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9. 하멜른의 피리(3)
“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비명을 지른 목소리는 여자지만 사람들에게 가려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이건 내 새끼야. 내 새끼라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못 줘, 못 뺏어가, 안 돼!”
소란스러움에 공무원들이 달려 나갔지만 소란만 더 커질 뿐이었다.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던 공무원 하나가 연주자에게 다가왔다. 곧 피리가 멈췄다.
“무슨 일이지?”
백성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들이 몰려 있고, 각도가 애매해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웅성거리는 소리만 퍼졌다. 백성찬과 최나라가 소란이 일어나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궁금해서 따라갔다.
“으아아앙!”
여자의 비명 소리에 뒤이어 이번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아이야, 쥐 같은 게 아냐, 내 아이야…….”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꽉 껴안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두 눈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공무원들이 그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이건 어머님 아이가 아니라…….”
“이거라니! 우리 애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 그렇게 말하셔도…….”
그때, 사람들 다리 사이를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여자에게, 아니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으로 아이를 감쌌다.
“저리 치워요!”
“……아이가 쥐가 아니라면 고양이가 가까이 가도 괜찮을 텐데요.”
“우리 아이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단 말이에요!!”
엄마가 비명을 지르니 아이도 덩달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난감한 기색이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번졌다.
“무슨 사정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쥐는.”
“쥐가 아니라니까!! 눈은 어디다 뒀어?! 얘는 내 아이야, 내 새끼라고!”
현장책임자로 나온 공무원 하나가 외국인 연주자에게 눈짓했다. 한국어는 못 알아들어도 상황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자 연주자는 눈치껏 행동했다. 쥐를 불러 모으는 가락이 다시 울렸다.
어린아이의 눈이 흐리멍덩해졌다. 모친이 필사적으로 붙드는 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여태껏 보았던 쥐가 둔갑한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린 것 말고는.
“저렇게 어린아이로도 둔갑할 수 있어요?”
최나라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쪽 지식이 아주 없다시피 한 나 대신 백성찬이 답했다. 그동안 작업하면서 백성찬에 대해 알게 된 건 이 남자가 굉장히 말이 많다는 거다. 본인 얘기를 떠드는 것도 좋아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사흘 만에 백성찬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다. 불 능력을 못 쓰는 겨울 동안 새날 연수원에서 강사로 일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 걸까?
“애나 어른이나 손톱 자라는 건 똑같은데 뭔 차이가 있겠어?”
“그럼 진짜 저 애가 쥐라는 거예요?”
백성찬은 박서원만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비상벨 근무 초능력자로 일했고, 새날 연수원 강사로 일하면서 쌓은 지식도 많았다. 백성찬은 이전에도 쥐잡기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선 아니었고, 다른 지방 일이라고 했다.
“피리에도 반응하고 고양이도 물려고 하는데 아닌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으, 그렇지만 그러면 저 엄마는 쥐를 키우고 있었던 거야? 진짜 애는요?”
최나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타이밍 좋게 여자가 끊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비명을 질렀다. 백성찬은 미묘한 얼굴로 여자를 보았다.
“아마 죽었을 거다.”
“……네?”
“죽었을 거라고.”
백성찬의 입에서 내가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최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 확실히 고등학생일 거다. 어린 티가 너무 난다.
“쥐인 거 알고 키웠을걸. 옛날에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때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 들었어. 죽은 애 손톱을 먹인 쥐를 자기 아이 대신 키우는 거야.”
최나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가느다랗게 피리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오늘은 더 작업하기 글렀네.
* * *
내 생각대로 쥐 박멸 작업은 멈췄다.
그럼 해산을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초능력자 면허 하나와 새날 소속이라는 명분으로 나와 있는 거지 이 작업에 전혀 쓸모없는 참관객이었다. 그러니까 이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 집에서 한숨 자고, 모든 게 끝나 있을 즈음 다시 나와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해준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참 너무하네.”
최나라가 내 옷깃을 잡았고,
“그동안 우리 함께했던 추억은?”
백성찬이 내 어깨를 잡았다.
“우리 그렇게 진한 사이였습니까? 언제부터?”
물론 난 발뺌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애초에 난 상관없잖아!”
“우릴 버려두지 마.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이런 분위기 질색이야.”
“저두요.”
하멜른의 피리를 빌리는 데에는 박서원의 이름이 팔렸고 박서원은 새날 소속이다. 김태욱 차장과 박서원의 이름이 열심히 일했지만 일의 진행 자체는 나라에서 담당했다.
그러니 같은 새날 소속인 백성찬과 최나라도 이렇게 바득바득 자리를 채우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그냥 저 좀 보내 주면 안 돼요? 저도 이런 분위기 진짜 싫어하거든요.”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 노동하는 건 싫어한다. 특히나 이렇게 ‘지금은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다들 이유가 있었다고요, 그러니까 울거나 찝찝해해야 해요, 알았지요?’ 하는 장면은.
아이 엄마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고 아이는 울어서 눈이 짓무른 채로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여자는 아이 곁으로 고양이가 다가올 때마다 아이를 더 끌어안았다. 그 고양이가 아이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남편 왔다.”
여자와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자 공무원과 소방관들은 여자의 신원을 파악했다.
주위가 주택가라서 그런지 여자를 알아보는 사람은 금방 나왔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확인은 빨랐다. 남편은 연락을 받자마자 허둥지둥 달려왔다.
“이지연 남편입니다.”
“김현석 씨?”
“네, 네.”
남자는 잔뜩 긴장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침착한 기색이었다.
김현석은 엉망인 아내와 아이를 보더니 몇 번 심호흡했다. 그러나 곧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아내는 제가 달랠 테니까 절차대로 해 주십시오.”
현장담당자가 흠칫했다.
“저, 그 말은…….”
“네, 압니다. 괜찮습니다. 진작 신고했어야 했는데, 우리 연수 얼굴을 보니까…….”
김연수는 작년 여름, 일곱 살 어린 나이로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유치원 방학이라고, 광주에 있는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장례는 치러졌다. 광주에서, 가족들끼리만 모였다. 마침 방학이었고, 주위에 소식이 퍼지지 않았다.
‘쥐’를 발견한 것이 부인인지, 자신인지 김현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 손톱은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유치원 방학이 끝났을 때, 이지연은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던 김연수는 없던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다.
처벌할 수 있는가?
공무집행방해 정도로는 할 수 있겠지.
“안 돼, 안 돼, 내 아들, 내 새끼, 안 돼, 나한테 이럴 수 없어, 연수야! 이거 놔!!!”
문득 이래서 방송국 카메라를 치워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둔갑한 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대부분 노숙자 모습이긴 해도, 사람 잡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을 순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울부짖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다가 욕을 하고, 결국은 빌었다.
“제발……. 내 아이……. 내 아이 주세요……. 내 아들…… 우리 연수…….”
꺽꺽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우는 아내의 눈을 남편이 가렸다. 눈물을 흘리지만 않았을 뿐 남편의 얼굴도 좋지 않았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라 소방관들이 몰래 부른 구급차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다.
엄마의 품을 떠나 홀로 남겨진 아이는 발발 떨기 시작했다. 내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아이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다.
미국에서 온 연주자는 다시 악보를 보며 피리를 불었다. 오래된 유럽의 노래는 구청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불안에 떨던 아이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야옹.
최나라가 자주 데리고 놀던 턱시도 고양이가 아이의 목덜미를 물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효과음이나 연기 같은 것도 없이, 고양이의 입에는 쥐 한 마리가 물려있었다. 남편은 그걸 보다 못했는지 눈을 꼭 감았다.
결국 쓰러진 아내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남편이 따라 탔고, 두 사람을 태운 구급차가 사라지고 나서야 느루의 초능력자가 어린아이로 둔갑했던 쥐를 태웠다.
잠깐 멈췄던 하멜른의 피리가 구청 주차장을 구슬프게 채웠다.
* * *
“쥐랑 같이 사는 게 좋았을까요?”
“좋고 말고를 떠나서, 아들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서도 쥐는 보면 무조건 신고하랬는데.”
고양이를 쓰다듬던 최나라가 기운 없이 말했다.
“여태 쥐가 둔갑한 사람은 노숙자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잖아요. 어린 애는 없었다고요.”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말해도 될까 싶었지만 고민은 잠깐이었다.
“그 사람들은 연고가 없잖아.”
최나라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노숙자니까 손톱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었겠지. 대충 버린 손톱은 쥐가 먹기 좋은 환경에 노출되었을 테고.”
“어…….”
“노인분들도 마찬가지야. 연고자가 없으니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 그리고……. 아니, 아니다.”
“…….”
백성찬은 말을 삼켰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알 것 같았다.
굳이 나라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대여해서 쥐잡기에 나선 이유. 그건 사실 노숙자보다는 홀로 사는 노인들로 둔갑한 쥐를 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둔갑한 노인들이 나타나면 초능력자들은 그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지문까지 둔갑하는 덕에 신분 확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 ‘진짜 인간’들도 있겠지만 그중에는 죽은 이도 있을 것이다. 몇 안 되는 작은 방에서, 홀로 고독히 죽어 간 분들이 있을 테고, 그 곁에 나타난 쥐도 있을 테다. 연고자가 없기 때문에 갑자기 사라져도, 혹은 쥐가 둔갑해도 오랫동안 들키지 않는다.
바로 그런 쥐들을 잡기 위해…….
최나라는 풀이 죽어 고양이만 보았다. 항상 밝게 말하던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괴상한 침묵이 감도는 와중에, 백성찬이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자, 그래도 오늘은 양천구 작업만 하면 퇴근이야.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나라야, 뭐 먹고 싶어?”
“……오빠가 웬일이에요?”
“고기 먹을까?”
자길 달래 주기 위해서라는 걸 최나라는 빠르게 눈치챘다. 최나라가 백성찬 말에 맞장구치며 한우를 외치기 시작했다.
“고기면 한우죠!”
“오빠 겨울 동안 일 없던 거 알잖니.”
“학교 나가서 자습하던 저보다는 돈 잘 벌었겠죠.”
“나라야, 대한민국 1위 기업 후원을 받는 능력자님을 두고 왜 나한테 그래?”
……왜 불똥이 나한테 튀어?
백성찬의 말에 최나라가 눈을 반짝 빛내며 날 보았다.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나 다름없다. 이런 도둑놈들.
“저 돈 없, 아직 교육생이거든요? 아직 돈도 못 받았다고요.”
“땡겨 쓰는 거지, 뭐.”
“땡겨 써요!”
“큰일 날 소리 하네, 이 사람들.”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 놨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금이라면 휴대폰 판매 전화라도 기쁘게 받아 줄 수 있다.
“잠깐만요, 전화 좀 받고요.”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 액정에는 광고 번호 대신, 아는 이름이 떠올랐다.
박서원.
“헉, 오빠 진짜 박서원이랑 일하는구나! 박서원이 전화도 할 줄 알아요? 우와! 그 재수 없는 놈은 평생 혼자 날뛸 줄 알았는데!”
“나라야, 입!”
“재수 없는 걸 재수 없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그래요?”
최나라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전화를 받았다.
“정해준 씨, 일이에요.”
“……일요?”
“제주도로 갑시다. 김포 공항으로 와요.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