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9. 하멜른의 피리(1)
3월이 되었다. 날씨는 눈에 띄게 따뜻해졌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드라마라면 이런 미세먼지 정도는 없는 세계로 해 줘도 되지 않을까? 희뿌연 하늘을 볼 때마다 드라마 작가 욕이 절로 나왔다.
원래 이럴 때면 정해영 욕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정해영도 억울하겠다 싶었다. 걔가 욕먹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걔가 드라마 설정에 관여한 건 아니지 않던가?
그러니까 정해영 욕은 하되, 드라마 설정과 관련된 욕은 드라마 작가 욕을 하기로 했다. 난 여전히 드라마 이름도 모르고 작가 이름은 더더욱 모르지만.
“앗, 해준 씨!”
“오랜만이네요, 유나 씨.”
이유나가 활짝 웃으며 카페에서 반겨 줬다.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다.
“해준 씨가 바빠서 그렇죠, 뭐.”
“제가 뭐 바쁜 게 있어요. 교육받느라 아직 비상벨 근무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매일 사축으로 부려지는 저보다는 낫지 않아요?”
이유나는 활짝 웃으면서 음울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력이 거지 같다고 정해영이 욕한 아이돌이 분명 이유나일 텐데 이렇게 보면 연기를 못하는 것 같진 않은데……. 하긴, 이건 연기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교육 거의 다 끝났죠?”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럼 회사에서 해준 씨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네요.”
이유나가 아쉬운 듯 말했다.
“그래도 가끔씩 올 일이 생길걸요?”
“그래요?”
“오면 커피 정도는 사 드릴게요.”
“당연하죠. 단청 후원받는 사람이 불쌍한 회사원한테 얻어먹으려고요?”
이유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하멜른의 피리 들어온다던데 해준 씨도 가세요?”
“아……. 그거요.”
그게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옆에서 모두 지켜본 사람으로서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박서원은 여전히 못마땅해했고 등급산정부서의 김태욱 차장은 불도저마냥 일을 진행했다.
박서원도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피리 자체는 쥐 잡는 데 필요하니 투덜거리긴 했어도 넘어가 주었다.
“보통은 막 교육을 끝낸 사람을 현장에 바로 보내진 않는데, 이번에는 참여하는 초능력자도 많으니까 경험 삼아 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제주도에서 꿈나라를 헤매는 곰 때문에 능력 훈련 자체는 입에 단물이 날 정도로 하고 있지만 그 외의 건 아직 지지부진하다. 어쨌든 난 초능력을 각성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입이니까.
능력이 특수한 바람에 더 써먹기 애매해졌다. 참고할 만한 것도 별로 없고,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더군다나 나는 혼자 있으면 뭣도 못 하는 능력이다. 보호라는 게 다 그렇지.
“아, 좋겠다.”
“뭐가요?”
“3월 전에 탈주해서요……. 3월이 바쁘다는 소리 괜히 겁준다고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진짜 장난 아니에요…….”
이유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사무실에 올라가기 싫다는 티를 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유나는 남은 커피를 멋지게 들이켰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 난 쓰게 웃으며 그런 이유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만간 등급 다시 재야 하는데, 한 소리 또 듣겠군.
* * *
현대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는 다름 아닌 쥐였다. 쥐. Rat. 보통 하수구에 사는 그거.
위생적인 문제 같은 게 아니다. 물론 그런 문제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쥐가 문제 되었다’의 쥐는 도플갱어를 말한다. 손톱이나 발톱을 먹고 그 주인의 모습과 기억을 흉내 내어 생활하는 것이다.
모습을 흉내 내는 도플갱어 쥐는 아시아가 서식지지만 유독 한국에 많았다. 80년대 들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집집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유행이 된 이후로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잊을 만하면 간간이 목격되곤 했다.
이 ‘쥐’는 자기가 먹은 손톱 주인의 모든 것을 흉내 내기 때문에 구분하는 법은 고양이뿐이다. 주민센터에서 길고양이를 관리하는 것도 쥐 예방 차원에서라고 한다. 그나마 초능력은 흉내 내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게 구분법은 되지 못한다.
어쨌든 한국 사회를 주기적으로 위협하는 쥐를 없애기 위해, 미국에서 귀하신 피리가 도착했다.
“정해준 씨?”
안내받았던 집합장소에 가자 웬 남자가 아는 척했다.
물론 나도 아는 얼굴이긴 했다. 새날 연수원에서 보았던 사람이니까.
불을 메인으로 다루는 초능력자, 백성찬이 날 보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저희 아는 사이죠?”
연수원에서 본 것도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아는 사이죠. 하하하.”
백성찬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연수원에서 볼 땐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이 오빠, 오랜만에 나왔다고 완전 미쳤네.”
백성찬의 뒤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가 나타났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얼굴은 아직 앳된 티가 났다. 고등학생일까?
살짝 올라간 눈초리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차가워 보였지만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아이돌 이유나의 옆에 있어도 꿀리지 않을 미모다.
아니……. 같은 그룹 애던가?
“최나라라고 해요. 정해준 오빠 맞죠? 이번에 인턴 차 나왔다던.”
“인턴……. 뭐 비슷하긴 합니다만…….”
“에이, 딱딱하게 뭘 그래요? 그냥 말 편하게 해요. 성찬 오빠는 그냥 바로 말 놔 버리던데.”
“어, 응…….”
“오빠 능력이 그렇게 보기 힘들다면서요? 박서원이 오빠랑 같이 일할 거라고 소문났어요. 진짜 그 정도예요?”
최나라는 내 곁에 붙어 재잘재잘 떠들었다. 피리 때문에 모인 초능력자들이니 최나라도 메인 능력은 불일 거다.
“그 정도는 아니고…….”
“야, 최나라! 해준 씨 괴롭히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내가 뭘 괴롭혔다고 그래요! 오빠나 정신 차려요. 무슨 봄 타는 것도 아니고 봄마다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에요?”
“겨울 동안 아무것도 못 했으니까…….”
“우리처럼 꼬박꼬박 겨울마다 쉬는 초능력자가 어디 있어요? 언제는 쉬는 게 좋다더니?”
“매일 불조심 문자 받아 봐. 넌 안 받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왜?! 난 매일 받는데?”
“성찬 오빠야 전적이 있으니까…….”
최나라가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최나라의 말에 백성찬도 투덜거렸다. 이 사람들 왜 이래……?
최나라와 투덕거린 백성찬은 다시 내게 인사했다.
“백성찬입니다. 이쪽은 최나라.”
“정해준입니다. 그냥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백성찬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새날 소속 불 능력자 중 지금 서울 지역에 있고, 손이 비는 사람은 두 명뿐이다. 애초에 강력한 불 능력자가 길거리에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에서도 지원이 나온다. 서울에 있는 기관은 총 셋이다.
내가 속한 새날과 북천. 느루.
새날에서 두 명, 북천에서 두 명, 느루에서 세 명이 지원 왔다. 오로지 불 능력자로만 이루어진 지원팀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이상할 정도로 소방차가 많았다.
하긴 불조심은 중요하다.
“하멜른의 피리가 국외로 반출된 건 처음이라면서요?”
소방차 사이로 방송국 카메라가 보였다. 고질적인 사회문제 중 하나인 쥐를 박멸하기로 한 날이니 기자들이 몰릴 법도 하다.
“그 말도 웃기지 않아? 애초에 하멜른의 피리는 독일 거라고.”
백성찬이 딴죽을 걸었다.
“어쨌든 우린 쥐를 태워 버리기만 하면 돼요.”
“원래는 전설대로 물에 뛰어들게 하려고 했다며?”
“근데 하멜른의 피리는 원래 동화잖아요.”
“그래?”
……라는 대화를 최나라와 나누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 기준에서 이 세상의 일은 대부분 전래동화나 다름없어서 감흥은 없었다. 살살이꽃밭을 떠올려 봐라. 그게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원래는 어린애들이 실종되었는데, 그걸 각색해서 동화로 만들었나 봐요. 그리고 중세 유럽의 어느 마법사가 그 동화에 기인해서 피리를 만들었대요.”
“정말 할 일 없는 마법사였군.”
“그래도 덕분에 쥐잡기 편해졌으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요?”
최나라는 성호를 그으며 기도했다.
“나라를 위해 이름을 팔아 주신 박서원 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정작 박서원이 들으면 기막혀할 기도겠군.
“새날 팀이죠? 누가 팀장인가요? 주의사항 들으러 잠깐 오세요.”
무려 미국에서 건너오신 피리기 때문에 전체 총괄은 정부에서 담당했다. 나이순으로나 경력순으로나 새날 팀의 일인자는 백성찬이었다.
백성찬이 떠나자 최나라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하얀 얼굴에 까만 머리, 붉은 입술이 예쁜 아이긴 하지만 텐션이 너무 높다. 거기다가 나이도 어려 보였다. 이유나는 그래도 정해영과 비슷한 나이 대로 보였는데 최나라는 그보다 더 어린…….
역시 고등학생이려나?
“해준 오빠, 혹시 능력 보여 줄 수 있어요?”
“능력? 왜?”
“궁금하잖아요. 그 싸가지 없……. 아, 아니, 여하튼 그 박서원이 같이 일하자고 할 정도인 능력이라는데! 오빠 몇 등급이에요? 오빠 능력 보호 맞죠? 보호는 시작부터 엄청 높은 등급이라던데!”
“5등급.”
“5등급?! 바로 5등급 받았어요? 대박! 보호막은 다 막을 수 있어요? 내 불도 막을 수 있어요? 다른 것도?”
“아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훈련은 열심히 했지만 그동안 상대해 본 능력은 박서원이 다였다. 박서원은 백성찬이나 최나라처럼 손에서 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고, 염력으로 움직인 칼을 막는 게 다였다. 다른 걸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진짜? 개쩐다! 오빠, 보호막 펴 봐요. 네?”
“너무 눈에 띌 것 같은데…….”
아직 한창 돌아가는 중인 방송국 카메라를 보았다.
내 보호막은 투명한 게 아니다. 흰빛을 띠고 있다. 대낮에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펼치면 자연히 카메라에도 잡힐 거고, 나는 딱히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음……. 그럼 일 끝나고 보여 줘요.”
반짝반짝한 눈으로 날 보는 최나라의 눈빛은 드라마에 대해 떠들던 정해영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잘 좀 들어줄걸. 아냐, 정해영에게 약해지면 안 된다. 걔가 모든 악의 축인 것을.
최나라의 수다를 들어주고 있으니 백성찬이 금방 돌아왔다.
“그.”
백성찬은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피리 연주자는 미국에서 피리랑 같이 왔는데…….”
“연주자가 필요한 피리에요, 오빠?”
“그래도 미국 문화유산이잖아.”
“독일에서 훔쳐 온?”
백성찬은 최나라를 흘깃 보았다.
“다른 데서는 그 얘기 하지 마.”
“에이, 당연하죠. 나도 그 정도 구분은 해요.”
백성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하멜른 그 동화 알지, 두 사람 다?”
최나라가 대답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결말은 피리 부는 남자가 쥐를 없앴지만 돈을 못 받자 애들 납치한 것도 기억하지?”
……그러고 보니.
“연주를 잘못하면 쥐가 아니라 아이들이 따라온대.”
김태욱 차장은 이런 위험한 물건을 박서원 이름 팔아서 빌려 온 거야? 박서원이 짜증 낼 만하네!
“저쪽도 최대한 조심하겠는데, 우리보고도 조심하라는데?”
“뭐, 조심해서 애들 태우지 말란 거야?! 완전 미친 소리 아냐!”
최나라가 꽥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