이가 그 사실에 정말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쟤넨 풀이 죽어도 얌전해지는 게 아니라 더 골치 아파질 거라는 감이 와서다. 괜히 귀만 아플 바엔 입 다물고 있어야지.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멀리서 괴상한 울음소리가 났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어린 동물이 끙끙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동생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지금도 얼마나 귀여운지 조잘대고 있던 쌍둥이의 입이 다물렸다. 박서원은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위험하게 번뜩이는 눈이 창호지를 바른 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캬아아아악.”
좀 더 가까이서 무언가 찢어질 듯 고함을 쳤다. 마당의 불개들이 무언가를 쫓아 컹컹 짖었다.
“……해님과 달님이 있는 곳은 안 이랬잖아?”
몸을 굳히고 가만히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백주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며 말했다. 백주하를 따라 나도 상체를 일으켰다. 백주연이 얼굴을 쓸었다.
“공주님이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알겠다…….”
“강 하나 건넜다고 이러는 게 말이 돼요?”
“말이 되고 자시고 지금 들리는 건 뭐인 것 같아?”
잠깐 실랑이를 하는 동안 바깥이 밝아졌다. 이번에는 몇 시간도 아니다. 겨우 삼십여 분 만에 밤이 끝났다.
“뭐야? 왜 벌써 아침이야?”
백주하가 어리둥절해하며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아냐.”
그걸 박서원이 가로막았다.
“아직 열지 마.”
“왜?”
“뭔가 감이 안 좋아.”
박서원은 딱딱하게 굳은 채 말했다. 백주하가 손을 멈췄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또 찾아왔다. 잠깐 멈췄던 괴물들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한참 망설이던 박서원은 갑작스럽게 문을 열었다.
“야!”
“울타리 밖으로만 나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괜찮아.”
“아니, 그래도…….”
박서원은 차가운 눈으로 마당을 보았다. 우리에게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던 불개들이 성난 모습으로 마당 밖을 향해 짖어 댔다.
밤이라고는 해도 천장의 수정 때문에 무엇이 돌아다니는지는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거인이 몽둥이를 질질 끌고 걸어가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다니는 커다란 엄니를 가진 거대한 멧돼지가 있었고, 하늘에는 장삼을 펄럭이며 날아나는 인간이 있다.
백주연이 재빨리 문을 닫았다.
이불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당연한 공중도덕을 입에 담았다.
“길가에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버려야죠.”
다들 이견이 없었다. 백주하는 골치 아픈 얼굴로 말했다.
“강 청소하자.”
* * *
짧은 밤이 세 번 지나고, 짧은 아침이 그 사이에 두 번 있었다. 시간이 모두에게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건 아니라지만, 이건 아니다.
공주가 말한 긴 아침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
경험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충분한 설명을 거치면 납득한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 상식적인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다. 두 번째 밤이 왔을 때 졸리다며 자기 시작한 박서원이나 세 번째 밤이 시작될 때 더 듣고 있을 필요가 있냐며 곧바로 누워 잠이 든 쌍둥이와는 다르게.
물론 나도 그때쯤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잘 자긴 했다. 그 공주님 말대로 잠은 소중한 거니까. 별거 없는 이불인데 이상하게 편해서 푹 잤다.
어쨌든 그런 밤이 있었던 관계로, 긴 아침이 찾아오자 우리는 강가로 향했다.
다리를 기준으로 아래는 시꺼먼 물이, 위쪽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박서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리를 보았다.
“저 다리, 어제와 모습이 좀 다른데?”
박서원의 말에 다리를 유심히 보았다. 딱히 달라진 점은 없다.
“좀 더 볼록했던 것 같은데…….”
다들 모르겠다고 하자 박서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음, 그러니까 정해준이…….”
다리에 올라 박서원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던 쌍둥이의 말이 느려졌다. 박서원의 말은 나도 기억하고 있다.
“보호막을 치고…… 강으로, 들어가면…….”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내용인데.
나는 아무리 봐도 오염된 폐수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강물을 보았다. 여길 들어가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걸 후회했다.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은데.
옆에서 쌍둥이가 활짝 웃었다.
“할 수 있다, 정해준!”
“닥쳐 봐요, 좀.”
백주연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길가에 있는 쓰레기는 주워서 버려야 한다며?”
“저건 길이 아니라 강바닥이잖아요.”
이건 큰 차이다.
“강가면 몰라, 원래 이런 건 개인이 아니라 업체 불러서 정리한다고요.”
“그 업체에 초능력자도 속하는 건 알고 하는 소리지?”
“초능력자도 능력 나름이죠. 난 그 작업에 크게 쓸모없지만 박서원 씨나…….”
나는 쌍둥이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박서원 씨 능력을 쓸 수 있는 선배들은 불려 나가겠지만요.”
말하다가 깨달았는데, 굳이 내가 아니어도 내 능력만 있으면 되는 문제잖아? 아니, 내가 필요하긴 한 건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쌍둥이들은 어떻게든 나에게 물을 먹이고자 했다. 배알이 꼴렸다.
“제가 팔을 제공할 테니까 선배가 들어가는 건 어때요?”
백주연은 정말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버드나무 사이에서 열연했던 수준 높은 발연기를 선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이럴 때만 잘한다.
“대신 해 줄 수 있다면 대신 해 주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서로가 보여야만 능력을 쓸 수 있어서…….”
“저 강물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거든?”
“그러니 역시 네가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쌍둥이를 죽이고 나가면 자연스럽게 증거인멸이 되지 않을까? 고생만 시키는 철없는 오빠들이 없으면 백하연의 인생도 좀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왜, 들어가기 싫어요?”
강물에 의미 없이 돌을 던지며 우리의 대화를 흘려 넘기고 있던 박서원이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검은 강물을 가리키며 오히려 박서원에게 물었다.
“박서원 씨는 이곳에 들어가고 싶어요?”
“뭐……. 필요하다면 들어가야죠.”
“필요하지 않으면요? 그래도요?”
박서원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진짜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뇨…….”
박서원은 바닥을 툭툭 차며 말했다.
“정해준 씨 능력이라면 괜찮다니까요? 요괴 잡는 것보단 이쪽이 더 낫지 않아요? 이왕 하는 김에 능력 연습도 좀 하고.”
다시 강물을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좀. 제 능력이 물속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연습 좀 하라고요.”
박서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정해준 씨, 불도 막고 비도 막고 다 했잖아요?"
“…….”
“안 그래요?”
예상치 못한 논리적인 반박에 대답할 말이 궁했다.
“아니, 그래도, 역시 강물은 좀…….”
“다른 건 잘 막는데 왜 강물에는 안 통해요?”
“약간 기분상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내가 들어도 변명거리가 안 된다. 이 상황에서 기분을 따져서 뭐 하나. 그렇지만 저 강물은 기분을 좀 따질 만하게 생겼다.
예상대로 박서원은 어이없어했다.
“아니, 이 상황에서 기분을 따져야 해요?”
“박서원 씨 같으면 저런 곳에 들어가고 싶어요?”
“정해준 씨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니까?”
그것도 그렇지……. 점점 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이렇게 해 봤자 결국 들어가야 하는 내 운명을 알지만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치고 싶었다.
그리고 뒤에서 얄밉게 웃고 있는 쌍둥이에게 질 수 없었다.
나는 호탕하게 외쳤다.
“그럼 그냥 다 같이 들어가죠!”
필요하니까 들어간다고 했던 박서원이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러죠.”
물론 쌍둥이는 반대했다.
“아니, 너네 둘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아? 우리가 왜 필요해?”
“혹시 모르니까 대비해서?”
“과잉 전력이야!”
“일심동체라잖아요.”
“도대체 뭐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이게 그런 문제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너 기억상실이 아니라 그냥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나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말이 심한데요, 선배.”
“그러게요, 너희 말이 심하네.”
“너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쌍둥이가 왁왁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백조 때와 다를 게 없다. 시끄러운 건 어느 쪽 모습이든 똑같다. 그렇다면 오히려 백조일 때가 낫지 않나?
백조일 때는 차라리 귀여워 보이기라도 했지.
다리 한가운데서 한참 그렇게 시끄럽게 굴고 있으니, 어느새 완두콩 공주가 곁에 다가와 있었다. 어깨 위에 작매가 앉아 있다.
공주는 다리에 걸터앉아 발을 흔들었다.
“들어가려구?”
웃음을 참는 목소리였다.
“내가 말했지? 결국 언니 부탁을 들어주게 될 거라고.”
직접 겪어 보는 게 이해가 빠르긴 하다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미리 좀 말해 줬으면 했다고 항의하려다 말았다. 밤 동안 머무를 장소를 제공해 준 건 사실이었다.
공주가 관전하는 동안 결국 다 같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이 났다. 쌍둥이는 죽어가는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버들님이 그 괴물들을 막을 수 있는 부적을 주신다고요?”
“음…… 부적이라고 해야 하나.”
공주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간이 집 같은 거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집이요?”
“지붕도 있어야 하니까…….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너희가 그걸 꺼낸 다음 직접 보는 게 더 나을걸?”
여전히 환하게 반짝이는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공주는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꺼낼 수 있어? 어떻게 꺼낼 거야? 응?”
호기심 많은 강아지처럼 두 눈이 반짝였다.
생기가 넘치는 공주와 달리 쌍둥이와 나는 반쯤 죽은 눈으로 박서원을 보았다. 박서원은 몸을 돌려 맑은 쪽 강을 보았다.
“먼저 연습부터 하죠.”
* * *
이러나저러나 박서원은 경험이 많다. 박서원은 쉴 틈도 없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요괴들을 잡았다. 구민석의 입김도 있었고, 본인의 강력한 의지도 있어서였다. 다 그 산함박을 잡기 위해 전투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요괴를 잡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박서원의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보통은 무력으로 때려잡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박서원은 의외로 상세하게 방법을 설명했다.
“아까 재 봤는데, 강이 그렇게 깊진 않더라고요.”
무의미하게 돌을 던져 댄 건 아니었군. 박서원은 짜증 날 정도로 여유롭게 말했다.
“회장님을 만나기 전엔 후원사가 시공사였거든요. 공사장 경험이 많아서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진 알아요.”
“아니, 그래도 역시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
“자기 능력을 자기가 못 믿으면 안 되죠, 정해준 씨.”
박서원은 턱 끝으로 쌍둥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멍청이들도 있으니 어렵진 않을 거예요.”
지명당한 멍청이들이 항의했다.
“야, 우리도 정중하게 백주연 씨, 백주하 씨라고 불러 줘. 차별하냐?”
“백주연 씨, 우리 잘합시다?”
백주연은 심각한 얼굴로 박서원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했다.
“내가 쟬 15년 동안 봤는데, 쟤 지금 존나 빡친 것 같애.”
“박서원한테 대접받고 싶더냐?”
“음……. 사실 대접보다는 쟤 상사가 되고 싶었어.”
중학교 때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15년 동안 품어 온 꿈이다. 라고 백주연은 몽롱한 얼굴로 중학교 시절의 꿈에 대해서 설명했다.
“쟨 그때도 재수 없었거든…….”
“원래 꿈은 크게 꾸라고 했었지.”
“봐……. 저런 재수 없는 말을 중학교 때부터 했다니까? 초능력자가 겸업 금지만 아니었어도 난 회장님한테 딸랑거려서 어떻게든 쟤보다 높은 직급 달았을 거야.”
박서원을 15년 동안 봤다면서도 백주연은 학습능력이 없었다. 쌍둥이 형제마저 백주연을 버렸다. 백주하는 슬금슬금 백주연에게서 멀어졌다.
돌멩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돌멩이가 없더라도 박서원은 무기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딱!
“악!”
오늘도 평화롭게 백주연의 뇌세포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