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13. 불조심 캠페인(4)
“불여우가 있다고요?”
내가 아는 불여우는 그 의미가 아닌데, 그러니까 불 지르는 여우라는 의미의 그게 아닌…….
젠장, 이제 하나하나 따지기도 힘들다.
“네, 불개가 잡고 있었어요.”
산림청의 홍영준은 반나절 만에 폭삭 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평원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거기서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얼굴을 했다.
“그 여우를 어떻게 하기 전까지 이 불은 안 꺼진다는 소리인데…….”
홍영준은 땀에 흠뻑 젖은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한 사발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눈치인데 주위에 사람이 많아 참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불 한가운데 있는 불개를 잡을 수도 없고.”
홍영준의 눈이 날 잠깐 스쳤지만 그뿐이었다. 내 보호막이 산불 속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속에서 뭘 잡는 건 다른 말이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고, 보호막을 영원히 펼칠 수도 없다.
“……불개가 여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죠?”
조금 전보다 안색이 훨씬 나아진 새날의 초능력자 중 하나가 말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불개는 사냥개라서 사냥감을 보통 한 번에 죽이거든요. 가지고 놀지 않아요.”
도대체 일식과 월식에만 나타난다는 불개의 생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걸까. 아니, 그럼 평소에 불개는 어디에 있는 거지? 실제로 까막나라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런데 죽이거나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면 혹시 그거 아닐까요?”
아. 이름 기억났다. 김영선이다.
“어떤 거요?”
홍영준은 다급하게 물었다. 잘못하면 대한민국 전역을 불태울 수도 있는 산불이다. 꺼지지 않는 산불이라니. 미친 소리다, 정말.
“아니, 불개는 열기나 냉기를 품은 걸 좋아하잖아요. 여우를 잡고 있는 것도, 여우가 열기를 품고 있으니 그게 좋아서가 아닐까요?”
“음……. 일리가 있어요.”
“이 정도 되는 불을 낼 불여우라면 영력도 꽤 있을 거 아닙니까. 불개 정도 되면 알아보겠죠.”
“……그러면 더 큰일 아니에요? 불개가 열이나 냉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는 유명하잖아요. 쉽게 여우를 포기할 것 같지 않은데.”
김영선은 다른 사람의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불개 유인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열기 때문에 여우한테 집착하는 거면 걔보다 더 뜨거운 걸 안겨 주면 되는 겁니다.”
“더 뜨거운 거라.”
김영선의 말은 이쪽에 대해선 잘 모르는 나에게도 꽤 타당하게 들렸다. 아무렴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잘 알겠지.
“더 차가운 것도 괜찮죠. 불개는 둘 다 좋아하니까. 하지만…….”
김영선은 백성찬을 보았다.
“마침 불 능력자도 있으니까 뜨거운 걸 목표 삼는 게 더 빠르겠네요.”
“어? 나?!”
“허……. 그러네요. 좋아요. 좋습니다. 시도해서 나쁠 건 없죠. 정해준 씨, 피곤하시겠지만 한 번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홍영준이 간절한 눈빛으로 부탁했다. 거절해도 입맛이 나쁘다. 이 산불을 어쩔 거야. 불개가 여우를 껴안고 있는 동안은 꺼지지 않을 불이다.
산불 속을 떠올렸다. 한평원이 있던 덕분에 열기까지 차단되어 보이는 풍경이 좀 그럴 뿐 실질적인 위험은 느끼지 못했다.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좀 더 실감됐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별로 고민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찬이 당황하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좀 좋아진 덕분도 있다.
“아니! 불여우와 나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걔도 불을 만들고 나도 불을 만드는데, 오히려 불을 더 오래 피울 수 있는 여우 쪽이…….”
김영선이 혀를 쯧쯧 찼다.
“불개한테 중요한 건 순간 화력이라고요.”
“아니…….”
“백성찬 씨, 백성찬 씨 손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려 있습니다!”
“아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백성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갈까요, 형?”
“아니……!”
백성찬은 뭐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말을 완성하진 못했다.
만약을 대비해 한평원이 다시 합류했다. 하얀 보호막과 함께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를 홍영준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배웅했다.
* * *
“불개가 여우를 놔준다고 해도 문제야.”
“문제군요.”
“불개가 사람을 따르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렇지요.”
“일이 잘 풀린다고 해 보자. 불개가 여우를 놔주고 산불이 꺼진다고.”
“네, 잘 풀려서요.”
“그리고 불개는 여우 대신 날 따라다닐 거 아니냐, 어? 그게 작전이잖냐?”
“작전이죠.”
“내 의사……. 그래. 내 의사는 둘째 치고, 일이 잘 풀렸을 때는? 그땐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냐고요.”
“일이 잘 풀리는 건 좋아! 불 끄는 것도 좋아! 그렇지만 그다음은? 분명 나라에서는 나 몰라라 할 거라고!”
“나라에서요.”
“일이 잘 풀린다는 건 불개가 여우를 놓고 날 따른다는 거잖아?”
“네, 그렇죠.”
“불개가 날 따르면? 내가 걔 키워야 해? 난 개 알레르기 있다고!”
“알레르기요.”
“……너 지금 내 말 안 듣지?”
“듣고는 있어요, 듣고는.”
한평원은 유들유들 백성찬의 말을 받아넘겼다.
한번 왔던 길이라고 다시 가는 길은 전보다 쉬웠다. 어디를 둘러봐도 불타는 산속이지만.
아까보다 여유가 좀 생겨서인지 불타는 산을 좀 더 보았다.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영화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다. 드라마 속에 들어왔으니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어쩐지 영화와 드라마는 어감이 다르단 말이지…….
“형은 불개 본 적 있어요?”
문득 궁금해져서 백성찬에게 물었다. 굳이 따지자면 불개는 야생동물이다.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날에만 가끔 나타나는.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은 아니지만 개는 개이기 때문에 자극하지 않는 이상 위험성도 낮은 편이다.
물론 까막나라 임금님이 해와 달을 물어오라고 시킬 만큼 겁이 없기 때문에 잘못 건들면 피 보기 십상이라고도 했다. 두어 마리만 있어도 어지간한 맹수쯤은 쉽게 잡는다니까.
“옛날에 한 번. 나 사는 동네에 나타난 적이 있는데 동네 슈퍼 아줌마가 얼음 꺼내서 주니까 좋아서 씹어 먹더라.”
백성찬은 금방 자기 말에 불안해했다.
“설마 날 씹어 먹진 않겠지?”
한평원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백성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너네 대답 잘 하더니 왜 여기선 조용히 하는 건데.”
“아니, 뭐……. 일단 제가 보호막 쳐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맞아요. 여우 떼놓고, 불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 줄 거예요.”
백성찬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혼자서 돌아갈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왈!”
불개가 나타났다.
“……불개네.”
“아까 사진 찍어 온 거 봤잖아요.”
“원래 인류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헛소리 말고 불이라도 좀 뿜어 보세요.”
오랫동안 백성찬을 봐서 그런지 한평원은 봐주지 않았다.
제법 시간이 지나있건만 불개의 발아래에는 여전히 여우가 있었다. 축 늘어져 있는 게 죽었나 싶었지만 간간이 켕켕거리며 불개의 발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불쌍한 녀석. 어쩌다가 저놈한테 잡혀서는.
……아니, 산에 불낸 놈은 저놈이니까 자업자득이다.
“끼잉……. 낑.”
“왈! 왈왈!”
환장할 동물나라군.
검은 삽사리처럼 생긴 불개는 우릴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여나 불개를 자극할까 싶어 아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췄다.
불개는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헥헥거렸다. 좀 전에 보았던 우릴 알아보는 모양새였다. 보호막 반경을 늘렸다. 불개에게 접근하려면 불개까지 포함시키는 게 나을까 하다가 괜한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보호막은 불개의 앞에서 멈췄다. 대신 백성찬의 등을 쿡쿡 찔렀다.
“형. 형 차례에요.”
“느낌이 안 좋은데…….”
백성찬은 연신 고개를 기웃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까는 으르렁거렸던 거리였는데 백성찬이 나가자 불개는 뭔가 이상했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불개가 형 알아보나 봐요.”
“별로……. 안 그랬으면 좋겠거든.”
“불 좀 만들어 봐요.”
“조용히 해 봐.”
백성찬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렇지만 한평원의 말대로 불을 만들었다. 연수원에서 처음 보았던 것처럼 손바닥 위에 작은 불꽃이 만들어졌다. 살랑거리던 불개의 꼬리가 조금 더 빠르게 흔들렸다.
“반응이 온다!”
“형, 온도 좀 올려 봐요!”
“아니 애초에 불 지를 때 온도 같은 건 안 따지거든!”
그렇지만 백성찬은 이를 악물더니 손바닥에 만든 불꽃을 없애고 새로운 불꽃을 만들어 냈다. 한평원의 능력으로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던 보호막 안쪽이 순식간에 더워졌다.
사방이 불에 타들어 가고, 눈앞에서도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니. 진짜 말도 안 된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켕!”
갑자기 여우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자길 짓누르던 불개의 힘이 약해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듯했다.
불개는 백성찬의 손바닥에 있는 불꽃에 눈을 떼지 못했다. 백성찬은 손바닥에 불을 올려놓은 채로 양옆으로 크게 흔들었다. 불개의 머리가 백성찬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아, 여우 도망간다.”
한평원의 말대로, 여우는 불개의 앞발이 느슨해진 틈을 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불을 지른 게 저놈이 맞는지 넘실거리는 산불에 털이 그을리지도 않았다.
산불 사이로 사라지는 여우의 뒷모습을 보며 한평원이 혀를 찼다.
불개는 도망친 여우를 보며 갈등하는 듯했다. 쫓아갈까 말까 몸을 움찔움찔 떨었지만 결국 백성찬을 보았다. 결정을 내렸는지 꼬리가 맹렬히 움직였다.
백성찬은 불꽃을 유지한 채로 불개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불개가 벌떡 일어났다.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백성찬에게 다가왔다가 보호막에 막혀 멈추고 말았다.
“해준아, 일단 불 꺼 볼게.”
“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자, 백성찬이 손 위의 불을 없앴다.
“…….”
“……쟤 엄청 충격받은 것 같은데요?”
“형, 다시 만들어 봐요.”
“알았어, 알았다고.”
꼬리가 축 늘어진 모습이 장소가 산불 속이 아니고 쟤가 불개만 아니었다면 무척이나 가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산불 한가운데였고 저놈은 불개였다. 평범한 개가 아니라는 소리다.
백성찬은 잠깐 숨을 고르더니 다시 불을 만들어냈다. 축 처진 꼬리가 다시 흔들렸다.
불을 없앴다가, 다시 만들고. 없애고, 만들고. 서너 번 더 반복하자 불개는 백성찬이 자길 현혹시키는 뜨거운 불을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백성찬이 불을 없애도 더 이상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쁜 듯 컹컹 짖으며 보호막에 자꾸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이 보호막이 사라지면 우리는 불에 타 죽는다. 백성찬은 손 위에 만들어 낸 불에만 면역이다. 만화 같은데 보면 불을 쓰는 애들은 불에 안 타 죽던데 여긴 드라마라고 다른 듯했다. 쓸모없는 초능력 같으니라고.
“불개가 형만 보는 것 같으니 돌아가죠. 못 참고 달려들기 전에.”
단순히 물리적인 충격이라면 더 버틸 수 있겠지만 불개는 영물이었다. 방금은 공격 의사가 없어서 괜찮았지만 조급해져서 달려들면 위험하다. 그러기 전에 불 속에서 나가는 게 좋다.
보호막 크기를 줄이고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갔다. 불개는 백성찬에게 완전히 빠졌는지 졸졸거리며 따라왔다.
백성찬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몇 번 자리를 바꿔도 불개는 백성찬의 뒤만 쫓았다.
백성찬은 불안해했다.
“이거 안 좋아. 쟤 내가 키워야 할 것 같아.”
한평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개 좋죠……. 키우면 저 형 집에 놀러 가도 돼요?”
생긴 건 삽사리니까 키우는 것 자체는 문제없을 듯싶었다. 열기와 냉기를 좋아하고 불에 타 죽거나 얼어 죽는 일이 없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개와 차이도 크게 없다. 저렇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걸 보니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아까부터 내심 궁금했던 걸 물었다.
“형.”
“그래, 해준아. 넌 내 맘 알지?”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것보다 불개도 개사료 먹을까요?”
백성찬은 내 이름을 크게 외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걸어온 길을 반쯤 왔을 때 산불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