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24. 목이 없는 말(1)
왼쪽 손목에서 묵주가 흔들렸다.
특별수사과 연구소 지하에서 저주받은 인형이 걸어 다니는 걸 봤지만 여전히 ‘저주’라는 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길거리에 있는 좌판이나 액세서리점에서 ‘효과 좋은 부적 판매’라는 글귀를 자주 봤지만 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에게서 받은 묵주를 아직 착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묵주 말고도 도서관에서 터키 부적도 받았다. 조금 작아서 평소에는 안 하고 다니지만 선물해 준 당사자를 만나는데……. 이런 사소한 점에서 호감을 얻는 법이지.
한평화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일은 없다.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흠.
그래도 일단은 복숭아부터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
“…….”
박물관으로 오라고 해서 왔는데 왜 또 전화를 안 받는 거냐.
휴대폰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소로 찾아갈까? 연구원이나 수사관이 있을 테니까 초능력자 면허를 내보이면 오늘을 불러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에게 한 번 더 전화를 했다.
“으아악!”
“저거 뭐야!”
신호음 너머로 비명 소리가 들렸다.
“…….”
휴대폰을 내렸다.
박물관을 거닐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뛰어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런 일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동안 비상근무 뛰면서 영향을 받긴 했나 보다.
그냥 능력 믿고 나대는 거일 수도 있고,
초능력자에게 의무 조항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어차피 피해 봤자 임상규한테 전화가 올 게 뻔해서일 수도 있다.
“…….”
멀리서 무언가가 네 발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거리가 아직 멀다.
아직 다친 사람은 없었다. 피하다가 넘어진 사람은 있지만 저것과 부딪치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거리가 좀 멀다.
속도는 빠르지만 이리저리 진로를 꺾어 가며 날뛰는 바람에 차단막을 칠 수도 없었다. 아예 커다란 크기로 쳐 볼까 했지만 그러기엔 아직 사람들이 많다. 어설프게 차단막에 같이 갇혀 버리면 큰일 난다.
“으아악!”
아이와 같이 박물관 견학을 왔는지 젊은 아빠 하나가 기겁하며 아이를 감쌌다. 그것의 진로와 겹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의 정체가 보였다. 말이다. 목이 없는 말.
말이 남자와 아이를 덮치기 전 보호막을 쳤다. 말의 앞다리가 보호막과 부딪쳤다.
“으아… 아?”
남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보호막에 진로가 막힌 말은 앞다리로 바닥을 긁다가 방향을 틀었다. 잘린 목이 기괴했다.
보호막을 유지한 채 말을 가둘 차단막을 쳤다. 사람을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목 없는 말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 벗어났다. 젠장, 머리도 없는 주제에.
“애기 데리고 빨리 피하세요.”
“네? 아, 어, 네, 가, 감사합니다!”
남자가 아이를 품에 안고 허둥거리며 달아났다.
“……애매한데.”
말이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바람에 범위를 조절하기가 힘들다. 아직 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좀 있고.
“히익!”
“으아악!”
“흐억!”
말을 붙잡기는커녕 사람들을 대피시키기에 바빴다.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사람들이 허둥거리며 뒤로 달려갔다.
“큭!”
애초에 박물관 앞은 넓은 공터에 가까웠다. 주말이었으면 사람이 더 많았겠지. 그럼 인명피해가 났을 거다.
손에서 빛이 꺼질 새가 없다. 그래도 대충 틈이 생겼다.
다그닥.
마구 날뛰던 말이 잠깐 멈칫했다. 말은 목적지를 잃은 것처럼 서성거렸다. 기세가 흉흉했지만 몸짓에서 당황함이 느껴졌다.
마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됐다.”
하지만 그 덕에 말을 가두는 데 성공했다.
“!!”
말은 당황했는지 차단막에 몸을 부딪쳤다. 조금씩 충격이 들어오는 걸 보니 평범한 말은 아니다. 하긴, 처음부터 목 위로 아무것도 없는 말이 평범할 리가 없지.
말이 차단막에 갇히자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환호 소리가 들렸다.
“헉, 흐, 해, 해준 씨!”
사람들을 헤치며 머리가 반쯤 헝클어진 한 여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늘 씨?”
내가 그토록 전화를 해 댔던 오늘이었다.
“저 미친 말 새끼가 진짜!”
그 옆으로 김도훈이 나타나고.
“이래서 신라 특별전 같은 건 하지 말자고 한 건데…….”
진 빠진 얼굴의 이산래가 나타나고.
“어허, 이건 또 흥미로운 사례인데.”
그 뒤로 나이 지긋한 노인분들이 나타났다.
* * *
혹시나 잊어버릴까 해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여기에 그 개 같은 복숭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왔다.
“죄, 죄송해요…….”
그렇지만 의경과 경찰들이 박물관 주위를 막고 구급차가 시민들을 살피는 이 광경을 보며 차마 복숭아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잔뜩 울상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겨, 경주에서, 유물, 이 발견, 돼서…….”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경주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경주에서 나온 신라 유물이다.
바로 지난 주말에 서울에 비를 뿌렸던 아사달도 신라 출신이다. 이곳에서 신라는 무슨 마굴 같은 걸까? 경주도? 귀신과 목 없는 말이 돌아다니는 그런 곳?
“하하하, 여기 앉으시고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테이블이 척척 세팅되었다. 햇빛을 가려야 한다며 파라솔이 달려 있는 야외 테이블이다. 김도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주문한 음료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죠. 경주에서 새 유물이 발견되었고, 마침 박물관에서 신라 특별전을 열어서 겸사겸사 같이 올려 보냈다고요?”
“신라 시대 유물에는 정신 나간 미친놈들이 많이 붙어 있어서 전 반대했습니다.”
이산래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주말에 뵙고 또 뵙는군요.”
같이 산 한 번 탔다고 이산래는 제법 친근하게 알은체해 왔다.
“보통 초능력자분은 저와 엮일 일이 별로 없어서 신기하네요. 저는 요괴보다는 귀신이나 이현상에 대해서 다뤄서.”
이산래는 능숙하게 시선 처리를 했지만 김도훈은 그러지 못했다. 김도훈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을 굴렀다. 흔들리는 시선 끝이 아직 차단막 안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목 없는 말에게 향했다.
“씁.”
오늘이 김도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화들짝 놀란 김도훈이 시선을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그 꼴이 좀 불쌍해서 그냥 모르는 척해 줬다. 김도훈은 목 없는 말을 흘긋 보면서 말했다.
“주차장 공사하다가 유물 나와서 경주에 조사하러 갔었습니다. 저희가 그쪽 전문이라.”
“그, 그래서, 요새, 좀, 바, 바빠서…… 연, 락, 못 받았, 어요…….”
“뭐야. 오늘 씨 해준 씨와 아는 사이였어요?”
“제가 몇 번 좀 신세를 졌죠.”
“아, 그때 해준 씨 능력 확인 도와준 게 두 사람이었죠?”
이산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 이, 이제… 화, 확인 작업, 다 끝… 나서, 괜찮, 았는데…….”
오늘은 자신이 불러 놓고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 미안했는지 내 눈치를 보았다.
“나중에 말해 주세요. 저걸…… 풀어놓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기운이 좀 났는지 말은 다시 차단막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흠…….”
속이 울렁거려서 냉큼 음료수를 들이켰다. 차가운 게 넘어가니 좀 나았다.
“약속 있었어요?”
“아, 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어떤……? 아, 제가 물어보면 실례인가요.”
“네? 아뇨, 그, 지난겨울에 가짜 선도 때문에 고생을 좀 했거든요. 그런데 아시는 분이 저한테 복숭아 냄새가 난다고 한번 확인해 보라 하셔서요.”
“그게 해준 씨였습니까?”
이산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네?”
“그때 해준 씨한테 연락드린 게 저였거든요.”
“그래요?”
이산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복숭아 향이 남아 있다고요? 누가 그러셨습니까?”
“호랑이요.”
이산래는 눈을 깜빡였다.
“……강원도의?”
“네. 그 독립군이요.”
“대단한 분 알고 계시네요…….”
김도훈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면 맞겠죠……. 그런데 그 복숭아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었거든요. 그걸 만든 놈이 문제였지 걸려 있는 주술 자체는 조잡했는데…….”
이산래는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했다.
“어쨌든 저도 같이 봐 드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전문가가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일단 저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도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 능력은 거리에 제한이 있었고 너무 멀어지면 유지하지 못한다. 경찰들이 괜히 카페 테이블을 여기까지 옮겨 줬겠는가.
내가 여기서 못 일어나니까 옮겨 줬지.
차단막 주위를 보았다. 아까 소개받은 나이 든 노인들, 저명한 역사 교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말이 차단막을 들이박을 때마다 몸을 움찔하더니 곧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원래는 특별전 전시와 유물 관련해서 온 사람들이다. 이쪽 세계에서는 발굴된 유물에 이상한 것이 붙지 않았는지 확인 작업을 함께 거쳐야 한다. 유물의 특성과 역사, 가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첫 확인 작업에는 역사 전문가가 함께 움직인다.
“경주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작업을 다 했거든요.”
이산래가 오늘을 보며 말했다. 참고로 이산래가 오늘보다 직급이 높다.
“꼬, 꼼꼼, 하게, 했, 어요!”
“오늘 씨 실력이야 저도 잘 알죠.”
이산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고 나서도 얌전했거든요. 그래서 잊고 있었습니다…….”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안쓰러웠다.
“신라 놈들이 제정신이 아닌데 말이라고 제정신이겠습니까. 그놈들은 아주 정도를 모른다고요.”
“팀장님, 걔들이 정도를 알았으면 천 년 넘게 아내를 찾아서 구천을 떠돌겠어요?”
김도훈이 해맑게 얘기했다가 이산래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서, 설마, 낮에도, 나올 줄은…….”
목 없는 말이 차단막과 씨름할 때마다 교수들 사이서 감탄이 나왔다.
한국사의 전문가라고는 해도 저 할아버지들은 어디까지나 민간인이다. 지금 하는 일은 그저 말보고 감탄하는 것뿐이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건 그 주위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특별수사과 사람들이다.
차단막을 중심으로 바닥에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졌고, 부적이 붙었다. 제령 준비다.
본래 저 사이에 서 있어야 했지만 짬과 나와의 인맥으로 테이블에서 아메리카노나 쪽쪽 빨고 있는 수사관 세 명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저 말은 어디서 온 말입니까?”
“…….”
이산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신라 시대에 유명한 목 잘린 말이 하나 있잖습니까.”
“…….”
신라. 목 잘린 말.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신라인은 도대체 뭘까요? 목 잘린 말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장군님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요?”
김도훈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제사라도 해 줬을 텐데…….”
“그땐 안 나왔을 수도 있죠.”
“제가 말이라면 억울해서라도 나와서 돌아다녔을 것 같은데요. 말은 주인이 늘 가던 대로 간 죄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신라인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죠.”
현대적인 디자인의 박물관 건물과 경찰차와 구급차, 부적과 교수들 사이로 보이는 목이 잘린 말.
오래전 술에 취한 주인을 기생집으로 데려갔다는 이유로 목이 베인 말은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목이 잘린 채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