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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만 악에서(3)
대한민국에 있는 초능력자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적은 수도 아니다. 전국에 등록된 초능력자 수는 약 250만 명. 그중 9할은 3등급 이하이다.
겸업이 금지되어 있는 건 4등급 이상의 초능력자들이다. 이들은 비상근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며 최저임금에 맞춘 월급을 받고,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등급이 높은 초능력자들은 기업 후원으로 한순간에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소수다.
비상근무에 동원되는 4등급 이상의 초능력자 중 실제로 비상근무에 얼굴을 내미는 초능력자는 그리 많지 않다. 비상근무는 보통 요괴잡이니 살상력이 높은 이들을 위주로. 서울만 따지면 1000명 내외다. 갑자기 수가 확 줄어든다. 이는 기본적으로 특수 능력자들 중심으로 비상근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비상근무 명단에 이름이 올라도 누구는 자주 불려 가고 누구는 거의 불려 가지 않는다.
불합리한 일이다. 당연하다.
그런데도 왜 이 시스템이 계속 돌아갔느냐, 하면 초능력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튀어나올 때마다 혜택이 하나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초능력자에 한해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한테까지 돌아가는 다양한 혜택이.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는 세금 면제부터, 병원비, 학비 지원, 입시나 국가직 공무원 시험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초능력자친인척전형이라든지. 이는 4촌 이내, 해당 초능력자가 지정한 피가 이어진 법적 가족이라면 모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다. 직접적으로 돈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가족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이라면 우리 집안에 초능력자 하나 정도는, 이라는 생각을 품을 만한 것이다.
솔직히 이곳의 ‘정해준’같이 가족이 없는 이들이라면 누리는 혜택은 적어지겠지만.
“쭉 달려. 도로 따라서.”
김정윤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명의 초능력자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는 서울을 벗어났다. 서울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될 텐데.
정부에서 초능력자들을 홍보할 때는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혜택과 최상위 초능력자들에게 조명을 준다. 요괴잡이에 동원되는 초능력자들의 화려한 모습만 뉴스로 부각된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그저 동경하는 것이다.
최상위 초능력자들은 기업 후원을 통해 단숨에 억대 연봉을 받는다. 동일 능력을 찾기 힘든 특수 능력이라면 더욱 대접을 받는다. 어설프게 괴로운 건 손요운의 친구 같은 원래 벌이가 좋았던 일반인이 각성한 경우다. 그럭저럭 흔한 능력을 가진 낮은 등급의 초능력자들.
그 수가 많을까? 절대 아니지. 그렇기에 같은 초능력자들이라도 쉬쉬하며 덮기 마련이다. 특히 비상근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불려 다니지 않는 이들이라면 더욱 모른 척하기 바쁘다. 그래야 자신들의 혜택이 유지되니까.
독재정권 아래서 기형적인 구조로 탄생한 초능력자 사회구조가 그렇게 기형적으로 단단해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초능력자 대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다. 실제로 그 뒤로 개선이 좀 되기도 했었는데 10년 전 강철이가 서울 북부를 강타하면서 초능력자의 수가 확 준 이후로는 다소 잠잠해졌다.
지금은? 직접 피해 본 이들이 아니면 입 다물고 있는 거지, 뭐. 초능력자 본인이 불만스럽다고 해도 가족들이 받는 혜택 때문에 조용히 있는 거고.
아마 손요운과 김정윤도 각성 이후 본래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더라면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 공산이 컸다. 둘 다 본래 직업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던 모양이니까. 복귀가 안 되더라도 소방서나 경찰에 자주 협업으로 불려 갔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본래 인간이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 의문을 품는 법이니까.
“저기, 저 앞이야.”
김정윤 내비게이션은 한 시간 정도 달려서 지금은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 앞에 멈췄다. 중간부터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왔던 터라 주변에는 농지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게 분명한 저택은 좀 더 날이 어두운 시간이었으면 귀신이 나올 법하게 생겼다.
차가 멈추자 김정윤은 눈을 꾹 누르며 신음 소리를 냈다.
“아, 미친, 존나 아파…….”
“누나, 괜찮아요?”
“이렇게 오래 쓰는 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봐. 안 그래도 안구건조증 있는데 엄청 뻑뻑하네.”
김정윤은 손바닥으로 눈 위를 꾹꾹 물렀다. 계속 앓는 소리를 내는 게 꽤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사기적인 능력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눈이 건조해지는 것 말고 다른 부작용이 있다면 모를까.
“으…….”
김정윤이 계속 괴로워하자 옆에서 손요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밥 사 줄게.”
여기서 밥이라고?
손요운이 그런 캐릭터였나 싶어 얼굴을 봤지만 들었던 말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김정윤은 한술 더 떴다.
“고기로.”
“그래.”
“술도.”
“……그래.”
김정윤은 주머니에서 인공눈물을 꺼내 눈에 넣었다.
“오랜만에 오래 썼더니 죽겠네. 좋아, 괜찮아. 안 내리고 뭐 해?”
“…….”
김정윤이 진정되자 모두 차에서 내렸다.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김정윤은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낡은 집을 가리켰다.
“저 집 안으로 들어간 이후 안 나왔어. 땅으로 꺼지지 않은 이상 안에 있을 거야.”
손요운은 굳은 얼굴로 폐가를 보았다. 심경이 복잡하겠지.
손요운의 이름 모를 친구가 안타까운 점은 그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드는 시기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었으니 힘든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만 버텼더라면, 생활이 안정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상 쉽게 말을 할 순 없지만.
심각한 얼굴을 한 손요운과 달리 나는 조금 심드렁한 기분으로 손요운을 보았다. 엄마는 냉장고 CF에 나오는 애가 사윗감이었으면 좋겠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이야기했었다. 정작 정해영 취향은 박서원 같은 얼굴이겠지만.
그래도 성격은 박서원보단 손요운이 낫지. 친구 때문에 인생 말아먹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래 봤자 다른 쪽은 복수 때문에 인생 말아먹었으니 그보다야 낫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출발하기 전 내게 이야기한 이상으로 있을 것 같진 않다. 대충 손요운이 들어가고 나는 친구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고. 그동안 손요운이 설득하고. 여태 한국 드라마스러웠던 면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가죠.”
봐라.
이딴 전개니까 내가 자꾸 드라마를 떠올리는 거 아냐. 이곳이 완전히 드라마 속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사실 주인공이니 악당이니 뭐라고 불러도 이곳이 ‘또 다른 세계’라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이곳 또한 ‘현실’이라면 주인공이나 악당이 있을 리가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지는 말고. 그저 자기 이익에 맞춰서 움직인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내 이익은 박서원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손요운 대신 박서원 팀과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손요운과 한평원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손요운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그 드라마 작가가 굳이 손요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뭘까?
단지 손요운과, 그 친구들의 목표가 초능력자의 인권 신장이기 때문에? 이들이 가기로 한 길이 박서원과 부딪치기에 대척점인 걸까?
아니, 그렇다면 애초에 왜 박서원을 악당으로 내세웠을까? 어차피 케이블 드라마인데 복수하다 서울 폭파시키는 주인공을……. 이럼 욕 오지게 먹긴 하겠군.
어쨌든 의문점은 그거다. 손요운을 주인공이라 치면.
손요운이 그 쓰레기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그쪽이 더 주인공 같아서?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 때문에? 그도 아니면 진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만약 드라마 작가가 무슨 계시 같은 걸 받아서 이곳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썼다고 하면,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소리일까?
“그럼 해준 씨,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켜며 폐가를 보았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지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했다. 문이 모두 닫혀 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창문 몇 개가 깨져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크기다. 저기도 막아야겠는데.
“네, 크기가…….”
낡은 집을 보며 대충 크기를 가늠해 봤다. 그리 크진 않은데 다 덮을 수 있으려나.
손목에서 흔들리는 묵주를 보았다. 잠깐 벗어 볼까? 지네잡이 때를 떠올리면 그다지 벗고 싶진 않았다. 이 묵주가 ‘정해준’과 섞이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면…….
아니지. 한 번쯤은 그 점도 확실히 해야 한다. 벗어 볼까?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이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망하기 딱 좋은데. 그렇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도 망한다.
“누가 들어갑니까?”
“저만 들어갈 겁니다.”
손요운이 냉큼 대답했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밖에서 대기하는 거죠?”
“네.”
“넵.”
오른손으로 묵주를 만졌다. 그래, 한 번쯤은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잠깐이다. 정 아닌 것 같으면 다시 묵주를 차자. 묵주를 다시 차면 능력도 조금 제한된다. 그러면 저 집을 감쌀 크기로 차단막을 유지할 순 없겠지만 그건 손요운이 알아서 할 것이다.
“손요운 씨가 들어가면 집 주위로…… 치겠습니다.”
“집 주위로요?”
한평원이 깜짝 놀랐다.
“저걸 다 차단막 안에 넣을 수 있어요?”
증조부 때문에 보호 능력에 익숙한 한평원이 깜짝 놀랄 정도의 크기란 거지. 다른 데서는 크기를 줄여야겠다.
“오래 유지하는 건 힘들고요.”
손요운을 향해 말했다.
“그 친구라는 사람 되도록 빨리 붙잡으세요. 유지하기 힘들면 그냥 없앨 거니까요.”
이 정도면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의미가 없을 만도 했다. 그러나 손요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손요운이 먼저 움직였다. 친구란 사람이 혹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 손요운이 먼저 들어가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나는 그 뒤다. 그래도 이렇게 쫓아오는 친구 사이니 그 사람도 바로 도망치진 않겠지.
손요운이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도 움직였다. 놓치면 놓치는 거고, 잡으면 잡는 거고.
* * *
차에서 내려서 폐가를 향해 걸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불어 덥지는 않았다.
거리를 가늠했다. 손요운이 친구 시선을 끌고 있어야 하는데. 묵주를 매만졌다.
“…….”
천천히 묵주를 풀었다. 손목에 차고 있어야만 효과가 있는 건가? 아니면 몸에 지니고 있으면 대충 효과가 있는 건가?
긴가민가한 기분이다. 일단 손에 들고 있는 건 안 되겠지. 땅에 떨어뜨리기 전에 시험해 보자는 마음에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 봤다.
흠.
몸에 안 닿으면 되는 건가?
기묘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몸이 가볍다. 몸은 가볍지만 속은 좋지 않다. 어두운 감정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역시 묵주를 계속 하고 다녀야겠다.
작은 단독주택 크기의 폐가다. 한때는 누가 살았을 수도 있다. 깨진 벽돌 위로 수풀이 우거져있다. 저 집을 감쌀 만한 보호막. 아니, 차단막을.
“오……. 이게 그 유명한 보호 능력이라고? 신기하네.”
어느새 다가왔는지 김정윤이 옆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준 씨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능력 개화 속도가 빠른데요?”
한평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무어라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그 위로 다른 목소리가 덮였다.
‘……빠.’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
정해영인가?
‘해준 오빠.’
아니다. 정해영은 저렇게 얌전하게 날 부르지 않는다. 그럼 누구지?
‘오빠, 우리 오빠 언제 와?’
순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물었다. 처음 보는 아이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본 얼굴 같은데…….
나는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정해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연이가 오늘 숙제 다 하면 올 거야.’
아.
백하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