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32. 복수에 눈이 먼(5)
며칠 동안 TV에서는 괴조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괴조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부의 대응이 어땠는지, 초능력자의 희생이 어쩌고저쩌고.
희생이라고 하니 꼭 누가 죽은 것 같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초능력자와 일반인을 모두 포함해서.
이것 때문에 기적이니 어쩌니 떠드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부상자와 재산 피해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으니 감동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그를 막아서는 초능력자들이라니. 저쪽이었으면 영화 내용이다.
물론 이쪽에서는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끌고 오곤 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도 비슷했지 않습니까.”
휴대폰으로 보던 뉴스를 껐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고 온갖 프로그램에서 이야기가 끌려 나온다.
“괴조에 대한 분석이 나왔습니다.”
임상규는 괴조잡이에 나섰던 초능력자를 불러 모은 채 설명했다. 병원에서 제공해 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초능력자들은 죄다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수술이 필요할 만큼 크게 다친 사람은 없지만 다들 크고 작게 상처를 입어서 때아닌 초능력자 모임이 병원에서 개최되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임상규는 프레젠테이션을 넘겼다. 고문서를 찍은 사진이 나왔다. 긴 부리와 긴 꽁지깃을 가진 새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요괴라고 생각하면 이놈이 가장 유력합니다.”
“꼬리 닷 발…… 제대로 된 이름은 없습니까?”
“꼬리와 부리가 길다고 붙은 이름인 것 같고, 조마구라고 불린 기록도 있습니다. 최소 삼백 년간 목격된 바가 없는 놈이기도 하고요.”
이다혜는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그런 놈이 갑자기 왜 나타났어요?”
임상규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거야 모르죠.”
“와, 공무원이 그렇게 말해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요.”
오히려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뭐라 말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요괴대책팀이라고 해도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대응을 정하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긴 했다. 그걸 확인 사살당하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어쨌든 큰 부상자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인 일입니다. 여태 새 종류는 나타난 적이 없어서 공중전 대응이 미흡했는데 앞으로는 이쪽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건 뭐…… 능력에 달린 일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대응을 안 할 수는 없잖습니까.”
이다혜는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규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결국, 그 대응책은 초능력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이다혜의 말도.
병원 회의실에 모인 초능력자는 모두 괴조의 앞을 가로막았던 사람들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처음 날개에 상처를 냈던 초능력자들은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놈에게 상처를 냈나 했었는데 비행 능력자가 있었다. 제일 심하게 다친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건 능력 아니에요?”
“궁합이 좋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다혜 씨와 이세빈 씨가 같이 다니는 것처럼요.”
“그게 말이 쉽지……. 비행 능력자부터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꼭 비행 능력이 아니더라도 능력의 합이 좋다면 공중전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쪽으로 생각해 보는 건? 이번만 해도 박서원 씨가…….”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는 박서원을 향했다. 유일하게 그 흐름에 끼지 않은 사람이다.
박서원은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박서원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듯 한숨을 쉬지만, 처음 보는 이들은 어쩐지 선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뭐만 하면 괴물이 튀어나오는 탓에 살기 퍽퍽해서인지 여기 사람들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이상하게 군다.
하긴, 뉴스에서는 ‘초능력자 박서원의 활약’으로 괴조를 잡았다고 나오고 있었으니 이해하려면 아주 못 할 건 아니긴 하지만.
박서원에게 시선이 쏠리느라 잠깐 조용해졌던 초능력자들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조가 우리나라산 괴물인지 외국 괴물인지는 아무래도 좋았고, 나는 이곳에서의 내 삶에 대해 조금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똘이와의 추억앨범 만들기 프로젝트가…….”
“…….”
회의감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건 아니다.
원래 세계에 있었을 때는 스물여덟 평생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픈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일주일 만에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했다. 솔직히 병원에 있는 것보단 그냥 집에 가는 편이 심신의 안정에 더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하다못해 백성찬이 불개 사진을 보여 주는 횟수를 조금만 더 줄여도 이 회의감의 반절은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백성찬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손에 쥔 채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도움이 안 된다. 백성찬이 도움이 됐던 적은 연수원에 있었을 때뿐이다. 사실 그때도 썩 도움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똘이는 지금 누가 돌봐 주고 있어요?”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던 한평원이 물었다. 솔직히 부상이 제일 없을 이들을 꼽는다면 이 둘이겠지만 두 사람도 착실하게 환자복을 입고 입원하고 있다.
한평원은 한평화에게 연락이 가지 않았나 모르겠다. 동생이 다쳤다고 하면 분명 서천꽃을 한가득 보내 줄 텐데.
“잠깐 친구한테 부탁했어. 우리 똘이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언제 간다고 했죠?”
“올해 월식이 17일이라서……. 그때?”
“월식이면 똘이 집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원래 불개는 일식과 월식에만 나타나는 애들이잖아. 똘이는 길을 잃은 거로 보이니까 그쯤이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고?”
“전문가 선생님들이 말하더라고.”
백성찬은 울적하게 말했다.
“똘이 가면 형 이제 외로워서 어떡해요.”
한평원이 백성찬을 위로해 주었다.
“이번 기회에 개를 키워 보는 건 어때요?”
나도 한마디 보탰다.
“내 인생에 개는 똘이뿐이야!”
헛소리할 기운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괜찮아 보였다.
어쨌든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평화로웠다. 아프지 않은데 병원에 입원한 이상 할 수 있는 건 먹고 자는 것뿐이니까. 목포에서 입원했을 때도 비슷했었다.
뭐, 물론 그때처럼 일 얘기도 했다.
“지하국에서 온 놈이에요.”
박서원은 말린 꽃잎을 무슨 과자 먹는 것처럼 씹어 먹으며 말했다. 새빨간 꽃잎이 아무리 봐도 피살이꽃이었다.
작매가 새벽에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피살이꽃을 먹고 있는 박서원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작매 씨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
박서원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그럼 미안하다고는 했는지?”
“…….”
“그런 건 확실하게 인사해야죠.”
“정해준 씨, 못 보던 사이에 성격이 이상해졌네요.”
박서원이 말하는 못 보던 사이가 ‘정해준’과의 마지막 만남 이후를 말하는 것인지, 지난번 모임 이후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이건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죠.”
박서원은 말없이 피살이꽃만 주워 먹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피살이꽃을 먹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부상이 완전히 나은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만큼 처음 입었던 부상이 심각했던 건가?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이 자식은?
톡. 톡.
박서원은 창문을 흘깃 보았다. 까치 한 마리가 며칠 전 우리 집 창문을 두들겼던 것처럼 병실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박서원은 능력을 사용해서 창문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모컨을 가져오거나 불 끌 때 유용해 보이는 능력이다.
“자업자득이지!”
병실 안으로 들어온 작매는 곧바로 사람 모습으로 둔갑하더니 꽥 외쳤다. 1인실이라 다행이다.
영물과 접촉하는 건 불법이 아니지만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목적이 너무 불건전한 모임이다. 더군다나 박서원이 곧바로 괴조에 대해서 지하국에서 온 놈이라 단언하는 걸 보면 이쪽과 무관한 것도 아닌 모양이고.
그러고 보니 여우 이야기도 한번 해야 한다. 작매가 말했던, 산함박에게 아내를 잃은 여우가 구민석인가? 그럼 언제부터 인간행세를 하고 있던 거지? 역시 여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니까.
“작매 씨, 병원에서는 조용히 하세요.”
“허, 최소한 너는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박서원은 멀끔한 얼굴로 작매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작매는 기가 막혀 코웃음 쳤다.
“아직 입구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으니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억지로 가더니, 기어이 크게 다쳐 놓고서는 무슨 소리냐고?”
박서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잖아요?”
박서원은 뻔뻔하게 말했다. 작매는 그런 박서원을 한 대 치고 싶어 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저 미친 새도 쫓아왔잖냐!”
“네?”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어? 뭐가 뭘 쫓아와?
“아니, 작매 씨. 그렇게 얘기하면 정해준 씨가 오해하잖아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박서원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흥, 그것도 자업자득이지.”
박서원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저 주둥아리를 한 대 치고 싶었다.
“입구가 다 열리지 않아서 깊게 들어가진 못했고요. 입구 근처에서 그놈 새끼들과 마주쳤거든요. 독립 준비를 하더라고요?”
“그 새가 아니었으면 기어서라도 들어갔을 놈이.”
작매가 구시렁거렸다. 박서원은 못 들은 척했다.
“그대로 입구가 열려서 그놈들이 나왔으면 한두 명 죽는 거로 안 끝났겠죠.”
박서원은 작매를 돌아보며 물었다.
“작매 씨, 새끼까지 몇 마리였죠?”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일부러 작매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 묻는 말이었다.
“……여섯 마리.”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여섯 마리가 전부 튀어나오면 다 잡을 재주는 없거든요. 그러니 굴에서 잡는 게 최선이었어요.”
“어미만 놓쳤잖아.”
작매는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도망친 새끼가 복수를 꿈꾸는 것보다는 눈 돌아간 어미가 쫓아오는 쪽이 더 상대하기 편하다고 생각 안 해요? 숨어 버리면 그게 더 난리라고요.”
“그래서 죽을 뻔하고?”
“안 죽었잖아요.”
이래서 악당과는 깊이 엮이면 안 되는데…….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내용까진 그렇지 않았다. 뭔가 범법 행위에 깊게 연관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그러시든지요.”
박서원은 별 상관없는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작매는 주먹을 꽉 쥐더니 박서원의 다리를 퍽 내리쳤다. 어린애 주먹이 얼마나 아프다고 박서원은 몸을 움찔거리며 중얼거렸다.
“……폭력 반대.”
“네놈이 할 소리냐!”
“그러니까 그게 최선이었다니까요. 작매 씨도 인정하잖아? 그런데 왜 화를 내요?”
“이, 이, 배은망덕한 놈!”
작매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다가 열린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까아아악!!!!!”
신경질적으로 우는 까치 한 마리가 훨훨 날아가는 걸 보며 박서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아요. 자꾸 이야기하는 도중에 날아가 버린다니까.”
나는 한심함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작매 씨가 박서원 씨보다 10배는 더 산 거 알죠?”
“그럼 뭐 해요. 저렇게 어린데.”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심스러움을 담아 박서원을 보았다.
“그런 말 할 거면 인간의 도리를 지키라니까요.”
“…….”
“새벽에 작매 씨가 울면서 찾아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압니까?”
“음.”
“어린애 울렸으면 반성해야죠.”
“작매 씨가 정해준 씨보다 10배는 더 살았을 텐데요.”
“그럼 할머니한테 잘하세요.”
“…….”
박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전화해서……. 아. 걔 휴대폰 망가졌는데.”
박서원은 볼을 긁적였다.
“다시 올 테니까 그때 사과할게요. 그럼 됐어요?”
“저한테 물을 게 아니라 작매 씨한테 물어봐야죠.”
“깐깐하기는.”
나는 침대 옆에 있는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박서원은 불만 어린 얼굴로 꽃잎을 먹었다. 나는 잠깐 그 모습에서 ‘정해준’이 기억하고 있는 19살의 박서원을 떠올렸다가, 지웠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박서원과 관계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놈이 박서원 씨를 따라왔다는 건, 그래요. 죽은 사람 없이 해결됐으니 그렇다 칩시다. 잘했다는 건 아니고요.”
나는 팔짱을 낀 채 박서원을 보았다.
“지하국은 왜 간 겁니까? 언제는 위험하니까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면서요?”
“음…….”
박서원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박서원은 마지막 남은 꽃잎을 먹은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새끼 뱀을 만나러 간 건 작매 씨에게 들었죠?”
“네.”
“그 새끼 뱀이 그러는 거예요.”
눈이 번뜩였다. 차분한 눈빛은 개소리였다. 그건 그냥 360° 돌아서 일견 괜찮아 보였던 거다. 구부러진 철을 그대로 편다고 해서 곧바로 일자(一)로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박서원은 확실히 돌아 있었다.
“2년 전 이야기긴 하지만, 가장 최신 정보예요.”
박서원은 서늘하게 웃었다.
“그 빌어먹을 뱀이, 지하국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
“어때요. 당장이라도 가 보고 싶어지지 않아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할지, 아니면 ‘정해준’이 했을 법한 대답을 할지 고민했다.
박서원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창밖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박서원은 크게 상관없었는지 나를 보며 웃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죽지 않고 좋잖아요. 지하국으로 꼭 가야 할 이유도 생기고.”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주제에,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가 가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