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6. 지피지기(1)
띠리링. 띠리링.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침을 알렸다.
평소라면 욕을 내뱉으며 억지로 눈을 떴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간밤에 먹은 복숭아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내 기분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한강까지 완벽한 날이었다.
이쪽 방향으로는 잠실타워가 보이지 않아 그 빌어먹을 청룡이 안 보인다는 점도 좋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아침.
오늘은 완벽한 날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친. 이건 또 뭐야?”
하얗게 빛나는 내 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 * *
“너 박서원이랑 친하다며?”
연수원에서 만난 김석준과는 회사 동료와 친구 사이에 있는 미묘한 관계이다.
같은 부서 사람이었다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겠지만 타 부서 사람이다. 그렇다고 마냥 친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회사 동기라는 점이 걸렸다. 무엇보다 근무하는 층부터가 다르니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데다가 둘 다 바쁘다 보니 더 그렇다. 사실 애초부터 친해지기 그른 상황이다.
“뭐?”
그러니 지금 내가 이 말에 화를 내어도 우리 사이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네가 박서원 팬이라서 들이댔다며?”
“헛소문이다.”
딱 잘라 말했지만 김석준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사인도 받았다던데?”
이것도 딱 잘라 부정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누가 그래?”
“너희 부서 김 차장님이.”
그 입 싼 양반. 살생부 두 번째에서 평생 내려올 일은 없을 거다. 언젠가 꼭 복수할 테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박서원이랑 친하다니까 나 사인 하나만 받아 주면 안 되냐.”
진짜냐.
“박서원 사인 비싸게 팔린다고. 하나에 30만 원 하던데.”
“그게 팔린다고?”
“외국에서 그 정도 한다더라. 백성찬 말대로 30년 정도 지나면 엄청 비싸질지도 몰라…….”
그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발걸레로 쓰는 대신 팔아버릴 걸 그랬다. 박서원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에 있는 박서원 사인이면 꽤 비싸게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말도 마라.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을걸? 능력부터가 간지가 넘치잖아.”
박서원의 메인 능력은 중력. 서브 능력이 염력이라는 점을 더 하면 인간 마음속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면이 있긴 했다. 거기다가 키는 좀 작아도 얼굴도 좀 생겼으니……. 정해영 그 눈 높은 기집애가 좋아하는 거 보면 대충 각이 선다.
“그러니까 사인 한 장만 받아다 주라.”
“너 관리 부서잖아. 직접 부탁해.”
“박서원이 나 같은 신입이 관리할 군번이냐?”
“지나가다 볼 수도 있는 거 아냐.”
“입사한 이래로 한 번도 못 봤다니까? 아, 몰라. 내 미래의 재테크를 위해서 부탁한다. 어?”
나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노력해 볼게.”
그러나 세상에는 박서원의 사인 같은 거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다. 나라에 빼앗긴 내 집이라든지, 보상금으로 나온 돈이라든지.
통장에 찍힌 금액은 감동스러운 수준이라서 한 달 정도 집에 못 들어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강남구 고급 아파트에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뭐……. 괜찮지 않을까?
한강뷰와 통장 잔고는 나를 배부르게 했지만 한철의 꿈에 불과하다. 일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길거리에 나가 굶어 죽게 될 거다. 불행한 소시민의 삶이여. 복권이나 사야지.
물론 제일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통장에 돈이 쌓이든, 복권에 당첨되든 무슨 소용이랴. 그걸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면 그냥 휴지 조각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다. 기필코 정해영의 뒤통수를 때리고 말 거다. 돈이 있는 건 좋지만 목표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할 한 걸음으로 나는 폰을 들어 블로그를 확인했다.
[오늘의 청룡님]
[2019년 2월 12일 13시경의 청룡님입니다. 화요일이라 잠실타워를 감으셨습니다.]
아마도 내 귀환행 티켓이 되어줄 여의주의 주인을 확인하는 건 중요한 업무다.
여의주를 얻으려면, 혹은 청룡이 내 소원을 이루게 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북도지사 김개천의 아버지는 청룡의 아들을 도와주었다가 소원을 빌었다. 역시 청룡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나? 화요일마다 잠실타워를 감싸는 거대한 지렁이에게 무슨 수로?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포기가 빨랐다.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다. 김개천의 아버지가 도와주었다는 청룡의 아들. 청룡은 동해 출신이라고 했으니 동해 깊숙한 곳에는 청룡의 가족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물에 걸릴 만큼 작은 청룡의 아들도 있겠지. 5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지만 잠실타워를 꿈틀꿈틀 감는 청룡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런데 새끼용의 여의주도 그만한 효력을 낼까? 잠실 청룡은 천 년 묵었다며?
그래서 또 다른 방법도 생각했다. 이건 박서원이 말해 준 거다.
이무기의 여의주 일곱 개는 죽은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무기가 굳이 일곱 개라는 숫자를 들먹였으니 그 정도면 용의 여의주와도 한판 해 볼 만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 이무기가 몇 마리나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곱 마리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나왔으면 좋겠다. 나와야 한다.
“뭐 재밌는 거 있어요?”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1층 카페에서 커피 심부름을 한 이유나는 내게 딸기 스무디를 내밀며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유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청룡님? 청룡님 관심 있어요?”
“용이잖아요.”
“그건……. 그렇죠.”
이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에도 마스코트 격의 동물들이 많지만 청룡님은 남다르죠.”
“그게 동물이라고 부를 만한 겁니까?”
“그렇다고 요괴라고 하기는 그렇잖아요.”
커피를 받아가던 이 대리가 혀를 찼다.
“아니, 신수라는 멀쩡한 단어를 두고 뭐라고 하는 겁니까? 우리 부서가 그쪽이랑은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아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알아들으면 됐죠…….”
이유나는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분명 여기서는 아이돌이 아닐 텐데 저런 걸 보면 아이돌 티가 확 난단 말이지.
TV나 모니터 속에서나 보던 얼굴과 매일 함께 일하고 있으니 새삼스레 이상했다. 저런 얼굴로 왜 사무직이나 하고 있단 말인가. 나 같으면 기획사 문이나 두드리고 있을 텐데.
이유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계속 말했다.
“청룡님이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광화문 광장의 해태도 있잖아요. 난 해태가 더 귀여워서 좋더라.”
역시 이 세계는 나에게 너무 어렵다. 광화문 광장의 해태라. 궁금하면서도 검색해 보기 무서워졌다.
그렇지만 이곳을 탈출하려면 이곳에 대해서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긴다고 했다. 내 목표는 여의주나 그에 필적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물건을 얻는 거다.
그렇다면 먼저 여의주의 주인인 용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는가?
나는 다시 휴대폰을 보았다.
[오늘의 청룡님]
잠실에, 가야겠다.
* * *
회사에서 청룡이 있다는 잠실까지는 멀지 않았다.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된다. 사실 그래서 더 가기 싫었다.
회사를 나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로 향한다. 모든 풍경은 내가 나고 자랐던 곳과 다른 게 없었다. 퇴근시간 지하철 안을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도, 피곤한 얼굴도.
잠실의 청룡은 워낙 유명해서 포털 사이트에 몇 번 검색한 걸로도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경북도지사와 얽힌 일화부터 해서, 2016년 잠실타워가 완공된 이후 동해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잠실타워를 휘감고 있는 용의 모습은 곧바로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잠실타워 내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잠실타워 직원들의 민원이 빗발쳤고, 서울시 공무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청룡에게 이야기했다. 잠실타워 근무환경과 주변 건물의 일조권을 둘러싼 다툼은 일 년 동안 이어졌다.
그 결과 청룡은 매일매일 자리를 바꿔 가며 잠실에서 몸을 틀었다. 잠실타워‘만’ 감고 있는 건 화요일. 마침 오늘도 화요일이다.
“…….”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나오자 제일 먼저 꼬리가 보였다.
반짝반짝한 비늘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옥빛 도는 갈기가 꼬리처럼 휘날렸다. 얼마나 큰지 몸에서 제일 끄트머리 부분인 꼬리도 대형 트럭만 했다. 관광객들이 용의 꼬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용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꼬리는 둥둥 떠 있었으며 몸통도 마찬가지다. 해가 져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용의 비늘은 달빛처럼 빛났다. 빛이 새어 나오는 타워를 용은 부드럽게 감쌌다. 아주 살짝, 용과 타워 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떨어져 있는 건 나다.
사람들은 즐겁게 웃으며 잠실타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 용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도 예전에는 잠실에 자주 나왔었다. 놀기 편한 곳이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지하철을 타고 왔다.
사람은 여전히 많다. 우뚝 솟은 빌딩도 그대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내 세계에는 저런 용이 없다.
“우와!”
“움직인다!!”
“청룡님, 미세먼지 없애 주세요!”
빌딩을 안고 있던 청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인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리며 사람들의 머리 위를 스쳤다.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꺅꺅거리던 사람들이 청룡을 향해 소원을 말하기 시작했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청룡님!”
“청룡님!”
용이 없는 세계에서 온 나에게 그 모습은……. 일종의, 광기 어리기까지 했다.
청룡은 천천히 움직였다. 기지개라도 피는 것처럼. 새파란 갈기가 마구잡이로 휘날리고, 머리에 있는 사슴의 뿔이 타워의 불빛이 비친 지상 위로 길게 그림자를 남겼다. 부리부리하게 뜬 눈이 두 손을 들고 환호를 지르는 사람들을 향할 때마다 함성이 튀어나왔다.
‘저것’에게 은혜를 입히자고?
내가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인 거지?
저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낮에 이유나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마스코트? 동물? 요괴? 다 집어치워라. 이 대리가 말했던 신수도 눈앞의 ‘저것’을 옳게 설명하지 못한다.
마치 자연재해가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예?”
“얼굴이 창백한데……. 괜찮으세요?”
교복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 주며 허둥지둥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이건…….
자연재해 앞에 굴복한 인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내 집도 아니지. 박서원의 아파트로 돌아갔다.
불도 켜지 않고 소파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나는 여의주가 필요하다.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그게 날 집에 보내 줄 확률이 제일 높은 물건이었으니까.
그러나 자연재해를 도대체 어떻게 돕는단 말인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고 했다.
그러나 적이 자연재해일 경우, 대개 인간은 질 수밖에 없다.