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16. 방어와 보호(1)
이 세계에서 초능력은 유전이다.
부모가 모두 불 능력자라면 아이는 높은 확률로 불 능력자이다.
부모의 초능력이 다르면 아이는 우성 초능력을 가진다. 보통 불, 물, 흙, 바람 등 자연과 관련 있는 초능력이 우성이다.
한훈열의 직계인 한평원의 능력이 보호가 아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훈열의 아들과 손자는 모두 보호 능력자였지만 한평원은 모친의 능력을 따랐다고 했다.
“손주며느리 능력이 대대손손 물려받는 거라 그래.”
증손자가 보호 능력을 가지지 않은 것에 한훈열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쟁 나면 제일 먼저 끌려갈 텐데 가져서 뭐 하누. 물이 훨씬 낫지.”
내가 보호 능력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줬으면 싶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호 능력자의 씨가 마른 건 전쟁 때문이라고 했다. 18세기 말부터 세계를 강타한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초능력을 각성했다. 이전에는 필요 없어서 유전자 속에 묻혀 있던 능력들이다.
각성한 초능력자들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전 세대보다 보다 쉽게 능력을 각성했다. 그 아이는 또 자라서 다른 초능력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또 그 아이는…….
여기까지라면 평화로운 세상이었지만 불행히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말고도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 최전선에는 항상 방어나 보호 능력자가 있었다. 아군을 지키기엔 끝내주는 능력 아닌가?
“내 사촌들도 전쟁 때 많이 죽었지.”
한훈열은 담담하게 말했다. 코를 훌쩍인 건 한진열이었다.
“킁, 인간들은 전쟁을 너무 좋아해. 사이좋게 지내면 오죽 좋아?”
한훈열과 형제처럼 자랐던 한진열에게 그들 또한 가족이나 다름없었을 테다.
평화주의자 호랑이 한진열은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 이 호랑이가 독립 운동가였음을 잊으면 안 된다. 서대문형무소 습격 사건 선봉에 섰던 호랑이는 70년이 지난 지금은 무의미한 다툼을 싫어하게 되었다.
“다 옛날 일이야. 그래, 방어와 보호 얘기를 하고 있었지?”
“네.”
이야기는 다시 주제로 돌아왔다.
“방어는 뭐라고 생각하나?”
“어…….”
눈을 한 바퀴 굴렸다. 이곳에 넘어오기 전까지 줄기차게 했던 게임이 떠올랐다.
“……막는, 거 아닐까요. 공격 같은 거…….”
말하면서 슬쩍 눈치를 보니 다행히 오답은 아닌 듯했다.
“그럼 보호는?”
이렇게 어려운 질문은 대학교 교양으로 들었던 영어 회화 시험 이후로 처음이다.
보호는 보호지, 도대체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위험이나, 뭐 그런 걸 막는 거 아닐까요.”
“공격도 위험 아닌가?”
“그렇, 지요.”
“그럼 보호막을 방어막이라 불러도 되지 않는가?”
“그러게요.”
“그런데 왜 자네는 자네 능력을 보호라 부르는가?”
“그건…….”
애초에 나는 이게 보호 능력인지도 몰랐다. 고깃집 앞에서 내 능력을 본 박서원이 대뜸 같이 일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설렁설렁 넘겼을 게 분명했다.
“박서원 씨가…….”
조금 전 한훈열이 박서원 이름을 씹어 먹을 듯한 얼굴로 말하던 게 기억나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졌다. 한훈열은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더니 아까와는 달리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박서원이라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씹어 먹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은 안 끼는 데가 없구먼.”
박서원,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중국과 미국에는 보호가 아닌 방어 능력자도 있네. 적어도 80년대에는 그랬어. 평원아, 지금도 있더냐?”
“네, 할아버지. 하지만 몇 명 없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구별하기는 어려워. 생긴 것도 비슷허고, 능력 자체도 비슷하니까.”
눈치를 보니 방어와 보호 능력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근데 단어 자체는 그게 그거 아냐? 비슷한 말이잖아.
“방어는 공격을 막는다. 보호는 모든 악한 것들을 막는다.”
“……비슷한 거 아닙니까?”
“공격이란 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 누가 자넬 죽이려고 한다. 그럼 공격이겠지.”
“네.”
“보통 적의를 동반한 물리적 행동을 공격이라 말하지.”
게임 할 때면 세트로 나온다. 공격과 방어.
“그래서 보통 방어의 중심은 초능력자야. 초능력자가 자신에게 향하는 걸 공격이라 인식했기 때문에 방어를 할 수 있는 거지.”
듣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럼 방어 능력자가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펼치는 거는 뭐라고 합니까? 이것도 차단막이라고 합니까?”
“흠…….”
한훈열은 씩 웃었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할아버지였는데 웃으니 의외로 짓궂은 면이었다.
“공격을 막는다고 하지 차단한다라고는 하지 않는가?”
“그건 보호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아니지. 자네는 보호막을 펼칠 때 말야.”
한훈열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으로부터 뭘 보호하나?”
어?
한훈열은 다 식은 녹차가 담긴 잔을 들었다. 찻잔 안에는 녹차가 반쯤 남아있었다.
한훈열은 잔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그보다 조금 아래에, 반구 형태의 보호막이 나타났다. 공중에 떠 있는 보호막은 겨우 사람 얼굴 정도 되는 크기다. 나도 보호막의 크기를 조절할 순 있지만 저렇게 작게 만들 순 없었다.
“잘 보게.”
한훈열은 찻잔을 기울였다. 남아 있는 녹차가 아래로 떨어졌다. 정확히는, 보호막 안으로 떨어졌다.
내가 불길을 막은 것처럼, 한훈열의 보호막은 식은 녹차를 막았다. 사실 그건 막았다기보다는 ‘담았다’라는 표현이 맞았다. 보호막 바닥에 녹차가 찰랑거렸다.
“자네는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뜨겁지도 않고 이미 식은 녹차다. 맞으면 귀찮긴 하겠지만 위험하진 않다.
“아뇨.”
“그렇지만 보호막은 이걸 막았어. 그렇지 않나?”
“그렇, 죠.”
“공격인가?”
“아니죠.”
“그럼 이건 뭘 보호한 건가?”
“어…….”
‘보호’막 안의 녹차가 찰랑거렸다.
“보호막이 없었으면 내 무릎이 몽땅 젖었겠지. 그럼 이건 내 무릎을 보호한 건가?”
한훈열은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이어 말했다.
“아니면 천에 스며들어 형체도 없어질 다 식어 빠진 찻물을 보호한 건가?”
그런 관점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다. 내 능력에 대해서 한 번도 그런 심도 있는 성찰을 하지 않았다. 보호는 보호였으니까.
누가 게임을 하는데 스킬 하나하나가 왜 이런 이름을 가지는지 생각하겠는가?
누군가는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 스킬 이름이 ‘1’이면 ‘1’인 거고, 적을 공격해서 잘만 죽이면 끝인 이야기다.
“즉, 이 능력은 자네의 생각에 달려 있네.”
뭐……. 그래. 이건 게임이 아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스킬을 쓴다고 초능력이 알아서 괴물을 죽이지 않는다. 내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한훈열의 말도 이해가 갔다.
정해영이 들으면 비웃었겠지만, 난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다치는 것도 싫다.
처음 능력을 썼을 때를 생각해 보자. 머리 다섯 개 달린 도깨비는 다시 생각해도 무서웠다.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이라는 느낌이 왔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능력을 각성한 걸지도 모른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군다나 이런 영문 모를 드라마 속에서는 더욱.
“그럼 생각에 따라서 뭐든 막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여겨도 틀린 건 아니지.”
한훈열은 한평원에게 수건을 건네받았다. 보호막 아래에 수건을 깐 다음, 능력을 해제하자 식은 찻물이 수건을 적셨다.
“도깨비불도 막고, 산불도 막았다던데?”
도깨비불. 즉, 북촌 도서관 때 박 속에서 튀어나온 불은 공격이라고 인식했지만 산불 때는 확실히 공격은 아니다. 하지만 ‘보호’를 하지 않으면 그 불 속에서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니까…….
“하지만 말여, 정해준이. 자네는 불만 위험한가?”
“네?”
“연기는 위험하지 않던가?”
“그, 따지면 연기도…… 위험하죠.”
그래서 진화 작업을 하던 초능력자들도 헬멧과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물을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초능력자의 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불 속에 있으면 화상을 입고, 연기 때문에 기도와 폐를 다친다.
그래서 불개를 찾아 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한평원이 따라갔다. 보호막 안의 공기를 정화해주었다. 그 정화 능력은 지금도 좀 부럽다.
“그럼 왜 연기는 완전히 막지 않았나?”
“네? 그, 막으면 물론 좋긴 하지만, 그럼 숨을 못 쉬게 되지 않습니까.”
“왜? 연기만 막으면 되지 않나.”
“그건 힘들…….”
나와 같은 보호 능력자, 심지어 경력도 나보다 최소한 80배는 더 긴 사람이다. 굳이 콕 집어 얘기하는 걸 보면……. 설마.
“……가능합니까?”
“왜, 힘들 것 같다며?”
“가능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한훈열은 씩 웃었다.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감이 오나?”
“그게 가능하다면요.”
“그건 자네한테 달렸지.”
한훈열은 몇 가지 예시를 말해 주었다.
보호막 안에서 찰랑거리는 찻물과 같다. 산불로 인한 연기나, 조금만 응용하면 보호막을 이용해 물 위에도 떠 있을 수 있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 위험이라 인식하지 않은 것일수록 막는 데 많은 힘이 소모되지만 ‘보호’한다고 생각하면 막을 수 있다.
“알겠나? 자네가 흔들리면, 그걸로 끝이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기에 이런 부분까지 설정이 되어 있을까?
한훈열은 한진열 때문이라도 드라마 등장인물일 것 같았다. 올라오면서 강원서천농원 표지판도 보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드라마에 등장했겠지.
그래서 한훈열 능력에 대한 설정이 있는 건 이해가 가지만, 한훈열은 나이 때문에 일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 않은가. 드라마 스토리에서 활약하기에도 역시 나이가 걸린다. 그럼 역시 조언자 정도의 역할이 제일 맞다.
그런데…… 보호 능력자는 한훈열뿐이지 않은가. 내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의 보호 능력자는 여전히 한훈열 한 명뿐일 거다. 그런데 나는 본래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외부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한훈열은 보호 능력자인 나에게 이렇게 보호 능력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꼭 보호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보호 능력을 설명할 만한 장면은 있을 수 있지만…….
구구절절 말하긴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이 드라마 설정은 도대체 어디까지 짜여 있는가?’
이미 기존에 설정과 큰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사극도 아니고 이건 퓨전 판타지 드라마다. 말도 안 되는 CG가 떡칠 되고 작가가 내키는 대로 설정을 붙인다.
그래서 다소 말이 안 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아닌 이상 어설픈 게 당연한, 만들어지다 만 세상이니까.
“능숙해지면 잠수도 할 수 있어.”
“잠수요……? 도중에 능력이 풀리면요?”
“물귀신 되겄지.”
“…….”
이 드라마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어야 될지 모르니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 자체는 맞는 소리다. 원래 게임 할 때도 레벨을 올릴 만큼 올리고 난 후에 메인스토리를 깨는 게 진행에 편한 법이니까.
그렇지만…… 역시 이상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저, 선생님께서는 왜 이걸 제게 가르쳐 주십니까?”
“으음?”
“솔직히 말해서 전 평원 씨와도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고, 제가 이 능력으로 뭘 할지 선생님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한훈열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네는 보호 능력자지 않나?”
“……네.”
“십 년 전에 보호 능력자가 딱 한 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십 년, 전에요?”
“그래. 조금 늦긴 했지만…… 한 명 더 늘었으니.”
한훈열은 빙긋 웃었다.
“그거면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