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9. 하멜른의 피리(2)
나는 정해영이 사랑해마지않는 드라마, ‘빌더쓰’를 본 적이 없다. 끽해야 정해영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 붙잡고 떠들어 대던 걸 기억할 뿐이다. 애초에 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정해영과 같이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우리나라는 뭔 드라마가 그렇게 많은지 매시간마다 드라마를 틀어 줬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소리가 들리는 건 별수 없다. 띄엄띄엄 주워들은 대사만으로도 그 드라마가 막장의 굴레에 빠져드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자, 여기서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어찌 되었던 이 세계는 드라마 세상이다. 케이블이라고 해도 국적은 한국이다. 모든 한국산 드라마가 그렇다는 소린 아니지만, 상당수의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막장이다. 더군다나 ‘빌더쓰’는 그 근거가 있다. 어느 드라마가 마지막 화 직전에 서울을 폭파시키고 등장인물을 모조리 죽이는가? 그러니까 나는 이를 토대로 이 세계의 법칙을 파악해야 한다.
지금 시점이 이미 드라마 1화를 지났다고 생각하자. 최소한 이 자리에는 드라마 등장인물로 파악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백성찬과 최나라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생기고 예쁘다. 특히 최나라는.
자, 최소 두 명이다. 북천과 느루에 속한 초능력자 중에서도 등장인물이라 할 만한 애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등장인물이 있는, ‘하멜른의 피리’라는 사건은 조용히 넘어갈까? 단순히 드라마 진행에 ‘아, 그런 일이 있었죠.’ 한마디로 정리되는 일일까?
백성찬이 떡밥을 던졌지 않은가.
‘연주를 잘못하면 쥐가 아니라 아이들이 따라온대.’
최나라가 친절하게 받아먹기까지 했다.
‘애를 태우지 말란 거야?! 완전 미친 소리 아냐!’
확신했다.
분명 사건은 일어난다.
* * *
“나라야, 제발 목소리 낮춰 줘…….”
백성찬은 주위를 살피며 최나라에게 부탁했다. 연수원에서 강사 하고 있을 때는 좀 더 똑똑해 보였는데, 최나라에게 절절매는 걸 보면 좀……. 아니다. 적어도 세 번까지는 보고 말해야지.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고 해도 어린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내보내진 않을 거다. 방통위 심의규정을 믿는다.
……이거 19세 드라마 아니지?
“어쨌든 우리는 쥐만 잘 잡으면 돼. 알았지?”
백성찬은 최나라에게 말했고 최나라는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쥐 박멸 작업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행된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 박서원이 새날 로비에서 쥐 한 마리를 공개 처형한 이후에도 도플갱어 쥐는 몇 번 더 목격되었다고 했다.
요즈음엔 빠르게 처리되는 모양이지만 피해자에게는 단순히 ‘운이 나쁘다’라는 말로 치부될 수 없는 일이었다. 운 나쁘게 ‘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보통 피해를 입는 건 ‘진짜 인간’ 쪽이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이번 작업의 진짜 목적은…….”
백성찬이 나쁜 일을 꾸미는 악당처럼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 사람, 생각보다 성격이 극적이다. 연극배우 출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었다.
“야옹.”
“야옹……?”
“네?”
“어?”
“고양이?”
등은 새까맣고 배는 새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가 눈을 깜빡이며 야옹, 하고 간드러지게 울었다. 한쪽 귀 끝이 살짝 잘려 있었다. 길고양이다. 투덜거리던 최나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야옹이! 야옹아, 이리 와, 응?”
최나라는 금방 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웬 고양이가…….”
“주민센터에서 데려온 애들이야.”
애‘들’?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유달리 고양이들이 많았다. 까만 고양이, 회색 고양이, 노란 고양이, 얼룩 고양이…….
“왜 이렇게 고양이가 많아요?”
“쥐 잡는 데는 고양이가 최고니까?”
“아니, 도대체…….”
그래. 그렇다. 물론 그런, 이야기긴 했다.
어느 영감이 살았는데, 이 영감이 아무 데나 버린 손톱을 먹고 쥐가 영감으로 변신하였다. 꼭 닮은 두 영감을 놓고 가족들이 진짜를 가리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데, 둘 다 똑같이 대답하여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안일에 관심 없었던 진짜 대신 가짜가 더 잘 대답하는 바람에 진짜 영감이 쫓겨나고 마는데, 집에서 쫓겨난 영감을 딱하게 여긴 스님이 고양이를 데려가라고 하였다. 진짜 영감이 데려간 고양이는 가짜를 보자마자 뛰어올라 목덜미를 콱 물었는데, 알고 보니 쥐가 둔갑하였더라, 하는 이야기다.
나도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보지 않았던 전래동화였다. 이야기에 따라 마음씨 고약한 영감이기도 했고, 산골짜기에서 공부하던 선비기도 했지만 결말은 같다. 고양이가 가짜의 목덜미를 물자 쥐로 돌아간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조선 시대에서나 쓸 법한 방법을 아직도 쓴단 말인가. 현대 문명, 반성해라. 고양이에 의존하다니.
“고양이 말고 딴 방법은 없어요?”
“없는 건 아닌데 가성비를 따지면 고양이만 한 게 없지.”
간간이 튀어나오는 현실감은 역시 적응이 안 된다. 하나만 해라, 하나만. 드라마면 드라마답게 굴고, 아예 현실처럼 굴 거면 처음부터 그러라고.
최나라는 고양이에게 완전 넋이 나갔고, 백성찬과 고양이를 보며 잡담이나 하고 있는데, 마침내 카메라가 물러가고 귀하신 피리가 등장했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에 넣어지고, 대여섯 명이나 되는 보디가드들이 케이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베레모를 쓴 외국인 아저씨가 케이스를 열었다.
“그런데 피리가 만들어진 건 되게 오래된 거 아니에요? TV에서 그러던데.”
“몇백 년은 됐지.”
“그런데 악보가 아직 남아 있어요? 잘못하면 애들이 따라온다면서요?”
백성찬은 쓰게 웃으며 날 보았다.
“해준아, 너 역사 공부 안 하지?”
시발……. 드라마 역사랑 현실 역사랑 다른 걸 어떡하라고.
“할 만큼은 했어요.”
“내가 겨울마다 새날 연수원에서 강사 노릇 한 게 사 년이거든? 질문하면 배웠는데 기억 안 나요 하는 애들이 딱 너 같은 눈빛을 했어.”
“…….”
걔네도 나처럼 배웠던 게 하루아침에 쓸모없어지진 않았을 거 아냐.
“그래서 악보가 남아 있는 거예요?”
“하멜른의 피리는 원래 독일 거잖아.”
“네.”
“독일에서 새로 악보를 편찬했어.”
“네?”
“칠십 년쯤 전에.”
“……어. 네. 알겠어요. 역사 공부 열심히 할게요.”
피리를 집어 든 외국인 아저씨는 보디가드가 들고 있는 악보를 보며 천천히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연주에 망설임이 없는 걸 봐서는 엄청나게 연습을 했던 것 같았다. 단조로운 곡조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천천히, 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이 동네 쥐가 모두 나타나 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
“역사 공부가 부족한 정해준 씨를 위해 설명하자면.”
“……형, 사실 선생 체질이죠?”
“겨울마다 알바 뛰는 건데 괜찮더라고.”
백성찬은 씩 웃었다. 어쨌든 백성찬의 설명은 도움이 되긴 했다.
하멜른의 피리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세 가지. 모든 쥐를 따라오게 만드는 것 하나. 아이들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 하나. 특이한 능력, 아시아 쪽 용어로 말하면 영력을 지닌 쥐를 따라오게 만드는 것 하나.
“모든 쥐를 부르다니 어우, 그거 처리할 생각하면 절대 못 하지.”
도플갱어 쥐의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다른 영물들처럼 쥐가 오래 묵으면 도플갱어가 될 거라 보는 게 통설이었다.
“그런데 따로 불러낼 수 있는 곡이 있으면 고양이는 왜 풀어놨어요?”
“그, 피리 대여한 목적은 도플갱어 쥐를 박멸하는 거에 있는 게 아니라…….”
마침 주차장 한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불이 번지지 않을 만한 공터를 구하기는 힘들어서 휴일이라 문을 닫은 대형마트 지상 주차장을 비워 통제를 하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선 소방차가 바깥과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쥐를 태우는 모습이 시민들 눈에 들어가는 게 좋지 못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소방차와 소방차 사이의,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틈 사이로 허름한 옷을 입은 노숙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소방관 몇 명이 노숙자를 불렀지만 듣지 않았다.
야옹.
야옹.
야오오옹.
각 센터에서 파견 나온 초능력자와 공무원, 소방관들의 손길을 즐기고 있던 고양이들이 날카롭게 울며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 최나라의 손길을 즐기고 있던 턱시도 고양이도 고개를 들고 노숙자를 빤히 보았다. 노숙자와 가까이 있는 고양이 몇 마리가 하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노숙자는 자신을 둘러싼 고양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노숙자를 둘러싼 고양이 중 하나가 펄쩍 뛰어올라 노숙자의 목덜미를 공격했다.
“어!”
깜짝 놀라 백성찬을 보았지만 정작 주위에 놀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백성찬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숙자를 보았다.
아니, 노숙자였던 쥐를 보았다.
“굳이 피리를 대여한 이유는 이미 인간으로 둔갑한 쥐를 골라내기 위해서거든.”
고양이는 입에 문 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흙바닥에 피가 고였다. 고양이들이 다시 어슬렁거리며 물러나자 느루에서 온 초능력자가 쥐를 향해 다가갔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느루의 초능력자가 그대로 태워 버렸으니 숨이 붙어 있었어도 죽었을 것이다.
“……고양이들이 다 해 주는데 초능력자들이 이만큼 올 필요도 없지 않아요?”
“원래 대비는 철저해야 좋은 거야.”
“아, 또 왔다.”
발치에 누운 고양이를 쓰다듬던 최나라가 조금 전 노숙자가 나타났던 곳과는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허름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이제 슬슬 시작인가 보네. 아이고, 얘넨 왜 이렇게 많을까?”
“오빠, 내가 한 번 생각해 봤는데, 상대적인 거 아닐까요? 쥐 수명이라 해 봤자 겨우 1년이잖아요. 그러니까 한 3년만 안 죽어도 영물이 되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백성찬은 몸서리쳤다.
제일 먼저 피리가 불린 지역은 가장 북쪽이라 할 수 있는 도봉구였다. 도봉구부터 시작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예상 기간은 일주일. 최대한 일정을 빨리 끝내는 게 목표다. 쥐가 있는 곳은 서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나야 기초 교육이 끝나고 실습 겸 나온 일정이었고, 불을 다루는 초능력자들도 겨울이 지나고 휴면기가 끝나면서 능력 쓰는 법을 다시 익힐 겸 불려 나온 거다. 이틀 정도 되자, 북천이나 느루에서 나온 초능력자들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나는 불안에 떨었다.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 언급도 안 될 만큼 아무 소란 없이 끝나는 건가? 원래 드라마에는 없던 내용일까? 백성찬과 최나라는 드라마에서 별 볼 일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건가?
그리고 나흘째 되던 날, 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아니, 드라마에 나타났다.
오전에 영등포구를 끝내고 양천구로 옮겨 피리를 불기 시작할 때였다. 피리를 분 지 십오 분. 영등포구에서 워낙 못 볼 꼴을 봐서인지 반대로 양천구에서는 쥐가 나타나질 않았다. 쥐가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한 시간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들 속으로 이대로 나타나지 말라고 기도를 하는 중에.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