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110화 (110/202)

# 110

32. 복수에 눈이 먼(1)

“집에 갑시다.”

콘코바르의 머리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만약을 대비해서 비행기와 기차는 탈 수 없었다. 저승사자를 데리고 그런 걸 타는 게 아니라나 뭐라나.

……자동차는 괜찮은 거고?

아래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주하랑은 어디서 납작한 바구니를 가져와 거기에 콘코바르를 담았다.

“하랑 씨, 그거 떨어지지 않게 고정 잘 해 놔요.”

지적하는 게 그거야?

“네!”

주하랑은 콘코바르의 머리가 담긴 바구니를 김도훈에게 넘겨주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조금 뒤 다시 돌아온 주하랑의 손에는 붕대가 있었다. 저걸로 뭘 하려나 싶었는데 주하랑은 붕대가 마치 리본이라도 되는 것마냥 바구니와 콘코바르를 둘둘 말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리본까지 묶은 뒤에야 주하랑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러면 안 떨어지지 않을까?”

“안 떨어지기야 하겠죠…….”

김도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과일바구니 같은 몰골이 되어 있는 콘코바르는 그래도 좋은지 껄껄 웃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기에 힘을 봉인당했다고 저렇게 되는 거지?

아니, 사실 여기서 제일 제정신이 아닌 건 괴물 머리와 붕대로 과일바구니를 만드는 주하랑이다. 주하랑이 아니라면 저런 사람을 고용하는 특별수사과고.

“그럼 출발할까요.”

이산래는 관광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이 관광버스지, 정부기관 마크가 붙어 있다. 가끔 잊고 있긴 하지만 특별수사과는 경찰청 소속이기는 했다.

“전 그냥 따로 가도 되는데요.”

이건 그냥 따로 가고 싶어서 말해 봤다. 솔직히 버스보다 기차 타고 가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은가. 콘코바르 머리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면 저런 관광버스는 괜찮은 건가? 역시 특별수사과의 기준은 이해할 수 없다.

“따로 가면 돈 들잖아요. 같이 가시죠!”

김도훈이 넉살 좋게 웃으며 내 등을 밀었다. 돈은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차마 웃는 얼굴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머리만 부여잡다가 버스에 올랐다. 하긴 새끼 용이 있는데 무슨 일 일어나진 않겠지.

* * *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라는 말은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저 말이 시발점이 되어서 사건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해영이 보던 드라마는 그렇게까지 싸구려는 아니었는지, 혹은 이 세계의 법칙이 그런 싸구려 법칙에 휘말릴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는지 다행스럽게도 나는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운 것 같진 않은데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체감상 2주는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임상규도 양심이 있으면 목포에서 입원까지 한 나를 부르진 않겠지 싶어서 휴대폰도 무음으로 바꾸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병원에서 푹 쉬었던 게 무색하게도 심신이 고달팠다. 이대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집이였으면 좋겠다. 여기 말고.

“…….”

툭.

툭. 툭툭.

“…….”

창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잘못 들은 소리인 줄 알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슬며시 눈만 떴다. 툭, 하는 소리에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지금은 옆에 전문가도 없는데.

툭툭. 투툭툭. 툭.

소리가 거세졌다. 누가 창문을 치고 있었다.

참고로 여긴 7층이다.

툭…….

갔나?

“까아악.”

창문을 두드리는 대신 소리를 질렀다. 사람 비명 소리는 아니었다. 비상근무에서 보곤 했던 요괴들이 지르는 소리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새?

벌떡 일어났다.

거리의 가로등에 비쳐 창밖에서 파닥거리는 새의 모습이 가까스로 보였다. 새까만 등과 하얀 배.

까치다.

“작매 씨?”

“까악.”

까치가 창문에 매달려 날개를 퍼덕거렸다. 황급히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까치는 거의 구르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쿵!

“작매 씨? 괜찮아요?”

바닥에 넘어진 여자아이를 불렀다.

“아그그…….”

“일단 불 좀 켤게요.”

방이 환해지자 작매의 모습이 잘 모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복을 입고 있었다.

“작매 씨?”

흙바닥을 잔뜩 굴렀는지 흙먼지가 묻어 있고 찢어진 자국까지 있다. 바닥을 짚은 손에는 상처가 있다.

“작매 씨? 다쳤어요?”

“핫, 해준 씨!!”

바닥에 엎어져 있던 작매는 벌떡 일어났다. 부딪친 코가 벌겋다. 정신을 차린 작매는 허둥거리며 나를 불렀다.

“비번!”

“네?”

“비번 아세요?!”

다급하다 못해 절박한 얼굴이었다.

“어느 비번이요?”

“여우! 여우네 집이요!”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왜 나한테서 여우네 집 비번을 찾아?

“집 비밀번호를 알 정도로 친한 여우는 없는데요…….”

“네? 아니, 그 여우 있잖아요!”

작매는 다급하게 말했다.

“박서원, 그놈이 지금 거기서 살고 있잖아요!”

나는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엔 구민석 집에서 지내고 있더니 그새 또 집을 옮겼나. 이젠 아주 사람 사는 집에서 지내지도 않는구먼.

“어? 진짜 몰라요? 저번에 여우네 집에서 만나서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어쩌지…….”

작매는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백씨네에 가야 하나? 그 몰골로 알 것 같진 않은데. 여우는 왜 이런 시기에 다른 나라에 갔대.”

잠이 덜 깨서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작매는 고개를 바싹 치켜떴다.

“그럼 여우 전화번호는 알지요!”

“작매 씨, 혹시나 해서 말인데, 여우가, 그…….”

“인간 세상에서 장사꾼 노릇이나 하고 있는 그놈이요!”

설마 아니겠지, 하는 건 대개 들어맞는다.

나는 서글픈 기분으로 물었다.

“구민석 부회장님이요?”

작매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네!”

작매는 내 마음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는요? 알지요? 그럼 여우한테 전화 좀 걸어 주세요! 저는 휴대폰이 부서져서!”

이산래는 특별수사과에서 일하니 그 전에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도 상관없는 배경이다. 하지만 구민석은? 단청은 한국의 여타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장직이 세습이다. 검색하면 구민석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일가친척의 사진이 다 나온다.

그런데 어떻게 여우일 수가 있지? 그 친족들이 다 여우인가? 그런데 단청 회장은 지금 간암으로 투병 중이잖아? 여우도 간암에 걸려?

요즘 영물 사이에 유행하는 건 뭐 정체를 숨기고 인간 사이에서 지내기 이런 건가?

찬물이나 한잔 들이켜고 다시 잤으면 좋겠다. 그러나 작매는 다급한 얼굴로 내 허리춤에 매달렸다.

“해준 씨!”

“뭐 때문에 전화를 걸려는 거예요? 그 집 비밀번호?”

“비밀번호든 뭐든!”

“잠깐만요, 휴대폰이…….”

작매의 닦달에 휴대폰을 들긴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구민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작매는 울상을 지었다.

“어떡하지, 이러다가는 그놈이 죽을 것 같은데.”

“네?”

“으, 이래서 월식에 내려가자고 한 거였는데!”

작매는 무서운 소리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작매 씨, 누가 죽어요?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으, 그 지랄 맞은 박서원이요!”

작매는 욕설과 함께 빽 고함을 내질렀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나대는지! 입구만 갔다 와? 지랄하고 있네!”

“작매 씨, 작매 씨.”

“길잡이가 말리는데 지가 뭘 잘났다고 괜찮다는 거야?!”

“작매 씨, 일단 진정하고요.”

작매가 씩씩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흥분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작매는 울먹이며 말했다.

“해준 씨, 그놈이 죽으면 어쩌지요?”

“……부회장님 집에 뭐가 있어요? 거기에 박서원 씨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요?”

“그…….”

작매는 어린아이 특유의 오동통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 못해도 두 송이씩은 필요한데, 강원도에 있다는 바리데기는 잘 모르고, 거긴 호랑이가 있어서 가지도 못해요…….”

작매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여, 여우, 집에는, 흑, 그, 그놈이, 키우, 흑, 는, 꼬, 꽃이, 킁, 있으니까…… 흐어어엉.”

“작매 씨, 울지 말고. 괜찮으니까요. 네? 울지 말고요.”

저번에는 그렇게 못마땅한 얼굴로 싸우더니 나름대로 정이 들었긴 들었나 보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작매를 보았다.

“해준 씨이이…….”

박서원이 무슨 짓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이 죽으면 이쪽도 곤란하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그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구할 수 있는 걸 모른 체할 정도로 몰상식하진 않았다. 이곳의 ‘정해준’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작매 씨. 뚝, 울지 말고.”

훌쩍거리며 우는 작매를 보니 사촌 동생 생각이 났다. 한창 미운 짓 하는 나이긴 해도 자기 기분 내킬 때면 방싯방싯 웃는데 사촌 형이 왜 그렇게 껌뻑 죽어 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형은 술만 들어가면 우리 딸이 평생 웃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울었다. 가장의 애환이었던 것 같다.

“킁.”

“작매 씨.”

방울방울 떨어지는 까치의 눈물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잠깐만 여기로 좀 와 볼래요?”

작매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내가 이끄는 대로 거실로 나왔다.

박서원이 여우네 집에서 키우는 그 서천꽃은 내가 한평화에게서 받아서 전해 준 것이다. 한평화는 청룡 인형과 심부름 값을 겸해서 내게도 서천꽃을 한 뿌리씩 주었다.

집 근처에 있는 꽃집에서 사 온 화분과 흙으로 분갈이한 서천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쑥쑥 자랐다. 하루가 남다르게 자라는 꽃들을 보며 과연, 저승에서 왔다는 꽃들은 남다르구나 감탄하기도 했었다.

내가 쓰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게 이렇게 쓰일 거라고도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 어!”

작매가 눈물을 뚝 그쳤다.

“저, 저거, 저, 저!”

“저거면 될까요?”

작매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빨갛고 하얗고 노란 꽃을 두 송이씩.

작매는 신중한 얼굴로 꽃을 땄다.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나는 작매의 손에 하나씩 더 얹어 주었다. 어차피 서천꽃은 금방 자란다.

“……들고 갈 수 있겠어요?”

“어, 좀…… 힘들죠?”

눈물을 그친 작매는 손에 꽃을 쥐고 눈을 깜빡거렸다. 화분에서 키워서 그런지 강원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꽃송이가 크지는 않지만 까치가 물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음. 잠깐만요.”

버리려고 모아 놨던 마트 전단지와 테이프를 들고 와서 간이 꽃다발을 만들었다. 시뻘건 생고기 그림이 있는 게 좀 그랬지만 어차피 피살이꽃도 같은 색이니 괜찮을 거다.

테이프로 둘둘 말아서 빠지지 않는지만 확인하고 작매에게 내밀었다. 작매는 한결 나아진 얼굴로 꽃을 받았다.

“까아악.”

등이 새까만 까치 한 마리가 식탁에 앉아 울었다. 아까는 보지 못했지만 까진 부리가 보였다.

“박서원 씨 치료하고 꽃이 남으면 작매 씨도 치료하세요. 알았죠?”

“까악.”

까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실 창문을 열어 주자 까치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려 인사를 하곤 파다닥 날아갔다. 발에는 서천꽃이 꽉 쥐여 있었다.

까치는 금방 밤하늘 너머로 사라졌고,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창문을 꼭 닫으며 생각했다.

세계 최강의 초능력자라는 박서원이 ‘죽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치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새끼 뱀을 보러 간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박서원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동안 박서원은 뭘 했을까? 혼자 지하국에라도 내려간 걸까?

그리고 구민석은? 구민석이 여우라면 그 아래에 있는 성아영은 누구지?

“씨발…….”

담배를 입에 물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집에서는 피울 수 없지.

대신 나는 물통을 비웠다. 시린 물을 마시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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