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97화 (97/202)

# 97

29. 해묵은 소원(4)

“거기 있는 이무기 이름은 다리화입니다.”

이산래는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아나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단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긴 할 겁니다.”

중간중간 단어가 거슬리긴 했는데 계속 들었다. 어차피 방법은 없었다.

“다리화는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이니 쓸데없는 살생을 저지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저 경청할 수밖에.

“그가 기분이 좋으면 밖으로 꺼내 줄 거지만 기분이 영 그렇다면 무시할 겁니다.”

“너무…… 막연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게다가 목포 상황을 보면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이거든요.”

“목포가 어떻길래요?”

이산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난리도 아닙니다. 갑자기 해무가 끼질 않나,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그 와중에 해는 또 쨍합니다.”

천둥 번개와 폭우는 없지만 해무와 하늘에 뜬 해는 여기도 있다. 심지어 달도 있지.

“사실 해무 낀 거 보고 영 느낌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아까 전화도 그렇게 끊겼잖습니까. 진짜 놀랐어요.”

“그때 마침 그 뱀인지 이무기인지가 지나가서요.”

“어차피 그렇게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무기는 아니니까 괜찮을 겁니다.”

꼭 이웃집에 사는 백수 삼촌 이야기하는 목소리 톤이다.

“아는 이무깁니까?”

“네? 아뇨, 그 이무기는 오래 살아서 이곳저곳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종이로 된 꽃과 풀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어 껍질처럼 두르는 이무기는 다리화밖에 없거든요.”

중앙도서관 자료실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특별수사과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또 다른가. 나중에 이산래에게도 이쪽 방면으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결심했다. 임상규 때처럼 말하면 알아서 말해 주겠지.

“여하튼 다시 말하지만 용이 되기 직전이라서 죽이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기분이 안 좋으면 무시한다면서요? 그럼 이곳에서 못 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름을 가르쳐 드렸지 않습니까. 이제 여기가 중요한 부분인데…….”

내가 여기 와서 특출하게 감이 좋아진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드라마틱한 화법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여기 사람들이 너무 극적이라든지.

……나 같아도 목 없는 말이 돌아다니고 잠실 타워에 청룡이 있는 세계에서 살면 그렇게 될 것 같긴 하다. 그러고 보면 번화가 거리에서도 툭 하고 머리 다섯 개 달린 도깨비가 튀어나온 적도 있었지. 미친 곳이라니까, 진짜.

“이름을 부르면 말을 듣긴 할 겁니다. 다리화가 돌아보면 잘못해서 휩쓸렸으니 꺼내 달라고 하세요.”

“……그냥 되는 대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별문제 없이 여기서 바로 꺼내 줄 테지만…….”

그놈의 이무기 심기 맞추기 어렵네.

“지금은 좋아 보이지 않으니 그럼 그냥 무시하겠죠. 그럼 혹시 고민이 있냐고 물어보세요.”

“고민이요?”

“다리화는 예민한 구석이 있는 이무기입니다. 별거 아닌 걸로 기분이 나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여기에 가능성을 걸어 보죠.”

이산래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고민을 해결해 주면 다리화는 기분이 아주 좋아질 겁니다. 꺼내 주는 건 물론이고, 뭔가 대단한 거라도 안겨 줄지도 모르죠.”

“허.”

“지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혹시 실패한다고 해도 죽이진 않을 테니 그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이산래의 목소리는 묘하게 신뢰가 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숨죽이고 대화를 듣고 있던 오늘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시도해 보고……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고민을 들으면 저한테도 말해 주세요. 여기서 팀원들과 같이 생각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이팅!”

“돌아오실 수 있어요!!”

“선배, 힘내세요!”

수사관들의 목소리다. 저쪽도 스피커를 켜 놓고 있었나 보네. 내내 긴장한 얼굴로 있던 오늘이 그 목소리들을 듣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산래가 장담하지 않았나. 적어도 죽이진 않겠지.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오늘에게 손을 뻗으며 물었다.

“그럼 가 볼까요?”

* * *

이무기 다리화를 찾는 건 의외로 어려웠다.

다리화의 달팽이집이 얼마나 큰지 모르니 다시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존하자는 생각이었다.

몸집이 그렇게 크니 금방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짙은 해무 때문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 있긴 있는 거겠죠?”

“이, 있을, 거예요…….”

오늘은 불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티, 팀장님은…… 바, 박학, 다, 식 하시니까…… 항상, 다, 마, 맞았어요…….”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대단하네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이산래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많이 쳐 줘도 삼십 대 초반이다.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지위까지 오르려면 보통으로는 안 되겠지.

“네…… 대, 대단하신, 부, 분이세요…….”

오늘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였다.

구그그그…….

“이거…….”

차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엔진 진동 때문이 아니다. 땅부터 흔들리고 있다. 아까와 같은 느낌의 진동이었다.

오늘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내, 내, 내, 내릴, 까, 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다부진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기어들어 갔지만.

진동이 조금 더 세지는 방향으로 차를 몰다가 운전이 힘들어지자 멈췄다.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려서 종이 풀 위에 서니 더욱 확실해졌다.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진동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오늘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진동을 따라 걸어갔다. 짙은 안개와 종이로 만들어진 꽃과 풀이 이곳이 정상적인 세계가 아닌 걸 계속 주지시키고 있었다. 기묘한 곳이다.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

오늘이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멀리서 천천히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뱀, 아니, 이무기다.

해무와 이무기의 크기 때문에 거리 감각이 이상하게 꼬였다.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이무기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이무기의 집이라는 여기가 이상한 탓일지도 모른다.

손에 땀이 찼다. 왠지 모르겠지만 입 안이 바싹 말랐다.

“…….”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해무 속에서 천천히 이무기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담묵빛이 도는 새하얀 비늘이 안개 속에서 제일 먼저 보였다.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비늘은 뱀과 닮아 있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쭉 나 있는 갈기는 용과 비슷해 보였지만 뿔과 수염이 없었다. 이도 뱀과 더 닮아 있었다. 용에게 있던 발도 없고, 갈기만 있을 뿐 매끈한 몸통과 반짝이는 비늘은 어딜 보아도 뱀이었다.

뱀이다.

아니, 이무기다.

뱀? 뱀인가? 아니다, 아니, 아니야…….

저건 그놈이 아냐. 그놈은 새까맣잖아. 새까맣고 더러웠어. 징그러웠다고.

눈앞에 있는 건 그놈이 아니다. 그놈이 아냐. 그것도 내 기억이 아니다. 그런데 왜? 왜…… 이 감정을 느끼는 거지?

묵주도 멀쩡히 있다. 혹시나 싶어서 더듬거리며 묵자를 잡았다. 동화되는 걸 막아 주는 게 아니었나?

이무기는 우릴 보지 못했는지 느리게 기어갔다. 그럴 때마다 땅이 흔들려 내 몸까지 덜덜 떨렸다.

막을 수 없다.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뭐 한다고?’

누구? 누구 목소리지?

‘수능 칠 거야.’

‘수능?’

‘그 노인네가 수능 치고 다시 오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주하랑 같이 공부하면 되겠네.’

‘넌?’

‘난 원래 공부 머리 없었어. 계속 아르바이트할 거야. 그거 아냐? 재해민이라고 하면 다들 엄청 안쓰러운 얼굴 하면서 보너스 얹어준다?’

‘씨발, 넌 그게 좋냐?’

‘닥쳐 봐, 백주하. 애는 키워야 할 거 아냐. 우리 내년이면 여기서 나가야 해. 하연이 여기에 혼자 둘 거야? 난 그렇게 못 해. 하연이는 우리랑 있어야 해.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는 거 아니었어?’

‘……너도 수능은 쳐라.’

‘됐어. 그건 너만 쳐. 난 그 시간에 일할 거라니까?’

‘너네 둘이서 알아서 얘기해. 야, 정해준. 넌 어쩔 거야? 넌 여기 일 년 더 있을 수 있지?’

‘그…….’

‘됐어. 얘도 혼자 둘 거야? 어차피 여기 들어올 때 우리 친척이라고 뻥 쳤어. 우리가 데리고 가면 될 거야.’

‘……돈은?’

‘곧 보험금 나올 거야. 당장은 그걸로 어떻게 될 거야.’

‘너도 그냥 우리랑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아?’

‘수능 성적표만 있으면 돼. 초능력자는 대학 나와 봤자 취직 못 하잖아. 그 새끼 때문에 서울에 있는 초능력자들 대부분 죽었으니까 후원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래도…….’

‘……부모님 보험금 쓰기 싫잖아. 조금만 버텨 봐. 후원사 찾으면 바로 올게.’

‘됐고요. 네 방도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 할아버지가 못살게 굴면 와. 알았냐?’

네 명의 소년들이 학교 운동장에 있는 시소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시야가 뒤집혔다.

‘나’는 공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비슷한 풍경이 가득하다. 인부들이 바삐 오갔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은 폐허였다. 그 전에는 아파트 단지였고. 지금은 마침내 재개발이 들어갔지만.

공사장 안전펜스에 광고가 붙어 있다. 평안 오피스텔 분양 문의. 망설이던 손이 그 아래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 하나를 가져갔다.

‘고민이 있는가?’

까만 양복을 입은 나이 든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이때의 ‘나’는 그의 정체를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를 알고 있다. 노인은 지팡이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지 않은가?’

‘내’ 소원은…….

아니, 정신을 차려라. 내 소원은 집에 가는 거다. 집, 가족이 모두 살아 있는, 내 세계에 있는 우리 집!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게 이무기의 하얀 비늘이라는 건 조금 늦게 깨달았다.

“……!”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에 있는 오늘을 붙잡고 뛰었다. 몇 번 넘어질 뻔했지만 그래도 달렸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따라왔다.

“헉, 허억…….”

숨이 가빴다. 뛰어서 가쁜 거다. 이렇게 뛰는 심장도 달려서 그런 거다.

“…….”

이무기의 새하얀 비늘이 해무 속으로 사라지고, 그 커다란 몸통이 옅은 그림자로 보일 정도로 멀어진 다음에야 달리는 걸 멈췄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른세수만 했다. 저 이무기는 그놈이 아니다. 기억 속의 ‘정해준’은 내가 아니다. 그런데 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억누른 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묵주가 어느 정도 내 사고를 유지해 주는 건 맞다. 하지만 지네를 잡을 때의 경험이 너무 극적이라 잊고 있었다.

통장을 보았을 때도 묵주는 하고 있었다.

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 ‘몸’이 끔찍하게 여기는 걸 볼 때 뒤섞인다. 뒤섞여서, 나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정해준’이 과거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야 할 필요는 있어도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동화되면 그대로 끝난다. 직감했다. 한번 완전히 섞여 버리면 돌아갈 수 없다.

“……흐.”

작게 숨을 토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급하게 달려서 그런지 얼굴이 시뻘게진 오늘이 일그러진 얼굴로 이무기가 있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오늘은 영문도 모른 채 나한테 휘말려서 급하게 달렸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나는…… 뱀이…… 시, 싫어요…….”

그동안 오늘에게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짙은 혐오감이 그 목소리에 있었다. 이무기가 있는 방향을 보는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이무기는 보이지도 않는데, 오늘은 한 자 한 자 씹어 먹을 듯 말했다.

“진, 짜, 진…… 짜, 싫, 은데…….”

나는 가만히 오늘의 고백을 듣다가 말했다.

“나도요.”

“…….”

“나도 싫어요.”

오늘은 나를 돌아봤다. 일렁이는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지금 내가 느끼는 혐오를 오늘이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눈을 마주하자 오늘이 왜 뱀을 싫어하는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흰 눈이 내려앉은 붉은 꽃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 꽃의 이름을 산함박이라고 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뱀을 생각했다. 그 뱀은 정말 나쁜 놈이다.

그 뱀이 ‘정해준’의 가족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정해준’은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난쟁이를 보며 ‘정해준’은 고민했다. 그때 ‘정해준’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에게도 남아 있다.

소원을 빈 건 더 뒤의 일이다. 그러나 소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해준’이 무얼 떠올렸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내 가족…….’

가족.

부모님과 여동생.

우리 가족.

‘오빠, 이번에 새 드라마 시작해서 보는데 오빠가 좋아할 만한 배경이다? 이것 봐.’

‘CG 너무 조잡한 거 아냐?’

‘케이블 드라마 1화인데 좀 봐 줘. 그래도 캐스팅은 다 엄청나던데.’

정해영이 말했다. 처음에 몇 번 말을 받아 줬더니 지겹도록 내 귀를 괴롭힌 놈이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도 반년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을 보지 못한 지 반년이나 지났다.

“…….”

기묘한 충동이 나를 뒤흔들었다.

“오늘 씨.”

눈물이 고여 있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거 알아요?”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여동생이 지금 이 순간 죽도록 그리웠다.

“우리 가족은 모두 살아 있어요.”

* * *

나는 오늘에게 모든 걸 말했다.

10년 전 ‘정해준’의 가족이 죽은 일을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 가족이 아니며 내 가족은 멀쩡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하나씩 이야기했다. 이곳이 내 세계가 아닌 것부터, 여동생이 즐겨 보던 드라마와, 띄엄띄엄 기억하는 드라마 내용을.

초능력과 영물 따위는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해서도.

원래 우리 가족이 어땠는지. 부모님이 어디서 일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내 대학 졸업식에 엄청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와서 부끄러웠다는 것도.

여동생이 어디서 이상한 걸 듣고 와서는 여자 친구인 척하며 군대에 편지를 보냈던 이야기도 했고, 걔 수능 끝나고 비싼 레스토랑 가서 수고했다고 밥을 먹인 얘기도 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자꾸 내 기억이 아닌 것이 떠오르는데,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더 섞여서, 마침내 내가 분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 버틸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도 솔직해졌다.

누군가는 ‘내’가 이곳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걸 알아주길 원했다. 최소한 이야기라도 들어주었으면 했다.

어쩌면 그저 거대한 뱀이 없는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날 미쳤다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분명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차마 오늘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종이로 만들어진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나는 미쳤을 거예요.”

“…….”

“가족이 죽고 돌아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진짜예요. 오늘 씨도 그랬잖아요. 내 혼과 백이 분리되어 있다고…….”

오늘은 대답이 없었다.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다가 입을 다물었다. 괜한 넋풀이에 끌어들인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이무기에게 휩쓸려 이상한 곳에 갇혔는데, 같이 있는 사람이 미친놈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그, 그럼…….”

한참을 묵묵히 내 이야기만 듣던 오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이 날 미친놈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다 업보지, 뭐. 각오를 하고 오늘을 보았다.

“…….”

오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땀에 젖어 엉망인 얼굴이, 말간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세계, 에서는…… 우, 우리, 엄, 마, 아빠, 도…… 사, 살아 있을, 까…… 요?”

오늘은 어떤 혐오와 실망과 두려움도 없이, 그것만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