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13. 불조심 캠페인(1)
이제 날이 완전히 풀려 누가 봐도 봄이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졸음이 오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그런 날씨.
딱히 친구도 없는데 밖에 나가 봤자 쓸쓸하기만 하다. 자고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낮잠이다.
낮잠을 자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늦잠을 자기로 했다.
……했었다.
내가 왜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알겠어? 해준아, 불조심이다. 불조심! 불조심이라고!!”
“알았다니까요, 형!!!”
옆에서 백성찬이 한 맺힌 목소리로 불조심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젠장, 헤드셋 벗으면 로터 소리에 묻혀서 저 소리 안 들을 수 있으려나.
평소처럼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백성찬 때문에 망했다. 갑자기 충북으로 가자길래 놀러 가자고 하는 건가, 했는데 헬기에 강제로 태워졌다.
백성찬은 침울하게 말했다.
“불조심해.”
이 인간 원래 이런 성격인 줄 알았으면 멀리했을 텐데. 연수원 때 봤던 그런 성격인 줄 알았다고.
백성찬의 투덜거림은 헬기에서 내려 차로 옮겨 타도 계속되었다.
“난 불이 정말 싫어…….”
“형, 불 쓰잖아요.”
“불이 쓸모 있는 건 담배 피울 때밖에 없어.”
“담배 피워요?”
“아니.”
“…….”
어쩌자는 거야, 진짜.
“너 담배 피워?”
“아뇨.”
“그래. 피지 마.”
진짜 어쩌자는 거야.
백성찬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도 한숨을 푹푹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그만하고 내려요.”
“알았어, 알았다고…….”
헬기 안에서도 봤고, 이미 공기가 더웠다. 봄날의 따스함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뜨겁다. 차에서 내리자 벌써부터 얼굴이 후끈해졌다.
별수 없다.
산불현장에 나와 있으니까.
“지원 요청받고 온 새날의 백성찬, 정해준입니다.”
“산림청 산불방지과 홍영준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중년인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날이 건조해서 난립니다. 근처에 있던 물 관련 초능력자들을 싹 다 끌어모았어요. 지금은 확산 저지선 구축에 집중하고 있고, 보조 분들이 오시는 대로 본격적으로 진화를 시작할 겁니다.”
현장은 딱 봐도 바빠 보였다. 소방관들이 움직이고 있는 사이로 진화용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마련된 수조에 물을 쏟아붓고 있는 초능력자들이 보였다.
현장 근처까지 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 한 대 더 왔다. 홍영준은 급하게 그리로 달려갔다. 지원 나온 초능력자인 듯했다.
“내가 겨울에 왜 연수원에서 일하는 줄 알아?”
“불조심 문자 온다면서요.”
“일 나가면 항상 물 쓰는 애들이 내 파트너로 붙는 기분 알아?”
“불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아니까 이러는 거지!”
“난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좀 빼 주세요…….”
불 능력자가 산불현장에 나와 있는 일만큼 아이러니한 것도 없었지만, 오늘 백성찬은 불 능력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어! 성찬이 형!”
백성찬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백성찬은 얼굴을 팍 찌푸렸다.
“쟤야, 쟤…….”
“네?”
“쟤가 맨날 내 파트너로 붙거든…….”
파트너보다는 진화반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도 아는 이였다.
“정해준 씨?”
“한평원 씨?”
“뭐야, 둘이 만난 적 있어?”
바로 며칠 전, 북촌 도서관에서 박을 가르고 나온 도깨비 처치에 함께한 한평원이었다. 한평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갑게 인사했다.
“와, 역시 비상근무 뛰는 초능력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니까! 근데 해준 씨는 어쩐 일이에요? 보호막까지 필요해요?”
“아뇨, 전 지원 요청 없었는데요.”
내 구구절절한 사연이 한평원의 심금을 울리기 전 백성찬이 말했다.
“놀면 뭐 해. 바람 좀 쐬라고 데려왔지. 좋잖아? 난 바람으로 불 막고, 얜 진화작업자들 보호하고.”
물론 내 의견은 1할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내 의견을 무시한 채 백성찬은 한평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수조 안 채우고 뭐 하냐?”
“에이, 난 그렇게 핀 포인트로 못 채운다니까요. 저수지 채우는 거면 몰라도.”
“또, 또 허세는. 물 한 바가지 부어 봤자 저수지는 티도 안 나요.”
“비구름만 있으면 나도…….”
백성찬은 혀를 쯧쯧 차며 한평원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더니 붙어 다닌 시간이 긴지 퍽 친해 보였다. 한평원도 백성찬의 손을 치우다가 포기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평원이 북천 소속이었던가? 초능력자 기관별로 알력다툼이 있을 법도 한데 딱히 그런 게 없는 점이 신기했다. 지역별로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몇 명 왔는데?”
아까 산림청 사람에게 듣지 못한 설명을 한평원에게 들으려는지 백성찬이 물었다. 어깨에서 백성찬의 팔을 내리려고 끙끙거리던 한평원은 곧장 대답했다.
“물은 일곱 명이고, 보조는 두 명이요. 형이랑 해준 씨 왔으니까 넷. 아, 물 한 명 더 왔네요.”
조금 전 산림청 공무원이 마중 나간 초능력자 얼굴을 알아봤는지 한평원이 덧붙였다.
한평원이 말한 인원을 듣자 백성찬이 감탄했다.
“인근에 있는 물은 진짜 다 긁어 왔구나. 산불 많이 커?”
“크기는 보통인데 날이 건조하잖아요. 번지기 전에 빨리 잡으려고 하던데요. 지금은 일단 헬기가 물 붓고 있긴 한데…….”
“항상 건조한 게 문제야.”
“그래도 이만큼 초능력자들이 왔는데 금방 끝나겠죠.”
내가 몇 번이고 말했는데, 보통 일은 희망 사항과 반대로 일어난다.
드라마적인 시선으로 보건대, 이 이야기가 드라마에 포함되었으면 분명 드라마 전후로 공익광고가 나왔을 거다. 불조심이라든지 그런 종류로.
* * *
어릴 때 집 근처에 있는 산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놀이터에서 놀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물을 싣고 가는 헬기를 보며 고함을 쳤다. 헬기가 물을 쏟아 내리는 광경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소방 헬기가 물을 쏟아내는 모습보다 더한 걸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소방헬기가 날아다니는 건 여전하다. 그러나 하늘 위에 있는 헬기는 소방헬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반 헬기를 타고 초능력자가 하늘에서 물을 붓고 있었다. 현장에 나온 물 초능력자 수가 있으니 시간마다 돌아가며 헬기에 올라 아래로 물을 퍼부었다. 간이 소방 헬기…….
헬기에 탄 세 명의 초능력자를 빼도 아래에서도 물 초능력자들이 소방관의 지휘에 따라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쏟아지는 물을 보니 이건 인공강우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저 물은 어디서 생기는 거지? 진짜 인공강우 원리인가? 주위에 있는 구름에…….
시발, 드라마에서 이런 것까지 따져서 하진 않겠지.
애초에 초능력이잖아. 초능력이면 까짓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겠지. 백성찬도 손에서 불을 만들어 내고 나는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하얀 막을 만들어 낸다. 그뿐이냐? 중력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애도 있다.
원래 드라마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거다.
어쨌든 허공에서 물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되는데 산불 진화 작업은 솔직히 말해서 긴장감이 없었다.
초능력자들이 넓은 범위에 물을 쏟아부어 큰불을 잡으면 아까 채워 놓은 수조를 이용해 소방관들이 잔불을 진화했다. 백성찬도 열심히 능력을 썼다. 바람을 이용해 불을 키우는 생각만 했었는데 진행 방향을 막는 용으로도 유용했다.
……머리 다섯 개 달린 도깨비가 길거리에서 날붙이를 휘두르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이런 걸 보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불에 가까이 다가가는 소방관들을 보호하는 중이다. 연기나 열기도 그럭저럭 막을 수 있었으니. 차단막이든 결국 보호하면 보호막이지.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형.”
뭐, 어떻게든 쓸모가 있으니 다행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뻔했다. 다들 바쁜데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어.
“진짜 나 왜 데려온 거예요? 굳이 나까진 필요 없지 않아요?”
“왜, 경험 쌓고 좋잖아.”
“제가 산불 진화 경험 쌓아서 뭐해요…….”
한숨을 푹 내쉬자 백성찬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역시 그냥 자기 가는데 심심해서 날 데리고 온 게 분명하다.
“형.”
“왜.”
“아직 멀었어요?”
“어? 아니, 이만한 수가 붙어 있으니까 거의 다 됐을걸?”
산불이 꽤 크게 났다고 해서 서울을 포함한 인근 지역에서 초능력자들을 박박 긁어서 왔다. 산불도 건조한 날씨 때문에 그렇지 처음부터 엄청 큰불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불은 영 꺼질 기미가 없다. 기미만 없나, 거의 전진도 못 하고 있다.
미국같이 땅덩이가 큰 곳에서는 산불이 무슨 한 달씩이나 일어난다고도 하지만 코딱지만 한 대한민국에서 그러면 전국이 다 타 버릴 거다. 영 느낌이 이상하다.
“형, 아직도…….”
“……좀 이상한데.”
나와는 달리 방화의 경험도 많고 진화의 경험도 많은 백성찬마저 마침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보조들도, 심지어 물 초능력자들마저 하나둘씩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이제 무리에요!”
결국 물 초능력자 중에 탈진하는 사람이 생겼다.
느루에서 온 물 초능력자 한 명이 소방관들의 부축을 받아 뒤로 빠졌다. 목이 타는지 생수를 계속 들이켜는 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한데.”
백성찬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산림청 공무원들과 소방관들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진화 작업이야 계속하고 있지만 이상 사태가 일어났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물을 퍼붓던 초능력자 두 명이 더 탈진 선언을 하고 뒤로 빠졌다.
“평원아. 넌 괜찮냐?”
“아직은 괜찮아요.”
한평원은 편안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 사태가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목소리는 어두웠다.
“하지만 이게 나 혼자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무슨 일인지 아직 몰라요?”
“산림청 사람들이 알아보고 있어.”
봄철의 불은 위험하다. 날씨가 건조해서 불을 끄지 못하면 삽시간에 번진다. 그래서 초능력자들이 이렇게 모여 불을 끄고 있던 게 아닌가.
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을 상대로 계속 이러고 있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밖에 안 된다.
“이게 뭐야?!”
그때 산림청 공무원 홍영준이 반쯤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경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무슨 일입니까? 왜 불이 안 꺼지는지 알아냈어요?!”
물을 마시며 조금 기력을 회복했는지 바닥에 반쯤 널브러져 있던 초능력자들이 홍영준 주위로 몰렸다. 백성찬도 슬그머니 홍영준 옆으로 갔다. 나도 따라갔다.
“아씨, 난 못 움직이는데. 무슨 일이에요?”
한평원이 억울해하며 등 뒤에서 외쳤다.
홍영준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불이 안 꺼져서 헬기 팀한테 이상 현상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거든요.”
그 증거가 이 사진이라는 말이었다.
불길과 연기, 타 버린 나무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화질이 조금 깨져도 사진을 확대하자 불타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는 명백하게 짐승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산에 큰 동물이 있을 리는 없는데.
무엇보다도 불 속이지 않은가. 설사 이런 크기의 동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불에 타 죽어야 하는데 얘는 네 발로 당당히 서 있었다.
“이거 혹시…….”
제일 먼저 탈진했던 초능력자가 사진을 유심히 보면서 입을 열었다.
“불개 아니에요?”
불개?
불개 소리가 나오자마자 산림청 사람들은 물론 다른 초능력자와 소방관들마저 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백성찬도 마찬가지였는데, 백성찬은 그 뒤에 한마디 덧붙였다.
“해준아. 너 할 일 생긴 것 같다.”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