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14. 드림팀(2)
백조 두 마리를 보는 순간 확신했다.
얘네가 드라마 등장인물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등장인물이 될 수 없다고.
* * *
백조는 백조였다.
그러니까 뭐 비유라든지,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새, 조류, 백조였다. 쭉 뻗은 새하얀 목이 우아하다. 하얀 털은 관리가 잘 되어 있는지 깨끗하고 푹신푹신해 보인다. 심지어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았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휴대폰을 툭툭 만지는 동안 백조 두 마리는 뭐가 신났는지 날개를 퍼덕이며 자기들끼리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동물원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 그것도 대한민국 1위라는 대기업 회장실 안에서 보기에 적합한 광경은 아니다.
목줄을 한 백조 두 마리? 거기다 그 목줄을 쥔 건 여고생이라고?
……이 드라마 설정 진짜 너무하네!
자, 생각하자. 당황하지 말고 정리하자.
아까 박서원과 구민석의 대화를 떠올려 보자. 박서원이 병신이라 한 건 아마 저 백조를 향한 소리일 테고, 구민석이 박서원의 친구라고 한 것도 아마 저 백조를 향한 소리일 거다.
아무리 초능력자가 성행하는 세계라고 해도 백조 두 마리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을 리는 없을 테니 원래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렇겠지?
백조가 나오는 동화가 있던가? 이 드라마로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다고 자부하는데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다. 백조? 두루미나 제비는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미운 오리 새끼?
근데 이건 동화 아냐? 안데르센이 지은?
……아, 뭐. 하멜른 때를 떠올리면 전후가 반대되어 있었다. 실제 있었던 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동화가 탄생했다는 식이다. 이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래도 미운 오리 새끼랑 저 백조 두 마리랑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미운 오리 새끼 말고 백조가 나오는 이야기가 뭐 있지? 백조의 호수? ……이건 발레 아냐?
백조의 호수는 저주에 걸린 공주와 사랑에 빠진 왕자가 저주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눈앞에 있는 백조는 일단 공주는 아니었다. 아니겠지…….
끙끙거리며 앓다가 쉬운 방법이 옆에 있는 걸 깨달았다. 이 정도는 물어봐도 무식한 놈 소리는 안 듣겠지.
“그, 저 백조는……?”
대기업 회장실에서 목줄 찬 백조의 정체를 묻고 있다니. 말하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다.
박서원은 왼쪽에 있는 백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는 백주하.”
백조가 반갑다는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저 깃털로 베개를 만들 수 있을까? 그건 거위 털인가?
박서원은 오른쪽에 있는 백조를 가리켰다.
“얘는 백주연.”
이번엔 오른쪽 백조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이는 없을까?
내 방황하는 눈동자를 알았는지 박서원은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는 인간이었어요.”
그래. 역시 저주 같은 거에 걸렸나 보다.
손톱 먹고 사람으로 둔갑하는 쥐와 머리 다섯 개 달린 도깨비, 불개 같은 게 있는 세상이다. 손목에 있는 묵주가 유달리 무겁게 느껴졌다. 부적이 생활용품처럼 사용되는 곳이다. 사람을 백조로 만드는 저주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때 여자애가 박서원에게 다가와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잠깐만,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부른 거야.”
왜 계속 휴대폰을 붙잡고 있나 했는데, 할 말을 치고 있던 모양이었다. 여자애는 박서원의 대답에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 하는 아이인가 싶었다.
박서원은 나에게도 그 아이를 소개해 주었다.
“정해준 씨, 이쪽은 백하연이고 얘네들 동생이에요.”
백조의 동생……. 웃지 말자. 넌 할 수 있다, 정해준.
“백하연 양? 안녕하세요?”
백하연의 눈이 나를 향했다. 백하연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뻐끔거렸다. 소리는 없었지만 알아듣는 건 쉬웠다.
‘안녕하세요.’
여동생이 인사하자 백조들도 나를 보며 목을 쭉 뻗었다. 자기들 나름대로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건가 싶었다. 다가온 백조가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문득 정해영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도대체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하다니까?’
혹시 그건 CG가 아니라 저 백조들을 두고 한 소리였을까…….
어쨌든 방금 백조 두 마리와 그 보호자를 소개받은 나와는 달리 다른 세 사람과 두 마리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적어도 백조 두 마리는 그랬다. 어색한 얼굴로 구민석의 안내를 받아 소파에 앉는 백하연과 달리 백조들은 뒤뚱거리며 회장실을 활개 쳤다.
심지어 박서원의 무릎 위로 뛰어오르기까지 했다.
“아, 씨발…….”
박서원은 살벌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구민석에게 물었다.
“지능이 그대로인 건 맞아요? 뇌까지 새대가리가 된 건 아니고?”
구민석은 정말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세 번이나 검사했네. 믿을 수 없지만 지능은 그대로네.”
박서원은 복잡한 얼굴로 백조를 보았다. 어릴 때 시골에 사셨던 할아버지가 닭을 잡기 전 저런 얼굴을 했다. 어떻게 해야 저 닭 모가지를 한 번에 비틀어 죽일까…… 하는 얼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하연아.”
백조를 물끄러미 보던 박서원은 백하연을 불렀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 모습을 보자 정해영이 왜 박서원을 목 놓아 외쳤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휴대폰 CF에서 감성 연기를 선보이는 연예인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박서원 휴대폰 광고를 찍긴 했었다.
“쟤네 집에서도 저러니?”
백하연은 고등학생답지 않게 초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박서원은 백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못 참고 말해도 뭐라 하지 않을게.”
절레절레. 백하연은 엄청나게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새끼들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 알겠지? 난 네가 말해도 네 편이야.”
어…… 음. 말을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건가?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 알아야……. 씨발. 그냥 물어보자.
“저기.”
나는 점잖은 척 목을 쭉 빼고 머리를 기웃거리는 백조를 가리켰다.
설마 사람이 백조가 되는 게 평범한 현상인 세계는 아니겠지. 그럼 진짜 죽인다. 누굴 죽이는진 몰라도 죽일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저는 여기 왜 부른 거고요?”
“아, 얘길 안 했었나?”
구민석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싶은 걸 참으며 대답했다.
“아까 지나가면서 같이 일할 사람들이라고만 했습니다.”
자기 얘기인 줄은 알고 백조들이 날개를 또 퍼덕였다.
백조를 볼 때마다 미약한 회의감이 느껴졌다. 굳이…… 주인공이라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나 홀로 여의주 찾기 여행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 나 홀로 여의주 찾게 여행을 하자. 하다가 갑자기 서울이 멸망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살아남는 게 주인공인 박서원밖에 없기는 하지만.
……시발.
이건 결국 선택권이 없는 문제였다.
* * *
“그러니까 잡히지 않은 위험등급의 괴물을 잡는 팀이라고요?”
“일종의.”
“……그런 게 많습니까?”
“민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꽤 돼요.”
박서원은 비서가 가져다준 음료수를 마시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가 왜 전 세계를 그렇게 돌아다니는데요?”
그런 놈들을 잡으러 다녔다는 말이다.
그래……. 드디어 박서원이 날 왜 신경 써서 훈련을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요괴대책팀의 임상규도 말했었고, 협업한 몇 안 되는 초능력자들도 하나같이 보호막의 유용성에 감탄했다. 그 박서원조차 능력을 보자마자 내게 제안했었다. 같이 일하자고.
“제주도 건도 그런 종류의 일이었죠. 거긴 쉬웠지만.”
장규혁에게 매달리던 곰이 떠올랐다. 박서원은 반달가슴곰은 체구도 작고 공격적인 성격이 아니라 대화로 풀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니, 그런 사람이 제주도로 날 협박해?
“실전 경험하기 딱 좋잖아요?”
쟨 진짜 천벌 받을 거다.
그리고 결국 겨울잠 자던 곰님을 해결한 건 장규혁의 얼굴이었다.
“우리 단청에서는 사회 환원 목적으로 아직 잡지 못한 괴물들을 잡는 팀을 꾸리고 있다네.”
구민석은 박서원을 가리켰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서원 씨를 데려왔고.”
그다음으로 뻔뻔하게 목을 바짝 세우고 거만하게 구는 백조 두 마리를 가리켰다.
“서원 씨 고등학교 동창이자 실력 있는 초능력자인 주하 씨와 주연 씨를 영입했지.”
“쟤네가 멍청하게 저주에 걸려서 오기 전까지는 꽤 괜찮은 팀이었어요.”
박서원의 사나운 눈초리를 맞은 백조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박서원의 말은, 겨울에 저 백조들이, 그러니까 원래 사람이었던 백조가 저주에 걸리는 바람에 그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고 했다. 백조가 된 친구들을 부려먹을 순 없으니 박서원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것도 한계가 왔을 때 즈음 나와 만난 것이다.
이전에는 대한민국에 한 명밖에 남지 않았던 보호막 능력자. 그마저도 90살 할아버지였으니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해준 씨가 딱히 질문하는 게 없어서 다 얘기해 준 줄 알았죠.”
쟤 지금 날 돌려 까는 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버버 따라왔다고?
“자기주장을 좀 하는 게 어때요?”
돌려 까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까는 거였군.
박서원의 사정이야 어떻든 나도 다른 속셈은 있었으니 떳떳한 입장은 아니다. 잡히지 않고 있는 위험한 괴물들이라. 그중에 여의주를 품고 있는 이무기도 있을 법하다. 잠실 청룡의 여의주는 논할 게 아니고, 그러면 이무기 여의주 일곱 개를…….
“해준 씨가 8등급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활동해도 되겠군. 현재 파악된 괴물에 대해서 정리한 자료를 줄 테니까 미리 숙지해 놓게.”
숙제 받은 기분이다. 그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이제 박서원이 나와 하려는 일은 대충 이해했으니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 차례다.
“그럼 이…… 사람…… 백조……, 그러니까 이분들은 무슨 저주에 걸린 겁니까?”
그래. 어쩌다가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아닌 드라마에서 백조가 퍼덕거리냐고.
그러나 정작 내 말에 반응한 건 백하연이었다. 여태 얌전히 있던 여자애는 갑자기 분개 어린 표정으로 물잔을 비웠다. 박서원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런 백하연을 보았다.
“하연이가 올해 고3이거든요?”
아, 저런.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감이 왔다.
“얘네들이 고3 되면 못 논다고, 하연이 데리고 방학 때 유럽에 여행을 갔어요.”
백하연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백조를 노려보았다. 백조들은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움직여 소파 뒤로 숨었다.
“대충 한 달 정도 잡고 갔었는데, 어디였지? 독일인가, 벨기에에서 저주에 걸리고 말았어요.”
“백조가 되는……?”
“네. 저주를 풀려면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이 쐐기풀로 된 옷을 지어 입혀야 해요. 옷을 만드는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면 안 되고요.”
쐐기풀까지 들으니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백조 공주? 백조 왕자? 그런 제목이었는데…….
아니, 그런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백하연은 무어라 빠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중얼거린다기보다는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표정이 살벌한 걸 보면 오빠 욕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쟤네가 저렇게 보여도 꽤 대단한 초능력자거든요? 나보단 못하지만.”
소파 뒤에서 백조가 울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듯했지만 그래 봤자 백조라서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저주를 푸는 걸 도와주고 있네. 주하 씨, 주연 씨. 들어 놔. 손해배상 청구하진 않을 거지만 정산은 할 거네.”
백조가 다시 길게 울었다. 항의를 하는 것 같지만 마찬가지로 백조라서 전달되지 않았다. 되려 백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휴대폰에 말을 찍어 보여 주었다.
“음. 하연 양도 허락했고.”
구민석은 씩 웃으며 소파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 입사했는데 하우스에서 쐐기풀 기르고 있는 우리 연구원들도 생각해 줘야지. 안 그렇나?”
백조 두 마리는 무어라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백조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많았다. 물론 백조는 백조라 인간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지만.
구민석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니 지금을 즐겨 두게나. 여름쯤 인간이 되면…….”
박서원이 말을 받았다.
“너희 둘 다 죽을 줄 알아.”
……심각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진심이 담긴 살해 협박으로 들리기엔 충분했다.
백조 두 마리는 구슬프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