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27. 백조의 모험(1)
여름이라기엔 조금 부족하고, 봄이라기엔 너무 더운 시기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그냥 여름이지 않나 싶지만,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늦봄이다.
지네를 잡느라 한바탕 한 이후 묘하게 조용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게 바로 폭풍 전의 고요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몰려올 폭풍이 나를 집으로 날려 줄 토네이도였으면 좋겠다.
왼쪽 손목에서 오늘이 새로 주었던 묵주가 흔들렸다. 이 묵주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내 맑은 정신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지네잡이 때 머릿속을 휘저었던 질척한 감정이 아직 기억난다. 그 장군님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수사관들의 말대로 신라인들은 도움이 안 된다.
“음…….”
휴대폰을 봤다. 연락이 들어온 건 아무것도 없다.
지하국에 대한 이야기와 묵주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신라에 대한 이야기를 뒤져 봐도 딱히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었다. 지하국도 기껏해야 지나가던 선비가 지하국에 내려가 괴물을 물리쳤다, 뭐 이런 것뿐이고.
묵주에 대해서는……. 바티칸이라도 가야 하나?
그래서 오늘이나 이산래의 연락을 기다리려고 했다. 했는데……. 오늘 아침 속보로 남해안에서 보물선이 인양되었다나 뭐라나. 무슨 옛날 중국에서 온 상선이었다는데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경주에서 유물이 발굴되었을 때 수사관들이 끌려갔던 걸 생각하면 이번 건에도 백 퍼센트 불려 갔다.
목 없는 말이 날뛰었을 때 수사관들의 몰골을 떠올렸다. 그 파리한 낯짝하며……. 별수 있나. 어차피 연락해도 못 받을 텐데 기다려야지. 이래서 공무원은 안 된다.
……그런데 그 배, 신라 시대 배는 아니겠지.
* * *
도서관 자료실에 박혀서 책만 읽기에도 지쳐서 밖으로 나왔다. 내가 대학교 때도 이렇게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데……. 빌어먹을 정해영.
“꽥.”
담배라도 피우고 싶은데 흡연구역이 보이지 않았다. 흡연구역을 찾으러 가 볼까 했다가 그것도 귀찮아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 뽑아 들고 적당한 벤치에 앉았다.
“꽥.”
그리고 괜히 걱정되어서 남해에서 인양되었다는 배가 어느 시대 배인지 검색했다. 신라만 아니어라. 신라……. 거지 같은 놈들.
“꽥!”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다.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내가 원하지도 않은 일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뒹구는 일은 사양하고 싶다. 처음 이곳에 오게 됐을 때에 비하면 뭔가 많이 알게 되기는 한데 풀린 건 하나도 없다. 도대체 ‘이곳’의 정해준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난 성당도 다니지 않는데 이 묵주는 도대체 왜…….
“꽥!!!!!”
“뭐, 씨발, 깜짝이야!”
푸드득.
커다란 백조가 날개를 흔들었다. 기다란 목에 빨간색 목걸이가 채워진 백조다.
“뭐야?”
“꽥!”
“이게 왜 여기 있어?”
“꽥꽥!”
빨간색 목걸이가 아니어도 서울 한복판에 날갯짓하는 백조는 하나뿐일 거다. 아니, 둘. 둘 뿐이다.
“꽤애애액!”
백조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부리로 나를 쪼기 시작했다.
“아, 뭐야, 진짜?! 왜 여기 있는 건데?”
“꽤애액!!”
백조는 거칠게 파닥파닥거렸다.
“어…….”
이 백조가 원래는 사람이고, 사람이었을 적 내…… 그러니까 이쪽 정해준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꽥!”
“……여긴, 어쩐 일입니까?”
백조는 그제서야 부리로 날 쪼는 걸 멈추고 가슴 털을 쭉 내밀며 거드름을 피웠다. 진짜? 이젠 백조한테도 존댓말 해야 해? 씨발, 진짜, 뭐…….
아무리 원래 사람이었다고는 해도 백조로 변하는 저주에 걸리는 인간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현지에서도 걸리는 사람이 없다는 저주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딱히 존대를 해 주고 싶은 인간상은 아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불쌍한 내 인생.
“동생은요?”
“꾸으윽.”
오빠 잘못 만난 불쌍한 고등학교 3학년 동생을 들먹이자 백조는 목을 비틀었다. 저게 원래 백조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싶었지만 어차피 백조도 아니고……. 내부는 인간일 수도 있겠지.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람이 백조로 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아니, 저번에 만났을 때는 박서원 씨한테 신세 지고 있지 않았어요? 왜 여기 혼자 있어요?”
“꾸으으으윽.”
백조는 반대쪽으로 목을 비틀었다. 부리가 움찔움찔거리는 게 이를 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흠. 착각이겠지.
“잠깐만요.”
손을 뻗어 백조의 목에 있는 목걸이를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작은 개목걸이처럼 보이지만……. 이걸 오빠 목에 달아 놓은 고등학생도 무섭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목걸이에 달린 작은 금속판에는 주연,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쌍둥이 중 둘째의 이름이다.
뒷면에는 예상대로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박서원에게 연락할까 싶었지만 백조의 반응이 격하기도 했고, 어차피 주 보호자는 동생 아닌가.
금속판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려다가 백하연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말 동생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빠들이다.
[안녕하세요, 하연 학생. 지난번 만났던 정해준이라고 합니다. 지금 오빠분 한 마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연락 바랍니다. 참고로 저와 같이 있는 백조는 백주연 씨 되십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와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여동생 인생에도 도움 안 되고 내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근데 진짜 왜 여기 있는 건데요?”
서울 한복판. 그것도 도서관. 저주 걸린 백조가 있기에는 적절치 않다. 사실 어디가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 동물원?
백조는 고개를 홱 돌리며 내 질문을 못 들은 척했다.
“저기요?”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미친 건가?
“이보세요?”
부리로 깃털을 정리했다. 작매가 비웃었던 대로 머리까지 새대가리가 된 건가?
“백주연 씨?”
“꾸엑.”
백조는 생각보다 울음소리에 다양한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 내가 백조랑 대화할 일이 있어야 알지.
어쨌든 지금 백조가 굉장히 불만스러워하는 건 알겠다.
……대체 왜?
“왜요?”
“꽥.”
“아니 뭐가 불만이냐고요.”
“꽤액.”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듣겠거든요.”
백주연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왜 백조한테 저런 눈빛을 받고 있어야 하냐고.
“경찰에 데려다줘요?”
원래 미아는 경찰서에 데려가야 하는 법.
“꽥!”
백조의 반응은 격했다. 동생이 관리를 잘 해 주는 건지 보송보송한 하얀 깃털이 펄럭거렸다. 나는 강아지나 고양이면 몰라도 조류와는 친하지 않다.
“백주연 씨, 머리까지 새가 됐습니까?”
“꽥!”
백조는 심통 맞게 울었다.
“…….”
조류와 대화하려면 눈치를 키울 수밖에 없다. 억울한 일인데, 조금이라도 지능이 높은 영장류가 힘낼 수밖에 없지. 이해해 주자. 새대가리지 않은가.
혹시나 해서 백조를 불렀다.
“……백주연 씨?”
“꽥!”
과연 박서원의 동창답게 머리가 제정신이 아니다.
“호칭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끄덕끄덕.
상하로 흔들리는 백조의 목을 보았다. 잡아서 비틀기 좋게 생겼다. 작매가 왜 저걸 잡고 흔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백주연?”
“꽥?”
백조는 입을 헤 벌렸다. 이것도 아닌가 보군.
“주연아.”
“꽤액??”
원래 한 살 차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야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지.
“야.”
“꽤애애액!”
정신을 차린 백조가 날뛰기 시작했다. 백조 비위 맞춰주기 어렵구만.
“백주연 씨.”
“꽤애액.”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시면 어떡합니까?”
“꽤액!”
“나 참…….”
“꽥! 꽥꽥꽤액꽥꾸웨엑!”
“백주연 씨도 싫고 야, 도 싫으면 뭐라고 불러 줘요?”
“꾸웨에엑…….”
원래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놀리진 않는데 앞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니라 백조라 그런지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
……아니지, 이쪽 정해준 때문인가? 아직 장례식 때의 기억밖에 없으니 그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백조… 아니, 백주하나 백주연과 안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선배?”
“꽥!”
진짜 아는 사이였었나.
원래 정해준이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알 게 뭐냐. 나에게는 이런 백조로 변하는 고등학교 선배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우리 학교는 동아리 활동도 딱히 없었고 선후배 사이에 만나는 일도 드물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고 싶어요?”
백조는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백조 모습으로도 용케 그런 거드름을 피우는 꼴을 할 수 있구나 싶어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꽥.”
“그래요. 그래서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꽤애액.”
머리가 아파 왔다.
“꽥. 꽥. 꽥꽤애액. 꽥.”
백조는 뭔가 할 말이 많은지 시끄럽게 울었다. 그래 봤자 나는 오리 울음소리와 백조 울음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얄팍한 조류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고 쳤죠?”
“꽤애애애액!”
백조는 억울한 몸짓으로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 절절한 몸짓에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백조, 백주연을 보았다.
오늘의 말대로라면 지네잡이 할 때 나는 이 몸과 어느 정도 동화가 된 것이다. 혼이 흐릿해졌다고 했으니까. 원래라면 좋은 현상이지만 이상한 불길함을 느껴서 날 막았다고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이 내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대로 계속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구사일생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 번 그렇게 동화될 뻔하고 나자 확실히 ‘내’ 감정이 아닌 걸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기묘한 친밀감도 ‘내’ 것이 아니라 이 ‘몸’, 이곳의 정해준의 감정일 것이다.
“아닌 척해 봐야 뻔합니다.”
“꽥!”
“억울한 척하지 말고요. 아니면 여기 왜 혼자 있어요? 그 모습으론 버스나 지하철도 못 탈 텐데.”
“꽤애액…….”
백조가 흐물흐물 바닥에 늘어졌다. 그 모습에 코웃음 쳤다.
그날 보험금이 있는 통장을 발견한 이후로 당연히 이곳에서 정해준의 흔적도 찾아보았다. 장례식 기억이 떠오르는 바람에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대로 묻어 둘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10년 전 그 사태 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무너져서 그때 기록이 남아 있는 게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건 좀 뼈아픈데.
이곳에 막 들어왔을 때는 가족과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었다. 알고 난 뒤에는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 상황만 미묘하게 달라지고 별로 바뀐 건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아니다. 일단 가족들이 그렇게 되었는데 달라진 게 없다고? 웃기지 마라. 이곳은 내 세계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곳이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처음부터 ‘정해준’을 파악해야 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스스로도 차이점이 느껴질 정도다.
지이잉.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선배.”
“꾸에엑!”
백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사고를 치고 도망쳤다는 내 추측이 사실일 확률이 높아져 갔다.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백하연입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되는 거 알지만,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괜찮으시다면 그 새끼 좀 죽여 주세요.]
……진짜 무슨 짓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