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31. 이국에서 온 신사(7)
용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그렇다. 살아 있는 증거가 경북도지사를 하고 있는데 못 믿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의견에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인간의 눈에는 자신의 운명 같은 건 보이지 않아서, 청룡이 대충 그러하니라 하고 말하면 그러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청룡이 인간의 운명을 보고, 바꾸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의 아들인 이산래는 얼마나 볼 수 있고,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이산래가 술술 이야기하는 게 도리어 더 수상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말로 날 속이고 아빠한테 쪼르르 이르고 있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
“으악, 그거 뭐예요!”
1층에 올라오자 수사관들과 초능력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에 걸린 금목걸이가 조명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김도훈이 제일 먼저 이산래의 손에 잡힌 콘코바르를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평가는 박했다.
“헉, 뭐야,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반면 주하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팀장님, 저 이거 연구해 봐도 돼요?!”
학구열이 불탔다.
초능력자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다가왔다.
“저기, 이 팀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급하게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일단 제가 아래에서 대충 처리를 하긴 했습니다.”
이산래가 콘코바르의 머리를 쥐고 초능력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동안 나는 슬쩍 휴대폰을 꺼내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검색창에 넣을 단어는 대충 정해져 있다. 김개천, 아버지, 청룡, 사진.
워낙 유명한 일화라 사진은 금방 나왔다. 흐릿한 흑백 사진이지만 알아보는 건 쉬웠다.
그물을 든 어부가 순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옆에는 선비처럼 한복을 입고 있는 청룡이 있었다. 옷차림을 빼면 지금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어린 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자는 아니었다. 털이 길고, 머리에는 삐죽 사슴뿔처럼 생긴 작은 뿔이 있었다. 꼬리는 용처럼 두껍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졌다.
딱 봐도 저게 그물에 걸렸던 청룡 아들, 이산예였다. 생긴 것도 생긴 거지만, 강아지만 한 그 새끼 사자는 청룡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용의 생태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천 살도 넘게 사는 영물인데 하루아침에 쑥쑥 자랄 것 같진 않았다. 저기서 초능력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무기는 훨씬 어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인간을 돕고 싶다는 꿈같은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걸지도.
“그럼 괜찮다는 거지요?”
“네. 머리와 떨어진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래에 있는 주술로도 상대가 되더라고요. 해준 씨가 도와주셔서 그 덕도 봤고요.”
이산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입에 침도 안 바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서 넘어간 것도 있지만 역시, 좀…….
이산래의 말에 초능력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다른 지역의 초능력자들과 함께 일할 일은 별로 없으니 죄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아저씨 셋이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하나. 가슴까지 늘어진 금목걸이가 인상 깊었다.
“별일 없다니 다행입니다. 머리 없는 귀신같은 건 솔직히 누가 상대하고 싶겠습니까?”
“아저씨, 이분들은 그런 귀신을 매일 보는 분들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니까요?”
“그, 매일 보는 건 아닙니다만…….”
“아이고, 그것도 그렇네. 미안합니다, 팀장님.”
“매일 보는 건 아닌…….”
“아무리 일이라도 이런 걸 매일 보는 건 안 좋죠.”
“그러니까 매일은…….”
“팀장님도 적당히 쉬면서 일하세요. 휴일도 거의 없이 일한다고 여기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그……. 네, 쉬면서 하겠습니다.”
이산래가 명절날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수능 끝난 고등학생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와중에, 주하랑은 이산래의 손에서 콘코바르를 슬쩍 가져왔다. 주하랑이 머리를 휙휙 둘러보는데도 콘코바르는 멋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호기심이 많은 소녀로군!”
아니, 보면 볼수록 진짜 기분 나쁜데. 차라리 처음 궤짝에서 나왔을 때가 나았다. 소름이 좀 끼쳐도 그건 최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났다.
그러나 지금 콘코바르는 정말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보였다. 목 아래가 없다는 점만 빼면.
“콘코바르 씨, 혹시 어떻게 그 궤짝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기억나세요?”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어떤 여자가 나를 훔쳐갔던 건 분명하네.”
“콘코바르 씨를 훔쳐갔다고요?”
“그래. 나, 내 머리 말이네. 그리고 비싼 값을 받고 팔았지. 바다를 건너고, 더운 곳을 지났던 것도 기억나.”
“흠……. 머리만 팔려서 중국까지 들어왔다는 건가.”
주하랑은 콘코바르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초능력자들과 수사관들, 목만 있는 남자로 뒤섞인 1층 로비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괘, 괜찮, 으, 세요?”
그늘진 곳에 숨어 있던 오늘이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건 이쪽도 똑같구나.
“평소랑 같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제가 그렇게 급하게 내려올 이유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여기까지 온 이유는 사실 콘코바르 때문이었는데 정작 제대로 능력을 쓰진 않았다. 굳이 내가 없어도 일은 무탈하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용의 아들이 있는데 큰일이 생겼을까.
다르게 생각하면 이산래에게 날 부를 이유가 있었을까?
“뭐, 그래도 온 김에 오늘 씨와 더 친해진 것 같으니 나쁘진 않네요.”
다리화의 영역에 휩쓸렸던 일은 썩 달갑진 않았지만 결과만 두고 본다면 정말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내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오늘을 불렀다.
“그런데요, 오늘 씨.”
“네?”
“혹시 팀장님한테 제 얘길 했어요?”
“어떤, 얘, 기, 요……?”
오늘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였다. 물론 오늘이 그럴 성격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안에서 이산래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이산래는 자연스럽게 나와 ‘정해준’의 존재를 분리하고 있었다. 이 점은 이산래에 대한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다리화의 세계에서 이야기했던, 그거요.”
오늘은 커다란 눈으로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쵸? 오늘 씨가 이야기할 리가 없죠.”
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몇 개월이나 가슴에 담아 두고 말없이 날 도와주던 사람이다. 이야기한 지 겨우 며칠 됐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역시 이산래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아니,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는지가 먼저다.
인간이 아닌 이산래도 내 상태를 보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암시했다. 이산래를 처음 만난 건 아사달 때문에 잠실 타워의 그림자가 없어졌을 때. 그 자리에는 청룡도 있었다.
청룡은 겨울에 내가 자신을 찾아갔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인 오늘조차 내 ‘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오늘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이산래가 당연하다는 듯 내 상태에 대해 얘기한 걸 보면 이산래도 ‘나’를 보는 건 확실하고. 그럼 청룡도 본 게 분명하다. 이산래는 아버지와 싸우는 중이라고 했지만…….
애초에 싸우던 원인 중 하나가 ‘정해준’이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정해준.’ 역시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그놈이다. 혹시 정해영이 쳐봤던 드라마 악당이 박서원이 아니라 ‘정해준’인 거 아냐?
“해, 해준, 씨?”
오늘의 머리가 좌우로 까딱였다.
“해준, 씨?”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오늘이 등장인물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말을 입 속으로 삼키며 물었다.
“이 팀장님은 어때요? 괜찮은 분이에요?”
오늘은 내 말에 고개를 기울이던 걸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똑똑한 사람이니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음……. 티, 팀장, 님은요…….”
오늘은 아직 초능력자들에게 붙잡혀 있는 이산래를 슬쩍 보았다.
“한…… 이, 이 정도……?”
오늘은 양팔을 어깨너비 정도로 벌렸다. 그대로 벌린 손을 움직여 동그라미를 그렸다.
“……뭐가요?”
“팀장님, 이요…….”
“……팀장님이요?”
“아직, 다, 안…… 컸, 을, 거예요…….”
가까스로 그게 오늘의 눈에 보이는 이산래의 크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크기를 가늠해봤다.
사진 속에 있던 청룡 품에 안긴 사자보다야 크지만……. 그래 봤자 오늘이 그리는 원은 커다란 인형 수준이었다.
오늘은 팔을 내리고 말했다.
“팀장, 님은, 펴, 평소에…… 가족, 이야기를, 마, 많이, 하, 세요…….”
“……아버지랑 싸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아버지, 얘기, 말고…… 어머니, 와, 형, 이야기요…….”
요괴와 주술에 관한 건 어머니한테 배웠다고 얘기했었지. 이산래를 슬쩍 보았다.
“어, 어머니가, 중국… 인이라, 어릴, 때는, 주, 중국에서, 지냈, 다, 고, 했… 어요. 하, 한국에서, 살… 기 시작, 한 건, 10년…… 정도, 됐, 다고.”
10년이라. 특별수사과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도 10년이라 했다. 10년이란 숫자에 과민반응하고 싶진 않은데 이산래도 그 뱀과 관계있는 걸까.
“그리, 고…….”
오늘은 잠깐 이산래를 살피며 말했다. 목소리가 속삭이는 수준으로 작아졌다.
“겨, 겨울부터…….”
오늘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가족, 이야기를…… 거, 의, 하시지, 않, 았, 어요…….”
“뭐……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와 싸웠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부정했다.
“사, 사고로, 어, 머니와…… 형들, 이…….”
오늘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도, 돌, 아, 가셨, 다고…….”
그래서 겨울 한 달 정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오늘이 덧붙였다. 그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라리 10년 전이면 또 그 뱀 새끼가 무슨 짓을 했겠구나, 하겠는데. 겨울이라고? 겨우 반 년 전이다.
그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이산래의 가족, 용들이 다 죽는 건데?
내가 이곳에서 눈을 뜬 것도 겨울. 속단하기 이르지만 이산래의 가족이 죽은 것과 내가 이곳에 들어온 게 연관이 있을까?
……아니, 아니지. 다 죽은 건 아니다. 청룡, 아버지는 살아 있다.
“……아, 아버지는, 괘, 괜찮, 다고, 했, 지만…… 그, 때, 이후로… 이야기를, 하, 하진, 않, 으… 셨어요…….”
설마.
이마를 짚었다.
“그, 그러니까…… 팀, 장님은……. 괘, 괜찮, 지는, 않, 을, 거예요…….”
단순히 그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오늘의 의견을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더 심오한 배경을 들어 버렸다.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 용이 어머니와 형제를 잃었다. 아마도 그 일에는 아버지가 깊게 관여되어 있을 것이고.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지 형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 그야 엄마한테, 아니, 어머니께 중국과 한국의 주술은 배웠지만 서양 쪽은 못 배웠는걸요.’
이산래의 어미용은 아들에게 대부분의 지식을 가르쳤고, 형들은 동생을 걱정하여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종이인형들을 나눠 주었다.
복수에 눈이 돌아간 인간은 눈에 띄는 뱀들을 모두 죽이며 업을 쌓았다.
가족을 그리워한 인간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소원을 이루려고 했다.
과연 용의 새끼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서양에서는 저승사자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완전히 죽이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승사자요? 아니, 그런 게 어쩌다 여기까지 왔대요?”
“이제 알아봐야지요.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쪽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오늘은 나에게 경고했다. 애초에 이산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도 없었다.
그 모든 상념 속에서 정작 이산래는 예의 바른 얼굴로 초능력자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