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13. 불조심 캠페인(2)
나와 정해영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정해영은 막 말문이 트였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정해영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정해영은 학교에서 5교시를 한다며 칭얼거렸다.
정해영은 말은 일찍 뗐지만 글 떼는 속도는 느렸다. 그래서 그림이 많은 동화책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친구들이 한글을 읽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동화책을 펴 놓고 글공부를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바닥에 엎드려 간식을 먹으며 더듬더듬 동화책을 읽는 정해영이 있었다.
‘오빠, 이거 뭐라고 읽어?’
정해영보다 6년 먼저 태어난 죄로 나는 걔가 한글을 졸업할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 줘야만 했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난생처음으로 그 시절의 정해영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불개? 불개가 왜 여기 있어요!”
홍영준은 말을 꺼낸 초능력자를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고함을 쳤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게 뭡니까? 소리를 안 할 수 있는 걸로 충분하다.
“아니, 내가 부른 것도 아니고……. 걔가 있는 걸 왜 있냐고 물어봐도…….”
정해영이 읽던 동화책 중에는 까막나라에 사는 임금님과 불개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까막나라의 임금님은 어두운 나라에 사는 백성들을 걱정해 불개를 시켜 해를 물어오라 했다. 그러나 불개는 해가 너무 뜨거워 뱉고 말았다. 임금님은 화를 내며 다른 불개를 보내 이번엔 달을 물어오라 하였다. 물론 달이 너무 차가워서 실패한다.
그러나 까막나라 임금님은 근성의 남자였고 불개를 계속 보내는데, 이 불개들이 해와 달을 물 때 일식과 월식이 생긴다……. 라는, 그런 이야기인데.
“누가 기상청에 물어봐! 최근에 일식이나 월식 있냐고!”
“1월 이후로는 없다는데요?”
원래 불개가 해와 달을 물어 일식과 월식이 생기는 건데, 여기서는 순서가 반대다.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날 불개가 나타난다.
“그럼 이게 불개가 아닐지도…….”
“불개든 뭐든 산불은 어떡할 겁니까?”
“저게 불개면 쟤가 이 불이 안 꺼지게 하는 건가요? 불개가 그런 능력도 있었어요?”
초능력자끼리 때아닌 토론이 벌어졌다.
“불, 개잖아요. 해와 달을 문다는데 불이 대수겠어요?”
“아니 그만큼 고온과 저온에서 버틸 수 있다는 말이지 불을 내뿜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불을 안 꺼지게 하는 정도의 능력은 있나 보죠.”
“그럼 이 불 끄려면 불개를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네? 불개를 잡아요? 걘 그냥 개잖아요. 사람 공격하는 애도 아닌데.”
“그렇다고 산불을 이대로 둘 순 없잖아요.”
“그럼 어떻게 잡을 건데요? 불 한가운데 있는데.”
“그거야.”
“그거야?”
“그거야…….”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왜 절 봅니까?”
사람들은 홱 소리가 나게 고개를 돌려 내 눈을 피했다. 무슨 만화영화인 줄 알았다. 하긴 드라마니까 거기서 거긴가.
“그러면 일단…….”
산림청 공무원 홍영준이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만 해도 당황해서 목까지 시뻘게진 채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더니 아닌 체한다. 사람들은 어른스럽게도 지적하지 않고 모른 척해 주었다.
“확산 저지선부터 다시 구축하죠. 확실한 건 아니지만 불개…….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놈을 이대로 둘 순 없잖습니까.”
홍영준의 이 말이 내게 어떻게 들렸는지 다시 말해 주겠다.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하지 마라.’
불쌍한 초능력자들은 생수병을 들이키며 움직였다.
* * *
“불개를 잡아야 합니다.”
여기서 잡다라는 말은 잡아서 목줄을 채우겠다는 뜻도 포함되었고, 말 그대로 잡아 죽이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식은 1월에 있었어요. 그 이후로 일식이나 월식이 없었는데 불개가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돼요. 불개가 아닌 건 아닐까요?”
“그렇지만 딱 불개처럼 생겼잖아요.”
“멀어서 제대로 찍히지도 않았잖아요. 불길 때문에 그림자가 진 건지 어떻게 알아요?”
물론 아주 근본적인 문제, 사진 속의 그림자가 불개인지 아닌지를 두고도 의견은 통일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이게 무엇인지는 둘째 쳐도 확인, 혹은 처리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문제는 산불이에요. 저길 어떻게 들어가…….”
느루의 물 초능력자 김희수가 진저리를 쳤다. 들어가면 죽기 딱 좋을 것 같은 곳이긴 했다. 소방 헬기를 동원하고 초능력자들이 돌아가며 물을 뿌려도 산불을 번지지 않게 하는 데에 그쳤다.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그거 말인데요.”
백성찬이 어쩐지 뿌듯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안했다. 정해영이 되도 않는 애교를 부려가며 용돈 달라고 조를 때와 비슷한 불길함이었다.
“해준이가, 그러니까 정해준 씨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불길함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다. 백성찬이 술 사 준다고 했을 때 그냥 아침부터 무슨 술이냐고 거절할걸.
“아! 그죠, 해준 씨라면 될 거에요.”
심지어 한평원마저 말을 보탰다. 세상에 도움 되는 새끼 하나 없다.
“정해준이라면…….”
제발.
“새날의…….”
“보호막……?”
드라마 같은 연출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말은 한 번에 해라. 나눠서 하지 말고.
백성찬은 나 대신 대답했다.
“네, 맞아요.”
제발……. 제발…… 날 여기서 내보내 줘…….
“해준 씨, 그때 도깨비불도 막았잖아요! 산불 정도는 쉽지 않을까요?”
제발…… 닥쳐 줘…….
“차단막보다는 보호막이 더 쉽다며? 슬쩍 가서 상태만 보고 와. 어때?”
백성찬은 남의 속도 모르고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네 능력으로는 잡는 건 힘들 테니 유인 정도만 해도 돼. 어려워?”
당연히 어렵지. 능력을 떠나 마음가짐의 문제다. 어느 미친놈이 산불 속으로 뛰어들어?
백성찬의 해맑은 얼굴을 보니 저 입을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진짜 연수원 강사 때는 안 이랬는데. 그땐 뭐 봉인이라도 당했던 걸까.
“진짜 죄송하지만 해준 씨…….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홍영준은 거의 울 기세로 말했다. 산림청 공무원으로서 산불을 두고 볼 수는 없겠지. 물론 산불을 꺼야 한다는 건 나도 안다. 나도 아는데…….
조금 떨어져 있긴 해도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잡혔다.
한평원의 말마따나 도깨비가 내뿜는 불도 막는 내 보호막이다.
백성찬의 말대로 차단막보다 보호막을 펴는 것이 훨씬 쉽다. 집중도가 다르다.
제대로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산불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는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고, 초능력 따위 없는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사라질 보호막에 의지해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름 내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백성찬에서 SOS를 치고 싶었지만 애초에 백성찬은 앞장서서 나를 사지로 몰고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정해영 같으니라고.
배신감에 깃든 눈으로 백성찬을 노려보았다. 백성찬은 내 시선을 받고 어리둥절해하더니 뭔가 깨달았는지 아, 하고 눈짓했다. 혹시 나의 구조신호를 눈치챈 걸까?
“아무리 그래도 정해준이 혼자 들어가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정해영 같다고 했던가요? 망언이었습니다. 정해영은 백성찬 님 발끝도 못 따라가죠.
“누가 한 명 같이 가는 게 어떤가요?”
정해영보다 못한 새끼.
내가 눈을 부릅뜨자 백성찬은 오히려 시원하게 웃었다. 벙긋거리는 입 모양이…….
‘나만 믿어.’
뭐라는 거야.
이야기는 나빼고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나 말고 정해준이 또 있는 모양이다.
“예? 불 속으로 불 능력자가 들어가서 뭐 해요. 불에 면역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같이 타 죽자고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사실이잖아요.”
“…….”
“저기요, 정해준 씨. 보호막은 열기도 막아집니까?”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다 막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역시 저희 중에 가는 게 났겠네요. 비상시에 불도 끌 수 있으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가기 싫다는 어필을 하려고 했지만 도중에 말이 막히고 말았다. 아니, 애초에 날 끼워 주지도 않았다.
“장비 단단히 두르고, 보호막 치면 괜찮지 않을까요?”
“혹시 모르니 물 능력자도 따라가고, 헬기도 하나 위에서 지켜보는 걸로 하죠.”
나 빼고 이야기는 척척 진행됐다.
“그럼 제가 갈게요.”
“윽. 왜?”
한평원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느루의 김희수가 목 졸린 소리를 냈다.
“여기서 제가 제일 덜 지쳤잖아요. 거기다가 전 정화도 가능하니까요. 불은 못 막지만 주위 공기를 상쾌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해요. 산불 한가운데에서 연기에 질식해서 죽을 순 없잖아요.”
“맞는 말이네요.”
한평원과 같이 북천 소속인 초능력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원 씨가 딱이네요.”
“저흰 여기서 불 안 번지게 막고 있을게요.”
백성찬은 한평원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평원이가 좀 못 미덥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모든 이야기와 별개로 나는 가야만 했다. 내 의견도 존중해 달라고.
내 의견은 1할도 없이, 함께 갈 사람이 결정되자 홍영준이 바빠졌다. 하늘에 있는 헬기에게서 불개가 발견된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장비를 챙겨주었다.
옷이야 방열 기능이 좋은 슈트를 입고 있으니 되었고. 머리는 소방관에게서 소방모를 건네받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박서원이 초능력자들은 얼음보다 불과 씨름할 일이 많다고 했는데……. 역시 경험자의 말은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
“나한테서 멀리 떨어지면 안 돼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보호막은 최소한의 크기를 유지하기로 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유지될 만한 크기. 양팔을 옆으로 쭉 뻗은 것보다 두 발자국 정도 더 큰 크기의 구가 생겼다.
“와, 안에 있으면 이런 느낌이구나……. 잘 부탁드려요.”
한평원이 언제 초능력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경험이 많긴 할 거다. 설마 위험한 짓을 하진 않겠지.
피할 수 없는 일, 즐기진 못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평원이 내 옆을 바싹 따라왔다.
기왕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면 여자와 가는 편이 더 좋은데. 느루의 김희수를 잠깐 떠올렸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 여자는 나와 친분을 쌓고 싶다는 티를 너무 냈다. 도대체 이 능력이 뭐라고.
흰색을 띠는 반투명한 보호막은 넘실거리는 불길을 불도저처럼 짓눌렸다. 자리를 빼앗긴 불길은 촛불처럼 흔들리며 작아졌다가 우리가 지나가자 다시 활활 타올랐다.
“킁, 냄새는 좀 나네요.”
불과 열기만 막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냐. 보호막 안이 조금 덥긴 했지만 사방인 불인 곳에서 이만하면 선방했다.
한평원은 코를 훌쩍였다.
“제가 기관지가 좀 안 좋거든요…….”
그런 애가 자원 하냐……. 얘도 어디가 빠져있는 거 아냐. 나사 같은 거.
그러나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듯 보호막 안의 공기가 순간 깨끗해졌다. 공기청정기를 돌린 것 같았다. 되레 상쾌한 풀냄새가 느껴질 정도다.
내가 눈을 커다랗게 뜨자 한평원은 배시시 웃었다.
“서브 능력이에요. 제 주위의 공기를 쾌적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요.”
진짜 부러운 능력이다.
할 수만 있다면 원래 세계로 들고 가고 싶을 정도로 부러운 능력이다.
“그럼 미세먼지도…….”
“전 크게 영향을 안 받는데…….”
“공기청정기…….”
“네, 저 아는 사람들은 다 이 시기만 되면 절 자기 집에 두고 싶어 하더라고요. 전기세 안 든다나 뭐라나.”
순간 그 말이 좋은 아이디어로 들릴 만큼 부러웠다.
쾌적한 상태라는 건 꽤 포괄적인 말이었다. 전해져 오는 열기가 덜해졌다. 발을 딛기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마시는 공기가 괜찮아지니 조금 힘이 났다.
산이 불타는 소리를 배경 삼아 한참을 걷고 있는데, 한평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해준 씨랑은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나랑요?”
“네.”
한평원은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한평원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났기 때문이다.
옛날에, 고등학생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배우가 희멀건 얼굴로 너무 연기를 잘하는 바람에 입소문을 타고 영화가 흥행했다. 대학교 때 보러 간 적이 있다.
스크린 속에서 피해자의 피를 뒤집어쓰고 웃던 고등학생 살인마가 좀 더 나이를 먹었으면 되었을 얼굴을 하고 한평원이 웃었다.
……이 드라마, 장르가 호러나 스릴러는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