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20. 구렁덩덩 신선비(5)
산암.
“산함박 알잖아. 응?”
박서원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차단막을 툭툭 치는 발이 장난스러웠지만 신선비를 겨누고 있는 검은 날카로웠다.
“그, 음…….”
신선비는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그놈, 어디 있어? 최근 5년 내에 본 적 있어?”
“…….”
박서원은 느리게 말했다.
“나와 여우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 빌어먹을 뱀 새끼 중에 골라.”
“…….”
“누가 네 놈을 편하게 죽여 줄 것 같아?”
박서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하고 아는 척을 했다. 박서원이 신선비를 보고 있어 내게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선비는 어딘지 모르게 질린 얼굴로 박서원을 보고 있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모른다는데 여우한테 넘길 정도로 난 뱀을 싫어하지 않아.”
“…….”
신선비는 창백한 얼굴로 박서원을 보았다.
원래 그렇게 창백한지, 아니면 피를 흘려서 창백해졌는지 모를 노릇이다.
신선비는 웅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동족을…….”
“무슨 헛소리야?”
박서원은 짜증을 냈다.
“뱀한테 동족애가 어디 있어? 내가 그렇게 많은 뱀을 죽였는데 자기 동족이라고 감싸고 죽은 애는 한 번도 못 봤다고.”
“…….”
“인간한테 당해서 자존심 상해하며 혀 빼물고 죽은 놈은 봤어도.”
신선비의 손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땅을 적셨다.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속이 느글거렸다.
인간은 생각보다 시각적인 효과에 약하다. 거대한 뱀, 아니 하다못해 조금 전의 작은 뱀이어도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진 않을 텐데.
좀 심하게 창백하다는 점을 빼면 지금의 신선비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왜요? 능력 많이 썼어요?”
배를 꾹꾹 누르다가 박서원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아까 박서원이 밀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멍은 안 들었으나 모르겠다.
“……그, 뱀.”
“네?”
“그…… 산…… 그, 이름은 10년 전의.”
산암.
‘이곳’에서의 내 가족을 죽인 재앙의 이름이다.
박서원의 여동생을 죽였고, 한평원의 아버지 또한 죽었다.
합동 장례식장에 멍청하게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진들과 국화꽃들. 사망자는 세 자리를 훨씬 웃돈다.
그 모든 이들을 죽인 뱀, 강철이의 이름.
박서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않아요?”
“네?”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거예요? 충분하잖아요. 아니면 계속 모르는 척해 줘야 해?”
박서원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난 지난 10년 동안 그놈을 죽이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정해준 씨는 어땠어요?”
박서원은 나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 * *
2009년 7월 23일은 산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철이가 서울 북부를 덮쳤던 날이다. 평일 오후의 일이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시간도 아니었다. 그러나 재앙은 주택단지와 근처에 있는 학교 몇 개, 그리고 병원을 덮쳤다. 급하게 달려온 초능력자 몇 명은 시민들의 대피를 돕다 목숨을 잃었다.
사상자는 네 자릿수.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일 개체가 낸 사상자 수로는 가장 많았다.
기억은 덮어쓰였다. 내 몸이 이곳에 적응해서인지, 아니면 사실 정말 이곳이 현실이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나는 내 가족들이 죽은 이곳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정해영이 한심하게 연예인 이름이나 외치고 다니는 그곳이 나의 현실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내 기억은 강제로 ‘덮어쓰기’ 당한 것이다. 내가 원한 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덧씌워진 기억은 많지 않다. ‘현실’에서는 연예인이었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가족의 장례식만 떠올랐을 뿐이다.
솔직히 전자는 내 기억이 지워진 느낌이다. 장례식장은…….
……사실 무슨 기억이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무언가 바뀌었다는 확신은 있다. 구민석이 현실에서도 단청의 부회장이라는 사실에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떠올리는 이 기억을 대가로 무언가 사라졌을 확률이 높았다.
‘학생, 힘들어도 밥은 먹어. 알았지? 그래야 버티지.’
장례식장 직원인지 봉사자인지 모를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갔다. 멍한 얼굴로 상을 보자 따뜻한 쌀밥과 육개장, 편육 몇 점이 보였다.
‘…….’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 있다.
나와 같은 교복이다. 상복은 없다. 집은 무너졌다. 학교에 있던 시간이니 입고 있던 교복을 계속 입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쪽은 좀 더 현장과 가까웠는지 하얀 셔츠가 더러워져 있었다.
하얀 반팔 와이셔츠와 왼쪽 포켓 위에 노란 명찰이 박혀 있었다. 내 가슴에도 명찰이 있다. 정해준.
맞은편의 명찰을 읽었다.
박서원.
고개를 들었다.
10년 전, 열아홉의 박서원이다.
박서원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 * *
“뭐야.”
눈을 깜빡였다.
“혹시 진짜 기억 못 하는 거였어?”
박서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눈을 깜빡였다.
10년 전에 이미 박서원을 만났다고?
나는 등장인물이 아닌데? 그런데 왜 박서원과 과거에 만난 거지?
이건 말이 안 된다.
“아, 뭐, 됐어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박서원은 다시 신선비를 보았다.
“슬슬 다른 사람들이 올 시간이니까요. 야, 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말해. 그렇지 않으면…….”
“난, 모른다.”
신선비가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이야기에서 사람 홀리는 건 여우라고 들었는데 신선비의 목소리를 들으니 왜 실종자들이 그를 따라갔는지 알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등산복까지 입고 있으니 누가 뱀이라고 생각할까.
신선비의 말에 박서원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검을 움직였다. 의도는 명백했다. 신선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진짜다. 그 강철이는 유명해. 하지만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도 8년 전이다. 까치가 소백산맥에서 봤다고 했는데.”
“그건 나도 알아.”
“……날 여우에게 보내지 마.”
“그게 무서웠으면 애초에 인간을 데려가면 안 됐지.”
“그녀들은 날 좋아한댔어.”
“네 놈이 홀려 놓고서?”
“사랑에 종족은 없지.”
“심신미약은 포함되지 않아.”
“우린 진실된 사랑을…….”
“뱀도 개소리를 하는 세상이라니. 이러다 세상의 진보를 내가 못 따라가게 생겼네.”
신선비는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
“날 죽여 주는 건가?”
“흠.”
박서원은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왜 여우와 싸웠어? 여우가 뱀이라면 아주 치를 떨잖아.”
“……우리 짓이 아냐.”
“그래, 산함박 그놈 짓이지?”
박서원은 조금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나도 이게 좆같은 거 아는데, 걔네는 아직 연좌제가 있나 봐. 어쩌겠어? 원래도 여우와 뱀은 사이가 안 좋은데 그놈이 아주 지랄을 떨어놨잖아.”
“……뱀과 강철이는 다른 존재다.”
“인간의 눈에는 다 그게 그거거든. 용 정도는 되어야 아, 다르구나 하지.”
“무해한 뱀도 있다.”
“하지만 넌 아니지.”
박서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신선비는 아직 멀쩡한 눈을 내리깔았다.
“이 시대는 우리가 살기에 너무 힘들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놈들은 죽기 마련이야. 지금은 인간의 시대. 인간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들은 다 죽는 시대야.”
“……산함박도?”
“그렇지. 하지만 내가 그놈을 쫓는 건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야. 네놈이 그 새끼 행방을 모른다면 됐어. 내가 한 말은 지켜.”
박서원은 내게 눈짓했다. 많은 말이 속에 담겼지만 지금은 삼켰다. 아직 눈앞에 교복을 입은 박서원이 어른거렸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집중했다. 보호막을 두 겹으로 쳤던 감각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단막도.
신선비를 가두고 있던 차단막을 그대로 둔 채 박서원을 포함시키는 거대한 보호막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러면 차단막을 풀어도 신선비가 도망갈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오……?”
나는 계속 꼬리 부근에 있었으니 박서원은 아까 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박서원에게 신호를 보내며 신선비를 감싼 차단막을 풀었다.
풀 아니, 려고 했다.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설명 좀 해 주시죠, 박서원 씨.”
손요운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박서원과 나를 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신선비가 다른 곳으로 튀지 못하게 계속 꼬리를 붙잡고 있던 손요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단정히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도 엉망이었고, 옷도 더럽고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두 눈 만큼은 날카롭게 빛났고 능력 때문인지 다친 곳도 없어 보였다.
손요운은 주저앉아 있는 신선비와 검을 겨누고 있는 박서원을 보았다.
“투항했습니까?”
“그렇게 보긴 힘들죠.”
박서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이 녀석을 죽이기로 약속했거든요.”
“……투항했잖습니까.”
“인간을 납치한 뱀인데요?”
“둔갑까지 했으면 공격 의사가 없잖습니까. 이대로 데려가죠.”
“…….”
박서원은 못마땅한 눈으로 손요운을 가만히 보았다. 문득 주차장의 천막 아래서 손요운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불길함이 떠올랐다.
박서원은 손요운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씩 웃었다.
“그럼 선택하게 할까요?”
“……네?”
“야.”
박서원은 아직 풀지 않은 신선비의 차단막을 걷어찼다.
“제 차단막 좀 섬세하게 다뤄 주지 않겠습니까, 박서원 씨.”
“알게 뭡니까.”
박서원은 차단막을 한 번 더 걷어찼다.
“선택해.”
“……?”
“난 널 지금 죽이지 않을 수 있어. 이대로 널 데리고 산을 내려가서 신병만 넘기면 되니까.”
“그, 그럼…….”
신선비의 얼굴이 환해졌다. 누구한테 죽겠느니 말했어도 죽고 싶은 뱀은 없다.
그러나 기뻐하기엔 아직 일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높은 확률로 여우가 네놈을 데려갈 거야.”
“…….”
“지금 인간 사회는 그렇게 되어 있거든.”
잠깐 화색이 돌았던 신선비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손요운은 인상을 썼다.
“여우라니, 도대체 그건.”
“죽여라.”
신선비가 말했다. 손요운은 당황한 얼굴로 신선비를 불렀다.
“잠깐……!”
“그럴 바엔 차라리 깔끔하게 죽겠다.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다면 고통 없는 쪽이 낫다.”
“하하. 난 그래도 여우처럼 애꿎은 화풀이를 하진 않거든. 걱정 마. 깔끔하게 죽일 테니까.”
“지금, 도대체, 뭘!”
손요운은 박서원을 노려보다가 다급히 날 돌아봤다. 손요운은 박서원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해준 씨, 이거 풀어요!”
“정해준 씨, 이거 풀어요.”
동시에 박서원도 신선비를 가두고 있는 차단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다시 선택지가 나왔다. 둘의 차이가 뭐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그 새끼를 죽일 거야.’
박서원이 복수를 맹세하던 자리에는 나도 있었다.
새하얀 국화꽃. 찢어지고 불타고 구겨진 가족사진.
‘……나도.’
이곳의 정해준이, 10년 전의 내가 대답한다.
‘나도 그 새끼를 죽여 버릴 거야.’
복수를 맹세한 두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그 기억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움직였다.
“해준 씨!”
박서원은 씩 웃었다. 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모든 것이 불길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얼 놓친 걸까.
“댁이 소방관 출신인 것도 알고, 착한 사람인 것도 알아요.”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은 흔하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도 좋아하니까 그것도 괜찮다. 정해영 남자 취향이 좀 걱정되긴 해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드라마적으로 생각해 보자.
신선비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처형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박서원의 칼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라리 뱀의 모습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등산복을 입은 신선비의 모습은 인간과 다름없다.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이 광경은 기이하다. 겉보기는 인간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가 아무리 케이블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연령 제한이 걸려 있는 드라마인가?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불길하다. 차단막을 푼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은 보통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박서원의 검이 움직였다.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말이죠.”
박서원은 어린 동생을 타이르는 것처럼 다정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말했다.
“손요운 씨. 연민은 인간에게만 베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