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드라마의 15화-69화 (69/202)

# 69

24. 목이 없는 말(2)

신라의 김유신이 아직 젊을 때의 이야기다. 이 혈기왕성한 청년은 기생집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크게 꾸짖었다. 어머니의 꾸짖음에 반성한 김유신은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유신은 술에 잔뜩 취하고 만다. 김유신의 말은 술에 취한 주인 대신 주인이 자주 들렸던 기생집으로 데려간다. 술에서 깬 김유신은 크게 화를 내며 말의 목을 베고 돌아간다.

……말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데?

“어이쿠!”

“!!!”

평범한 말이었다면 이즈음 ‘히이잉!’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른다. 투레질을 하면서 멋진 갈기를 휘날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 말은 머리가 없다.

다리는 잘 달려 있다. 뛰는 거나 발길질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 그냥 머리만 없을 뿐이다. 잘린 목에는 갈기 끝부분만 조금 남아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갈기는 말이 움직일 때마다 피처럼 휘날렸다.

어깨 위가 허전하다는 점만 빼면 말은 살아 있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목 아래로는 머리가 있으나 없으나 여전히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래도 나름 살아 있는 전설 같은 거 아닙니까?”

말을 잘못했다.

“살아 있진 않지만요.”

“저 말이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죽은 사람의 말은 학계에서 인정 못 받습니다. 주석 정도는 될 수 있지만요.”

“그렇군요…….”

이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특별수사과 사람들이 보였다. 바닥에 그려 넣고 있는 게 뭔지 알아볼 깜냥도 안 되고. 말도 어느 정도 진정해서 차단막에 부딪치는 간격도 길어졌으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여, 여기로…….”

오늘도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합류해 있었다. 김도훈은 오늘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딱히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진 않았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모양새였다. 김도훈이 오늘의 후배였던가? 생각보다 경력이 그리 길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오늘도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나보다 어려 보이긴 하는데…….

“뭘 그리 열심히 보십니까?”

“네?”

팀장의 직권으로 저 땡볕으로 나가지 않고 있는 이산래는 안경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도 열심히 보고 계시길래.”

“이런 작업은 처음 보거든요.”

“초능력자분들이 보기 힘든 모습이긴 하죠.”

초능력자가 동원되는 일은 보통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요괴들이다. 지하에서 올라온 금돼지나 여성을 납치하는 신선비 같은 종류. 사람에게 피해는 입히지 않지만 건물을 점거하는 종류도 있다.

나처럼 저주나 영적인 존재에도 영향을 끼치는 초능력자는 드물다.

“그럼 저 말은 이번에 처음 나타나는 겁니까?”

“기록이 있긴 합니다.”

“기록이요?”

“철종 때 목격담이 있었거든요.”

“……특별수사과에서 일하면 그런 것까지 다 알아야 합니까?”

“아뇨. 저분들이 확인해 주셨죠.”

이산래의 손끝에 역사 교수들이 있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상자에서 뭔가 꺼내고 있었다. 잠깐 잠잠하던 말이 다가왔다. 말을 본 노교수가 물건을 손에 든 채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말이 따라 움직였다.

“역시 저게 맞네요.”

“저게 뭔데요?”

“김유신 집터에서 발견된 갑옷 조각이요.”

“…….”

“…….”

“……그럼 저게, 김유신 갑옷이라고요?”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신라 시대 갑옷이라 소개되었는데 그렇다고 판명되었군요. 신 교수님 좋아하시겠네.”

이래저래 전설과 동화가 섞여 있는 동네였지만 특별수사과에서는 고전적인 수단만 고집하는 것 같진 않았다. 굿할 때 보이는 제사상도 있지만 바닥에 적힌 글은 한글이나 한문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또 익숙한 느낌의 부적이 있고, 은으로 만든 촛대가 세워졌다.

“저건 굿입니까, 아니면 다른…….”

“효과만 좋으면 됐지 뭘 더 바랍니까?”

이산래는 내 손목을 가리켰다.

“해준 씨도 묵주와 전통 부적을 같이 차고 있잖습니까.”

“그럼 부적이 많을수록 좋은 겁니까?”

“양보다는 질이죠. 질이 안 될 경우에는 양이 중요하지만요.”

이산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자연히 시선이 따라가자 오늘이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바닥에 그리고, 물건을 나르던 다른 수사관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준비가 다 되었군요. 저 징그러운 말과 헤어질 시간입니다.”

갑옷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말이 있다. 그 말에게 눈이 남아 있었다면 말이다.

“……팀장님.”

새로 발견되는 유물은 모두 제령 작업을 거친다고 했다. 저 갑옷 조각도 당연히 그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 말이 나타났고 말이지.

“저걸로 저 말이 사라지는 거 확실합니까? 아무래도 불안한데요. 저게 사라질 거면 오늘 씨가…….”

“해준 씨.”

이산래는 내 말을 막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아시지요?”

“…….”

“생각보다 해준 씨 감이 좋으시네요. 안심했습니다.”

이산래는 희미하게 웃은 채 수사관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됐다!”

김도훈이 손을 번쩍 들었고 수사관들도 환호를 질렀다. 해가 떠 있을 때 시작했던 게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끝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이제, 차단, 막, 푸셔도, 돼요.”

오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 찮, 으세요? 느, 능력…….”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요. 나중에는 말이 차단막에 부딪치지도 않았으니까요.”

오늘은 내 안색을 살피더니 거짓말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그 모습에 마주 웃어주고 차단막을 없앴다.

……이산래의 말 때문에 불안했었는데 어쨌든 없어졌으니 다행이다. 설마 다시 나오는 건…….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그, 그럼, 그, 복… 숭아, 이, 야기, 요…….”

“저야 빨리 해결되면 좋긴 한데 괜찮겠습니까?”

수 시간 동안 내리 굿인지 제령인지 뭔지 하던 걸 봤다. 땀에 잔뜩 젖어 있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안쓰러움을 느끼게 했다.

오늘은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괘, 괜찮아요!”

“하하, 오늘 씨가 저까지 야근시키고 싶었나 보군요.”

이산래가 다가왔다. 이쪽은 의외로 멀쩡한 몰골이다. 역시 인간은 권력이 있어야 한다. 발로 뛰어다니는 건 항상 아랫사람이었지…….

“어? 어어, 그, 그건, 아닌, 데…요…….”

“도훈 씨도 아닌데 오늘 씨가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진심으로 말하는데, 해준 씨. 지금 복숭아 얘기를 하도록 하죠.”

“네?”

“뒤처리에서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거든요.”

이산래는 씩 웃으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청소하는 거 잊지 말고요. 바닥 깨끗이 지워야 합니다. 저와 오늘 씨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갑니다.”

“……도망치시는 거 아니고요?”

이산래는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 고생하신 해준 씨와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제가 힘만 있다면 내일 쉬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는 공무원 아닙니까? 절대 못 쉬니까 다들 정신 잘 챙기고 내일 봅시다.”

“팀장님!”

“저희와 함께하셔야죠!”

이산래는 그 울부짖음을 가뿐하게 무시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산래와 오늘 뒤를 따랐다. 김도훈이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인사하기 전에 오늘이 먼저 눈치챘다.

“너, 너는, 왜.”

“선배, 진짜요? 이러깁니까?”

“가, 가서, 청, 소나 해.”

“에이, 저도 같이 복숭아 뒤집어썼잖아요. 저도 참고인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딱 봐도 청소하기 싫어서 여기로 왔다.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라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오늘도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넘어가 줬다.

“그건 상관없는데, 도훈 씨.”

“네?”

“가서 상자만 챙겨 와요. 갑옷 넣은 거.”

“윽. 그거 꼭 제가 챙겨 와야 합니까?”

“특별수사과 사람이 지금 무섭다고 버티는 겁니까?”

“아아아니, 그건 아니고요. 제가 고어물이 좀 약한데, 그 말이 좀. 그렇게 생겼잖아요, 팀장님.”

“원래 이런 일은 막내가 하는 겁니다. 해준 씨를 시킬 순 없잖아요. 그리고 그거 잘못되면 신 교수님이 거품 물고 쓰러집니다.”

“…….”

김도훈은 터덜터덜 돌아갔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김도훈이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교수님은 신라가 왜 좋은지 모르겠네, 진짜……. 완전 정신이 나간 나란데.”

그림자를 없애거나 목이 없는 말이 날뛰는 걸 보면 확실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이산래는 박물관 부속 건물인 연구소로 향했다. 설마 그때처럼 또 지하로 갈까 싶어 조금 긴장했다. 지하에서 뭔가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생긴 게 좀…… 충격적인 방이지 않은가. 거기서 능력 시험한다고 고생했던 기억도 있고.

다행히 이산래는 지하 대신 3층으로 향했다.

가운데 원형 테이블이 있는 탕비실이었다. 이산래는 손수 믹스 커피를 타서 내 앞과 오늘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럼 복숭아 이야기를 해 볼까요.”

아, 드디어.

그 빌어먹을 복숭아. 난 그저 회사에서 줬으니 받았고, 억울해서 먹었을 뿐이다. 도대체 그게 뭐였다고 이 난리야? 가짜 복숭아와 진짜 복숭아 둘 다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먹은 진짜 선도가 문제인지…… 맛은 좋았지만…….

“…….”

“…….”

“…….”

“……아, 혹시 제가 이야기해야 하는 겁니까?”

이산래가 볼을 긁적였다.

“음, 뭐…… 그러죠. 일단 해준 씨 몸에서 복숭아 냄새가 계속 난다고 호랑이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거죠?”

“네. 4월에 뵙고, 얼마 전에 또 뵈었거든요. 두 번 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괜한 말씀을 하시진 않을 테니 해준 씨한테 복숭아 냄새가 나는 건 맞다는 건데……. 근데 정말 그 가짜 복숭아는 등장이 요란했지 문제 되는 종류는 아니거든요.”

이산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히려 복숭아보다는 그 가짜 복숭아 제작자 쪽이 더 큰일이었습니다.”

이산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준 씨, 복숭아,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건 평범한 복숭아가 아니라 선도잖습니까. 옛날에 있었던 진짜 선도는 먹으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요.”

그랬더라면 100세 인생도 꿈이 아니다. 1,000세 인생 정도도 꿈꿔도 됐겠지.

“물론 그렇다고 선도가 그냥 맛만 좋은 복숭아인 것도 아닙니다. 그건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것 중에 한 손가락에 들 정도로 몸에 좋은 보양식임과 동시에 부적입니다.”

오늘이 덧붙였다.

“그, 급에 따, 라, 다르, 지만, 요…….”

“네, 정말 좋은 선도는 사기라고 불릴 정도의 효능을 가지고 있죠. 제가 듣기로는 암도 치료했다고 합니다.”

……100세 인생…….

“해준 씨. 그런 게 인간이 가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묻는 걸 보니 인간이 가꾸는 게 아닌가 보죠?”

중국의 전설에 자주 나오는 복숭아 이야기는 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서왕모가 가꾸는 복숭아를 훔쳐 먹다 벌을 받은 손오공.

본래 복숭아밭의 주인은 서왕모며 가꾸는 이는 선녀들이다. 청룡이나 산신령까지는 그럭저럭 이해범위 안이지만 서왕모라. 서왕모면 신 아닌가?

“네, 손오공이 가꿉니다.”

왜 그 이름이 나오는 건데?

“그리고 가짜 복숭아를 만들어서 유통시킨 것도 제천대성이죠.”

여기서는 왜 또 나오고?

“……그, 참.”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이산래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범인이 범인이다 보니 같이 수사하던 중국 쪽에서 먼저 손을 떼 버렸…….”

따르릉― 따르르릉―

“아, 어, 죄, 죄송, 합니다…….”

“……벨소리 엄청 정직하시네요.”

“으아…….”

오늘이 허둥거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흘깃 보니 ‘김도훈’ 이름 석 자가 적혀있다. 오늘은 인상을 구기며 전화를 받았다.

“너, 너어, 어디, 야.”

“…….”

오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냐, 고.”

“…….”

“……김, 도훈?”

“…….”

이산래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왜 그러십니까?”

“말을, 안, 하는…….”

다그닥.

“…….”

“……들었습니까?”

다그닥.

“……들었습니다.”

문 너머로 발굽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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