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29. 해묵은 소원(5)
오늘은 잘 보는 아이다.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좀 본다고 해서 차별받진 않지만, 보는 것이 어린아이의 정서발달에 좋지 않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오늘은 어렸을 때부터 말수가 적고 예민한 아이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의 부친인 오하석 또한 볼 수 있었다. 오하석은 어린 딸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안아 올리며 말했다.
‘늘이가 괴롭히지 않으면, 저것도 늘이를 괴롭히지 못한단다.’
‘그치만 무서운데…….’
오하석은 벌벌 떠는 딸의 손에 묵주를 쥐여 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늘이야, 아빠랑 기도해 볼까?’
어린 오늘은 아버지가 설명해 주는 기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도 늘이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마음만큼은 거짓이 없었다.
매일 자기 전에 하는 기도가 통했는지는 몰라도 오늘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그렇지만 부모의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정말 믿을 만한 분이야?’
‘괜찮다니까. 나도 어릴 때 신세를 많이 졌었어.’
민지윤은 불안한 눈으로 남편을 보았다. 오하석은 몇 번이나 아내를 달랬다.
‘지금은 내가 옆에 계속 있을 수 있지만 학교 들어가면 그게 안 되잖아. 부적이라도 챙겨 줘야지.’
‘그건 그렇지만…….’
민지윤은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지만 뭐라 하진 않았다. 딸을 품에 안은 오하석은 낡은 대문을 열었다. 삐걱, 하고 녹이 슬어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저 왔어요.’
‘얘가, 걔야?’
허리가 굽은 노인이 마루에 앉아 세 가족을 반겼다.
‘네, 늘이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어이구, 기운이 세구만. 고생이 많겠는데. 지금은 괜찮고?’
‘기도시키고 있어요.’
‘그래, 잘했다.’
노인은 오늘을 보며 싱긋 웃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퍽 다정해서, 아빠 뒤에 숨어있던 오늘은 슬그머니 옆으로 나왔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쥐여 주었다. 노란색의, 레몬 맛 사탕이었다.
세 가족은 노인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꽃들이 가득 있었다. 오늘은 그걸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는 무서운 게 하나도 없었다. 그게 퍽 신기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지루해진 아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가야, 많이 졸렸구나.’
할머니는 방긋 웃었다.
‘할머니는 아가 아빠랑 엄마랑 더 이야기해야 하는데…… 방에 이불 깔아 줄 테니 거기서 편하게 자련?’
밤새 누가 속닥거리는 소릴 듣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던 오늘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하석이 딸을 안아 들었다.
오늘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아빠와 엄마 목소리, 처음 보지만 굉장히 따뜻했던 할머니 목소리……. 모처럼 오늘은 푹 잘 수 있었다.
‘저기.’
‘……으응.’
‘저기, 일어나 봐.’
오늘은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오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 보러 왔어?’
‘으응.’
‘흐으응……. 너 배 안 고프니? 우리 오빠가 간식 만들어 줬는데 너도 먹을래?’
꼬르륵.
마침 오늘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여자아이는 까르르 웃더니 오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박서예야. 넌 이름이 뭐니?’
오늘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늘.’
‘오늘? 이름 예쁘다!’
그렇게 두 꼬마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매년 오늘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박서예의 할머니는 작은 종이봉투에 든 부적을 주었다. 할머니가 써 주는 부적은 오늘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들을 막아 주었다. 오늘은 나중에서야 친구의 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안녕하세요.’
박서예의 오빠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지화를 만들다가 인사를 받고선 안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야, 박서예! 네 친구 왔다!’
‘늘이야!’
박서예는 곧바로 집에서 뛰쳐나왔다.
‘나 갔다 올게!’
‘그래.’
박서예의 오빠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형제가 없는 오늘은 친구의 오빠가 조금 부러웠다. 오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박서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 오빠는 가진 게 얼굴밖에 없어서 부러워할 것도 없어! 커서 뭐가 되려나 모르겠다니까.’
‘오빠 공부 잘하지 않아?’
‘그래 봤자 주하 오빠가 더 잘하는데.’
몇 번 오가면서 본 적이 있는 친구네 오빠의 친구를 떠올리며 오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라도 되겠지.’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에 도착했다. 박서예의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곳이다.
‘두 사람 왔니?’
병원에서 근무하는 민지윤의 배려로 1인실에 입원한 할머니는 다정하게 손녀와 손녀 친구를 맞이했다.
‘할머니!’
‘아이고, 오는 데 힘들진 않고?’
‘에이, 버스로 다섯 정거장밖에 안 되는데요.’
박서예는 할머니 옆에 앉으며 말했다.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었다.
‘아, 오빠가 또 지화를 잔뜩 만들어 놨어요. 그거 만들 시간이면 병문안 좀 오라니까.’
‘서원이는 아침에 왔다 갔단다. 이제 고3이니까 평일에는 못 온다면서.’
‘윽, 그럴 거면 우리랑 같이 오지…….’
박서예가 어깨를 움츠리자 오늘이 옆에서 깔깔 웃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삼 개월 뒤, 어느 여름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부모가 없는 두 남매를 대신해서 오랫동안 지켜본 오늘의 부모님이 대신해서 절차를 밟아 주었다. 오늘은 박서예의 오빠가 그렇게 우는 걸 처음 보았다. 오빠의 옆에서 친구가 쓰러질 듯 울고 있는 걸 본 오늘도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장례식장에 손님은 별로 없었다. 할머니는 병원 근처에 있는 장례식장의 가장 작은 방을 사용했다. 어린 남매 둘이서 장례식장을 지키는 게 걱정이 되었던 오하석이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고, 민지윤 또한 시간이 나면 간간이 들려 남매를 봐주었다.
장례식 둘째 날은 방학식이었다. 학교가 일찍 끝나니까 오늘은 학교가 마치자마자 가서 박서예를 꽉 안아 줄 생각이었다.
거대한 뱀이 병원을 덮쳤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래도 다 잘될 거라 믿었다.
* * *
오늘은 친척 집을 전전했다.
중간에 부모님의 보험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지만 오늘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어른들이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돈이 많이 드니까…….’ 하면서 생활비 명목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제대로 밥을 못 먹은 적도 있고, 같이 생활하던 사촌들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교과서를 찢어도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은 그때도 기도했다. 아빠가 준 묵주를 꼭 쥐고서.
‘오, 오늘, 하루도…… 제가, 해, 행…… 한, 하, 루를…… 보, 낼, 수, 이, 있도록…… 가, 감사, 합, 니다…….’
하지만 기도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야.’
딱 4년이 지났을 때, 죽은 친구의 오빠가 교문에 서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보고, 그 뒤로 처음 본 얼굴이었다. 박서원은 오늘의 얼굴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 친척 집 간다고 했잖아? 얼굴이 왜 이래?’
‘그, 그으…….’
‘씨발, 야. 너 지금 지내는 곳 주소 좀 줘 봐. 너 휴대폰은? 번호 바꿨어?’
오늘은 그대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 없어요…….’
‘씨발, 진짜……. 어쩐지 다른 사람이……. 아냐, 됐어.’
박서원은 오늘의 손에 자신의 휴대폰을 쥐여 주었다.
‘일단 이거 들고 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알았지? 전화 받는 건 괜찮아?’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문자를 보낼게. 그건 괜찮지?’
끄덕끄덕.
‘힘들면 전화하거나…… 여기 보면 구민석이라고 번호 저장되어 있거든? 그리로 연락하면 돼. 알았어?’
‘…….’
‘누구한테 연락하라고?’
‘구, 구민, 석요…….’
‘그래. 힘들면 꼭 말해? 알았지?’
결국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는 오늘을 보며 박서원은 동생에게 해 주곤 했던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어.’
‘…….’
‘미안해. 네 부모님은 좋은 분이셨어.’
‘아니, 아니에요…….’
오늘은 장례식장에서 교복을 입고 펑펑 울던 남자아이를 기억한다. 지금의 자신과 같은 나이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여동생의 장례식장에서. 새하얀 국화를 보며 울기만 했던 남자아이를 기억한다.
그러니 정말 괜찮았다. 가족을 잃은 건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어어, 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박서원은 오늘을 데리고 근사한 아파트로 갔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크진 않지만 가구들은 하나같이 새것이었다. 박서원은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된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보지 못했다. 그것도 알아서 다 한다고 했다. 두 달쯤 지났을 때, 박서원은 오늘에게 통장 하나를 주었다.
‘네 친척들이 가져간 거야. 두 번 다시 네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했는데, 혹시 연락 오면 말해.’
친척들에게 어떻게 받아냈는지 궁금했지만 말해줄 것 같진 않았다. 오늘은 그저 눈물만 꾹 참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지? 힘든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그렇게 말했지만 오늘은 연락하지 않았다. 염치없어서가 아니라 힘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학 간 학교에서 새로 만난 아이들은 착했고 오늘은 다시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가, 감사합, 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머니,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소중하지만 이제 곁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아직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했다. 오늘은 박서원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다시 오늘이 박서원을 본 건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찾아오는 가족 없이 어색하게 서 있던 오늘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박서원을 향해 웃어 주었다. 원래였다면 오늘의 부모님과, 박서원의 할머니와, 친구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박서원도 여동생에게 이 꽃을 주고 싶었겠지.
화사한 꽃다발을 손에 든 채 오늘은 그저 웃었다.
박서원이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오늘은 대학을 가는 대신 공무원 시험을 쳤다. 오늘은 여전히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수사과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박서원은 축하 메시지를 보낸 후 해외로 나갔다. 후원사를 단청으로 옮긴 이후로 박서원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연락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박서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안한데, 한 번만 좀 도와줘.’
죽은 여동생의 친구라는 이유로 전혀 도와줄 필요 없는 여자아이를 도와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어른이 된 오늘은 박서원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자신에게 베풀었는지 안다. 박서원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드디어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며 반갑기까지 했다.
‘무, 무슨, 일, 인데요?’
‘사람 하나만 조사해 줘. 이름은 정해준. 보호 능력자야.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모든 행적을 찾아 줘.’
오늘의 주 업무는 아니지만 초능력자에 관해서는 접근할 권한은 있었다. 특별수사과는 초능력자 범죄를 담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아니더라고 초능력자의 행적은 항상 기록되어 있다. 조금만 발품 팔면…….
은혜를 갚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부탁을 받아들였던 오늘은 정해준의 기록 제일 첫 줄을 보고 후회했다.
10년 전 여름, 그 장례식장에는 정해준도 있었다고 나왔으니까.
가짜 복숭아 사건 때문에 정해준의 집을 조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터진 복숭아로 엉망이 된 거실 말고, 혹시 몰라서 안쪽 방도 살펴보았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도 보았다. 불에 탄…… 가족사진. 그게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뒤로 정해준을 우연히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아는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명함도 주었다.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었다.
‘미, 미안해서…….’
그렇게 사과도 했다. 치졸한 수법이었다. 매일 밤 하는 기도에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미안한 일을 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지금, 오늘은 정해준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괜찮았다. 항상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혼이 가족 이야기를 할 때는 반짝반짝 빛났으니까. 정해준이 본인의 말대로 미쳤거나, 그 이야기들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반짝거리는 혼을 본 오늘은 오랫동안 꿈꿨던 소망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세계, 에서는…… 우, 우리, 엄, 마, 아빠, 도…… 사, 살아있을, 까…… 요?”
정해준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악몽을 꾼 어린 동생을 달래는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럼요. 어쩌면 오늘 씨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몰라요.”
그 말을 듣자 어쩐지 눈물이 났다. 오늘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오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정해준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 미안, 해요…….”
오늘은 정해준에게 사과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미안한지 제대로 말했다. 그동안 기만한 것에 대해서, 정해준이 알리고 싶지 않았을 과거를 살펴본 것에 대해서.
너무나 보잘것없는 사과였다.
적어도 오늘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