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24. 목이 없는 말(5)
삶은 항상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이 행했던 행동이 업보가 되어 돌아올 때도 있다.
그것이 선(善)이 되어 돌아오면 좋다.
그러나 악(惡)이 되어 돌아온다면?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불쌍한 인간 하나.
그리고 목 없이 걸어 다니는 말과, 계속해서 말의 목을 자르는 장군님.
덕분에 탕비실에 갇혀 있는 수사관 두 명까지.
“복도 쪽에서 계속 기운이 느껴진다면 말을 타고 다니는 김유신은 없단 말입니까?”
“그, 그건, 좀, 이상…….”
“그렇지요. 이상하죠.”
이산래는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도훈 씨한테 기운이 계속해서 느껴지나 물어보세요.”
“네…….”
와이파이가 어떤 작용을 해서 바깥과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보를 얻을 구석이 있는 건 꽤 안심되는 일이었다.
일단 어쩐지 정신이 하나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던 두 명의 수사관의 눈에 빛이 들어왔으니까.
“엘리베이터는 아예 먹통이고, 계단은 장군님 때문에 들어오질 못한다……. 해 뜰 때까지 기다려 볼까요?”
마침내 돌아 버린 이산래가 최후의 방법을 내놓았다.
“시, 싫어요…….”
“……그렇게 질색하면 미안하잖습니까. 농담입니다. 저도 여기서 밤새기 싫습니다.”
“해 뜨면 저 말이 집에 갑니까?”
“뭐… 기본적으로 영혼은 해가 뜨면 기가 약해지니까요.”
이산래는 중요한 걸 잊고 있다.
“저 말이 아까 낮에 날뛰었던 걸 잊으신 모양인데…….”
“그랬죠…….”
“그, 그리고, 바, 바, 바깥이, 저, 모양… 이라.”
오늘이 창밖을 가리켰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실낱같은 와이파이로 연결된 휴대폰과 수사관 두 명.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 * *
“……왜 와이파이는 되는 거죠?”
최대한 문에서 떨어진 벽에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말의 목이 굴러오는 문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이 낫다.
이산래는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신라 사람들은 좀 오래됐지 않습니까.”
“못해도 천 년이죠.”
“김유신은 천오백 년 정도 전의 사람이거든요.”
“그게 와이파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전화는 오래되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와이파이는 비교적 최근의 기술이잖습니까?”
“아, 그러니까 잘 몰라서 차단을 안 했다?”
“그렇죠.”
“그런 것도 따집니까?”
“말 목 자르는 신라인이 옆에 있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분명 첫인상은 냉철한 도시인이었는데 만난 지 세 번 만에 인상이 바뀌고 있다.
이산래가 투덜투덜 신라인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오늘은 휴대폰에 머리를 박은 채 바깥 상황을 전해 받고 있었다.
“계단에 계신 장군님의 정체는 확인됐습니까?”
“어, 그, 그게…….”
오늘은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몇 차례 오늘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오늘은 자기 대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입을 잘 열지 않는다. 지금도 휴대폰을 이산래에게 보여 주면서 자기가 설명할 상황을 피하고 있다.
말을 더듬어서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건가?
가끔 말하는 데 끼어드는 걸 보면 크게 꺼려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오늘 씨.”
“아, 어, 네?”
오늘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낮부터 말한테 시달려서 그런지 오늘은 꽤 지쳐 보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오늘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알아낸 사실 있어요?”
오늘은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줘서 손해 보진 않는다. 약간의 발품을 파는 것에 불과하지 않던가. 한평화를 봐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퍼 주고 갔다. 퍼 준 쪽은 한진열이긴 했지만 둘이 같이 있었으니 그게 그거다.
“어, 아, 아니, 으, 그, 그게… 그러니까…….”
오늘은 살짝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산래를 보며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 대신 천천히, 더듬거리며 말했다.
“계, 계단에 있, 는… 자, 장군님…… 때문, 에, 3층만, 마, 막힌 걸… 로 생각, 되고요…….”
“네.”
“보, 보, 보통, 이런 경우…… 새, 생전의 행, 동을… 반복, 하, 는데요…….”
“말이 같은 곳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요?”
“네, 네…….”
오늘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서, 마, 말을, 타고 있… 는, 장군님도…… 있, 지…….”
쿠웅!
이제 좀 익숙해진 소리가 들렸다. 조금 기다리면,
툭. 툭. 툭툭툭.
굴러가는 소리가.
다그닥다그닥.
다시 걸어가는 말이 있다.
“……않, 을, 까요?”
말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오늘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끝맺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 거 있지 않을까. 근거는 없지만 어쩐지 확신이 들 때.
오늘의 말은 그런 기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째깍째깍.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탕비실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는 잘만 갔다.
갇혀 있는 곳이 탕비실인 관계로 물과 음식이 부족하진 않았다. 출출할 때마다 탕비실에 있는 과자를 하나씩 까먹었다.
바닥에 빈 과자 껍데기가 굴러다니고, 우리는 작전 비스무리한 걸 세우기 시작했다.
“아래쪽 말로는 계단 쪽에 장군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계시죠.”
“마, 말이, 오가는, 것도, 느, 느, 느껴진다고, 했, 어요…….”
바깥과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자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이쪽에서 생각한 가설을 확인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진짜 장군님이 젊었을 때 탔던 말 하나 목 자르겠다고 여기에 오시진 않겠죠.”
“죽은 사람 마음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김유신은 우리나라 장군신 중 가장 강력한 분입니다. 허투루 움직이실 분이 아닙니다.”
“그만큼 말이 괘씸했다면요?”
“그럼 인간도 아니죠.”
오늘이 한마디 덧붙였다.
“어, 어차피, 죽은 사람, 이잖아요…….”
여기 수사관들 신라인 진짜 싫어하는구나.
“물론 그렇긴 한데. 천오백 년 전의 양심에 걸어 봅시다.”
이야기는 본론에 들어가지 않고 자꾸 그 주위를 맴돌았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오히려 저 사람들은 날 배려해 주고 있다.
“가 볼까요?”
“네?!”
“안 돼요!”
얼마나 놀랐는지 오늘이 말을 더듬지도 않고 외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여기서 진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해가 뜨면 여기 벗어날 수 있을지 확신합니까?”
“그건, 음…….”
“바깥에서도 어떻게 손을 못 쓴다면서요?”
천오백 년 묵은 장군님이다. 서울에 비를 내리고, 그 비에 젖은 땅을 모두 마르게 했던 아사달이 계단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애초에 김유신과 아사달이 비슷한 시대 사람 아니던가? 내 한국사 지식을 믿을 수 있어야지. 이쪽 세계에서는 거의 쓸모없던 지식이다.
“그럼 이쪽에서 부딪쳐야 한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래도…….”
“가서 장군님께 읍이라도 해야지요.”
“아니, 해준 씨. 갑자기 왜 이렇게 급해졌습니까?”
이산래가 당황하여 나를 말렸다.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이곳에 와서 인생 망친 신세가 되면 다 그렇게 된다고 답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그건 최후의 방법입니다. 민간인을 불확실한 위험에 내몰 순 없어요.”
“저 초능력자입니다만.”
“제 눈엔 민간인입니다.”
“마, 맞아요.”
정부에서 초능력자들을 편할 대로 쓰던 것에 비해 양심적인 반응이다. 초능력자들과 일하는 일이 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술이나 영혼들에게 통하는 초능력자는 거의 없는 편이니까.
그러나 나는 정말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아니면 불려 왔는지, ‘이곳’의 정해준은 나와 동화되었는지, 나와 뒤바뀌어 이곳을 벗어난 건지.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요.”
“……어떻게 방법을 내긴 해야 하지만 대책 없이 가진 않을 겁니다.”
“여기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습니까.”
아래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제령은 말도 안 되고…….”
아사달만 떠올려 봐도 그걸 제령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인간도 아닌 말을 데리고도 제령 하지 못하고 겨우 안정만 시켰지 않던가.
“밑에서 장군님에게 말을 걸고 있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천 년, 아니, 정확히 하죠. 천오백 년 나이 드신 분이 여기까지 몸소 오셨잖습니까. 팀장님
말대로 말 목 자르려고 납셨진 않았겠죠.”
“그, 그럼, 자, 자, 잠깐, 만요.”
오늘은 허둥거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아직, 아… 직, 배터리… 남았으니까…….”
오늘은 이산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티, 팀장님, 폰, 좀, 주세… 요.”
“뭐 하시려고요?”
“해준, 씨도, 자, 잠깐, 주세요.”
오늘은 잠금을 폰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와이파이 연결을 확인했다.
“데이터는, 안, 되니까…….”
그다음으로는 앱 하나를 다운받기 시작했다.
“이, 이거, 화면, 공, 유… 앱이에요…….”
“……이걸로 복도를 살펴보자고요?”
“미, 미, 밑져야 본, 전, 이잖, 아요.”
이산래는 가만히 오늘을 보았다.
“……복도 찍는 건 저와 오늘 씨 폰으로 할 거죠?”
“네, 네… 오른, 쪽, 왼쪽, 다… 확인,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해준 씨 폰으로 화면을 확인하고요?”
오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래는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 폰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산래는 오늘에게 맡겼던 폰을 가져갔다.
“후, 그래서 오늘 씨, 이거 어떻게 연결하면 돼요?”
* * *
휴대폰으로 어둠 속을 찍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탕비실에 굴러다니는 나무젓가락과 고무줄로 휴대폰 지지대를 만든 다음 말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그 점도 당연히 지적했다.
“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그것도 맞는 말이다. 뭐라도 희미하게 찍힌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지금 연구소 3층 복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귀신이 휴대폰으로 찍힙니까?”
“현대 문물을 얕보지 마세요, 해준 씨.”
“…….”
“농담이고요, 저 정도로 오래된 귀신이면 찍힙니다.”
그러면서 이산래는 휴대폰 화면을 슬쩍 바꿔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돌탑 한가운데에 서 있는 어두운 인상의 남자. 아사달이다.
“……이건 언제 찍은 겁니까?”
“불쌍한 공무원은 보고서를 써야 한답니다. 몰래 한 장 찍었죠.”
아사달도 알고 있었겠지만 모른 척해 준 거라고 이산래가 덧붙였다.
“왜, 보통 귀기 서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귀신은 나름대로 티가 나니까 걱정 마세요.”
“쉬, 쉿. 티, 팀장님, 조용히…….”
다그닥다그닥.
목이 떨어졌던 말이 다시 조용히 걸어갔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슬며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이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탕비실에 불이 켜져 있어 복도로 불이 새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을 복도로 꺼내는 동안 탕비실의 불을 끄기로 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보호막을 펼치기로 했고, 휴대폰을 맡은 건 이산래다.
오늘과 이산래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발굽 소리가 희미해지자 이산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탁.
오늘이 불을 껐다.
탕비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던 문이다. 휴대폰 두 개가 겨우 지나갈 만큼만 문을 연 채 이산래는 조심스럽게 그 틈으로 휴대폰을 밀어 넣었다.
“…….”
다시 조심스럽게 이산래가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문을 잠그기까지 했다.
“이, 이제 된, 건가요?”
오늘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불 켜도 괜찮습니다.”
“지, 진짜, 괜, 찮은, 건가요?”
“어차피 불 킨 게 문제였으면 아까부터 난리였겠죠. 괜찮습니다.”
오늘은 불안한 얼굴로 불을 켰다. 문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오늘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문 앞에 있던 이산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화면 공유를 설정해 놓았던 내 휴대폰을 보았다.
“생각보다 밝네요…….”
문틈으로 보이던 복도는 새까맣기 그지없었지만 휴대폰 화면으로 보는 복도는 이상하게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오늘의 휴대폰은 말이 걸어간 방향을 향하고 있었고, 이산래의 폰은 계단을 향하고 있었다. 두 화면을 번갈아 가며 봐도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 자, 잠깐만요.”
이산래가 휴대폰 액정을 급하게 두드렸다. 액정 위로 계단 쪽 화면이 떠올렸다.
“좀 더 밝아졌지 않아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어스름한 빛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저 복도에서는 지금 뭐가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이런 휴대폰으로 영혼을 찍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여긴 내가 아는 법칙으로 돌아가는 세계가 아니니까…….
“뭐지?”
“네?”
“여기 뭔가 점 같은 게…….”
화면 공유로 보고 있던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헉, 뭐야, 말이 걷어찼나?”
“말이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어지럽게 돌아가던 화면이 멈췄다.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몰라 숨이 턱 막혔다.
액정에 떠오른 화면은 새까맣지만 구석에 작게 떠 있는 화면에는 무언가 어른거리고 있다. 오늘의 휴대폰 화면이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화면에 무엇이 떠올라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거의 우는 얼굴로 이산래를 보았고 나도 따라서 이산래를 보았다.
이산래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뜬, 회색 수염을 기른 노장군이 화면 속에 있었다.
장군은 우리가 그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