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25. 공공의 적(4)
용.
한자로는 용(龍). 순우리말로는 미르.
영어로는 dragon.
서양에서의 용은 보통 불길하다. 욕심이 많고 사람들을 괴롭히길 좋아한다. 서양의 신화나 전설 중에는 사악한 용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동양에서의 용은 길한 징조이다. 비를 내리고, 사람을 돕는다. 신통력이 있고 보통 이야기에서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절대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용을 만난 적이 있다. 잠실 타워를 감고 있는 비늘 달린 모습, 한복을 입고 있는 인간 모습.
당시 비를 내린다거나 인간을 초월한 모습을 보인 건 용이 아니라 아사달이었지만, 그 노인이 용인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용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좋아할 수는 없다. 그 거대한 위화감 덩어리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그렇지만 적어도 그 용은 그 힘을 가지고 사람을 잡아먹진 않았다.
“…….”
그런데 뭐?
용이 되고자 한다고?
최소한 자신 근처의 시간을 마음대로 왜곡했던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고?
누가?
숨이 턱 막혔다.
“……잠실 타워의?”
목소리가 잠겼다.
말을 끝내지 못했지만 작매는 내 말을 알아듣고 손을 내저었다.
“그 할아버지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작매는 슬쩍 내 눈치를 봤다.
그동안 얼굴에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이번만큼은 무리다. 이를 꽉 깨문 덕분에 턱이 아팠다.
작매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자세히 이야기는 안 해 주긴 하는데…….”
조금 목소리가 떨리긴 했지만 작매는 말을 끊지 않고 설명했다.
“산함박 그놈 애초에 정순한 방법으로 용이 되길 글렀더랍니다.”
“…….”
“그러니까, 그, 정순한 방법이라 하믄 보통 어디 기운이 맑은데 박혀서 수행을 한다든지…… 덕을 쌓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용을 생각했을 때 딱 어울리는 방법!”
손가락을 튕기며 설명하던 작매는 아차, 했는지 급하게 덧붙였다.
“인형 그건 아니고요. 울 할아버지가 그거 엄청 욕했는데. 그거 때문에 결국 잠실 타워 그림자 사라졌다면서요?”
“……네.”
그 현장에 있었다. 아직도 잠실 타워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매일 새벽 잠실 타워를 삼보일배로 도는 무리는 나름 명물이 되었다.
청룡은 여전히 요일마다 건물과 자리를 바꿔 가며 잠실에 거주 중이었고.
겨울에 보았던 청룡의 모습을 떠올리자 속이 메스꺼워졌다. 내가 자주 보던 일상적인 장면에 삐죽 솟아 있는 거대한 이물질.
“작매 씨.”
박서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작매를 불렀다. 청룡 인형 나도 하나 가지고 싶었다, 주절주절 늘어놓던 작매는 박서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박서원은 싱긋 웃고 있었다.
저 남자는 이 이야기를 언제 알게 되었을까.
“그런데 산함박은, 아, 인간들은 산암이라고 부르던가요? 어쨌든 그놈은 그런 방법을 못 해 먹는 놈이었던 거죠. 근데 용은 되고 싶었는지 강제로 되는 방법을 시도한 거지요.”
작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전래동화를 읽어 주는 것처럼 작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제일 먼저 잡아먹힌 건 개성에 살던 서생원이였답니다.”
* * *
이 작매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이었지요.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께 구애를 한답시고 까마귀마냥 꽥꽥거리고 있었을 때 얘기라고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서생원은 이 땅에 참으로 많답니다. 어이쿠, 물론 그 모습을 흉내 내는 귀찮은 놈들과는 다르지요. 생원(生員)이잖습니까? 좀 찍찍거리는 걸 빼면 점잖은 양반들이지요.
워낙에 대가족이니까 처음에는 티가 안 났더래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가족이 반 줄어 있었답니다. 그 많은 가족이요.
그제야 아,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해서 가족들을 불러 모았답니다. 마침 한가위가 다가와서 어렵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모이고 모여서,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큰 어른이 물었지요.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사고가 있었느냐, 아니면 사고를 당했느냐? 물에 빠져 죽었느냐, 매가 채갔느냐? 그도 아니라면 인간 사냥꾼이 죽인 것이냐?’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사내가 그에 대답했다고 하지요. 팔 한쪽이 없었더래요.
‘아닙니다. 새까만 뱀 한 마리가, 가족들과 제 팔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 * *
물론 인간도 잡아먹었지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인간 세상과 우리는 좀 더 분리가 되어 있었거든요. 지금은 지하국을 제외하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되어 버렸지만…….
음, 쥐, 토끼, 참새…… 그다음 잡아먹힌 게 까치입니다. 우리 가족이죠. 아차, 정확히 말하면 이때 바로 잡아먹힌 건 아니고…….
해준 씨, 혹시 치악산 이야기 아세요? 꽤 유명한 이야기인데, 왜, 어떤 선비가 과거 보러 가다가, 치악산에서 웬 구렁이가 까치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한 겁니다. 이 선비는 활로 구렁이를 쫓아내었는데, 나중에 구렁이가 돌아와 선비를 잡아먹으려고 한 겁니다. 대신 조건을 내걸었죠.
‘살고 싶다면 종을 세 번 울리거라.’
물론 구렁이에게 붙잡혀 있는 인간 선비가 어떻게 종을 울리겠어요? 그런데 종이 울리더라는 겁니다.
뎅, 뎅, 뎅, 세 번 울리고, 어쩔 수 없이 구렁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비를 풀어 줬어요. 구사일생한 선비가 종이 울린 곳을 가보니, 아까 구해 준 새끼들의 부모인 까치 두 마리가 죽어 있더랍니다.
이 죽은 까치 두 마리가 제 숙부님과 숙모님이십니다.
아, 안 잡아먹혔다고요?
네, 그 뒤로 선비가 우리 숙부님과 숙모님을 잘 묻어드리고 절을 세웠는데, 어느 날 스님이 나와 보니 까치 두 마리가 잠든 곳이 파헤쳐져 있었다는 겁니다.
네, 그놈이 우리 숙부님과 숙모님을 기어이 잡아먹은 겁니다.
* * *
매 이야기도 했고, 호랑이 이야기도 해 드렸죠? 호랑이님들은 그 전에 인간들에게 많이 사냥당해서…….
그럼 좀 최근 이야기를 해 볼까요?
놈에게 아내를 잃은 여우 말입니다.
예전에 비해서 이 땅에 여우가 많이 줄었긴 한데,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는 그 남자 하나뿐이었죠. 아내로 맞이한 여우는 꼬리가 일곱 개인데, 우리 할아버지 말로는 그놈한테 주기 아까울 정도로 착한 여우였다고 합니다.
그 여우 부부는 아들 하나를 낳고 오순도순 잘 살고 있었어요. 솔직히 그놈이 애도 낳고 아내랑 잘 살았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하니 어쩌겠어요? 이 작매가 아무리 능력이 좋대도 있는 사실을 없애진 못하니까요.
흠, 어쨌든 산함박은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여우 아내를 잡아먹었어요. 이건 여우가 말 안 해 줘서 몰라요.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잖아요? 아무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 작매라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답니다.
여우는 몹시 분노했고, 그 뱀을 찢어 죽이기로 맹세했지요. 그 직후 아들까지 잃어서 자기한테 남은 건 이제 복수밖에 없다나 뭐라나.
* * *
“그리고 해준 씨도 알다시피, 10년 전 놈이 인간 마을을 덮쳤죠.”
작매의 조곤조곤 이어지던 목소리가 멈췄다.
“…….”
산함박, 그 뱀은 온갖 원한을 이고 다녔다. 한반도에 사는 이들 중 놈에게 가족을 잃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중 쥐나 토끼같이 몸집이 작은 영물들은 꼭꼭 숨어 버리고, 매나 호랑이는 그렇잖아도 인간들에게 잡혀서 줄어든 개체 수를 보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복수할 힘이 있으며, 그만한 여유가 있는 이들만 박서원의 복수 파티에 참여했다.
“정해준 씨. 이제 대충 짐작 가지 않아요?”
여태 작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서원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입은 잔뜩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용이 되려고 하는 겁니까?”
“모르죠. 그냥 힘을 가지고 싶어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죠.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박서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한 건 정순한 방법으로 용이 되기 그른 뱀이 죄 없는 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하고, 마침내 완전히 미쳐 버린 거죠. 처음부터 미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제정신인 채로 저질러서, 지금도 정상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하지만 상관없지 않아요?”
어느 쪽이든 박서원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소파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조 두 마리에게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목이 타는지 음료수를 꼴깍꼴깍 마시는 까치 한 마리에게도.
나에게도, 상관없는 이야기고.
상관없는 이야기다.
어떤 이유인지는 상관없다.
어찌 되었든 그놈은 우리의 적이니까.
잡아야 할 사냥감이다.
“10년 전에 인간 수백 명을 잡아먹었죠.”
가족을 죽인 원수.
“그중에는 우리 가족도 있고.”
박서원은 천천히 일어났다. 정신 사납게 갸웃거리던 백조의 기다란 목이 박서원을 향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수백 명이죠. 놈은 아주 배부르게 먹었어요. 수십 마리의 영물들과, 수백 명의 인간 영혼이 뱃속에 있으니까…… 쉽게 말하면 과식했다고 합시다. 그럼 몸이 둔해질 만하지 않겠어요?”
박서원이 웃었다. 여전히 재수 없는 얼굴. 그 위로 10년 전 장례식장에서 마주쳤던 얼굴이 겹쳐졌다.
아, 젠장. 이 느낌을 안다. 또다시, 기억이.
“지금이 소화하는 중이라고 치면, 소화가 다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그 날, 장례식에서는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모여 있는 네 명의 소년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명찰이 붙어 있는 흙투성이의 하복.
아직도 기억은 장례식장을 헤매고 있다. 여기서 내가 더 떠올려야 할 기억이 남아 있는 건가? 아니면 이게 제일 강렬한 기억이라서 그런 건가?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는 눈물로 엉망인 여자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목이 찢어져라 울던 여자아이는 지쳐서 오빠의 품속에서 잠들었다.
부모님과 쌍둥이 오빠, 여동생 중 살아남은 건 세 명.
할머니와 오빠, 여동생 중 살아남은 건 한 명.
부모님과 오빠, 여동생 중 살아남은 건 한 명.
“영물 수십 마리와 인간 수백 명을 삼킨 놈이에요. 어떤 괴물이 태어날까요?”
그 날, ‘우리’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눈물과 독기로 가득한 얼굴만 남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쌍둥이 중 하나가 넋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대답한 건 나였다.
‘살아남는 거부터.’
아니.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기억해라.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내 가족은 모두 무사히 살아 있다. 지금 당장은 보지 못해도, 부모님과 정해영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다.
머리가 아팠다.
박서원은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두통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며 박서원을 보았다. 어찌 된 게 이쪽 인간들은 행동거지가 다 극적이다. 그래서 저쪽에서는 드라마였던 걸까?
“우린 그놈이 태어나기 전에 죽여서 세상을 구할 겁니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그거 좀 사이비 같은데요.”
“역시 그렇죠?”
박서원은 팔을 내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생각한 대사는 아니고 쟤네가 짠 대사예요. 평가는 저쪽으로.”
백조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눈치를 살피던 작매가 그제야 작게 숨을 토했다.
여유를 찾은 작매는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리 귀여운 새끼 뱀들이 어디 있는지 이 작매가 알려 드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