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70화 (70/202)

# 70

24. 목이 없는 말(3)

다그닥다그닥.

문 너머로 말이 걷는 소리가 들렸다.

깔끔한 현대식 건물 안에서 들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던 소리다.

멀리서 들렸던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세 명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이 문 앞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느긋하게 걸어오던 발굽 소리가 인기척이라도 느꼈는지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혹시 몰라 보호막이라도 칠까 해서 이산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차마 소리를 내진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며 물었다.

‘보호막 쳐요?’

이산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까 차단막에 그렇게 날뛰었으니 말이 기운을 느끼기라도 하면 큰일 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

다그닥.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뚜걱뚜걱거리는 발굽 소리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느껴지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였다.

“제령 한 거 아니었습니까?”

“신라 출신 아닙니까. 거기 출신들은 다 독해요.”

이산래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물론 목소리는 작아졌다.

“모, 못해도, 천 살, 인데… 제, 제령 하기, 는, 힘, 들어요.”

“아까 해준 씨보고 감이 좋다고 했잖습니까. 밖에서 했던 건 사실 제령 작업이 아니거든요.”

이산래의 말에 오늘이 고개를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진정, 시키는…… 그런, 종류, 였어요…….”

“아까는 그렇게 말 안 했잖아요?”

“그, 그게…….”

오늘은 강하게 반응한 것과는 달리 눈을 피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산래가 대신 대답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목 없는 말이 나타나서 난동 피웠는데 뉴스에 안 나오겠습니까? 아까 카메라 온 거 못 보셨습니까? 거기서 어떻게 우리 능력이 부족해서 못 없애고요, 진정만 시켰습니다. 이러겠어요.”

특별수사관은 경찰청 소속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경찰이란 말이다.

“다른 데서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말 나오면 시끄러워져요.”

……그 마음이 아주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일이 되면 다르다. 이제 겨우 좀 복숭아에 대해서 이야기 좀 들어 보나 했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저 말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죠.”

“어떻게요?”

“…….”

이산래는 드물게 활짝 웃었다. 잘 안 웃는 사람이 웃을 때처럼 이상하게 어색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슬쩍 눈도 피하고 있지 않은가.

저런 표정이 말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솔직히 말하시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이산래는 뻔뻔하게 말했다. 수사과 팀장 정도가 되면 이렇게 뻔뻔해지는 건가.

“말은 말을 못 하잖습니까.”

“그게 그런 문제입니까?”

이산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표현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워, 원하는… 걸, 준비, 해 줄 수 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동의했다.

아니,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어도 목이 없으면 보통 말은 못 하거든요.”

나의 타당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산래는 여전히 당당했다.

“아까 교수님들한테 이야기를 좀 듣긴 했습니다.”

“그 신 교수님이요?”

“네. 신정석 교수님이라고, 신라를 많이 좋아하시는 이상한 분이십니다.”

다그닥다그닥.

다시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산래는 급히 입을 다물었고 나와 오늘도 숨을 죽였다.

발굽 소리는 여전히 느렸다. 발굽 소리가 들릴 리 없는 건물 3층이라는 점만 빼면 평화롭게 들릴 만한 여지까지 있었다.

말은 천천히 탕비실을 지나갔다. 저놈이 문을 열 손이 없어서 다행이다.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이산래가 입을 열었다.

“고려 때는 자료가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한데, 조선은 기록이 많거든요. 마지막으로 발견된 게 철종이고 그 전에도 가끔 경주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나타나서 아까처럼 발광합니까?”

“이게 중요한 부분인데요. 신라가 정신 나간 놈들만 모인 나라라는 증거입니다.”

이산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경주에는 아사달이나 저 말처럼 종종 나타나는 것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얌전한 성격입니다.”

반나절을 차단막에 목 없는 말을 가둔 내 입장에서는 그런 개소리도 없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말입니다.”

얼굴에 너무 티가 났나 보군.

“아사달처럼 어디 하나에 꽂혀서 누가 건들지만 않으면 늘 하던 행동만 반복하는 겁니다. 탑 그림자를 없애거나…… 저 말 같은 경우는 일정 구역을 타박타박 걸었다고 전해지죠.”

저 목 없는 말은 김유신의 말이다. 주인이 늘 가던 대로 갔다가 목이 잘려 죽은 불쌍한 말. 저 말이 걸었다는 길이 어떤 길인지 짐작이 갔다.

“조선 때는 경주 사람들이 말의 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 줬다더군요. 그럼 사라져서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이것저것 잔뜩 섞이긴 했지만 낮에 했던 게 그 비슷한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저 말은 왜 다시 나타난 겁니까?”

“……여긴, 그, 겨, 경주가, 아… 아니, 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오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아예 다른, 곳, 이니까… 호, 혼란, 스러워서, 나, 나, 날뛰지, 않았을…… 까… 요.”

“그렇겠지요.”

“그, 그리고…….”

오늘은 손을 들어 창문을 가리켰다. 탕비실에 있는 작은 창문이다. 오늘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우, 우리, 갇, 혔, 어요…….”

이산래는 벌떡 일어나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나도 뒤따라갔다.

다 열리지도 않는 작은 창문 너머로 당연히 보여야 할 불빛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길가의 가로등 같은 것 말이다. 저 앞에 보여야 할 박물관 본관도 없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새까만 어둠만 보였다.

“……이게 무슨.”

다그닥다그닥.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떨리는 눈으로 문을 보았다. 말은 천천히 문 앞을 지나갔다.

“지금 3층만 왔다 갔다 하는 겁니까?”

“소리를 보면 그렇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가 보는 건?”

“저 속으로 들어가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일단 나가 봅시다. 제 능력이면 혹시 말이 덤벼들어도 가둬 둘 수 있으니까요.”

아까 박물관 앞에서도 몇 시간 동안 내리 말을 가둬 뒀다. 이산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층으로 가죠. 거기에 이런저런 도구들이 있으니까 뭔가 방법이 생길 겁니다.”

이산래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말이 반대쪽으로 가면 움직이죠. 계단이 지금 간 방향에 있어서…….”

쿠우웅!!!

건물이 흔들린다고 착각할 만큼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천둥소리와 비슷하긴 했지만 같진 않았다. 물건이 떨어져서 나는 소리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 고함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화가 나서 마구 고함치는 소리와 비슷한…….

툭. 툭. 투두툭.

“…….”

무언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굴러가던 건 탕비실 문 앞에서 멈췄다.

손에서 땀이 났다.

오늘은 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슬그머니 발을 움직여 내 뒤에 숨었다. 덕분에 살짝 정신이 들었다. 여차하면 바로 보호막을 펼칠 수 있도록 집중했다.

문에 다가가던 이산래도 오늘과 나를 보더니 입을 뻐끔거리다가 문에서 멀어졌다.

이산래도 다가왔겠다, 보호막을 치려고 하자 다시 소리가 들렸다.

다그닥.

다그닥다그닥.

다그닥다그닥.

말이 걸어가는 소리.

나는 굳은 몸을 억지로 돌려 내 뒤에 있는 이산래와 오늘을 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들이 있었다. 내 얼굴도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겠다 싶어졌다.

* * *

밖으로 나가는 건 바로 포기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저, 전화도, 신, 호음은, 가는데 아, 안, 받, 아요…….”

“저와 해준 씨 폰은 아예 신호도 안 잡히니까 오늘 씨, 일단 계속 걸어 봐요.”

그렇잖아도 작던 목소리는 이제 기어들어 갔다. 테이블에도 못 앉고 최대한 문에서 멀리 떨어져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방금 그건 역시 그거겠죠?”

“이래서 신라는 안 된다니까요. 무슨 말이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미친 나라에요.”

이산래는 인상을 팍 구기며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좀, 불쌍, 하, 기도…….”

오늘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죽어서도 편해지지 못하는 건 안타깝기도 한데…….”

이산래는 나와 오늘을 보았다.

“여긴 김씨가 없군요. 다행입니다. 김유신 욕 좀 해도 되겠습니까?”

“쉿, 어디서 누가 들을지 압니까.”

“아니, 나라님 없는 데선 나라님 욕도 한다지 않습니까.”

“여, 옆에, 계시잖, 아요…….”

“……진짜는 아니잖아요.”

이산래는 인상을 쓰긴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쿠웅!!

이번이 다섯 번째다.

커다란 소리에 귀가 조금 적응되니 저게 ‘이놈!’ 하고 고함치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걸 알았다. 귀를 기울이면 스릉, 칼을 뽑는 소리가 이어 들렸고 휙, 칼을 휘두르는 소리가, 툭, 말의 목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알겠다.

이산래의 말이 옳았다.

신라 출신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정신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저 일이 탕비실의 오른쪽, 계단이 있는 방향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괜히 나가지 못하고 구석에 모여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방법이 모두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계단 말고 내려가는 다른 방법이 없나 물었다. 그건,

‘말이 복도를 걸어 다니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싶습니까?’

라는 말에 막혔다.

두 번째는 이산래가,

‘해준 씨의 보호막으로 밀고 나가는 건 안 됩니까?’

라고 물었는데 나는 그대로 반문했다.

‘옆에 있는 김유신인지 뭔지가 우릴 공격하면 끝입니다.’

물론 저게 진짜 김유신은 아닐 것이다. 신라의 김유신은 우리나라 장군신의 하나이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만큼 그 힘도 강력하다. 그런 귀한 분이 할 일도 없이 이런 곳에서 말 목이나 자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말이 불러일으킨 악몽, 가위의 일종일 거라고 설명도 들었고. 물론 그렇다고 그 위력이 거짓일 거라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말, 이… 아니, 니까, 그, 그냥, 보내 줄, 가, 능성도…….’

오늘이 자신 없게 말했다.

‘그게 베스트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순 없습니다.’

‘그, 그렇, 죠…….’

셋 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김에 복숭아 이야기나 계속할까요?”

마침내 이산래는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도훈 씨나 다른 수사관들이 눈치채고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게 제일이잖아요.”

역시 얼굴에 너무 티 났나 보다.

“그럼 기다리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야죠.”

이쪽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시 원 주제로 돌아온 게 감사하기까지 하다.

이산래는 여전히 속삭이며 말했다.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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