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22. 그림자 없는 탑(2)
“그럼 아사달은 뭐, 악령 같은 겁니까?”
영화에서 봤던 귀신을 떠올렸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나, 사람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그런 귀신.
박물관에 있는 특별수사과 연구소에서 저주받은 인형으로 능력 테스트를 한 결과, 이쪽 세상에는 ‘그런’ 귀신도 있는 모양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하는 동물도 있는데 오히려 없는 쪽이 섭섭할 지경이다.
“해를 끼치진 않아서 악령이라 하기도 애매합니다.”
특별수사과 이형상수색(異形狀搜索)팀의 이산래 팀장이 말했다.
“경주에서 이삼 년에 한 번 정도로 일어나는 일인데 그림자가 없는 탑을 고의로 무너뜨리지만 않으면 아사달도 넘어가 주고요.”
“만약 탑을 고의로 무너뜨린다면요?”
“밤에 아사달이 나타나 슬픈 얼굴로 계속 바라본답니다.”
“아…….”
“가위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고통스럽진 않아서 경험자 말로는 미칠 듯한 죄책감만 들지 무섭진 않답니다.”
“네…… 무해하군요.”
이산래는 그림자 없는 현상이 낯선 서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임상규는 아는 부분에서는 말을 얹다가 모르는 설명이 나오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 출신인 이산래는 여러 괴현상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이현상수색팀의 팀장이라고 했다. 반지르르한 말로 포장해놨지만 실상 하는 일은 푸닥거리 종류라고 자학 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물론 아사달이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이야기에서는 점잖던데요.”
“점잖죠. 하지만 성격 좋다고 옆에서 자꾸 찌르면 한 번쯤 화내지 않습니까?”
“……그게 죽은 사람한테도 통하는 말입니까?”
“죽은 사람도 한때 사람이었잖습니까. 그래서 아사달도 한 번씩 화를 내는데, 어느 타이밍에 화를 내는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심해야지요.”
이산래는 콧등을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화내면 무섭습니까?”
“개미도 천 년쯤 묵으면 보통 영물이 아닐 텐데 인간의 영혼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탑을 짓기 위해 귀하게 모셔 온 석공입니다. 귀신보다는 신(神)에 가깝죠.”
하긴 경주도 아니고 서울 전역에서 탑 그림자를 없앴다. 심지어 서울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인 잠실 타워 그림자마저 없앴다.
“박물관에 있는 탑 그림자도 사라져서…… 제 눈이 드디어 맛이 간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앙박물관 실내에도 탑이 있었지.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일에 수사관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선했다.
“이게 경주에서 오랫동안 일어나는 현상이면 해결하는 방법도 있겠죠?”
“그야 있죠.”
이산래도 잠실 타워를 보았다. 고개가 꺾였다.
“탑 그림자는 천천히 돌아옵니다. 그림자가 없어진 탑 주위에 연못을 만들고, 거기에 탑이 비치게 되면 그림자가 돌아옵니다.”
“은근히 낭만적인데요.”
“보통 그 지역에서 제일 높은 탑의 그림자가 돌아오면 현상도 끝납니다.”
잠실 타워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탑은 박물관에 있는 탑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박물관에 있는 탑은 실내에 있다. 연못을 만들 수 없다.
“연못을 만들 수 없는 곳도 있잖습니까?”
박물관에 있는 탑뿐만이 아니라 아침에 집에서 창문을 통해 봤던 돌탑도 떠올렸다. 평상 위에 만들어진 작은 돌탑.
거기도 아무리 해도 연못은 무리지.
“말이 연못이지 그냥 세숫대야에 물 받아서 놔도 됩니다. 탑이 비칠 수 있는 물이 중요한 거라서.”
“그럼 이것도 그냥 기다리면 되지 않습니까?”
운이 좋은 건지 잠실 타워 옆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잠실 타워 전부가 비칠 정도로 큰 크기다.
“그렇겠지.”
걸어서 타워를 한 바퀴 보고 오겠다고 사라졌던 청룡이 다시 돌아왔다. 경찰이 쳐 놓은 저지선 바깥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기자들도 돌아왔다. 잠실 타워를 찍으러 왔다가 둔갑한 청룡을 보고 아이돌 찍는 파파라치마냥 청룡을 따라다니던 이들이다.
겨울부터 청룡은 잠실 위를 떠다녔다. 가끔 어디론가 사라지는 날은 있었지만 ‘오늘의 청룡님’ 블로그에는 주말을 제외하면 항상 청룡의 모습이 업데이트되었다. 비늘 달린 모습 쪽 말이다.
인간 모습으로 둔갑하는 일이 적으니 저렇게 열렬하게 쫓아다니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하지만 이 커다란 탑의 그림자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청룡의 말에 이산래는 쓰게 웃었다.
임상규가 청룡의 말에 덜덜 떨던 것에 반해 이산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빨라도 한 달은 걸리겠지요.”
“그동안 저 아이들이 이곳을 쓰지 못하겠고.”
청룡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실 타워 직원들이다.
“청룡님께서 탑을 쓰지 못해서 그러신 건 아니고요?”
“흠. 이 땅에 높은 건물이 저것뿐인가?”
“영등포 빌딩은 각져서 싫다고 하셨잖습니까.”
“흐음. 한 바퀴 더 보고 올까.”
청룡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손자에게 혼나는 할아버지같이 친근한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공덕 쌓는 건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 그저 좋은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되어 안타까워하고 있네.”
“공덕을 날로 드시려던 건 아니고요?”
“허허,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청룡은 이산래의 시선을 피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좀 높긴 하지만 평범한 빌딩인 잠실 타워가 탑이 되어 그림자가 없어진 연유에는 청룡이 깊이 관여했다. 공덕이래서 대충 짐작 가는 구석도 있었다.
“아니, 그러게 인형은 왜 팝니까?”
“나를 좋아해 주어 허락해 주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혹여 헛된 재물을 탐낼까 하여 내 이름으로 기부도 하라 일렀거늘.”
“그게 공덕으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룡님께서 항상 잠실 타워를 감고 계시니 그 탓이지 않습니까.”
“에잉, 늙은 용이 편하게 몸 좀 누이자는데.”
이산래와 청룡이 벌이는 설전 아닌 설전에 질려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미 옛적에 자리를 피해 있던 요괴대책팀이 있었다.
“언제 봐도 저 사람은 대단하다니까요…….”
“이산래 팀장님이요?”
“일조권 때문에 잠실 사람들이 청룡님께 한창 뭐라고 할 때 그거 중재한 게 저 사람이거든요. 보는 사람은 겁나 죽겠는데 청룡님께 하나하나 다 따져 먹더니 아예 청룡님 담당이 되었어요.”
“청룡님이 봐주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봐주는 게 어딥니까? 청룡님이 인간을 겁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잖습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 붙이는데.”
임상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다시 잠실 타워를 보았다. 평소에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인데, 그림자마저 사라지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이질감이, 여기가 확실히 미쳐 돌아가는 세계라는 걸 내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바로 그 아래서 청룡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는 이산래 팀장을 보면서 나는 임상규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한 달 동안 이렇게 둘 순 없으니 어떻게 방법을 내야겠죠.”
“아사달은 점잖다면서요?”
“한 달 동안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요.”
임상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벌써 무너진 탑을 봤다는 신고가 두 개가 들어왔습니다. 아내를 찾기 위해 탑의 그림자를 없애는 아사달인데, 그런 탑이 우후죽순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자길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천 년 묵은 한이란 무섭다.
남편이 탑을 짓기 위해 절에 들어갔다가 연락이 끊어지자 아내는 남편을 그리워하다 못에 빠져 죽었다. 아사달은 탑이 완공된 이후 아내의 소식을 듣고 모습을 감추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원한에 절을 불태웠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저 슬픔에 잠겨 모습을 감추었다는 점에서 아사달은 충분히 점잖았다.
천 년의 인내심이 이제 와서 무너질까?
무너질 수도 있겠지.
멋대로 재단하는 건 안 좋다. 계속 말해 왔던 것이지만, 대부분의 일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있겠어?
“처음 이 능력을 각성했을 때는 말입니다.”
복숭아가 맛있었다. 정해영 다음으로 원수 같은 놈이지만 맛을 떠올리면 납득은 되었다.
“계속 일할 생각이었거든요.”
“초능력 각성하면 일반 회사 일하는 거 불법인 거 아시죠?”
“말이 그렇다는 거죠.”
공무원 앞에서는 말조심해야 한다. 공무원인 사촌 형도 그렇지만 보통 예민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늘을 나는 능력이나, 물이나 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과 달리 크게 와 닿는 능력은 아니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게 더 적응이 빨랐지 않나 싶다.
아니지, 초능력이 강했다면 쥐뿔도 모른 채 날뛰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정쩡한 능력으로는 신선비 잡으러 불려 가지 않았을 테니 박서원의 속내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테고.
그리고 박서원이나 이다혜, 손요운처럼 싸우는 건 내게 도저히 무리다. 초능력자의 몸은 일반인과 똑같으니 맞으면 아프다. 난 아픈 게 싫다. 차라리 지금처럼 뒤에서 보호막이나 치는 게 낫지.
“그런데 생각보다 이 능력이 대단한 능력인 것 같고, 지금은 이렇게 불려 다니잖아요?”
“그렇죠.”
“다른 초능력자들은 이런 일에 별 도움 안 되는데 저는 이렇게 나와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임 팀장님.”
“네?”
이건 좀 중요한 질문이다.
“청룡님이 도와주신다는데, 제가 꼭 있어야 할까요?”
귀신을 상대하는 건 영화관에서도 충분하다. 난 애초에 영화관에서도 공포 영화는 잘 안 보는 주의다.
청룡에게 여의주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혹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미친 척 눈 딱 감고 물어보고 싶지만.
“저는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랑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천 년이나 묵은 불가의 객이 귀신이든 신이든 상관없다.
저쪽에서는 귀신 따윈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넘겼단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왜? 귀신이 존재하는 세계니까!
* * *
아사달에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1. 그림자가 사라진 탑에 고의로 피해를 주면 안 된다.
2. 그림자가 사라진 탑은 조금씩 그림자가 차오르며 수면에 그림자가 비치면 그림자가 돌아온다.
3. 가장 높은 탑의 그림자가 돌아오면 아사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간다.
왜 ‘슬픔에 잠긴’이라는 수사구가 붙냐면, 그렇게 탑의 그림자가 모두 돌아오면 항상 폭우가 내린다고 했다. 슬픔과 비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슬픔에 잠긴 아사달이 비를 내리는 거죠.”
그새 경주에서 일어나던 그림자가 없어지는 현상에 대해 공부했는지 임상규가 설명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귀신보다는 신에 가깝다 불릴 만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탑이 잠실 타워가 되어 버리고, 잠실 타워의 그림자가 돌아올 때까지는 빨라도 한 달이다. 그 한 달 동안 잠실 타워보다 낮은 탑들은 그림자를 빼앗기고, 돌려받길 반복한다. 그동안 탑은 건드려 아사달을 화나게 하는 이들이 없을까?
“이런 일에는 기대를 내려놓는 게 낫습니다.”
이산래가 냉혹한 얼굴로 평가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부끄럽지만 나도 그 말에 긍정했다.
“사당에 있는 물건을 수거했으니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이곳에서 제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사달이 화를 내기 전 그를 달래기로 결정했다.
임상규에게 연락을 받으면서 간략하게 할 일에 대해 듣긴 했지만 정확성을 위해 다시 물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특별수사과에서 테스트했을 때 저주와 귀신도 막으셨다지요?”
“그, 으, 네…….”
“청룡님께서 아사달을 불러 설득하실 텐데, 만약을 대비해 주시면 됩니다.”
능력에 대해 연구한다는 말에 낚여서 테스트하러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 표정이 너무 썩었는지 이산래가 덧붙였다.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세요.”
“아까 분명 아사달이 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에 가깝다고 했죠.”
“전 인간이거든요.”
“그렇죠.”
“아사달이 마음먹으면 제 보호막은 홀라당 날아가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산래가 입을 여는데, 기어이 잠실 타워를 한 바퀴 더 돌고 온 청룡이 다가왔다.
“내가 도와줄 거네.”
청룡은 갓을 매만지며 씩 웃었다. 흰 머리에 흰 수염에 갓. 양장을 입고 있는 것만 빼면 사극에서 튀어나온 선비의 모습이다.
“그 능력은 요즘 보기 힘들어져서 아쉬워하던 차인데, 이렇게 나타났다니 내 특별히 마음을 쓰지.”
“잠실 타워가 탑이 된 건 청룡님께서…….”
“예끼, 이 늙은이를 언제까지 타박할 생각인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에잉…….”
청룡은 혀를 끌끌 찼다. 이산래는 청룡의 눈빛이 무섭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있었다.
“그래, 내 잘못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더냐?”
이산래가 잔소리를 하는 걸 다 받아 주고 있는 걸 보니 처음 청룡을 봤을 때의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하긴, 눈앞에 있는 이는 평범한 영물이 아니라 신수였다. 그것도 한반도를 수호한다는 동해 용왕 아니신가. 인간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청룡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석공의 생전 만난 적이 있는데, 좋은 사내였다. 잘 타이르면 돌아갈 것이네.”
천 년을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왔던 청룡은 스쳐 지나간 얼굴마저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신수라고 해야 하나.
“흠. 그러고 보니 정해준 군.”
투덜거리며 말을 끝낸 청룡은 갑자기 날 불렀다.
“네?”
“아직 날이 추울 때 나를 만나러 온 적 있지 않나?”
“……네?”
“자네 기운을 느낀 적이 있는데.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