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31. 이국에서 온 신사(1)
“그럴 순 없지요.”
이산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진짜 괜찮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얼굴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다. 오늘이 내 팔을 잡아 당겼다.
“포, 포기하면, 펴, 편해, 요…….”
“…….”
“……아니, 제가 지금 엄청 무리한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이산래는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 다 병원에 가서 괜찮은지 검사 좀 받고 쉬라니까요?!”
* * *
목포 하늘에 용이 등장한 이야기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각종 사이트를 용 이야기로 가득했고 뉴스에서도 오프닝과 엔딩 멘트로 용 이야기만 했다.
덕분에 잠실 타워에 있는 청룡도 다시 주목받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용으로 원래도 주목받고 있긴 했지만 거기서 더.
[목포에 등장한 새로운 용에 대한 청룡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실 타워를 배경으로 리포터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청룡님! 목포의 용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점이 있으신지요!]
리포터가 잠실 타워 아래에서 청룡을 불렀다. 저런다고 대답해?
[앗, 청룡님이 꼬리를 흔들어 주셨습니다! 역시 이번에 새로 나타난 용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진짜 괜찮은 거냐, 대한민국의 방송. 아무리 지상파 방송은 아니라고 해도 수준이 좀…….
리포터가 청룡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청룡님, 청룡님! 잠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본 입장으로는 시큰둥한 이야기였다. 도움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방송을 끄고 다른 걸 좀 더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용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는 건 목포 하늘에 나타났다는 용인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정석 교수님을 모셨습…….]
결국 할 일이 없어서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는 환자복이 눈에 들어왔다.
이산래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현장에서 오늘과 나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병원 가서 검사도 해 보고 쉬라는 이산래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서 말을 듣긴 했었는데…….
그동안 비상근무 때는 난리가 났었어도 구급차에 실려 간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사실 이게 맞는 건데. 초능력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자꾸 현실감각을 잊어버린다니까.
물론 병원에 입원했다고는 해도 진짜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안개 속을 뛰어다닌 게 다였는데. 다친 곳도 없고.
병원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방금처럼 휴대폰을 보고 뒹굴거리는 일밖에 없다. 오늘은 그대로 죽은 듯이 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틀째니 심심해졌다.
“그 일은 괜찮대요?”
“네, 네?”
“그 비밀의 방인가 뭔가 하던 그거요.”
“아…….”
병원 근처의 분식집에서 사 온 떡볶이를 우물거리던 오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대로, 놔두, 면, 괜, 찮, 을, 거예, 요…….”
700년 동안 바닷속에서도 멀쩡했던 물건이다. 뭍으로 나왔다고 갑자기 삭아 없어지진 않을 거다.
오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퇴원하면 불러 가겠지. 지금은 최후의 휴식이다.
“여기 떡볶이 맛있네요.”
“네에…….”
이렇게 느긋하게 쉬는 것도 다 좋지만 병원 밥은 역시 좀 심심하단 말이지.
“그럼 이제 그건 어쩌죠.”
오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여의주가 있는 손바닥을 흔들었다.
“이거요.”
오늘의 손에도 똑같이 들어가 있다. 오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떡볶이를 먹었다.
“이, 이무기의, 여의, 주, 니까…….”
다리화는 이 여의주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넘겨준 다음에야 용이 되었다. 용에 가까운 이무기의 여의주라고 할 수 있다. 가치를 셈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물건이다.
“음……. 좋은, 부, 적?”
오늘의 기준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수사관은 다 이런 걸까?
뭐, 이무기가 건네준 거니 좋은 부적이라는 소리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너희는 그게 필요할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그냥 넘어가기엔 찝찝하다. 청룡도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었고. 용이 된 다리화가 그냥 한 소리일까? 아니면 뭔가 알고서?
……어차피 이게 언제, 어떻게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허투루 쓸 생각은 없다. 원래는 이 여의주를 모아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난쟁이에게 소원을 말했을 때 튕겼던 일을 떠올렸다. 여의주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함, 부로, 쓰다, 가는, 부, 부정, 탈, 수도, 있어요…….”
“이제 소유주는 저랑 오늘 씨 아닌가요?”
“다리, 화는…… 서, 선한, 이였으니, 그, 힘이, 잘못, 된, 방향… 으로, 가면, 반동이, 있, 을, 거예요.”
역시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내 표정이 시원찮았는지 오늘은 덧붙였다.
“나중에, 티, 팀장님, 오시, 면…… 무, 물어봐요. 저는, 잘, 모, 모르는, 분야라…….”
“팀장님이요?”
“요, 용이나, 이무기에, 관, 해서는, 팀장님이, 자, 잘, 아시, 거든요…….”
이산래가 다리화에 대해 줄줄 말해 주던 걸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보통 잘 아는 걸로는 잠실 일조권을 두고 청룡과 다투지 못할 것이다. 그 뒤로 청룡 담당이 되었다고 했으니까 용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거 저희가 가져도 되는 거예요? 좀, 그…… 나라에서 가져가고 그러진 않아요?”
경북도지사 김개천의 이야기 때문에 여의주는 사람 운명을 바꿔 주는 진귀한 물건이라고 민간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런 물건을 일반인 손에 맡겨 둘 것 같진 않았다. 오늘은 좋은 부적이라고 답했지만 사실 이게 진짜 좋은 부적 수준에서 끝날 물건은 아니잖은가.
오늘은 눈을 깜빡이다가 대답했다.
“그, 그거, 보고, 할, 때, 빼고, 말, 했어요…….”
이런 깜찍한 인간을 봤나.
“그럼 팀장님한테 물어보면 혼나는 거 아닙니까?”
“팀장, 님은, 그,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분… 이니까, 괘, 괜찮아요.”
신경 쓰면 청룡에게 대거리질을 못 했겠지. 묘하게 납득이 갔다.
“아, 그…….”
“네?”
“그으…… 서, 서원, 오빠한테, 줬던, 자료요…….”
오늘은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오늘에게는 당연한 호칭이겠지만 저놈의 오빠라는 단어와 박서원이 영 매칭이 안 되었다. 세상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는 놈이라 그런가. 백하연에게도 똑같이 불리겠지만 그쪽은 아직 말을 못 하고.
“파일, 이, 지, 집에, 있어서……. 해준, 씨한테, 주, 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 은데…….”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저도 한동안 집에 못 갈 것 같은데요.”
환자복을 입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그 비밀의 방이 별거 아니면 좋으련만.
그렇지만 부적으로 둘러싸인 상자가 평범할 리가 없겠지. 내 능력으로 700년 전의…… 무언가를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아, 능력. 그래, 능력.
능력 하니까 또 머리가 복잡해졌다. 복숭아를 먹고 없던 능력이 뿅 하고 생기지 않는다고는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진짜 뿅 하고 생긴 능력이었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난쟁이에게 ‘정해준’이 소원을 빌었던 건 8년 전. 아니지, 난쟁이의 소원은 선불이다. 대가를 치르지 못해서 그때 당장 소원을 이루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본인은 악마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하는 행동은 그에 준하는 놈이다. 정해준이 빈 소원은 그 두 개가 맞지만, 이뤄진 시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으니 8년 전이 아닐지도 모른다.
젠장, 이렇게 꼬아서 생각하면 끝이 없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나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지.
“저, 오늘 씨.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네?”
“박서원 씨가 저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한 게 언제였나요?”
“어…….”
오늘의 얼굴을 보고 아차 했다. 나한테야 여동생의 짜증 나는 ‘내 새끼’이고, 수상하기만 한 드라마 악당이지만 오늘에게는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에게는 빌어먹을 친척들을 혼내 주고 자신을 도와준 친구 오빠였다.
“혹시 불편하면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 아뇨! 그건, 그, 괜찮, 아요…….”
오늘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제가, 한, 일도…… 따, 따지면, 불… 법, 이어서…….”
당당하지 못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니까 괜찮다며 오늘이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나오면 어쩐지 미안해지는데.
“그리, 고…… 그, 오빠는…… 어디, 가서, 죽, 지는, 않을…… 테니까요…….”
바꿔 말하면 난 어디 가서 죽을 것 같이 보인다는 뜻인가.
반박하고 싶은데 눈앞에 있는 이는 무려 ‘혼’을 본다고 한다. 보통 사람과는 기준이 좀 다를 수도 있다.
……이거 좀 조심해야 하는 부분인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냥 웃었다. 할 말이 없을 때는 웃는 게 최고다.
“1월, 에…….”
“1월이요?”
생각보다 시기가 좀 빠른데. 아니, 그냥 빠르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때 박서원과 만났지 않나? 그 자식, 그런 티 하나도 안 내더니 만났을 때부터 수상하게 여겼던 건가?
“네, 네에…….”
냉정하게 상황을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하긴 했다.
휴대폰에 남아 있는 연락처 중 박서원은 없었다. 그럼 그동안 연락을 하고 다니진 않았을 테고……. 그렇지만 최소한 10년 전에는 확실히 아는 사이였다. 고아원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세우는 데 끼워 줄 만큼의 사이기는 했으니까.
그랬는데 어느 날 회사에 입사해서 나타나더니 자길 전혀 모르는 눈치라면……. 나 같아도 조사해 본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알은체하지 않은 박서원의 인내심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혹시 그 자식 내가 다른 거에 씌었나 확인하려고 집에 데리고 간 거 아냐? 의외로 가능성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자료가 완성된 건 언젠가요?”
“주, 중간, 중간, 찾, 은, 자료를, 넘겨…… 줬었지만, 완성본, 을, 준 건…… 음, 4월……?”
4월이면 강원도에 갔을 때다. 아니지, 강원도에 가기 전 박서원이 나한테 백조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4월 언제쯤이었나요?”
“초, 초요…….”
박서원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자기 일에 끌어들인 거지?
따로 조사를 해 볼 정도로 수상하게 여겼으면서 또 옆에 두기는 했다. 신선비를 잡을 때 아는 척을 한 것도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거 아냐?
“혹시 기억나는 특이 사항은 없었나요?”
오늘은 곧바로 대답했다.
“해준, 씨가, 해외로…… 나, 나간 적도, 있어서, 그건, 조사하지, 모, 못 했어요…….”
그리고 ‘정해준’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고?
“해외요?”
“네에, 도, 독일이요…….”
“……독일만 갔었어요?”
“추, 출국, 기록은…… 유럽에, 좀, 있는데……. 독일이, 제, 일, 마, 많아요.”
출국 기록이라고 할 만큼 많이 나갔다고? 걔가 무슨 돈이 있어서? ……대학 등록금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비행기 값이었나?
그리고 독일? 왜? 난쟁이에게 잔뜩 시달린 뒤라 독일이라 하니 불안함만 생겼다. 난쟁이는 전화 한 통만 하면 달리는 기차에도 오고 이무기의 영역에도 기어들어 오는 놈이다. 명함을 받지 못했으면 모를까 독일까지 가서 난쟁이를 만났을 것 같진 않은데.
국내야 그렇다 치지만 해외에서의 행적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일단 집에 가면 여권부터 찾아봐야겠다. 어디 있겠지.
“어?”
“네?”
“티, 팀장님, 이네요…….”
오늘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이 가리키는 곳을 봐도 전혀 모르겠다. 눈이 나쁜 편은 절대 아닌데 사람을 알아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거의 점처럼 보였다.
“팀장님이라고요?”
다시 봤다.
전혀 모르겠다.
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른가? 사람 얼굴이 아니라 혼으로 알아보는 건가? 근데 그것도 이렇게 먼 거리에서 보여?
그냥 생각을 포기하고 남은 떡볶이나 먹으며 기다렸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나는 오늘에게 말했다.
“팀장님이네요.”
이산래는 곧바로 우리에게 걸어왔다. 이산래는 우리가 벤치에 늘어놓은 떡볶이와 튀김을 보더니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
“들어가서 안 쉬고 뭐 합니까?”
“이렇게 쉬게 하고 부려먹을 생각이지요?”
“그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어쩔 수 없고요.”
이산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서 두 분 다 내일 퇴원해 주셔야겠습니다.”
솔직히 아픈 데는 없었고 오늘은 부족했던 잠을 푹 자서인지 서울에서 만났을 때보다 도리어 더 생기가 넘쳤다.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좀 아픈 것 같은데…… 꼭 가야 합니까?”
“하하, 저도 가기 싫은데 우리 같이 계단에서 좀 구를까요?”
역시 특별수사과 근무환경이 제일 문제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