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26. 의미 없는 공양(6)
특별수사과, 줄여서 종종 특수과라 부르는 곳은 하는 일이 좀 포괄적이다.
초능력자 범죄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도 있지만, 대개 특별수사과의 업무는 저주나 주술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 몰려 있다. 즉, 초능력과는 별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을 수사하는 기관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특별수사과에서 근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관찰하고, 수사하여,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간단하지 않겠는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다.
“사람의, 정, 신을…… 이루, 는 것을 혼(魂)이라 하고, 유, 육체를, 이루는, 것, 을…… 백(魄)이라, 해요…….”
오늘은 그런 특별수사과의 수사관이다. 이산래가 지나가면서 말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능력은 믿을 수 있다고. 오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복숭아를 먹고 이곳에 혼이 고정되었다면 이 육체는 내 것이 아니라 ‘이곳’의 정해준의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곳’의 정해준과 ‘나’는 과연 동일 인물일까? 오늘이 이야기하는 혼과 백이 동일하여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청룡이 그 복숭아는 먹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 굳이 이야기를 했을까?
“저, 저는, 비교, 적…… 뚜, 뚜렷하게, 보, 보는, 편인데…….”
오늘은 느릿하게 말했다. 주위의 소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보통, 인, 간은, 혼… 과 백의, 결합이 다, 단단, 하니까…… 구, 구분이, 되지 않, 아요.”
혼과 백이 분리되는 건 죽을 때뿐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
“그, 그런데, 해, 해준, 씨는, 호, 혼이, 가, 가끔…… 흐, 흐릿, 해질, 때가 있어요…….”
“……흐릿해진다고요?”
“네, 네에…….”
그건 어떤 의미일까. 분리가 약해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분리가 끊어진다면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생겼다.
오늘이 이상하게 보지 않도록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히 수상하게 보이면 나를 도와준답시고 방해할지도 모른다. 말했듯이 혼과 백이 분리되는 건 죽을 때뿐이니까.
“무, 물과, 기름처, 럼…… 분리되, 어, 있…… 던 혼과, 백, 이…… 도, 동화되는 것……처럼…… 보여서…….”
혹시나 돌아갈 수 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불과 몇 초 만에 차갑게 식었다.
동화된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원래, 라면…… 조, 좋은, 현상인데…….”
혼과 백이 분리된 것 보다 합쳐지는 게 좋긴 하겠지. 그래서 오늘도 원래라면 가만히 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이해했다. 이해할 수 있다.
“하, 하지만, 백, 이…… 호, 혼을, 붙잡, 아, 두는? 그, 런 느낌이…… 들어서, 아, 안 좋은…… 기분이…….”
오늘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해, 가…… 가지, 않……. 그, 근데, 느낌, 이…… 너, 무, 안…… 좋아서…….”
특별수사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이 좋기만 하면 안 된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감각이 오감이 아니라 육감(六感)이라고 말해지는 곳이다. 수사관이 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힘, 육감이 필요하다.
오늘은 그런 감각에 의지하여 말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줄 수 있어요?”
“그으, 그러니까아…….”
오늘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고심하는 모습이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오늘에 대한 의심은 조금 가셨다.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지만 적어도 오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깐 오늘에 대해 고민하다가 조금 전 내가 능력을 쓸 때 말렸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것도 확인해야지.
“능력을 쓰는 게 좋지 않다는 말인가요?”
“아, 아뇨, 그건, 아, 아니에요…….”
보호 능력은 육체, 이곳의 정해준의 능력인 것 같아 물어봤더니 오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거, 랑은…… 사, 상관, 없, 는…….”
“상관없다고요?”
“그, 그것, 보다는…….”
오늘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펴, 평소에는 좀, 분리되어 있, 어도…… 그런, 느, 느낌이, 없…… 었는데, 어쩐, 지…… 오, 오늘은, 희, 미한…… 느낌, 이라…….”
오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그, 최근에, 음……. 요, 요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굳이 따지자면 여기서 살아 있는 매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다.
“뭔, 가…… 충격, 받, 은…… 일…… 이, 있, 다거나?”
오늘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내 눈치를 보면서까지 물어야 하는 질문인가 싶었지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많지.
“딱히 없어요.”
많은데.
“그, 그럼…….”
오늘은 손목에 두르고 있던 묵주를 풀었다. 지난번 내게 주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묵주였다.
“이거…….”
“……이건 오늘 씨 거잖아요.”
“아, 아뇨, 그, 지네…… 같은, 거, 상대할 때……. 부, 부적, 없, 이…… 는, 위, 험해요……. 앞으로, 는, 그, 그러지, 마, 세요…….”
오늘은 굳이 내 손목에 직접 묵주를 둘러 주었다. 예전에 오늘에게 묵주를 받은 이후로 매일 하고 다니다가 요 며칠 안 했다고 허전했었는데 뭔가 안정된 기분이었다.
……아니, 잠깐만. 느낌이 다른데.
머리가 확 개인 기분이다. 눈앞이 한결 맑아졌다. 이건 또 무슨 현상이야?
“어, 어어…….”
오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 해준 씨?”
“네?”
“해준, 씨, 혼이…… 뚜, 뚜렷해, 졌……?”
“네?”
“……?”
지금 이게 기분 탓이 아니란 거지?
* * *
오늘은 엄청 당황했다.
“왜, 왜……?”
오늘과 길지 않은 만남 동안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다.
오늘은 두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마, 마, 말도 안 돼! 왜, 왜, 이래, 요?”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으, 아, 죄, 죄송해요!”
오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손을 내렸다. 그래도 내 얼굴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오늘 내내 흐릿했던 내 혼이 뚜렷해졌단 말이지? 나는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처럼 혼과 백이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분리되어 있다는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겠지.
……내 혼은 여기 있고, 내 육신은 저쪽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쪽 정해준의 육신이 이곳에 있다면 혼은 어디에 있을까? 뒤바뀐 것일까? 그렇다면 그놈은 지금 내 가족들과 있는 걸까?
“음…… 잠깐만요.”
혹시나 싶어 주위에 작게 보호막을 펼쳐 보았다.
“왜, 왜요?”
“…….”
지네를 잡을 때처럼 물 흐르듯 펼쳐지던 느낌이 없다. 스포츠카를 타다가 경차로 갈아탄 느낌이지만 어쩐지 안도했다.
도대체 이 묵주가 뭐라서? 그리고 그 빌어먹을 신라놈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톡톡.
“야, 너 수사관님이랑 둘이서 뭐 하냐?”
그때 백성찬이 어이없는 얼굴로 보호막을 두드렸다.
“아, 뭐 좀 시험해 볼 게 있어서요.”
“수사관님이랑?”
“수사관님께 조언을 구했죠.”
“그으래애…….”
백성찬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 대충 끝났단다. 난 똘이 씻겨 줘야 해서 바로 들어갈 거야.”
물에 쫄딱 젖어 있는 불개가 백성찬의 말에 맞추어 부르르 털을 털었다.
“그래요?”
“넌 안 가고?”
“수사관님이랑 잠깐 얘기할 게 있어서요.”
“그으래애?”
“징그럽게 말꼬리 늘리지 마요. 보기 안 좋거든요.”
“아, 그래…….”
백성찬은 뭔가 맥이 빠진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진짜 왜 저래? 개 키우더니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
나는 멀뚱히 눈만 깜빡이는 오늘을 돌아보았다.
“오늘 씨.”
“……네?”
“계속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죄송한데, 저번 복숭아 건과 같이 이것도 좀…….”
“아, 네, 네에, 괘, 괜찮아요……. 저, 저희, 도, 신…… 세, 졌으, 니, 도, 도와, 드려야, 죠…….”
오늘은 팀장, 이산래와 이야기해 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며 맑게 웃었다.
역시 괜한 의심이었나? 등장인물이라 해도 오늘이 굳이 나에게 이상한 짓을 할 이유는 없다. 내가 모든 걸 파악한 건 아니니 방심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오늘에게는 다른 등장인물과 연결고리가 없다.
특별수사과는 그쪽에서도 말했듯 초능력자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적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이산래와 김도훈 또한 등장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청룡은 또 이산래와 안면이 있다고 했지. 그러면 이산래는 등장인물인가? 드라마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그래도 특별수사과 등장인물 한 명 정도는 있을 거고…….
젠장, 생각할수록 꼬이기만 한다.
“그, 저, 일…… 마, 마무리해야 해서…….”
“아, 네. 가 보세요. 저도 들어가야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오늘 씨.”
“네, 해, 해준 씨도요.”
오늘은 생긋 웃고 마네킹이 타 버린 자리에 술을 뿌리는 수사관들에게 합류했다.
나도 슬슬 가 볼까. 한평원의 능력 때문에 젖어서 찝찝하기도 했고. 그래도 어쩐지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니 남아있는 초능력자들이 별로 없었다. 어차피 뒤처리를 하는 건 공무원들이지 초능력자들이 아니다. 다들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사라진다. 나도 평소에는 그랬고.
순식간에 소방차들도 빠지고, 구급차도 사라졌다. 이제 정말로 현장에는 요괴관리팀 사람들과 수사관들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그동안 일이 끝나고 현장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사람 중 하나였었는데 이렇게 남아있는 건 처음이다. 방과 후 교정 같은 한가로움이 느껴졌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 건 그때 즈음이었다.
“안녕하세요.”
타 버린 재만 남은 현장에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영 씨, 오셨습니까? 이번에는 수거해 가실 게 없는데…….”
“아까 연락받았어요. 지네잡이의 새로운 방법이 나왔다면서요?”
“네, 정해준 씨가 수고해 주셨죠. 그, 보호 능력자 말입니다…….”
“저희 단청에서 후원해 드리는 초능력자분이신데 당연히 알죠. 저희로서는 요괴 사체가 나오지 않는 건 아쉽긴 하지만 초능력자분들이 더 안전해지면 좋은 일이죠.”
“하하, 그런데 이번에 사체가 나오지 않은 건 그것보다는 지네가 좀…….”
눈을 가늘게 뜨고 임상규와 이야기하는 여자를 보았다. 새하얀 얼굴, 새까만 머리카락.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단청 구민석 부회장 아래에서 일하는 여비서다.
“어머, 체액까지 독이 있었다고요? 그건 드문 일인데.”
“그래서 다흰 씨 능력으로 사체가 전부 정화되었습니다.”
“어머머…….”
나에게 신선비를 놓치라며 협박했던 여자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지네잡이 한다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분들이 많은데…… 아쉽게 되었어요. 체액까지 독이라면 사체가 멀쩡했어도 못 썼겠네요. 혹시 옛날에 인간을 잡아먹은 적이라도 있던 걸까요?”
“글쎄요……. 어차피 그런 놈은 완전히 태워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못쓸 놈이었네요.”
“그렇죠, 뭐……. 그런데 지네도 그렇게 인기가 많습니까?”
“원래 지네는 한약재로도 많이 쓰잖아요? 다 그런 거죠. 허리에 좋다나 뭐라나……. 전 잘 모르지만 남자분들은 그, 아시죠?”
성아영이 눈을 찡긋거렸다. 임상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 하하, 그렇, 죠…….”
성아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주객전도가 됐다니까요. 저희 회장님 간암으로 투병 중이시잖아요? 원래 부회장님이 회장님 몸 생각해서 이것저것 찾았던 건데 이게 어느새 쁘띠 사업 비슷한 게 되어서는……. 이러려고 입사한 게 아닌데 요괴 사체나 쫓아다니고 있네요.”
“저희로서는 요괴 사체 처리하는 게 골치 아팠는데 단청에서 나서 줘서 잘 되었죠.”
이거 뭔가 정부와 기업 간의 비리를 엿듣는 기분인데. 하긴, 박서원이 악당이고 단청은 그런 박서원을 후원하는 곳이니 뒤가 구리긴 하겠지.
드라마의 법칙이 있지 않은가? 항상 재벌은 악당이다.
“고생은 저나 아영 씨 같은 말단이 하지만요.”
“에이, 임 팀장님이 말단이면 전 뭐가 되나요?”
임상규와 성아영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대충 들을 건 다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에게 인사한 다음 귀가하려는데, 성아영과 눈이 마주쳤다.
싱긋.
성아영은 은근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
내 모든 육감(六感)이 외치고 있다. 지난번 단청에서 잠깐 마주쳤을 때 느끼지 못했던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저 여자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