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31. 이국에서 온 신사(2)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산래는 가방에서 얇은 서류철을 꺼내 내밀었다. 표지를 넘기자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중앙박물관에 있는 특별수사과 연구소 지하에 있는 방과 비슷한 풍경이다. 부적과 알 수 없는 그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방.
그 가운데에 마찬가지로 부적이 잔뜩 붙은 낡은 궤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리저리 삭고,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진까지 보자 진짜 가기 싫어졌다.
“우리나라 특별수사과가 이런 물건 하나 해결 못 합니까? 원래 저 같은 능력자 없이도 잘 해결했잖습니까.”
“물론 해결했지요.”
이산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대여섯 명 정도는 저주 때문에 휴직했긴 하지만요. 그 정도면 싸게 치인 거죠.”
“…….”
“제령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산재처리 되니까 걱정 마세요. 해준 씨는 초능력자라 조금 애매하긴 한데 그 정도는 제 권한으로 해결됩니다. 병원비도 저희 쪽에서 해결되어요.”
“그건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그래도 이건 너무 불길해 보이지 않습니까.”
“천 년도 더 된 말도 잘 막으셨지 않습니까. 장군님도 막았고.”
“그건 말이었잖습니까. 그리고 그쪽은 온전한 장군님도 아니었고요.”
“저도 해준 씨가 뭘 걱정하는지 압니다. 저희와 일을 해 봤다고 해도……. 사실 따지면 제대로 일한 적은 없죠?”
이산래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해준 씨는 어디까지나 백업입니다. 이번에는 저도 저 궤짝 안에 든 걸 짐작할 수가 없어서 제가 직접 나설 거거든요.”
“티, 팀장님, 이요?!”
오늘이 깜짝 놀라며 이산래를 보았다. 이산래는 희미하게 웃으며 오늘을 향해 말했다.
“원래는 안 나서려고 했는데, 상황이 좀 바뀌었습니다.”
이산래는 보고서를 몇 장 넘겼다. 아까와 같은 궤짝 사진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궤짝을 덮고 있던 부적 몇 장이 반쯤 찢겨져 있다는 점.
“오늘 아침 사진입니다. 뭍으로 꺼내면서 봉인이 약해질 거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빠릅니다.”
오늘은 심각한 얼굴로 사진을 보았다. 안경을 쓰고 똑같이 인상을 쓰고 사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마치 남매처럼 꼭 닮아 있었다.
“이, 이 정도면…… 새어, 나왔을…… 것, 가, 같은, 데요…….”
오늘이 사진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심령사진 같은 걸 생각하면 수사관의 눈은 사진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산래는 오늘의 말에 긍정했다.
“네. 저렇게 되고 난 직후에 말을 하더라고요.”
잘못 들었겠지.
“곧바로 현대 한국어를 하는 걸 보면 힘도 꽤 강하고요.”
미쳤나, 진짜.
“제가 괜히 병원으로 달려왔겠습니까?”
이산래는 어쩐지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아까 계단에 구르러 가자는 얼굴과 비슷한 웃음이었다.
* * *
“그러고 보니 난쟁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룸펠슈틸츠킨이요?”
다음 날 퇴원 수속을 밟고 바로 병원을 나왔다. 어차피 딱히 문제가 있던 건 아니라 퇴원은 금방 처리되었다.
이산래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답했다.
“독일 정부에 항의도 했고 벌금도 매겼습니다. 그놈이 얌전히 금을 내놓는 모습을 해준 씨도 봐야 했는데.”
못 본 게 아쉬울 정도였다. 이산래가 저렇게까지 즐거워하는 걸 보면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이었겠지.
차에 오르자마자 이산래는 어제 보았던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봤던 부분을 넘기자 오늘 날짜가 적힌 사진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속도가 더 빨라요. 안에 든 게 꽤 강력한 놈인 것 같은데…….”
오늘은 뒷좌석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결국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특별수사과 일은 다 이런 식입니까?”
“네?”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는 느낌인데…….”
이산래는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좀 이상하긴 하죠.”
이상하다기보다는 제대로 된 대응방식이 없는 느낌이었다.
비상근무도 그때그때 될 대로 되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여긴 임 팀장의 지시가 있었다. 업무 프로세스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반면 특별수사과는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묘했다. 대응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본인들도 백 퍼센트 확신을 못 했다. 박물관의 말 사건 때도 잠깐 얌전하게 했다, 는 느낌이었고. 천 년도 더 된 귀신을 상대하다 보면 완전 성불이란 게 힘들만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걸 보는 기분이다.
“사자의 세계는 아직 인간에게 열려 있지 않아서 그래요.”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소리도 잘 한단 말이지.
“똑같은 케이스의 영혼은 없습니다. 인간이 모두 다른 것처럼요. 하나하나 모두 다릅니다. 처음에는 이렇겠지, 하고 진행해도 사실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산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래서 저희는 임기응변이 가장 중요합니다. 같은 의미로 주술에도 국경이 없죠. 이게 어느 나라 주술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저 영혼에 듣나 안 듣나가 중요하거든요.”
이산래는 뒤에 앉아 있는 오늘을 흘깃 보았다.
“그래서 오늘 씨 같은 사람이 엄청 중요하죠. 제가 괜히 오늘 씨를 데리고 다니겠어요? 해준 씨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비책은 많을수록 좋잖습니까?”
“오늘 씨가 그렇게 뛰어난 인재입니까?”
“당연하지요.”
“어, 제, 제가, 요?!”
오늘이 화들짝 놀랐다.
“오늘 씨는 아니라는데요.”
“원래 그런 건 본인은 모르는 법이잖아요?”
“그렇죠.”
“그런 겁니다.”
오늘이 뒤에서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의 표정을 본 이산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무 사심 없이 기원할 수 있는 건 아주 대단한 능력이에요. 어쭙잖은 초능력보다 훨씬 쓸모 있죠.”
“제가 대단한 분과 아는 사이가 되었군요.”
난쟁이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오늘은 귓가가 벌게진 채 시선을 돌렸다.
“눈이 제대로 달린 영물이라면 눈이 돌아가서 오늘 씨한테 매달릴걸요.”
이산래는 여상한 말투로 가볍게 말했다.
“그러니까 해준 씨도 오늘 씨에게 잘 보이세요. 지금도 뭐…….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지만.”
안경 너머로 이산래의 눈이 반짝였다.
……특별수사과는 학력이고 뭐고 크게 필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볼 수 있는 눈’.
오늘은 스스로 잘 보는 축이라고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혼’을 따로 볼 수 있는 건 보통 잘 보는 걸로 가능할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오늘이 대단하다고 하는 이산래는 얼마나 볼 수 있는 거지?
“다 왔네요.”
내가 의심스럽게 자신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지 이산래는 차를 세웠다. 목포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서울에 있는 연구소와 비슷하게 생긴 하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처럼 보였다. 이어지는 이산래의 설명에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작년에 건물이 무너졌거든요.”
건물이 무너질 만한 사건이 있었다고?
“그래서 새로 지었죠.”
역시 정해영이 보던 드라마 장르는 단순한 초능력자물이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죄다 죽어 나간다고 했을 때 알았어야 했는데.
특별수사과 연구소 목포지부는 외관은 좀 더 번쩍거렸지만 내부는 서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깔끔하고,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붙어있는 부적까지.
“아, 팀장님!”
1층 로비에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던 수사관들이 반가운 얼굴로 이산래를 불렀다.
“왜 여기에 모여 있습니까?”
“셔터 내려야 하나 이야기 중이었거든요.”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이야기가 들렸다.
“아직 그 정도로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래요?”
“그럼 다행인데…….”
수사관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했다. 어미닭한테 모여든 병아리들처럼 보였다.
“팀장님이랑 오늘 씨가 없으니까 저희끼린 힘들어서요.”
“무슨 일입니까?”
“그게…….”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몇 번 본 적 있는 수사관이 설명했다.
“말하는 게 점점 선명해져요.”
이산래는 눈을 찌푸렸다.
“선명해진다고요?”
“네. 보강하려고 저희가 좀 들락날락거렸잖아요.”
“네.”
이산래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수사관들의 말을 들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절대 말은 안 했거든요. 그런데 혼자서 점점 쓰는 어휘가 늘어나고 그러는데, 솔직히 저희가 보기에도 소름이 끼쳐서…….”
애초에 궤짝이 혼자서 말을 하는 것부터가 소름 끼치는 일이다. 궤짝이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든 게 말하는 거라면 더욱. 수사관들 사이에 있다 보면 기준이 좀 이상해진다니까.
“음……. 안에 든 게 뭔지 저도 짐작 가는 게 영 없어서. 혹시 중국 쪽에서 기록 찾은 거 있답니까?”
수사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좀 더 시간이 넉넉하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모르겠대요.”
“난감하네요. 혹시 모르니까 입구는 막기로 하고, 일반인들은 다 내보내요. 작업은 어떻게 됐습니까?”
“배 안에 있는 문양은 그대로 다 그리긴 했어요. 덕분에 중국 주술을 많이 배웠습니다.”
“원나라 시절이면 사장된 게 많으니까요. 재밌는 글자가 많았겠네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말하는 궤짝이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이무기에 대해서 줄줄 늘어놓던 사람이 딱 잘라 모르겠다고 할 정도면 그 안에 든 건 도대체 뭐지?
……그걸 보러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
“거, 걱정, 마세요.”
오늘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팀장, 님은…… 누, 누가, 다, 치게, 놔… 두는, 부, 분이, 아니에요…….”
나 자신도 믿지 못하겠는데, 오늘의 두 눈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요.”
“어, 어? 그, 그건, 좀…….”
오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팀장님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 그건, 아, 닌데……. 제, 말을, 너, 너무, 믿으면…….”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아뇨, 아, 아뇨!”
“그럼 됐어요.”
최소한 이곳에서 내가 만난 이 중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지 않은가.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오늘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날 보던 오늘의 초점이 살짝 빗겨 있었으니 ‘나’ 말고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야기는 끝났습니까?”
잠깐 대화가 멈춘 틈을 기가 막히게 눈치챈 이산래가 말했다.
“그럼 내려갈까요?”
“…….”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걸까?
불쌍한 초능력자의 인생이여. ‘정해준’ 그 자식은 왜 초능력을 소원으로 빈 거야.
이산래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서울 연구소와 구조 자체는 똑같았다. 한 층만 존재하는 지하와 기분 나쁠 정도로 잔뜩 붙은 부적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여긴 지하니 그저 기분 탓이겠지만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이산래를 불렀다.
“진짜 이대로 가도 되는 겁니까?”
“네?”
“아니, 너무 맨몸으로 가는 것 같아서.”
목 없는 말 때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처음 능력을 실험했을 때는 부적을 덕지덕지 붙였다. 이건 갑작스런 일도 아니니 뭔가 대비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산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준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욕심이 많네요.”
“네?”
“좋은 걸 가득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닙니다.”
이산래는 웃으며 내 손목을 가리켰다.
“오늘 씨가 준 묵주에.”
손가락이 조금 더 움직였다.
“여의주도 가지고 계시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제가 괜히 두 분만 데리고 들어왔겠습니까?”
이산래가 이쪽을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사뭇 다감해 보이지만 어쩐지 읽기 힘든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