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111화 (111/202)

# 111

32. 복수에 눈이 먼(2)

할 일 없는 휴일, 심란한 마음을 애써 지우며 휴대폰을 만지다가 무심코 본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서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첫째, 동명이인인가?

그렇지만 검색어 1위가 아는 사람이 키우는 애완동물 이름이면 동명이인이라는 생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둘째, 사고 쳤나?

능력을 생각하면 못 칠 것도 아니지. 딱히 비가 왔던 것도 아니고 매년 겨울 화재주의 문자를 받는다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같이 검색어에 오른 게 애완동물 이름이다 보니, 사고를 친 것 같진 않았다. 왠지 누르기 싫어지는 마음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

확인하고 사고 친 거면 연을 끊자.

“해준아!”

“…….”

하필 이 타이밍에 전화가 올 게 뭐냐. 안 받을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만 손이 미끄러져서 받아 버렸다.

“해준아! 정해준? 여보세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형. 무슨 일이세요?”

“나 검색어에 올랐다?”

백성찬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검색어 확인할 필요 없이 본인한테 물으면 되겠지, 뭐.

“사고 쳤어요?”

“너 날 그렇게 보고 있어……?”

“그냥, 뭐…….”

“와, 너무하네, 진짜.”

“아무래도 사고 친 적이 있다 보니.”

“사고 친 적 없거든?”

백성찬은 까칠하게 말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며 물었다.

“그래서 왜요?”

백성찬은 냉큼 말을 받았다.

“너 오늘 일 없지?”

“그건…… 하늘과 임 팀장님만 아는 일이죠…….”

“없구나. 그럼 잠깐 나랑 뭐 좀 하지 않을래?”

“안 사요.”

“그런 거 아니고.”

“보증도 안 서요.”

“야, 나도 너만큼은 아니어도 후원 괜찮게 받거든?”

나는 귀찮음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뭔데요?”

“나와 똘이의 추억앨범 만드는 데 안 도와줄래?”

역시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다. 별 개소리가 다 들리는 거 보면.

“야, 정해준? 전화 끊긴 거 아니지? 야! 해준아!”

“뭔가…… 안 들리네요. 배터리가 없나? 허, 이상하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딱 2초 지나자, 다시 백성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너 그러는 거 진짜 아니다!”

“제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전화를 끊는 병이 있거든요.”

“나와 똘이의 추억앨범이 어때서?”

“검색어에 같이 올라가 있잖아요. 얼마나 미친 짓을 한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나라가 sns에 올려 보래서 올려 본 거야. 거기에 올리면 사람들이 우리 똘이 많이 봐 준다잖아.”

“불개 맡기 싫어하던 건 기억하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할 일 없잖아. 나와!”

할 일이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지적당하니 굉장히 기분 나빴다.

그리고 반박할 여지도 없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핑곗거리를 대고 싶은데 댈 게 없다. 젠장. 각박한 세상 같으니라고.

* * *

“어, 왔냐?”

백성찬이 말한 장소로 가자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이었다.

장애물이 없는 한강 근처의 너른 공원에,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는 촬영 장비와 스탭들. 거기다가…….

“안녕하세요, 해준 씨.”

한평원까지.

손요운이나 도와야지 왜 여기서 불개 간식을 챙겨 주고 있냐. 나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한평원에게 인사했다.

“평원 씨는 어쩌다가 여기 왔어요? 인생 창창하잖아요. 이런데 낭비하지 마세요.”

“정해준, 나 듣고 있다?”

한평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순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원래 성찬 형 파트너 비스무리한 건 저다 보니까요……. 추억앨범 만드는 거 몇 번 도와줬었는데 이게 그, 점점…… 스케일이 커지더라고요.”

“한평원, 나 듣고 있다니까?”

처음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는 수준이었던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모양이 됐다고 한평원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설명했다. 후원사까지 나서서 장비를 제공했다나.

“이게 그럴 정도의 일입니까?”

“우리 똘이가 어때서 그러냐.”

“보기 힘든 불개다 보니까 관심이 많이 쏠려서요.”

한평원이 불개를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개는 얌전히 앉아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무슨 동물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니까요?”

“다들 강아지는 좋아하죠…….”

“나는 별로라고 들린다?”

백성찬이 자꾸 뭐라 뭐라 끼어들었지만 싹 무시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개의 근황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나도 마찬가지다.

후원사까지 붙었다면 저런 전문적인 촬영 장비도 이해가 됐다. 불개는 보기 힘들고, 불개가 사람을 따르는 건 더 보기 힘드니 콘텐츠가 될 만도 하다. 더군다나 주인이 저렇게 팔불출이지 않은가.

껄껄 웃다가 갑자기 불개를 껴안고 흐느끼는 백성찬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개 한 마리 키운다고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뀔 수 있구나. 나도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저건 좀…… 심하잖아.

나는 옆에 있는 한평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하는 건데요?”

한평원은 불길하게 백성찬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거 역시 괜히 나온 거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집에 가자.

“저 가겠습니다.”

“해준 씨! 저 두고 가지 마세요!! 저 여기 혼자 있기 싫어요!”

“평원아, 너까지 이러기야? 나 상처 받는다?”

“한평원 씨, 이런 성격 아니었잖아요.”

“저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요! 해준 씨, 우리 누나가 서천꽃 줬다면서요. 누나 얼굴 한 번만 봐서요, 네?”

“아니, 그건 제가 평화 씨한테 청룡 인형을 줘서 받은 건데요…….”

“나 상처 받는다니까?”

물론 한평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불개와의 이별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백성찬의 텐션은 딱 봐도 이상했다.

뿌리치지 못할 건 없지만 이후 백성찬의 징징거림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조금 골치가 아팠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조금 껄끄럽게 헤어졌다고 생각한 건 나뿐이었는지 한평원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희멀건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작년에 수능을 쳤던 사촌 동생 하나가 생각났다. 딱 저런 눈을 하고 내 지갑을 털어갔는데.

겨우 청룡 인형 하나를 준 보답이라기에는 서천꽃이 너무 귀한 것이기도 했고. 나는 쓸 일이 없지만 최소한 박서원은 그 꽃 덕분에 목숨을 구했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그럼 성찬 형이 불개와 뭐 하는지 들어 보고 결정할게요. 됐죠?”

“네!”

한평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집안 너무 줏대 없이 흔들리는 거 아니냐.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아니, 집안 문제가 아니라 쟤 문제인가?

나는 한평원을 쓱 훑었다.

결론은 금방 났다.

한평화가 걱정할 만하네.

정작 한평화도 남 말할 건 아니긴 하지만.

* * *

불개 똘이는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검은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가 백성찬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움직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기획이 뭐라더라? 우리 똘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일반적인 개는 아니라고 해도 불개는 영물에 속하지는 않는다. 영리하다고 해도 똑똑한 사냥개 수준이다.

그런 개가 하고 싶은 거라고 해 봤자 뭐가 있겠는가?

저 불개가 산불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헥, 헥헥!”

백성찬의 손 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다. 백성찬은 불개를 쓰다듬으며 손을 내밀었다. 불개는 혀를 쭉 내밀며 헥헥 거리다가 냉큼 불을 입에 물었다.

옆에서 나름 게스트라고 나온 사람들이 손뼉을 짝짝 치며 환호했다. 연예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드라마 속 세상의 연예인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불을 삼켜도 괜찮은 건가요?”

“그럼 괜히 불개라고 불리겠어요?”

“겉보기에는 삽사리 같은데…….”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약간 교육방송 같기도 하고.

“불개 서식지 같은 건 아직 밝혀진 바가 없죠. 이렇게 인간과 같이 지내는 것도 처음입니다.”

“성찬 씨가 산불현장에서 불개를 구조하셨다고 했죠?”

몇 달 사이에 불개 전문가가 된 백성찬은 연예인들의 질문에 선뜻 대답했다. 손으로는 열심히 불개에게 불을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한평원은 그 모습을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러니까, 우린 그거다. 불개에 불을 먹이려는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소방차 같은 거.

진짜 내가 할 일 없는 휴일이라서 여기 있어 준다.

“저는 형이랑 같은 후원사라서 이렇게 같이 불려 다니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익숙해요.”

한평화가 왜 두 살 차이 나는 동생을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동생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다니까.

“사실 저만 있어도 별로 상관없는데 저 심심할 것 같다고 해준 씨까지 부르더라고요.”

한평원은 어쩌다가 백성찬이 날 부르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왠지 그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할 일이 없으니 나와 줬다. 집에 혼자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겸사겸사.

“저야 얼굴만 안 나오면 괜찮아서요. 이럴 때 아니면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보겠어요.”

“그렇죠?”

한평원과 나는 직전의 만남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웃었다. 그 친구 일은 잘 되고 있나 모르겠네. 딱히 들려오는 이야기는 없던데.

주인공 패거리의 행적을 대충이라도 짐작하려면 묻는 게 낫겠지. 잠깐 주위를 살펴서 아무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한평원에게 물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네?”

“그 손요운 씨 친구 일이요.”

“어…….”

한평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날 헤어질 때만 해도 꽤 희망찬 모습이었는데.

“그게 좀, 일이 있어서요.”

“일이요?”

구했다는 변호사가 배신이라도 했나.

“요운 형 친구가 지금 의식불명이라…….”

그러나 이어진 말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역시 정해영이 보던 그 드라마 장르는 평범한 초능력자물이 아니라니까. 등장인물이 죄 죽었다 했을 때 알았어야 했다. 정해영이 보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한평원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평원의 어깨만 두드려줬다.

“괜찮을 겁니다.”

“그러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다른 개입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주인공에게는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타이밍이 너무 좀……. 솔직히 너무 억지라서 그렇게 생각은 안 하려고 했는데,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도 늦었고 면회까지 못 하게 했다니까요?”

한평원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저희야 친인척도 아니니 그렇다지만 가족들이 보지도 못하게 하는 거는 좀 아니지 않아요? 요운 형이나 정윤 누나도 수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고.”

“그거 경찰의 감인가요?”

“그럴지도요.”

딱 봐도 수상한 일이긴 한데, 내가 말을 보탤 정도는 아니었다. 멀쩡히 잘 걸어 다니던 사람을 의식불명으로 만들 수 있나?

이쪽 세계는 초능력과 영물이 있는 곳이니 영적인 방법으로는 있을 수도 있다. 하다 하다 대기업 총수를 여우가 하고 있다지 않는가.

“다 괜찮을 거예요.”

한평원은 쓰게 웃었다.

“그럼 좋겠…… 어?”

한평원은 말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냈다.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평원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동안, 나도 내 휴대폰을 꺼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촬영을 하고 있던 스탭들의 휴대폰들도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시에 울리는 휴대폰 알림음의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재난문자.

[소방재난본부청] 서울 상공에서 불명의 거대 새 목격. 현재 초능력자 다수 추격 중.

[소방재난본부청] 거대 새, 추격 중. 건물 안으로 신속 대피.

[재난안전대책본부] 서울시 내의 초능력자 대기, 이동 준비.

문자가 끊이질 않는다. 휴대폰이 손안에서 미친 듯이 떨렸다. 문자 내용을 눈으로 쫓다가 고개를 들어 한평원을 보았다.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한평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백성찬을 돌아보았다. 백성찬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형! 이거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난리 나는 거 처음 봤는데. 뉴스 뜬 거 없어?”

백성찬의 말에 급히 인터넷 창을 켜서 확인했다. [속보] 타이틀을 단 기사들은 많았지만 내용은 없다. 전부 재난문자에 있는 내용들이다.

[재난안전대책본부] 초능력자 손요운, 김재현, 이세빈, 이다혜, 허재환 전투 중. 미확인 초능력자 다수 있음.

[재난안전대책본부] 요괴 위험 등급 최상. 7등급 이상의 초능력자 영등포구로 이동.

“영등포구? 여기 아냐? 뭐야, 자세한 위치는?”

백성찬이 놀라서 외쳤다. 한평원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다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촬영 스탭들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다들 대피하세요!”

“아, 네!”

“빨리 건물 안으로…….”

한평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그늘이 졌기 때문이다.

딱히 구름이 껴 있던 날씨도 아니고, 구름이라고 하기에는 그림자가 너무 짙었다. 해를 가릴 만한 것이 공원에 없었기 때문에 그림자가 질 일도 없었다.

무엇이 해를 가리고 있는지 확인하기 전 감이 왔다. 역시 할 일이 없다고 밖에 나와선 안 됐었는데. 집 밖은 위험하다. 더구나 이런 세계라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키이이익!!!!”

해를 가리고 있는 것은 새였다.

아주, 거대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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